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맨더빌: 꿀벌의 우화



꿀벌의 우화 - 10점
버나드 맨더빌 지음, 최윤재 옮김/문예출판사


책을 내며 

해제: 맨더빌의 삶과 생각 

1. 시대 배경 

2. 맨더빌의 삶 

3. 도덕 운동에 대한 공격 

4. 맨더빌이 이룬 것 

5. 맨더빌과 스미스는 어떻게 다른가 

6.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 


꿀벌의 우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머리말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 

들어가는 말 

미덕은 어디에서 왔는가 

주석 (L):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 일자를 주었고 

주석 (Q): 검소하게 그들은 이제 녹봉에 맞춰 살았다 

주석 (Y): 세상의 편리함을 누리며 

자선과 자선학교 

사회의 본질을 찾아서 


더 읽을거리 

맥주의 우화 | 잉어 | 거룩한 목요일 |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들> 원문 


다른 이들이 본 맨더빌 

참고문헌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106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렸다. 시샘과 헛바람은 산업의 역군이니 그들이 즐기는 멍청한 짓거리인 먹고 쓰고 입는 것에 부리는 변덕은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덕이지만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 바로 그 바퀴였다. 

이제 악덕은 교묘하게 재주 부려 시간과 일이 더해지면서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놓았다. 이것이 참된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넉넉함이어서 그 높이로 치자면 아주 못사는 놈조차도 예전에 잘살던 놈보다 더 잘살게 되었으니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없을 것이다.


142 이 말을 통해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사람 사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 모든 것을 사치라 부르지 않기로 한다면, 이제 사치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사람이 바라는 것은 셀 수 없으니, 이를 충족 시킬 것 또한 끝이 없다. 어떤 수준의 사람들에게는 없어도 그만인 것이, 더 높은 수준의 사람들에게는 필수품이 되기도 한다. 이 세상 어느 기술자도 만들어내기 어려울 만큼 진기하고 엉뚱한 것조차도 어떤 군주는, 편안하게 해줘서 그러는지 즐겁게 해줘서 그러는지, 생활필수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보통사람의 생활이 아니고 신성한 사람의 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171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잘 다스린다면, 풍요를 가져오는 것은 노동자를 값싸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이 굶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저출할(쓰고 남을) 만큼 주어서는 안된다. 여기저기서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 남들 안 하는 일을 하며 먹을 것 안 먹어가며, 그리하여 그가 자라온 환경을 넘어선다면 아무도 그를 막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한 집안이 절약한다는 것은 따져볼 것도 없이 가장 승기로운 길이다. 그러나 모든 잘사는 나라에는 가난한 사람들 대부분이 빈둥대지 않고 버는 대로 줄곧 쓰는 것이 이익이다.


172 윌리엄 템플 경이 잘 보았듯이, 모든 사람은 자존심이나 탐욕이 부추기지 않는 한, 일하는 것보다는 편하고 즐거운 것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일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자존심이나 탐욕에 크게 좌우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들은 가난하지 않으면 일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가난을 덜어주는 것은 속 깊은 일이지만 가난을 없애주는 것은 바보짓이다. 노동자를 부지런하게 만들려면 오로지 돈이 적당히 있어야 한다. 너무 적으면 사람에 따라 기가 죽거나 절망하게 될 것이고, 너무 많으면 거들먹거리고 게을러 질 것이다. 


185 연민이 눈이나 귀로 들어온다고 한 내 말을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맞는다는 것은, 대상이 가까이 있을수록 더 고통받고 멀리 있을수록 덜 걱정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멀리서 본다면 사형당하는 사람을 보더라도 우리 마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가까이에서 그들 눈 속에서 영혼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두려움과 번민을 관찰하고, 얼굴 구석구석에서 고통을 읽어낼 수 있다면 다르다. 대상이 우리 감각에서 꽤 벗어나 있을 때에는 불행한 이야기를 듣고 읽는 것으로는 연민이라고 하는 감정이 일어날 수 없다. 친구들이나 우리가 지지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재난을 당했다는 나쁜 소식을 듣게 되면 우리는 걱정하지만, 이는 연민이아니라 슬픔이나 비통함이며, 그 감정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나 아끼는 것이 망가졌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과 같다.


200 노예가 허용되지 않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가장 확실한 부는 부지런한 가난뱅이가 많다는 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선단과 군대를 틀림없이 채워준다는 것 말고도, 이들이 없으면 우리가 누릴 것도 없을 것이고, 어느 나라 어느 물건도 소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쁜 환경에서 사회가 행복해지고 사람들이 편안해지려면, 반드시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무식할 뿐 아니라 가난해야 한다. 지식은 우리 욕먕을 키우고 늘리게 되는데, 사람은 바라는 것이 적을수록 필요한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와 왕국은 행복하게 잘살려면, 일하는 가난뱅이들의 지식은 그들이 하는 일 언저리에 한정되어야 하며, (눈에 보이는 것에 있어서) 그 직업에 관한 것을 넘어서도록 해서는 안된다. 양치기나 밭가는 농부나 다른 어느 농사꾼이 제 노동이나 일자리와는 관계없는 다른 것들과 세상일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제 일의 피곤함과 어려움을 즐겁고 기쁘게 견뎌내기가 더 힘들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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