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 35 Spinoza의 방법론-형이상학-윤리학, Newton의 수학적 원리에 따른 자연철학


세상의 모든 철학 - 10점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박창호 옮김/이론과실천



2012.10 강의
33강: 근대철학 개관: Descartes, Locke, Spinoza, Newton / Hume, Rousseau / Kant / Fichte, Schelling, Hegel / Marx / Nietzsche / 자연과 자유, 유한자와 무한자
34강: Descartes의 방법론적 혁신과 주관성(cogito ergo sum)의 철학, Locke의 경험적 대상인식론, 인간의 뇌와 정신의 형성
35강: Spinoza의 방법론-형이상학-윤리학, Newton의 수학적 원리에 따른 자연철학
36강: Hume: 인과율 분석의 의의, Rousseau: ‘소유권 기반 사회’에서 ‘일반의지 기반 사회’로의 전환




20121019 35강: Spinoza의 방법론-형이상학-윤리학, Newton의 수학적 원리에 따른 자연철학

공부를 왜하는가? 기본적으로 잘난척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잊어서는 안된다.

포만감과 만족감을 느끼려면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이 무엇인가? 바로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근대인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해서든지 알려고 한다.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인식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에서 구체적으로는 유한자와 무한자의 문제로 나온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생각해보자. 인간은 신에게서 멀어진 존재, 회개하고 자각하고 나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나에게 신의 은총이 다시 내려옴으로해서 내가 신 안에 들어간다. in te 상태가 된다. 
신 안에 들어간다. 이를 세속화된 버전으로 말하면 at home. 집에서는 내가 나로서 행위할 수 있으나 밖에 나오면 나로서 행위 할수 없다. 이 분열된 측면이 다 극복되어서 자신의 곁에 있는 상태가 바이지히자인 beisichsein 자신의 곁에 있는 존재. 영어로 by oneselft 자신의 곁에 있다.
분열되어 있지 않고 세계에 대한 분열된 의식도 소외도 없는 상태. 이것이 근대인의 목표. 
일본인들은 거자적(據自的) 존재로 번역. 

근대인들은  in te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상을 실현할 수가 없다. 이것을 하는 사람이 개신교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다시 붙잡고 오로지 신, 믿음으로 가기 때문에 가톨릭교도보다고 훨씬 광신적이고 극단적인 신앙이 나타나는 것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이룰수 없는 영역. 결국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서 역사속에서 나아가서 한발 한발씩 우리가 가진 것을 겪어나가면서 자신의 곁으로 오는 것을 추구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곁으로 온다는 보장이 없다. 자연과학적 확실성을 가지고 올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시 신을 믿어서 올 수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서 괴로운 것. 
근대인에게는 자연과학이라는 무기가 주어졌다. 어떤 시대도 따라올 수 없었던 생산력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지 나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인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그 뒷면에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깔리는 것. 나아가는 것과 깔리는 것, 이 정반대되는 두 가지가 동시에 있는 것이 모더니티의 본질, 근대적 허무주의의 본질.이다.

결국엔 세계와 내가 결코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간다는 확신을 가지던지(=기계적인 인간), 아니면 신에 대한 신앙을 갖던지 해야한다. 학자들이 이 지점에서 다시 고민을 하는 것이 유한자와 무한자의 문제. 다시 주제화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다시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래서 역사책을 읽어야 한다. 어쩌면 21세기가 다시 이 문제를 가져다주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유한자와 무한자의 관계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서 스피노자를 읽어보고, 자연과학적 필연성을 근거해서 하나의 물리적 법칙으로서 인간의 행동, 지구 위에 있는 모든 사물들, 지구를 포함한 행성의 운동, 전 우주의 운동을 설명해보려는, 즉 닫힌우주를 생각한 뉴턴을 읽어본다.
그들의 목표는 안정된 체계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갖게 하려는 것.


* 스피노자
방법론을 먼저 생각해보고 그다음에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문제, 정치철학을 본다.
이 당시 17세기 자연과학에 대해 가장 기본적으로 읽어볼만한 책.
피터 디어의 <과학혁명>, 찰스 길리스피의 <객관성의 칼날> 필독도서다.

-윤리학
<윤리학,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에티카, 오르디네 게오메트리코 데몬스트라타
책 제목안에 스피노자의 사상의 거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에티카라고 하는 것은 윤리학. 윤리학은 '똑바로 살아야 한다'를 다루는 학문. 
Ordine 질서 지어진, Geometrico 기하학, Demonstrata 증명된 이것이 제목을 이해하는 게 포인트.
윤리학을 시도하는 데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을 시도하겠다는 말이다. 

