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10 논어 4


논어 - 10점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 박영철 옮김/이산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1121 37강 논어(1)

20131128 38강 논어(2)

20131205 39강 논어(3)

20131212 40강 논어(4)




20131212 40강 논어(4)

春秋라는 말이 봄하고 가을이라는 말인데 공자님이 春秋라는 말을 썼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문화적인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춘추라고 말을 하면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고,  자연의 순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동시에 역사를 가리키는 은유의 표현이기도 하다. 동시에 공자가 쓴 역사 책 이름이기도 하다. 동시에 공자가 쓴 역사책의 역사관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공자가 쓴 春秋라는 역사책을 가지고 이 생각안에 암축되어 있는 것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자연의순환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것으로부터 인간 활동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를 은유하는 표현으로 쓰는 것. 다시말해서 그 안에는 자연의 순환, 즉 자연의 이치라고 하는 것. 天理 또는 天道 또는 天鼓常鳴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북은 항상 울린다는 뜻.  자연의순환이라는 것과 인간의 의지의 발현이라고 하는 인간 활동의 기록이라고 하는 역사가 거대한 이치 속에서 같이 움직여 간다는 생각이 여기 春秋라는 제목에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중국 사상의 기반이 유가가 되었건 도가가 되었건 기본적으로 이 것이 있다. 천지의 이치를 본받아서 인간의 삶을 조망한다는 생각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헤로도토스의 <역사> 이 두 개를 놓고 볼 때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계절별로 기록을 했다. 그렇게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테나이가 되었건 스파르테가 되었건 테바이가 되었던 코린토스가 되었건 연대기가 달랐을 것. 연호가 지역마다 달랐을 때 투키디데스가 나서서 통일하는 방법을 모르니 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쓴 역사책을 아테나이 지역에 살고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헬라스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이 읽고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통약 가능한 연대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바로 계절. 그러니까 사실은 자연의 순환이라고 하는 것, 춘추라고 하는 것이 지구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밑바닥에 놓여있는 실체적인 것. 그렇게보면 지리학이나 지구과학이나 이런게 근본 학문. 철학은 제일 나중의 학문이다.


사람들 누구에게나 다 통용될 수 있는 기준, 준거틀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자연의 순환이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어떤 것이 도출되어 나오는가.  자연스럽게 순환사관이라는 것이 도출된다. 즉 흥한 것이 있다면 망한 것이 있다는 것. 어떤 것이든지 사태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반드시 그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 이러한 생각이 그러면 도가에만 고유한 생각인가. 유가에서는 이것을 밑바닥에 깔고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유가, 도가 모두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것. 동전의 양면처럼 유가는 겉으로 드러난 측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는가 하면 도가는 그 배경에 깔려있는 자연의 순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송나라쯤 가게되면 송명이학이 성립할 때쯤되면 불교까지 들어와서 중국사람들이 유가,도가,불교의 차이점을 별로 뚜렷하게 알지 못할 정도로 삼교가 서로 습합(習合)이 된다. 습합(習合)이 되는데 전혀 다른 종류들끼리는 습합이 안된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습합은 상상이 안된다.  왜 습합이 가능한다. 기본적으로 밑바닥에 깔려 있는 눈 앞에 놓여 있는 세계를보는 관점, 즉 세계관이라는 것이 위와 같기 때문. 


음양이라든가 양이 절정에 이르면 음에 전환된다는 그런것들이 다 순환에 관해서 얘기를 하는 것. 그러면 아주 통속적으로 생각을 해자. 꽃이 활짝 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저 꽃은 내년에 다시 피어나기 위해서 지금부터는 소멸의 과정에 들어가겠구나 생각을 하는 것. 소멸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없어졌다 다시 피어나고 것. 바보들은 다 끝났네 생각하지만 지혜로운 자들은 그 것들 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자연의 법칙, 순환이 있음을 알게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은 투키디데스 시대의 서양사람들에게나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 그래서 동아시아 사람들이나 서구 희랍의 사상이나 어떤 측면에서는 사상의 기조에 있어서는 굉장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 이른바 모던한 시대부터. 지금으로 보면 17세기 역사관이나 이런 것들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투키디데스는 2500년 전의 사람. 17세기 이후 과학혁명은 300년 밖에 안되는 지극히 짧은 기간이다.


