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뿌리 | 07 지속되는 영향력


필사본이 있어서 별도로 강의 내용을 요약하지 않았다.


강유원의 낭만주의의 뿌리 강의 7

강의 교재: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

강의 목차: 1강 낭만주의의 정의를 찾아서

               2강 계몽주의에 대한 최초의 반격

               3강 낭만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들

               4강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1)

               5강 억제된 낭만주의자들 (2)

               6강 해방된 낭만주의

               7강 지속되는 영향력

               8강 지속되는 영향력


도서 목록: 앨런 스피겔: 소설과 카메라의 눈



2006년 여름 풀로엮은집

낭만주의 강의

강사 : 강유원

필사 : 이재만

교재 : 이사야 벌린,『낭만주의의 뿌리』(The Roots of Romanticism), 이제이북스, 2005


7강 지속되는 영향력

“이것은 매우 흥미롭게 반복하여 나타나며, 그 후 19세기와 20세기의 사상과 감정 모두가 당면하게 된 두 가지 현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하나는 과거에 대한 동경이며, 다른 하나는 특정한 종류의 근거 없는 불안이다.”(170쪽)


과거에 대한 동경과 특정한 종류의 근거 없는 불안이 의욕과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이다. 여기서 벌린이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 의욕은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이성적 활동과는 무관한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동경과 불안이 의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것에 근거를 두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해”란 정확한 용어가 아닌데, 이 용어가 언제나 이해하는 주체와 이해되는 객체,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객체, 이 주체와 객체 사이에 어떤 거리가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으로,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객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를 주장하면서 나아가는 주체만이 있을 뿐이다.”(196쪽)


이해, 즉 understanding은 ‘오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오성이란 구별하는 능력이다. 이 오성은 계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은 인간 오성의 힘을 믿는 이들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이해라는 용어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러한 오성이 없다면 인간은 과거에 대한 동경과 근거 없는 불안으로 향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앞에 있다면 좋을 텐데, 의욕에 관해 말한 다음에 바로 동경과 불안이 나오니까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왜 생겨나는 걸까? 앞날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앞날을 알 수 없으니 과거를 동경하고 근거 없이 불안해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에의 동경은 계몽주의의 특별한 공헌으로 간주되는 것과는 정반대다.”(171쪽)


말 그대로 계몽주의의 특별한 공헌은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project하는 것이었다. 낭만주의의 문제이자 특징은 이러한 과거에의 동경이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개념인 근거없는 불안은 이것과는 다소 다르다.”(173쪽)


과연 근거없는 불안이 낭만주의에 대한 본래적인 규정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벌린이 이것을 거론하는 이유는, 8장 ‘지속되는 영향력’을 염두에 두고 그것까지 낭만주의와 꿰어보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근거없는 불안은 굳이 낭만주의와 연결시키지 않아도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각적 존재가 된 것은 근대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근거 없는 불안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근대 이전 사람들이 근거 없이 불안해 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요컨대 근거 없는 불안을 낭만주의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또 하나, 낭만주의의 더 비관적인 변형이 있는데, 이것은 20세기 들어 어느정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개인들이 아무리 자신을 해방시키려 발버둥쳐도 우주는 그렇게 쉽게 통제되지 않는다는 관점이 있다. 무언가가 항상 배후에, 무의식이나 역사의 배후에 숨어 있으며, 어쨌든 우리가 포착할 수 없는 무엇이 우리의 가장 간절한 바람들을 좌절시킨다... 이것은 거대하고 압도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적대적인 힘이므로, 저항하거나 타협하는 것조차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다.”(173-174쪽)


벌린은 이것을 174쪽에서 “경제적인 힘이나 생산의 힘, 또는 (마르크스에게서 나타나는) 계급 투쟁, 또는 (헤겔에게서 나타나는) 그 목적을 우리보다 더 잘 이해하며, 우리를 속이는 이성의 간계”와 연결시킨다. 이런 것에 관한 좀더 현대적인 입장을 보려면, 내 홈페이지 manuscript에 있는 발터 벤야민의 “독일 파시즘에 관한 이론”을 보라. 시간이 있으면 앨런 스피겔의『소설과 카메라의 눈』(르네상스)도 읽어보라.


