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뿌리 | 04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1)


필사본이 있어서 별도로 강의 내용을 요약하지 않았다.


강유원의 낭만주의의 뿌리 강의 4

강의 교재: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

강의 목차: 1강 낭만주의의 정의를 찾아서

               2강 계몽주의에 대한 최초의 반격

               3강 낭만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들

               4강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1)

               5강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2)

               6강 해방된 낭만주의

               7강 지속되는 영향력

               8강 지속되는 영향력


도서목록: 이사야 벌린: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니콜라이 하르트만: 독일 관념론의 철학





2006년 여름 풀로엮은집

낭만주의 강의

강사 : 강유원

필사 : 이재만

교재 : 이사야 벌린,『낭만주의의 뿌리』(The Roots of Romanticism), 이제이북스, 2005\


4강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1)

오늘은 칸트에 대해서 한다. 4장 113쪽부터 128쪽까지 읽는다. 칸트에 대한 벌린의 태도를 알려면 지난 번에 소개했던『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아카넷)에 실린「자유의 두 개념」(Two concept of Liberty)를 보충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칸트 철학은 굉장히 다면적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칸트하면 그가 지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시간을 맞췄다는 유명한 일화만 떠올린다. 인식론적인 업적은 차치하고라도, 칸트가 내놓은 인간 내면의 자유에 대한 입론은 서구 철학에서 매우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칸트에 대한 다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칸트야말로 모순적인 사람이 다. 한 사람에게서 순수자연과학을 정초하려는『순수이성비판』의 시도와 인간 내면의 자유를 정초하려는『실천이성비판』의 급진적인 시도가 나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로는 칸트는 계몽주의의 완성자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와 정반대 입장에 섰다.


책을 읽을 때는 그 책에 내 몸을 담가야 한다. 내 지도교수님은 헤겔 변증법을 전공하셨다. 그런 사람이라면 기계론적 유물론을 싫어할 수 있다. 나는 석사 논문을 토마스 홉스의 기계론적 유물론에 대해 썼다. 그런데 선생님이 논문을 쓸 때는 어떻게해서든지 그 사람을 끝까지 옹호하겠다는 입장에 먼저 서 봐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대개 비판적으로 읽는 것을 먼저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철저하게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내가 홉스라면’라고 가정하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은 그것을 텍스트 안에 몸을 담그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이 책을 읽을 때도 ‘내가 벌린이라면’ 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네 번째 강의쯤 되었으면 강의 들으러 오기 전에 머릿속에 나름대로의 상을 가지고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선생이 말하는 상과 나의 상을 맞춰봐야 한다. 그러나 내가 틀리게 읽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르게 읽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르게 읽되 얼마나 논리적으로 읽고 있는지만 유념하면 된다.


“이제 세 명의 독일 사상가들에게로 화제를 옮겨 보겠는데, 두 명은 철학자이고 나머지 한 명은 예술가 - 극작가 - 이며, 이들은 독일과 그 경계 너머에서 모든 낭만주의 운동 전체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낭만주의자들을 정확히 “억제된 낭만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에 이어 다음 장에서는 이 운동의 귀결인 억제되지 않은 낭만주의자들에 대해 논의해 보겠다.”(113쪽)


두 명의 철학자는 칸트와 피히테이고, 한 명의 예술가는 실러를 말한다.


“칸트는 낭만주의를 혐오했다. 그는 모든 형태의 방종과 환상, 그가 허황된 생각이라고 부르던 것, 어떤 식으로든 과장된 것, 신비주의, 모호함과 혼란을 싫어했다. 그런데도 그는 낭만주의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 어떤 불가사의함이 있다.”(113-114쪽)


칸트가 낭만주의를 혐오했다는 것은 “칸트는 과학의 신봉자였다”(114쪽)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말이 칸트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상이다.