윤리학의 목표는 '인간은 어떻게 해야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보면 궁극적인 목표는 에우다이모니아 eudaimonia.
윤리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서양 사상의 전통에서는 에우다이모니아. 에우는 '좋은', 다이는 '영혼', 직역을 하면 '좋은영혼', '영혼의 좋은 상태'
<니코마코스 윤리학> 은 스피노자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윤리학의 기본 문제를 세팅해 놓은 책. 그렇기 대문에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정치학>하고 짝을 이루는 작품. 에우다이모니아를 요즘식으로 말하면 행복. 윤리학이라는 학문은 어떤 학문이냐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다루는 학문.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을 이루려면 신적인 관조를 해야 행복에 이룰 수 있다고 나와있다. 행복을 이루려면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잘 통치되는 정치적인 공동체에 살아야, 즉 좋은 폴리스에 살아야 이것을 궁극적으로 성취할수있다고 말한다.
에우다이모니아를 다루는 윤리학하고 공동체를 다루는 정치학하고 두 개를 함께 움직여가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 <정치학논고>를 왜 썼는지.. 윤리학을 쓰면 끝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해서도 써야하는 것. 플라톤도 <향연>, <국가>, <법률>을 썼다.

에티카를 쓴 목적은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스피노자의 에티가에 대해서 얘기를 해봐라' 한다면 책제목이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기본목표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래로 서구사상에 전승된 행복에 대해서 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기본이다.

에티카에서는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신과 인간의 관계. 다시 말해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를 증명했다.
그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임으로 해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에티카의 내용.
다시말해 제목은 윤리학인데 무엇을 증명하느냐 신과 인간의 관계,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를 증명한다. 그 방법안에 결론이 들어가있다. 바로 '필연성.'
필연성의 수용, 이것을 받아들임으로해서 우리 인간은 신과 결합하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에티카는 기하학적 '방법론' 책이면서 동시에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를 논하는 '형이상학' 책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삶의 행복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윤리학'.
스피노자는  방법론과 형이상학과 윤리학을 하나의 텍스트안에 집어넣으므오로 근대철학의 대단한 업적을 세운 사람. 테카르트는 윤리학 자체가 없다. 

- 방법론
데카르트주의에서 시작하여 수학적·기하학적 방법을 철저하게 밀고간다.
방법론은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1공리 → 정리 → 증명 하는 식으로 되어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을 받아들여 심화시켰다.

윤리학 목차
1부 신에 대하여
2부 마음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3부 감정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4부 인간의 예속과 감정의 힘
5부 지성의 힘과 인간의 자유
 
1부는 신, 2-5부는 인간이 주제. 특히 1부와 5부가 중요.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목차를 통해 드러난다.
인간의 지성의 힘을 가지고 신에 대해서 아는 방법을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이 우리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
신에 대해서 지적으로 안다는 것은  지적직관을 의미. 경험을 쌓아올려서 신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한번에 알 수있는 것이 지적직관. 달리말해서 지적직관은 플라톤의 '갑자기'와 같다. 플라톤의 '신의 입장에 올라선다' 가 스피노자에서는 '영원의 상하', '영원의 입장 아래 선다'라고 말한다.(永遠의 相 下에 선다) 여기서 영원 = 신, 신의 입장에 올라서는 것이 바로 지적직관.
신적 입장에 올라선다라는 말을 기억해 둘 것. 이게 바로 플라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태도.

이 세계 만물은 신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고, 신의 필연성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고, 모든 것이 신안에 있고, 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파악될 수도 없고 신안에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다. 이 것이 에티카에서 말하는 것. 

무한자와 유한자의 관계는 한마디로 말해서 유한자라고 하는 것은 무한자의 변용태에 불과하다.
그래서 신은 더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하고 따로 떨어져서 초월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 모든 만물이 신이다. '범신론'
유한자가 무한자의 변용태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을 '스피노자주의'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렇게 해놓으면 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태는 신의 필연성에 따라 일어나는것이니 악의 필연성도 제기된다.
정치적 권위의 신화적 기원을 제거. 그래서 유대인공동체에서 파문을 당한다.
신학정치론 목차를 보면
 
<신학정치론> 20장으로 구성. 내용상 제1-15장 , 제16-20장으로 나눈다.
제1-15 장이 1부 신학에 관한이야기. 다시 1-6, 7-15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7장 성서해석에 대하여 이다. 신학을 이용해서 정치를 잘해보자가 아니라 신학을 배제한 정치를 합시다라는 것.
제16-20장은  2부 정치에 대하여이다.
정치의 신적인·신학적인·신화적인권위의 기원을 폐기했다. 범신론에서 자연스럽게 신학정치론으로 흘러간다.
 