이렇게 낭만주의에는 우리 외부에 적대적인 힘이 있다는 생각이 있다. 힘은 독일어로 Macht(힘, 위력) 혹은 Gewalt(폭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거대한 힘은 Macht이다. 이걸 power로 번역하면 그 의미가 약하고, might와 비슷하다.


“슐레겔이 밝힌 낭만주의에 끼친 세 가지 중대한 영향 중 두 번째는 프랑스 혁명이다... 따라서 혁명이 주목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공포, 인간사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 폭도들의 무분별함, 특정한 소수의 영웅과 유명인사들, 곧 선악을 떠나 이들 폭도를 지배하고 역사의 추이를 마음먹은 대로 바꿀 수 있는 이들이 가진 엄청난 힘이었다.”(176-177쪽)


우리는 프랑스 혁명의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배워 왔지만, 낭만주의는 부정적인 측면과 연관된다. 세 번째 요인인 괴테의『빌헬름 마이스터』에 낭만주의에 미친 영향에 관한 논증은 명확하지 않다. 만일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쓴다면 이 점을 짚어야 한다.


벌린은 이 모든 것들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의지와 사물의 본성이 있다는 진리의 거부, 만물에 불변의 구조가 있다는 개념을 파괴하고 전복하려는 시도”로 규정한다.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의지”의 철학적인 이론적 근거는 피히테에게서 찾았다. 유념해야 할 점은 이러한 것들을 주장한다고 해서 모두 낭만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낭만주의자 아닌 사람이 없다. 이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되, 어떤 사회적 배경과 맞물렸을 때 낭만주의 운동이 분출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시즘도 마찬가지이다. 파시즘을 규정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것만으로 판단하면 모든 것이 파시즘, ‘일상의 파시즘’이 된다. 그런 측면에 관해 말했다면 이 책의 완성도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아마 벌린은 그런 건 다른 사람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understanding(오성)과 reason(이성)이 있다. 아까 말해듯이 오성은 구별하는 능력이다. 이것의 출발점은 데카르트의 cogito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주관/객관 분리의 사유를 말한다. 이것이 오성적 사유의 저변에 놓여 있다. 내가 나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으면 흔히 말하는 ‘자기 의식’이다. 오성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자기 의식이다. 오성의 단계는 ‘대상 의식’이다. 근대인은 자기 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소박한 실체적 삶’이라는 말이 있다. 헤겔『정신현상학』서문에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소박한 실체적 삶’을 살았다는 말이 나온다. ‘소박한 실체적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의식이 분열되지 않는다. 따라서 의식과 무의식의 분열도 있을 수 없다. 무의식은 상상도 못한다.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데,

이는 ‘당위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분열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인이다.


이 분열(Entzweiung)을 극복하는 것이 이성(Vernunft)이다. 분열을 극복하면 통일(Einheit)이다. 독일 관념론자들은 분열을 정신의 철학을 통해 극복했다. 지금 말한 대상 의식, 자기 의식, 통일이 헤겔『정신현상학』의 세 부분이다. 이 분열은 좋게 말하면 계몽주의적인 것이다. 중세인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았다. 그러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즉 구별하게 된 것이다. 구별은 분열이고, 분열된 삶을 사는 사람은 피곤하기 때문에 통일시켜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이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해’는 분열을 의미하는 오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나는 앞서 꺼냈던 주제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데, 즉 18세기 중반 전까지 적어도 2천 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 모든 서구 사상의 핵심에 놓여 있던 오래된 전통, 그 특정한 태도, 특정한 신념은 낭만주의의 공격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듯 보인다는 것이다. 지식은 선이라는 오래된 명제는, 추정컨대 플라톤이 기록한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 최초로 명확히 언급되며, 플라톤과 기독교 전통에 공통되는 명제이다.”(193쪽)