“칸트는 과학적의 원리가 그 어떤 학문의 원리들보다 심오하다고 믿었으며, 과학적 논리와 과학적 방법의 근거를 설명하는 것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다.”(114쪽)


“칸트는 사실 인간의 자유라는 관념에 경도되어 있었다”(114쪽)로 시작하는 다음 문단부터 본격적으로 칸트가 어떤 점에서 억제된 낭만주의자인지에 대해 말한다.


칸트는 “인간의 내적이고 도덕적인 삶에 열렬히 몰두”(114쪽)했다.


여기서 칸트 → 피히테(Fichte) → 셀링(Shelling) → 헤겔(Hegel)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철학을 따져보자. 칸트의『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되고 헤겔의 주저인『법철학』이 나온 기간이 5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이 네 명은 한 시대 사람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의 의도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음미하고, 그것의 되먹지 못한 사용을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칸트는 형이상학의 문제에 있어서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인식되지 않는 물 자체(物自體, Ding an sich)가 남게 되었다. ‘물 자체’는 사물 그 자체, 객관적 현실이라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 칸트는 객관적 현실에 대한 인식을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경험 데이터가 주어지는데 그것만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성의 카테고리로 구성해서 만들어진다. 칸트에게 진리의 인식은 주관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 자체는 지극히 객관적인 것이다. ‘객관’은 나의 밖에 있는 것,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남아 있다. 그런데 피히테, 셀링, 헤겔로 갈수록 물 자체를 알지 못하기는커녕, 헤겔에 이르면 인간이 대상세계를 창조한다고까지 말한다. 칸트는 애초에 인간 이성 능력의 한계를 음미하고,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왈가왈부 해왔던 것을 그만하자고 말했다. 칸트의 성과를 이어받았다고 하는 헤겔은 ‘절대적 정신’을 말한다. ‘절대적 정신’은 말하자면 신이다. 인간이 신의 위치로까지 올라선 것이다. 칸트와 피히테는 억제된 낭만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셀링과 헤겔은 아주 활짝 핀 낭만주의자이다.


낭만주의는 인간의 내면의 힘을 굉장히 신뢰하고, 그것을 뿜어내는 것이다. 벌린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칸트 안에 그러한 맹아가 있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까 말했듯이 칸트는, 인간의 인식은 물 자체를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진리의 인식은 주관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순수이성비판』에 낭만주의와 관련된 싹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기준에 의하면 진리의 기준은 바깥에 있다.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이 있을 때 우리는 ‘객관적인 것’이 진리에 가깝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칸트 이전에도 그랬다. 내가 대상세계와 어떻게 부합되느냐가 진리 기준이었다. 반면 칸트는 진리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양 철학에서 굉장히 놀라운 인식론적 전환이다.


계몽주의의 완성자답게 칸트는 이성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철저하게 배격했다. 독일 관념철학은 칸트의 반형이상학적 인식론에서 출발했다. 반형이상학적 인식론을 다른 말로 하면 주관주의적 인식론이다. 칸트는 거기에서 멈췄다. 칸트는 물 자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없으니 조심하자고 했다. 그런데 뒤에 오는 낭만주의자들은 객관적 현실을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계몽주의와 정반대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 측면에서 보면 칸트야말로 정말 미묘한 지점에 서 있는 것이다.


칸트에서 피히테, 셀링, 헤겔에 이르는 과정은 어찌 보면 칸트를 계승한 과정이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은 인간을 넘어서는 초월자를 인정한다. 칸트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히테, 셀링, 헤겔도 모두 초월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그들이 칸트의 반형이상학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칸트를 배반한 측면도 있다. 칸트는 물 자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의 이성이 신적 이성으로 올라서는, 칸트가 보기에는 방약무인한 짓거리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나의 독창적인 독해가 아니라,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이라는 사람이 쓴『독일 관념론의 철학』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책 앞부분에 독일 관념론 철학이 간명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책 보기가 귀찮다면, 내 웹사이트(http://armarius.net) manuscript에 있는 ‘Hegel 哲學 槪念 一瞥’이라는 짧은 글 첫머리에 그 부분을 번역해서 인용했으니 그걸 보면 참고가 될 것이다.