사람은 여기서 이렇게 순환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에는 영원한 것임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동아시아사람들은 이 순환이라고 하는 것이 그러니까 법칙자체가 영원하다고 생각했고, 법칙을 알아내는 것이 자연과학적으로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법칙이 있음을 알고 법칙에 따라서 생활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중요하다라고 생각한 일종의 비인격적 법칙주의로 기울었다. 그것을 우리는 통칭해서 道라고 부른다. 그래서 공자님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신 것. 도를 가지고 얘기할 때 그 안에 어떤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아서 말하는 지는 각기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놓여있는 것은 영원불변의 법칙을 말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 법칙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것인데 꽃이 피면 다시 꽃이 지는데 무엇이 꽃을 피우고 무엇이 지게하는가를 물어볼 수 있겠다. 중국사람들은 이를 도라고 했고, 희랍사람들은 아이티아 aitia로 '진정한 원인'이라고 했다. aitia는 그러니까 첫 번째로 눈에 보이지 않는것. 두 번째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것. 이 것을 계속해서 탐색해서 올라갔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스로는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건드려서 움직이게 하는 것을 '부동의 원동자'라고 말을 했다. primary mover 또는 unmoved mover. 인격적인 성격을 가진게 아니라 법칙적인 것. 우리는 원인을 따져서 묻는다하면 꼭 그 원인이 물질적인 것 또는 유형의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이것은 physics의 차원. 거기까지 생각하는 것은 물리적인 차원. 거기서 생각을 추상화시켜서가면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니 Metaphysics의 차원. 즉 형이상학의 차원. 중국에는 형이상학이 없다고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논어를 한 구절도 않 읽어본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 physics를 넘어간 세계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Metaphysics. 아리스토텔레스는 뭐라고 했냐 테오스 Theos, 신이라고 불렀다. 신에 관한 이야기 그래서 테올로지 Theology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도 제일 상급의 이야기, physics 다음의 이야기기, 최고 위에 있는 Metaphysics 이야기를 Theology, 신학이라고 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신학은 기독교적인 신학이 아니라 원천적인 의미에서의 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 10번째 권을 보면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라고 말할때 과감히 그것을 떨쳐버리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라고 한다.


꽃은 자연에 있는 것이니까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래서 꽃이 인간보다 영원한 것. 'in term of' = '~의 입각해서',  자연의 상하相下에서 보면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영원의 상하相下에서 보면, 다시 말해 자연의 시각으로 보면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저 들에 피어있는 이름 없는 인간이 굳이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되는 들꽃보다도 더 하찮은 존재. 그래서 칸트 같은 사람은 '자연물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할 수 없다'고 했다.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물에 대해서 논할 수 없다는 것. 이것에 대립되는 것이 인공물 kunstwerk. 자 그러면 여기서 인간은 인류의 역사를 자연의 상하에서 영원한 법칙이 있음을 알아차린 인간과 영원히 살 수 없다고 하는 자신이 들에 피어 있는 이름 없는 꽃보다도 자신이 하찮다는 것을 알아버린 인간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런 것의 역사라고 해버린다면..  이 지점으로 들어가게 되면 근본적으로 허무주의가 나오는 것. 도가적 허무주의가 여기 있는것. 그래도 인간이 우주만물의 기운을 타고 났고, 가장 영험한 존재고.. 이런 썰을 풀어서 만든 것이 유가. 그보다 더 밑으로 가버리면 우리 눈 앞에 놓여 있는 일체의 만물이 조금의 실체성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게 불교. 서양에는 이런 생각이 없었나. 다 있다. 다 묻혀서 겉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이것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기 시작하면 이제 영원한 것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영원한 것 중에서 제일 오래가고 단단하고 오래가는 것이 바로 학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제일 오래 간다. 2500년 전에 씌여진 <오뒷세이아>를 생각해보자. 또 점토판에 기록된 아카드어 수메르어로 씌여진 <길가메시 서사시>를 생각해보자. 그래서 학문을 하는 것은 결국은 신학 Theology을 하는 것. Metaphysics야 말로 영원한 學. 