지식인 선이라는 명제는 정말 중요하다. 서양 철학은 지식은 선이라는 명제로 딱 잘라서 규정할 수 있다. 지식은 선이라는 것은 알면 끝난다는 것, 이론적인 앎이 윤리적 실천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서구 사상의 어마어마한 주지주의이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사물의 본성을 알면 옳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굉장히 무서운 생각이다. 지식은 선이라는 명제는 플라톤 시대부터 이어져온 것이고 계몽주의자들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벌린의 주장은, 낭만주의자들이 이 명제에 아주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낭만주의의 중요한 업적이다.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또 의지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 지식과 의지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사회적 공간과 역사적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도야함으로써 완성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을 넓은 의미에서 교양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철학에서 근대 자유주의 국가를 ‘오성적 국가’라고 한다. 오성적 국가의 핵심은 원자적 개인이 주체가 되고, 이 개인들이 계약을 통해 연결된다는 것이다. 국가는 그러한 계약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공권력으로서만 작용하고, 각 개인의 내면의 인격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최소주의 국가, 야경 국가이다. 이것이 낭만주의적으로 흐르면 각 개인의 계약이 깨지고 그냥 모두 공동체로 합쳐진다.


“국가는... 한 민족의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욕구 전체, 그 물질적으로 정신적인 자원 전체, 그 내적이고 외적인 삶 전체가 거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무한히 활동하며, 살아 있는 전체와 긴밀하게 맺고 있는 결속이다.”(202-203쪽)


이것을 케빈 패스모어 같은 사람은 초국가주의(ultra nationalism)라고 한다. 국가 또는 민족이 초월적 실체가 되어서 그 구성원들 전부를 끌어안고 있는 것을 말한다. 203쪽에 “독일의 역사 법학파”가 나온다. 역사 법학파와 심각하게 대립했던 이들이 헤겔과 그의 제자 간트가 속한 철학 법학파였다. 헤겔 같은 이들은, 법률은 나폴레옹 법전처럼 이성적 기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반면, 독일 역사 법학파는 “법은 국가의 내부에서 약동하는 힘, 곧 신비한 전통적인 힘의 산물로, 이는 나무에 수액이 흐르는 것처럼 그 집단 내부에 흐르는 유기체적인 활기이며, 밝혀낼 수도 없고 분석할 수도 없으나, 자신의 조국에 충실한 이는 누구나 자신의 혈관에 흐르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203-204쪽)라며 법의 기원을 신비한 것에 두려 했다. 역사 법학파에 속하는 이들로는 Hugo, Fries, Savigny가 있다. 헤겔『법철학』서문에서 Hugo와 Fries는 거의 인간 말종으로 비난받고 있다. 이런 걸 보면 헤겔과 독일 낭만주의를 연결시키는 것이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이 낭만주의의 근본적인 출발점으로, 곧 낭만주의는 의지라는 개념과, 사물의 구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물들을 빚을 수 있다는 사실 - 그것들은 오직 우리의 창조하는 행동의 결과로만 생겨난다 - 에 기초하며, 따라서 실재를 연구하고, 기록하고, 습득하고,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측면으로는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다루어질 수 있는 어떤 형식을 가진 것으로 설명하려는 모든 관점에 반대한다.”(206쪽)


정치, 법률, 역사 등을 거론한 다음 벌린이 생각하는 낭만주의를 다시 정리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무리 낭만주의가 지랄발광의 이데올로기라고 해도, 도시적으로 이해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이 있다.


소박한 실체적 삶(통일) -> 분열 -> 통일에의 열정(통일)


앞의 통일과 뒤의 통일은 다르다. 앞의 것이 소박한 통일이라면 뒤의 것은 분열을 거친 다음의 통일이다. 통일을 성취했는지 아니면 통일에 대한 열망만 있었는지에 대한 대답은 미루어두더라도, 낭만주의가 통일에의 열정을 잡고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통일은 분열을 겪지 않은 통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다를 수 있는 이유는, 자기 반성을 하고 분열을 겪었기 때문이다.


유럽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과 자기 분열을 경험했다. 그런데 과연 한국 사회에서 완전한 전복이 있었고, 그런 다음 통일에의 열망을 가졌던 경험이 있는지, 즉 흔히 말하는 modern이라는 계기가 한국에서 전개된 적이 있는지 생각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것이 없다면 낭만주의는 한국에서 그냥 발광일 뿐이다. 다음 시간에는『탈근대 군주론』(갈무리)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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