칸트는『순수이성비판』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해서 어떤 결과가 생긴다고 해도, 나는 나의 동기, 내면의 목적, 마음의 순수성만을 통제할 수 있을 뿐 그 결과는 어찌 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것이 인간의 인식은 주관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과 통한다. 칸트의 윤리설을 의무론적 윤리설 또는 동기주의 윤리설이라고 한다. 이것은 칸트가 동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칸트는 사실 객관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활동의 결과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이것을 ‘엄격한 자기 절연 의식’, ‘고결함 존중’이라고 한다. 이것이 칸트가 말하는 자율적 자유의 밑바탕에 놓여 있는 미묘한 mentality 같은 것이다. 벌린이 쓴 논문 중 에「Kant as an unfamiliar source of nationalism」이 있다. 낭만주의가 개인 버전이라

면 민족주의는 낭만주의의 사회 버전인데, 칸트가 민족주의의 요상한 원천이라는 것이다. 


칸트에게는 ‘엄격한 자기 절연 의식’이 ‘자유’였다. 칸트에게 ‘자유’는 자기 내면에만 충실하려는 것이었고, 이것이 칸트를 억제된 낭만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요소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칸트는 계몽주의의 완성자라고 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사회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칸트는 사실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난 적도 없다. 칸트는 계몽주의자인데도 독일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칸트는 왜 계몽주의자이면서도 ‘엄격한 자기 절연 의식’이라고 이해될 수 있는 자율적 자유를 말했는가? 벌린은「자유의 두 개념」에서 독일 지식인들이 ‘참된 자아라고 하는 내면의 성채’도 도피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낭만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계몽주의의 완성자라고 하는 칸트까지도 30년전쟁의 여파로 다들 내면의 성채로 도피해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들은 외부세계가 unjust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번에 잠깐 읽었던 아르놀트 하우저의 책에도 독일 철학자들의 서재는 연금술사의 실험실처럼 철저하게 밀폐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누구나 다 시대의 아들이기 때문에 칸트도 외부세계에 대한 자기 폐쇄를 공 유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칸트는 사실 인간의 자유라는 관념에 경도되어 있었다.”(114쪽) 


여기서 ‘자유’는, 내면의 자유, 결연하게 대상세계와 나 사이를 끊어내고 고결한 주관성에 머물러 있겠다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면의 동기에만 머물러 있겠다는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의미이다. 이 ‘자유’를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자유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그가 확신했던 명제 중 하나는, 모든 인간은 한편으로 자신의 성향과 욕망과 열정,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유혹하는 것과 자신의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또는 경험적인 본성의 일부분을, 다른 한편으로는 의무와 옳은 일에 대한 책무의 개념, 쾌락을 좇고 싶은 욕망이나 자신의 성향과 종종 충돌하곤 하는 것들과 구분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115쪽)


즉 칸트에게 자유는 자연적 본성과 의무를 구분하고 결단을 내려서 옳은 편에 서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선택의 문제가 된다.


“인간과,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식물이든 다른 자연의 대상물과의 차이는 다른 것들이 인과법칙 아래 놓여 미리 결정된 인과관계의 도식을 엄격히 따르는 데 반해, 인간은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데 있다. 바로 이것, 이 자유의지가 인간을 자연의 다른 대상들과 구별해 준다.”(115쪽)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라는 소고에서 칸트는 계몽을, 간단히 인간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능력이자 타인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성숙해진 인간이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있어 그것이 선하든 악하든, 권위에, 이런 저런 선생들에, 국가에, 자기 부모나 유모에, 전통에, 또는 도덕적 책임의 무게가 분명히 실려 있는 기존의 가치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는 상태라 규정한다.”(116쪽)


계몽은 곧 ‘자기결정성으로서의 자유’이다. 이것이 바로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남’이다. 나는 계몽주의를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칸트의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언명법을 이해가 될 것이다. 