<정치학 논고>는 미완성유고
이 책에서 가장 찬양하는 사람이 마키아벨리
마지막에 11장 민주정을 쓰다가 그쳤다.
'(민주정에서는) 여기서는 모든 사람, 곧 양친이 국가의 시민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 특정 영토안에서 출생한사람, 공화국을 위해 공로가 있는 사람, 다른 여러가지 이유에서 법률에 위해 시민권이 주어져야 할 사람 등은 최고 회의에서 투표할 권리과 국가 관직에 취임할 자격를 당연히 요구할 수 있으며, 중죄를 저지르거나 공민권을 박탈당한 사람이 아니면 이러한 권리요구를 그들에게서 무효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다시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민주정에 대한 정의를 그대로 말하고 있다.
역자인 최형익 교수는 '민주주의에 바쳐진 송가'라고 얘기했는데 그것은 과잉해석.
어쨌든 스피노자는 정치적 권위에서 신화적  기원을 제거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스피노자주의는 무신론적 범신론. 인격적인 초월적인 신을 부정하는 것은 굉장히 심난한 문제이다.
기하학적 필연성이라는 건 예외가 없다는 것. 그것이 포인트. 필연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스피노자와 뉴턴이 관계가 있다.

윤리학은 메인테마다가 행복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게 선악의 문제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선악의 문제는 문제가 안되는 상태, 해결된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되지 않는 상태.
선악의 문제를 명료하게 해명할 수 없다는 한계점에 부딪쳤다.

'기학적 질서에 의해 증명된' 이 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필연성에 붙어 있다. 
필연성이라는 것이 확실성을 가져다 주고, 우리가 필연성에 근거할 때 우리에게는 행복에 다가올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데카르트,스피노자 이런 사람들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은 것은 틀림없다. 이 것에다가 완전하게 쐐기를 박아서 뚜렷하게 완전히 과학적으로 증명해서 필연성의 체계를 완성한 사람이 바로 뉴턴. <프린키피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제시한다.

* 뉴튼
1665-1666년 흑사병이 유행하던 때라 캠브리지에서 고향으로 갔었다. 이때 중력에 대한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었다.
1687년 <프린키피아>가 나왔다. 20년정도의 간격이 있다. 
케플러의 행성법칙. 데카르트의 철학원리 책에서 곡선 운동에 관한 논의, 갈릴레오. 철학적인 수학자. 이런 선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꼭 염두해 두어야 한다. 천재는 선행하는 업적들을 통일적인 체계로 만들어내는 사람.

<프린키피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제3권 철학에서의 추론의 규칙
규칙1: 자연 사물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참되고도 충분한 원인 이외의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규칙2: 그러므로 같은 결과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같은 원인을 부여해야만 한다.
규칙3: 정도가 더 강해지지도 약해지지도 않으며 우리의 실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물체에 속하는 것으로 발견되는 성질은 어떤 물체든지 지니고 있는 보편적 성질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규칙4: 실험 철학에서는 현상으로부터의 일반적인 귀납에 의해서 수립된 명제를 정확하게 참이거나 참에 아주 가까운 것으로 간주해야만 하며, 이는 반대되는 가설을 상상할 수 있다해도, 다른 현상이 나타나서 그것으로써 좀 더 정확한 명제를 만들거나 예외를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

추론의 규칙이 있는데 여기서 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저자 서문 첫 문단 안에 다들어 있다. 

- 서문
'현대인은 자연의 현상을 수학에 종속시키려 한다… 이 저작은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라 한다. 철학의 난점은 운동 현상으로부터 자연의 힘을 탐구하고, 그런 다음 이 힘으로부터 다른 현상을 증명하는 데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1,2권에서 일반 명제가 지시된다. 3권은 ‘세계의 체계’(System of the World)에 관한 설명에서 이것의 사례가 제시된다. 1,2권에서 수학적으로 증명된 명제들로써 우리는 3권에서 물체가 태양과 몇몇 행성에 이끌리는 중력의 법칙을 천체의 현상에서 도출한다. 그런 다음 이러한 힘들로부터, 우리는 행성, 혜성, 달, 바다의 운동을 수학적인 명제들로써 연역한다. 우리는 자연의 나머지 현상들도 같은 종류의 추론을 통해 기계적 원리에서 도출하기를 바란다… 여기 제시한 원리들이 철학의 더 참된 방법에 빛을 비추기를 바란다.'

