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수상록 - 10점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제1권 

제2권 

제3권 


몽테뉴의 생애와 사상 

1. 그의 생애 

2. 사상과 해학 취미 

3. 《에세이》에 나타난 사상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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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우리의 출생이 모든 사물의 출생을 가져온 바와 같이 우리의 죽음은 모든 사물의 죽음을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백 년 뒤에 우리가 살아 있지 않으릴라고 슬퍼하는 것은, 지그부터 백 년 전에 우리가 살아 있지 않았다고 슬퍼하는 것과 같이 미친 수작이다. 죽음은 다른 생명의 근원이다. 우리는 울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들어오기가 힘이 들었다. 우리는 여기 들어 올 때에 헌 옷을 벗어던졌다.


102 그대가 살고 있는 거은 모두 생명에게서 훔쳐 온 것이다. 생명은, 생명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그대의 생명이 끊임없이 하는 일은 죽음을 지어가는 것이다. 삶에 있는 동안 그대는 죽음에도 있다. 왜냐하면 그대가 이미 살고 있지 않을 ㄸ에, 그대는 죽음 저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삶 다음엔 죽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대는 죽고 있다. 그리고 죽음은 죽은 자보다도 죽은 자를 더 혹독하게 침해한다. 


103 인생은 그 자체로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대들이 인생에게 차려주는 자리의 좋고 나쁨에 따른다. 그대가 하루 살았으면 다 살아 본 것이다. 하루나 다른 날들이나 마찬가지이다. 낮의 밝음에 다를 것이 없고, 밤의 어두움에 다를 것이 없다. 이 태양, 이 달, 이런 배치들, 이 것은 그대 조상들이 누려 온 것이며, 그대 후손들이 다루어 갈 것이다.


105 어디서 그대의 생명이 끝나건 생명은 거기서 전부이다. 삶의 효용은 공간에 있지 않고 사용에 있다. 젝게 살고도 오래 산 자가 있다. 그대가 살아 있는 동안, 거기 주의하라. 그대가 실컷 산다는 것은 세월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고, 그대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대가 끊임없이 가고 있는 곳으로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나갈 구멍 없는 길은 없다. 길동무가 있어야 덜 허전할 것이라면 세상이 그대가 가는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151 우리는 기억력을 채울 생각만 하고, 이해력과 양심은 빈 채로 둔다. 마치 새들이 모이를 찾으러 나가서 그 모이를 새끼에게 먹이려고 맛보지 않고 입에 물어 오는 것과 똑같이, 우리 학자님들은 여러 책에서 학문을 쪼아다가 입술 끝에만 얹어 주고, 뱉어서 바람에 날려 보내는 짓밖에는 하지 않는다.

이 어리석은 수작이 얼마나 내 경우에 들어맞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내가 여기 글을 쓰는 것도 똑같은 수작이 아닐까? 나는 이책, 저책,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을 도둑질해 다니며, 그것을 담아 둘 곳도 없어서, 내게 저장해 두지 못하고 여기다 옮겨놓는 것이다. 사실 이 문장들은 전에 있던 자리에서나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내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지식으로만 배우는 것이고, 과거의 것은 미래의 것과 똑같이 지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209 대체로 보통 친우 또는 우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느 기회에 편의상 맺어져서 우리 마음이 서로 사귀는 친교와 친밀성에 불과하다. 내가 말하는 우정에서는 마음이 아주 보편적인 혼합으로 뒤섞여 융합되기 때문에, 그들을 맺는 매듭이 지어져서 알아볼 수 없이 된다. 누가 내게 왜 그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음을 느낀다. 다만 '그가 그였고, 내가 나였기 때문'이라고이라고 밖에는 대답할 길이 없다.


237 왕은 그들과 오래 이야기해 보았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우리의 생활 방식과 화려한 의식과 아름다운 도시의 형태 등을 보여 주었다. 그 다음에 누가 그들에게 의견을 물어 보고, 그들이 무엇을 보고 가장 감탄했는가를 알려고 했더니, 그들은 세가지를 대답했는데, 아깝게도 나는 그 중의 마지막 것은 잊어버렸다. 그러나 두 가지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들은 첫째로 가장 이상하게 본 것은 왕의 주위에 수염을 기르고 힘세고 무장한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한 어린아이에게 복종하고 있으며, 자기들 중에서 지휘자 하나를 뽑아내지 않고 있는 것이 대단이 이상하다 했다. 둘째로 우리들 중에 모든 종류의 좋은 것을 혼자서 잔뜩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 문 앞에 찾아오는 반쪽들은 배고픔과 가난으로 바싹 말랐으며, 또 이 반쪽들은 이렇게 곤궁한 속에서 어떻게 이 부정의를 참아 낼 수 있는가, 어째서 그들은 다른 자들의 멱살을 잡든지, 그 집에 불을 지르지 않는지 이것이 대단히 이상하다고 했다.

331 만일 우리가 가끔 자신을 고찰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며, 다른 사람들의 일을 살펴보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알아보는 데 쓰는 시간을 우리 자신을 살펴보는 데 사용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조가 얼마나 약하고 실패하기 쉬운 부분들로 이뤄져 있는가를 쉽게 느낄 것이다. 우리 마음이 아무것에도 만족해 안정되지 못하고, 우리가 불완전하게 생겼다는 특이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일까? 철학자들이 인간의 최고선을 찾기 위해 항상 싸웠으나 해결도 합의도 없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영원히 계속될 이 굉장한 논쟁이 이것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401 내가 글쓰는 것은 내 몸짓이 아니다. 그것은 나다. 내 본질이다. 나는 자기를 평가함에는 신중해야 하며, 천하게 보여 주건 고상하게 보여 주건 자기를 보여 줌에는 양심적이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내게 좋거나 현명하거나 또는 그런 것에 가깝게 보인다면, 나는 힘껏 소리 높여서 내 말을 하겠다. 실제 있는 것보다 더 못하게 말하는 것은 어리석음이지, 겸손이 아니다. 이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자기 가치보다 못한 짓을 하는 것은 비겁하고 겁쟁이의 짓이다. 어떠한 도덕도 거기에서는 도움을 받지 모한다. 진리는 결코 잘못의 재료가 되지 못한다. 실제보다 더하게 자기를 말하는 것은 언제나 교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어리석음에서 나온다. 실제 있는 것보다 지나치게 잘났다고 생각하곤 분별없이 자기 자랑에 빠지는 것이, 내 생각으로는 이 악덕의 실체이다. 그것을 고치는 최상의 치료법은 자기의 말하는 버릇을 금지케 하여, 그 결과로 더욱 자기 생각하기를 중지하는 자들이 명령하는 바를 거꾸로 행하는 데 있다. 자존심은 사상 속에 있다.

1248 자기의 존재를 충실하게 누릴 줄 아는 것은 절대적인 완벽이며, 신성함과 같은 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조건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그 떼문에 우리가 아무리 죽마를 타고 높이 올라 보아도 소용없다. 왜냐하면 죽마 위에서도 우리는 다리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 위에서도 역시 우리 궁둥이는 자리에 앉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내 생각으로는 터무니없는 기적 없이 보통 인간의 본보기로 질서있게 처신하는 인생이다.
그런데 노령기는 좀더 부드럽게 대접받을 필요가 있다. 건강와 예지의 수호자이면서도 유쾌하고 사귐성이 있는 이 신에게 노년기의 축원을 바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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