“진정 그는 착취를 해악으로 보는 개념의 창시자이다.”(117쪽) 


가라타니 고진도『윤리21』같은 이야기를 한다. 마르크스는 착취를 반대한 사람인데, 그것이 바로 칸트로부터 이어받은 이념이라는 것이다.


“칸트에게 그들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만의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행위는, 어느 것이나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강요하는 가치 하락의 한 형태이자, 타인을 끔찍한 불구로 만드는 동시에 그들을 인간으로 구별해 주는 것, 곧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로 보였다.”(117쪽)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가 곧 ‘자기결정적 자유’이다. 이것으로 칸트의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칸트가 착취와 인간의 가치 하락과 인간성 말살, 이후 19세기와 20세기의 모든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의 밑천이 된 모든 것, 즉 인간의 가치 하락과 물상화, 삶의 기계화, 인간들끼리의, 또는 자신의 고유한 목적으로부터의 소외, 인간을 도구로, 또는 타인의 의지를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는 개념 전체와, 인간을 그들의 의지에 거슬러 강요하거나 결정하거나 교육할 수 있는 실체로 보는 일반적 관점에 대해 그렇게 열렬히 반대한 이유이다.”(117-118쪽)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모두 ‘자기결정적 자유’를 강조한다. 칼 포퍼가 플라톤, 마르크스, 헤겔을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사회가 그 구성원들의 의지와는 무관한 특정한 목적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개인들의 자기결정적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건전한 의미의 자유주의자들은 항상 그것을 부인한다.


“이런 것들이 무섭고 끔찍하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사할 수 있는 도덕적으로 가장 해로운 일이라는 개념은, 칸트의 이 열정적인 주장에서 나왔다. 물론 이런 주장은 칸트 이전에도, 특히 기독교 사상가들의 저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을 종교적인 맥락에서 이탈시켜 유럽에 보편적으로 수용된 언어로 옮긴 이는 바로 칸트였다.”(118쪽)


“칸트는 무차별적 결정론을 전적으로 거부했으며, 그만큼 인간의 의지를 몹시 강조했다. 이것이 그가 자율성을 요청하는 이유이니, 그는 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외부 요인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것을 타율, 즉 인간의 외부에 있는 법칙과 원천들이라고 불렀다. 이는 자연을 바라보는 새롭고 다소 혁명적인 견해를 수반하며, 또 유럽인들의 의식 속에 매우 핵심적인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124쪽)


낭만주의자들은 독특한 자연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칸트의 자연 개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때까지 자연에 대한 태도는, 자연이란 단어가 무엇을 뜻했든... 대체로 자애롭거나 우호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이었다.”(124쪽)


이것이 자연에 대한 종래의 관점이다. 아까 보았듯이 칸트는 우선 인간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다. 자연은 법칙을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려면 자연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칸트에게 이것은 명백히 진리가 될 수 없다. 자연이 어머니이자 여신이며, 자애롭고 숭배 받아야 할 대상, 예술이 마땅히 모방해야 하고, 도덕이 원천으로 삼아야 하며, 몽테스키외가 말했듯이 정치 또한 그것을 토대로 성립해야 하는 것이라는 개념, 이것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선택의 자유를 훼손하는데, 자연이 기계적이라면, 또는 설사 기계적이지 않고 유기체적이더라도, 어쨌든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나오는 엄밀한 필연성을 따르며, 따라서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이라면 그 또한 미리 결정되어 있고, 그런 경우 도덕은 끔찍한 환상이 된다.”(125쪽)


‘필연성’은 칸트가 제일 싫어한 말이다. 칸트는 ‘필연성의 왕국’인 자연을 거부하고 ‘자유의 왕국’을 구축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몽테스키외가 말했듯이 정치 또한 그것을 토대로 성립해야 하는 것이라는 개념”은 전통적인 의미의 자연법 개념이다. 그러나 칸트는 자연법이라는 말 자체를 쓰지 않았다.


