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열하일기 1


열하일기 1 - 10점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돌베개



역자 서문― 왜 다시 『열하일기』인가? 


압록강을 건너며―도강록渡江錄 

심양의 이모저모―성경잡지盛京雜識 

말을 타고 가듯 빠르게 쓴 수필―일신수필馹迅隨筆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이야기―관내정사關內程史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역자서문

4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중국 기행문이다. 그는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중국에 다녀왔다. 공적인 소임이 없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연암은 북경과 전인미답의 열하 지방을 체험하고, 귀국한 뒤에 견문한 내용을 정리하여 <열하일기>라는 기념비적 저술을 내놓았다.

[...]

이제 <열하일기>에서 주목할 내용 몇 가지를 추려서 제시한다. 각 편마다 역자가 간단한 해제를 달아서 중점 내용을 언급하였는바, 여기서는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첫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의 제공이다. 이 땅에서 태어나서 생로병사한 조선의 선비들에게 <열하일기>에 수록된 방대한 내용은 그 자체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정보였다. 북경에 이르기까지의 견문은 물론, 전인미답의 열하 지방에서의 체험은 18세기 조선의 선비에게만 읽을거리로 제공되었을 뿐 아니라, 여성 독자에게도 흥미의 대상이었다. 한글본 <열하일기>가 열하 지방의 체험을 위주로 번역된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정보 제공의 가치는 현재까지 여전히 진행형이다.

둘째, 선진 문화 문물을 본받아야 한다는 북학의 내용이다. 당시 고루한 선비처럼 북벌의 대상으로서 되놈의 청나라로 인식하지 않고, 중국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인정하였다. 여기서 청나라는 조선의 낙후한 문화나 만성적 빈곤을 타개할 수 있는 이용후생의 관점에서 북학의 대상이었다. 연암은 북학을 선비가 해야 할 역할로 파악하였는바, 이 주제는 <열하일기> 전편에 가장 비중있게 다루어진 내용 중의 하나이다. 깨진 기왓장과 똥거름에 진정 중국의 장관이 있다는 연암의 말은 주요 관심사를 극명하게 드러낸 반어이다.

셋째, 천하대세를 어떻게 전망했는가? 하는 주제이다. 당시 세계의 중심부인 중국 천하의 변화는 곧 주변부 조선의 정세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답답한 조선의 현실에서 벗어나 세계를 호흡하려는 것이 연행의 목적이었다. 여기서 연암은 중국의 통치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통찰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천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예의 주시하였다. 서적 간행, 주자학 장려와 같은 문화 사업과 정책, 문자옥 같은 지식인 탄압, 주변 국가와 민족에 대한 통치술, 황제의 고뇌, 중국 민족 사이의 갈등, 경제 정책, 백성의 풍속 등등을 통해서 천하대세를 전망하였고, 조선에 대한 청의 정책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때로는 분석적인 단편 산물을 통해서, 때로는 역사, 음악, 풍속, 종교 문제 등의 필담에 가탁하여 그 주제를 드러냈다. 이는 북학의 주제와 함께 <열하일기> 전체에 저류하는 주제이다.

넷째,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간 유형에 대한 묘사와 인물 형상의 창조이다. 역사를 움직여 나가는 활동 주체는 바로 인간이다. 이 인간들이 무엇을 사고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관찰하고 이를 묘사하려는 것은 역사의 흐름을 전망하려는 주제와 마주 닿아있다. [...]

다섯째, 선비 곧 지식인의 역할과 처신에 관한 문제이다. 선비란 독서하는 사람인데, 그 사회적 역할은 독서의 내용을 실천하는 데에 있다. "조선의 지독한 가난은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이 전적으로 선비가 제 역할을 못한 데에 있다"라고 한 발언은 선비의 역할을 지적한 것이거니와, 이 주제는 이용후생의 북학으로 실천되었음을 앞서 지적하였다. 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선비의 처신에 관한 문제이다. 곧 역사적 전환기에 처한 선비의 출처대절에 관한 것이다. 왕조 교체기에 처하여 곡학아세에 부당한 정권에 자신을 팔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피하여 자존을 지킬 것인가 혹은 부당한 현실을 죽음으로 거부할 것인가? 이는 인간으로서 자기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 주제 역시 <열하일기> 전편에 깔아놓은 문제의식인데, 특히 한족 지식인과 만주인의 갈등, 중국 역대 왕조 교체기의 인물에 대한 탐구와 논쟁, 시화집을 방불케 하는 시의 번다한 인용 등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냈다.



머리말 도강록서

6 무엇 때문에 이 글의 첫머리에 후삼경자라는 간지를 쓰는가? 여행의 일정과 날씨를 기록하며, 연도를 기준으로 삼아서 다로가 날짜를 기록하려는 것이다. 