현대인은 자연의 현상을 수학에 종속시키려 한다… 이 저작은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라 한다.
>> 현대인들은 자연현상을 수학에 종속시키려한다'고 선언하였는데, 이는 수학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것은 실제로 파악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윤리학,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과 같이 뉴턴은 '수학적'이라는 말이 중요한 포인트

철학의 난점은 운동 현상으로부터 자연의 힘을 탐구하고, 그런 다음 이 힘으로부터 다른 현상을 증명하는 데 있다. 
>> 철학은 자연철학을 말하는 것으로, '운동현상'은 눈에 보이는 것, '자연의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다른 현상'은 눈에 보이는 것.
눈에 보이는 운동의 현상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을 도출해내고, 눈에 보이지않는 자연의 힘을 이끌어내어 다른 현상을 증명하는 것이 철학의 어려운 점이라는 뜻. 완전한 의미에서의 관찰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이며, 이끌어 내려면 결국 수학으로 표현해낼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제1권과 2권에서 수학적으로 증명된 명제들을 가지고 3권에서 중력의 법칙을 도출해 낸다. 수학적인 명제들을 가지고 연역한다. 그래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고 쓴다. 다시말해서 저 우주에서 굴러다니는 행성, 혜성, 달, 더 나아가 지구의 바다의 운동 이런 것들 전체를 꿰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런데 태양과 지구의 관계는 공간으로 보면 끊어져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러니까 물질의측면에서 보면 서로 비연속인데 힘의 측면에서보면 연속되어 잇다. 이것을 알아내려면 수학의 원리가 필요하다. 이 것을 뉴턴이 수학적으로 고찰한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서로 연속된 것으로 설명했다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 

'나는 인력과 충격을 같은 의미에서 가속적이고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라 말하려 한다. 그리고 인력, 충격, 구심적 경향 등의 말을 무차별적으로 대범하게 사용한다. 이 힘들을 물리적으로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고찰한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 용어들에서 작용의 종류와 방식, 원인 또는 물리적 근거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끌어당기는 힘이 만유인력의 법칙.
밀어내는 힘도 있고, 가운데로 몰리는 힘도 있다. 이런 힘들을 뉴턴은 다 힘이라고만 한다.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도 따지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고찰한다' = 양만 측정한다. 방향도 따지지 않고 힘의 양만 따진다는 것.

뉴턴이 <프린키피아> 에서 탐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운동이 있는데 그 운동이 궁극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묻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의원동자를 따져묻는다. 사물의 궁극적인 원인.)
그 힘이 좋은것이냐 나쁜것이냐를 따지지않는다.  그게 바로 보편적 중력의 법칙. 더 나아가 그 법칙만 알면 이 지상에 있는 어떤 물체들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지구와 저 태양과의 움직임, 행성, 달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수학적으로. 다시말해 눈에 보이는 식=수학적 식=법칙으로 표현하였다

굳이 따질 필요없는것. 착하게 살자. 인생의 목적. 운동의 질적인 것. 궁극적인 목적. 
중력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도 따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신이 아닐까 라는 여지를 남겨둔 것도 사실.
통일적인 설명을 내놓았으나 그렇게 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도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현상으로부터 중력의 이러한 성질들의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나는 가설을 세우지 않는다.(I frame no hypotheses. Hypotheses non fingo) 현상으로부터 연역되지 않는 것은 모두 가설이라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가설은 형이상학적인 것이든 물리학적인 것이든, 신비한 것이든 기계적인 것이든, 실험철학에서는 어떠한 자리도 차지할 수 없다. 이 철학에서 특정한 명제는 현상에서 추론되며, 그런 다음 귀납에 의해 일반화[일반명제가]된다… 그러므로… 운동과 중력의 법칙은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력을 실제로 있으며, 우리가 설명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며, 천체와 우리의 바다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 기여한다.'

뉴턴은 서문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어떻게 그것들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겉보기의 차이로부터 참된 운동을 얻는가, 또 거꾸로 참이된 겉모습뿐이든 어떻게 그것들의 운동으로부터 그것들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지식을 얻는가. 이것이 아래의 논문에서 대부분 설명될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나는 이 책을 썼다.'
>> 원인과 결과에 관한 지식을 얻는 것, 이 것이 목적. 원인과 결과라고 하는 것은 힘이 얼마나 작용했는가를 알아내는 것. 그게 바로 뉴턴이 하고자 했던것. 그러면 이제 모든 것이 운동과 중력의 법칙으로 환원될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세상을 설명한다. 깔끔하다. 그리고 이것이 닫힌 세계. 가치판단 없는 것. 

뉴턴 물리학이 적용되는 차원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현상의 차원에서 적용. 원자단위로 내려가면 적용 안된다. 차원이 달라진다. 즉, 지구와 태양의 운동 관계를 설명할때는 뉴턴 물리학으로 설명이 가능. 우리가 원자 단위로 소립자 단위로 아주 미세한 단위로 들어가면 입자가 파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입자 파동설, 절대적인 위치와 질량을 알 수 없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단계가 있다. 뉴턴이 말하는 운동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원자를 따져 물으면 확정 할 수 없으나 한 덩어리로 모이면 뉴턴적인 물질이 되는것. 다시말해서 이는 서로 적용되는 공존 할 수 있다는 것을 꼭 알야 한다. 여전히 거시적 세계에서는 뉴턴 물리학으로 설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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