“자연이 인간의 적, 또는 중립적인 질료라는 이러한 개념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이것은 칸트가 1790년에 제정된 프랑스 헌법에 갈채를 보낸 이유이다. 그는 이에 대해,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투표하고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형태의 정부가 마침내 등장했으니, 더는 누구도 아무리 자애로운 정부라 해도 복종 할 필요가 없고, 아무리 훌륭한 교회라 해도 복종할 필요가 없으며, 아무리 유구하다 해도 그들이 직접 만들지 않은 원리들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126쪽)


이것이 바로 칸트의 혁명성이다. 칸트는 ‘자기결정적 자유’라는 관념에서 자연에 대한 관념으로 갔고, 이제 정치적 관념으로까지 간다. 이런 사람이 일관성 있는 철학자이다. 칸트의 의의는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동료 교수들이 공포정치를 개탄하며 프랑스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말 그대로 참사로 여기고 있을 때, 칸트는 비록 정확히 드러내 놓고 시인하지는 않았지만, 만에 하나 혁명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쨌든 올바른 방향의 실험이었다는 견해에서 완전히 멀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은 보통은 관습적이고 체제 순응적이며, 정돈된 것을 좋아하고 구식이었던, 어느 정도는 촌구석인 동프로이센의 교수 칸트가 이 인류 역사에 위대한 해방의 장을, 늘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경계해왔던 거대한 우상에 맞선 인간들의 자기 주장을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지켜보았는지를 보여 준다.”(126-127쪽)


여기서 칸트가 프랑스 계몽주의자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계몽주의의 완성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단지 이성을 강조했을 뿐이지만, 칸트는 그것을 철학적 체계 속에서 하나의 원리로 묶어냈다.


“전통, 깨뜨릴 수 없는 오래된 원리들, 왕, 정부, 부모, 단지 그것이 권위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는 모든 종류의 권위, 이 모든 것에 그는 혐오감을 느꼈다... 그의 도덕철학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러한 반권위주의의 원리 위에 확고히 기초를 두고 있다.”(127쪽)


이것이 계몽주의의 완성자로서의 칸트의 면모이다. 애초에 계몽주의는 반권위주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칸트는 그것을 도덕철학의 영역으로까지 끌어들였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에서도 칸트는 읽을 만하다. 전통과 깨뜨릴 수 없는 오래된 원리들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가. 계몽주의가 순진하다 해도 칸트 정도의 계몽주의는 필요하다. 계몽주의는 반권위주의의 기초 위에 있으며, 자기결정적 자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전선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벌린은 사실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는 공유지대가 존재한다. 벌린은 칸트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어 말하고 있다. 37쪽을 다시 보자.


“여기에 접근하는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 최소한 내가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된 유일한 방법은,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다가서는 역사적 방법이며, 18세기 초를 관찰하여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본 다음, 그 저변을 잠식하던 요인들이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생각해 보고, 18세기 후반까지 이 요인들에 어떤 특수한 결합이나 집합이 일어나, 내게는 분명 우리 시대 서구인들의 의식에 가장 큰 변화로 여겨지는 낭만주의 운동을 일으켰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37-38쪽)


“18세기 후반까지 이 요인들에 어떤 특수한 결합이나 집합이 일어나”라고 했다. 이 요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면 계몽주의가 되는 것이고, 또 같은 토대에서 다르게 결합되면 낭만주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낭만주의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내면의 자유를 강조한다고 해서 다 낭만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다. 자기결정적 자유는 굉장히 계몽적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아무리 관대하다 하더라도 그저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과 아무리 고귀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타고난 기질대로만 행동하는 인간, 외부로부터 온 것이든 자신의 고유한 본성으로부터 온 것이든, 어떤 종류의 불가항력에 의해 행동하는 인간은 정확히 말해 도덕적 행위자로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유일하게 소유할 가치가 있는 것은 구속에서 풀려난 자유의지이니, 이것이 칸트가 유명하게 만든 핵심명제다.”(128쪽)


다음은 오늘 읽은 부분에서 내가 뽑은 문장이다.