후삼경자의 후는 무엇의 뒤라는 말인가? 숭정을 연호로 삼은 연도인 1628년의 뒤라는 말이다.

무엇 때문에 삼경자라고 했는가? 숭정을 연호로 삼은 뒤 세번째로 돌아온 경자년(1660,1720,1780)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무엇 때문에 숭정이란 연호를 사용하지 않는가? 장차 압록강을 건너가려 하기 때문에 이를 꺼려 해서 숨기려는 까닭이다.

무엇 때문에 숭정이란 연호를 꺼려 숨기는가? 압록강을 건너면 청나라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청나라의 역법을 받들어 사용하기고 있기 때문에 감히 명나라의 연호인 숭정을 사용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드러내지 못하고 몰래 숭정이랑 연호를 일컫는가? 위대한 명나라야말로 진정한 중국의 주인이고, 우리 조선을 처음 국가로 승인한 큰 나라이기 때문이다.

숭정 17년(1644) 명나라 의종 열황제가 종묘사직을 위해 순국하고 명나라 왕실이 멸망한 지 백삼십여 년이 되었건만, 어찌하여 지금까지 숭정이란 연호를 일컫는가? 청나라 사람이 중국에 들어가 그 주인이 되니 훌륭한 전통 문화 제도가 변하여 오랑캐 문화로 바뀌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수천 리의 우리나라는 압록강을 경계로 나라를 다스리며 홀로 과거의 문화 제도를 지키고 있다. 이는 명나라 왕실이 오히려 압록강 동쪽에 존재함을 밝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힘이 약해서 비록 저 오랑캐를 물리쳐 중원 땅을 깨끗하게 청소하여 전통의 문화 제도를 빛내고 회복할 수야 없겠지만, 모두가 숭정이라는 연호라도 능히 존숭하여 중국을 보존하려는 까닭이다.

숭정 156년 계묘년(1783) 열상외사 쓰다.


403 옛날에 맹자의 제자 만장은 하늘이 다음 임금을 임명할 때에 상세하고 자상하게 말씀을 하며 임명하는가 하는 의심이 들어서 맹자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맹자는 하늘의 뜻을 체득하여 '하늘은 말씀을 하지 아니하고, 임금이 될 사람의 행동과 사업을 통해서 보여줄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일찍이 <맹자>를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러 의혹이 점점 심해졌다. 감히 물어본다. 하늘이 행동과 사업을 통해서 보여준다고 한다면 오랑캐가 중국의 제도를 바꾸고 고쳤으니 천하의 치욕과 인민들의 혹독한 원한은 어찌할 것인가? 향내 나는 제물을 올릴지, 노린내 나는 제물을 올릴지는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의 덕에 따라서 나뉘겠지만, 모든 신들은 무슨 냄새를 기준으로 그것을 흠향할 것인가?

그러므로 사람의 처지에서 본다면 실제로 중국과 오랑캐의 구분이 뚜렷하겠지만, 하늘이 명령하는 기준에서 본다면 은나라의 모자(후관)나 주나라의 면류관은 모두 당시 국가의 제도를 따랐을 뿐이다. 그런데도 하필이면 지금 청나라의 붉은 모자만은 홀로 의심하여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가?

그리하여 사람이 많으면 일시적으로 하늘도 이기기는 하지만 결국 하늘이 정하면 사람을 이기게된다는 격언이 그 자리에 횡행하게 되고, 하늘과 인민이 임금을 도와주고 편을 든다는 말은 도리어 그 기세에 눌려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게 된다. [...]

아하! 명나라 왕의 은택은 이미 다 말라 버렸다. 중국에 사는 선비들이 오랑캐의 제도를 좇아서 변발을 한 지도 백 년이나 되었건만, 그래도 오매불망 가슴을 치며 명나라 왕실을 생각하는 까닭은 무슨 이유인가? 중국을 잊지 않으려는 까닭이다.

청나라 자신을 위해 꾀하는 계책 역시 꼼꼼하지 못하고 거칠다고 하겠다. 앞 시대의 못난 오랑캐 천자들이 중국을 본받다가 결국은 쇠약해진 것을 징험 삼아, 쇠로된 비석에 글을 새겨서 파수를 보는 전정에 묻게 하였다. 그들은 일찍부터 자신들의 의복과 모자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오히려 나라의 강하고 약한 형세를 모자와 의복을 고집하는 데서 부지런히 찾으려 하고 있으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가? [...]

청나라가 힘으로 능히 서북쪽의 오랑캐들로 하여금 중국의 오랜 풍속을 답습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비로소 천하에서 가장 강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천하 사람들을 욕된 구렁텅이에 가두고는 그들에게 '조금만 너희들의 수치를 참고, 우리 의복과 모자를 좇아서 강해지도록 해라'라고 외치니, 정말 강하게 될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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