“논리와 엄밀함은 인간 정신의 고도의 훈련이었으며, 이런 일들이 너무 벅차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른 곳에서 반대의 이유를 생각해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114쪽)


칸트는 겉보기에는 유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다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묘하게 연결하는 측면이 있다. 다음 시간에는 피히테와 실러를 읽는다. 그런 다음 칸트와 계몽주의를 다시 한 번 정리하겠다. 내가 칸트를 계속 말하는 이유는,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칸트가 중요하기도 하거니와, 칸트라는 사람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에 나온 모든 서양 철학 문헌을 읽는데 있어서 칸트를 빼놓고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것은 앙꼬 빼고 찐빵만 달라는 것과 똑같다. 나는 헤겔 철학을 전공했지만, 좋아하기도 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기도 하는 철학자는 칸트이다. 칸트는 정말 중요하다. 17세기 이후의 서양 철학은 칸트 철학의 그늘 아래 있다고 할 수 있다. 칸트를 빼놓고 서양 근대 철학을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Hegel 哲學 槪念 一瞥



  Hegel을 읽은 적이 있기는 하나 오래 전의 일이고, 이제는 손에 잡지 않아 '전문 연구자'라 할 수 없는 처지이므로, 딜레탕트dilettante 수준에서 Hegel 철학의 기본 개념들 몇몇을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거론하면서 양 측면의 긴밀한 연관을 보여주려 해보겠거니와, 상세하고도 전문적인 개념 이해가 필요하다면 다른 문헌들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즘 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는 헤겔(지음), 김소영(옮김), <<논리학 서론.철학백과 서론>>(책세상, 2002)에 포함된 옮긴이 해제와 용어 해설 및 옮긴이가 참조했다고 거론한 다음 책들이 있다: Michael Inwood, A Hegel Dictionary, Blackwell, 1992; Historisches Woerterbuch der Philosophie, Schwabe & Co., 1971. 일본에서 출간된 다음 사전도 기본 개념들을 잘 설명해두고 있다: 加藤 尙武 外(編), <<ヘ-ゲル 事典>>, 弘文堂, 平成4년(1992).)



1. 배경


1.1 가장 위대한 비극작가 Sophokles(5c-406 BC)와 동시대인인 Platon(427-347 BC)의 철학을 거론할 때 흔히 사용되는 술어 중의 하나는 Pythagoras에 의해 철학적 술어가 된 theoria이다. 이 말은 다소 종교적인 의의를 가진 말로서 원래 희랍의 한 도시국가가 이웃의 도시국가에로 그 축제에 참여하여 신을 경배케 하기 위해서 보낸 사절을 의미했으며, 후에는 축제 자체가 theoria로 불려지기도 하였다. 이 술어는 일반으로 관상觀想, 관조觀照, 이론理論으로 이해된다. 신을 경배할 때에는 제식이 행해진다. theoroi[관조하는 사람]는 제식을 수행하며 신적인 것을 향하여 자신의 정신을 고양高揚시키고 신탁을 간직한다. 이로부터 theoria는 단순한 바라 봄이 아니라 신의 입장에로 올라서서 진리를 보는 것임이 명백하다. Platon은 이를 <<국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밤과도 같은 낮에서 진짜 낮으로 향하는 '혼의 전환'(psyches periagoge)이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한 철학(지혜의 사랑)이라고 말하게 될 실재로 향한 등장(오름: epanodos)일 것 같으이."(* Platon, 박종현(역), <<국가>>, 서광사, 1997, 521c.)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진리를 사랑하는 자, philosophos이다. 신의 입장으로 고양된 인간은 지혜로운 자, sophos이다. Platon이 philosophos에서 sophos로, 억견에서 진리로 가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변증술이다. Hegel은 인간의 정신을 신적 정신인 절대적 정신으로 고양시켜 sophos가 되고자 했다. 물론 그 정신은 고정 불변의 실재가 아니지만. 그는 Platon만큼은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1.2 Nicolai Hartmann의 다음 언급은 독일관념론자들의 문제상황과 목표를 지적하면서 절대적 정신의 체계 수립이라고 하는 Hegel의 학적 목표를 정리하고 있다: "독일관념론의 사상가들을 그들의 심각한 상위相違에도, 아니 의식적인 대립과 논쟁점이 있음에도, 하나의 통일적 집단으로 결합시키고 있는 것은 첫째로 공통적 문제상황이다. 그들 모두에게는 Kant 철학이 출발점을 이루고 있으며, Kant 철학이 제공한 문제가 무진장으로 많음으로서 해서 언제나 새로운 해결의 시도가 일어나곤 하는 것이다. 이 사상가들은 각자가 더할 수 없이 세심하게 Kant 철학과 대결하여 이 철학의 실제의 결함이나 외견상의 결함을 극복하고 이 철학의 남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이 철학이 개척해놓은 과제들을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이들 모든 사상가들의 공통적 목표는 포괄적이며, 엄밀하게 통일적이며, 반박의 여지가 없는 궁극적인 기초 위에 세워진 철학의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들 모든 사람들의 염두에 떠돌고 있는 것은 Kant의 강인한 사유 작업이 처음으로 Prolegomena를 제공해주었던 '장래의 형이상학'이라는 이상이다. 그들은 Kant가 만년의 두 비판에 있어서 이러한 형이상학의 개요를 수립했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렸다. 그러나 개요만으로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완전하게 그리고 일의적인 확실성을 가지고 그 체계는 세워져서 철학의 이상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들이 이러한 이상적 체계를 추구하는 방향은 그들 각자에게 있어서 다른 방향이며, 그리하여 그 체계는 각자의 새로운 시도에 따라, 실제로 다른 체계가 있는 것이다. ― 철학적 사유 방식의 내적 유사성이, 역사적으로 먼 위치에서 그들의 저작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는 모든 대립성을 능가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와 같은 이상적 체계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성에게 도달가능하다는 신념은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이 전 운동은 젊은 패기에 넘치며, 창조의 기쁨에 넘치는 철학적 낙관주의의 표지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모든 회의는 이 사상가들에게는 하나의 통과단계라는, 시험과 숙고의 심판이라는, 그리고 문제의 보다 깊은 내면화와 충분한 논구에의 길이라는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한 관념론자들의 공통점을 ‘체계일반에의 통일 충동’이라고 주저 없이 들 수 있다."(* Hartmann, N., Die Philosophie des deutschen Idealismus, Walter de Gruyter, 1974, SS. 3-4.)



2. “진리는 전체다”


2.1 일반으로 관념론은 정신이야말로 일체의 것의 궁극적 본질이며, 모든 생성 또한 정신적인 것이어서 물질적인 것은 독립된 근원적인 것이 아니고 정신 현상의 수반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Hegel에 있어서 관념론은 사물의 진리가 현상, 가상假象일 뿐이라고 보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면 사물의 참다운 진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진리는 전체"라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사태에 대해 판단을 하고 그것을 진리로 고수한다. 그러나 관념론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가상일 뿐이다. 따라서 진리 파악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파악의 단계는 무한히 계속될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그 종국에 이르러 인간이 갖게 되는 진리는 최초의 것을 부정하면서 시작되어 종국에 이르기까지 가졌던 모든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전체'이다. <<정신현상학>> 최후 단계의 절대적 지知, <<철학집성哲學集成>> 최후 단계의 절대적 정신은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개념이 운동하면서 스스로 형성해낸 성과물인 것이다. 진리전체론은 유한자의 입지와 관련해서 양면성을 갖는다. 진리 생성 과정에서 등장하는 계기들을 낱낱이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유한자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도 있지만 결국 최종의 성과물 안에 무차별적으로 포섭되어 가는 유한자의 덧없음을 지적할 수도 있다. Hegel의 진리론을 파악하는 입각점을 양자 중에서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의 전 철학의 핵심 성격을 규정하는 술어 또한 '운동'이냐 '체계'냐로 달라질 것이다.


2.2 일반의 상식에게는 '개념이 운동한다'는 말이 납득되지 않는다. '운동'이라는 말이 가지는 일종의 물질성 때문일 것이다. 객관적 현실의 세계에서는 형식논리적 의미에서의 모순이 불가능하다. 어떤 것이 동시에 그리고 같은 곳에서 어떤 것이 아닐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사유에서는 모순이 가능하며, 이는 모순의 긍정이 된다. 사유에서 모순이 긍정된다는 것, 이것이 개념의 운동 ― Hegel은 이를 ‘개념의 노동’이라 하기도 한다 ― 이다. 인간은 어떤 것을 생각하다가 동시에 그와는 모순되는 것을 생각하기도 하며, 이처럼 모순되는 것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은 사유(개념)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운동)이다. 달리 말해서 어떠한 것을 다면적으로 파악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다면적 파악이 지속적으로(시간의 개입) 일어나서 사태의 모든 측면이 검토되면 인간은 전체적 진리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인데, 이처럼 개념이 운동하는 과정을 변증법이라고[들] 한다. 전체에 이른 진리는 개념의 운동을 하며 유한자들을 거쳐온 것이다. 유한자와는 분리되어 초월적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것', '절대적 지', '절대적 정신'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이것은 유한자의 변화를 통해서 발전하는 것이요, 그에 따라 유한자의 변화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것, 유한자의 변화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Hegel 철학의 특유성은 여기에 성립한다. 기존의 철학 사상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은 항상 유한자와 대립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Platon의 초월적 Idea를 비판하고 현실적인 생성의 세계를 중시한 Aristoteles는 절대적인 것을 변화와는 무관한,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자기동일성을 가진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라 생각하였다.



3. “세계사의 노동을 통해서 도야된 인류”


3.1 유한자라는 계기를 매개로 운동하는 절대적인 것, 이는 절대적인 것이 시간 속에 놓여있다는, 즉 절대적인 것의 역사성을 의미하게 된다. 역사란 시간 속에 있는 모든 유한자들의 단순한 집적이 아니라 선행하는 것이 후행하는 것의 계기로 포속되면서 전개되어 가는 것이요, 시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전 역사는 진리의 전개도정인 것이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 가는 정신을 Hegel은 세계정신이라 부르는데, 이것 역시 유한자라 할 시대정신의 입지와 관련해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즉 각각의 시대가 가진 독자성을 강조할 수도 있지만 세계정신의 목적을 중시하여 이른바 역사주의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초부터 종국에 이르는 전 과정을 비판적으로 음미할 때에만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이러한 사상은 역사를 철학의 주제로 자리잡게 했다는 점이다.


3.2 세계정신의 진리를 형성하는 유한한 계기들은 개인일 수도 있고, 민족일 수도 있으며 국가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떠한 개인, 민족, 국가가 진정한 계기인가? 일견 이 물음은 모든 역사적 계기를 포속한다고 하는 세계정신의 성격 자체에 비추어보면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계기이므로 진정한 것과 진정하지 않은 것의 구별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Hegel은 여기서 하나의 규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유’이다. 정신의 본질은 자유이며 그에 따라 이 정신의 역사는 자유의 의식에 있어서 현실의 진행이다. 이것이 세계사의 구성원리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개인, 자유로운 국가가 세계사의 진정한 계기이고, 세계사의 노동을 통해서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정의正義가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