'영원의 상하'라고 하는 것은 직접 서 볼 수는는 없지만 인간의 의식으로는 서 볼 수있다. 그것을 본뜬 것이 신학. 신학을 본뜬 것이 physika. Metaphysika 또는 Theology를 본뜬 것이 physika. 물리학을 본뜬 것이 통돌이 세탁기, 아이폰. 한마디로 전 우주의 위계질서가 딱 있다. 이 것이 바로 학문. 위계질서를 매기는 것이 학문이다. 모든 학문은 가치론인 것. 가치판단이 없을 수가 없다. 가치 value란 대상의 일체의 대상의 위계를 매기는 것. 모든 인류가 가치 있게 생각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영원한 것. 영원한 것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학문. 그러면 이 학문을 사람들에게 이 것이 원원한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학문을 보존해야 한다. 오래된 것을 보존해야하는 것이 바로 학교. 영원한 것을 보존해서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지는 않아도 보존은 해야 하는데 이를 보존하는 것이 학교. 학교라고 하는 것의 definition이 무엇인가. 바로 영원한 것을 보존하는 것. 그것에 복무하지 않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다. 학원이라고 한다. 당연히 가장 영원한 것을 보존하는 순서대로 레벨이 매겨지는 것. 그래서 서양 중세에 신학이 있고, 그 다음에 법학, 의학. 이런 것을 하기 위한 기초 학문인 철학이 있었다. 신학과 법학, 의학, 철학 이렇게 마름모꼴 구조가 이루어지는 것. 물론 지금은 세속국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신학이 제일 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철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들이 예비학문으로 있는 것이다. 진리의 체계에 따라서 대학의 체계가 형성되었기 때문. 영원한 것으로부터 내려오는 급수에 따라서 대학의 체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대학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스타벅스와 함께 망하는 것. 이러한 생각들은 투키디데스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동아시아 세계에서도 이런 것의 아이디어가 계속 있었다. 


바로 여기서 철학을 하는 방법이 나온다.

철학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영원함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것. 그필연적이면도 필수적인면서도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 영원함에 대한 초월적인것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있어야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것들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있을 때 겸손함이 생긴다. 그 감각은 책을 읽거나 학습으로 터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속에서 터득이 되는 것. 한마디로 말하면 애늙은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래야만 철학을 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체의 공부가 쓸모없다는 것에 대한 한없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또한 철학 공부을 통하여 일체의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부를 공부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것이 사태를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겠다는 '방법론적 무당파성'을 가져야 한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쩔수 없이 깔고 들어가는 것이 있는데 그 어떤 경우에도 그들의 입장에서 텍스트를 무당파성으로 읽어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공부가 안되는 것. 


지난 주 사문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유가 또는 유교라고 하는 것에 '사'가 영어로는 this인데 이 this 안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하는가. 당대의 상황과 당대의 학자들이 당대의 상황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하고 얼마나 원리적인 해결책을 내놓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니까 선진 유가 즉 공자 사상 이후로 유가에 대해서 논의를 할 때는,,, 유교만큼 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 해야만 하는 사상체계도 드물다. 공자가 사문을 이어받았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 만큼 이어받아서 자기의 시대를 고민해서 하나의 기본을 만들었다. 첫 시간에 유가다라고 하면 최소한 어떠 어떠한 것을 갖춰야 한다고 했는데 그 상태에서 어떤 솔루션들이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어떤 부분이 밑바닥으로 퍼져들어갔는지 이것은 시대적인 맥락을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위진남북조 이래 유교가 쇠퇴하고 중국으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불교는 전혀 낯선 사상 체계이기 때문에 전통 문화에 해당하는 유가와 도교 융합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불교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이 대개 도교의 언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불교에서 득도 得度한다는 표현을 하는데 불교라고 하는 종교 체계가 되었건 사상체계가 되었건 이것의 근본적인 원리를 생각해보면 득도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 말이다. 불교는 얻는다는 것에서는 일체의 집착을 버리는 종교인데 得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 불교 사상체계 자체가 중국의 전통적인 체계를 습합했다고 볼수있다. 또한 도교는 너무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으니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민중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던 유교와 불교로부터 일정한 정도의 교리체계를 받아들인다.


한나라 초반에는 도교가 노장사상이 약간의 통치술을 개발해서 사회에 통용되었다. 특히나 한나라 경제 景帝 때는 노장 사상이 널리 퍼졌다. 노장의 정치철학이라는 것이 적극적인 것이 있을 수 없기는하지만.. 소국과민 小國寡民 =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 ...제국의 통치철학으로 어쨋든 들어가게면 되면 백성들에게 예의와 형벌을 엄격하게 시행하지 않고 될 수있으면 백성들이 알아서 하는 자율적이고 방임적인 정치를 펴는 것을 노가적인 정치술이라고 부른다. 느슨한 다스림. 한나라 무제 武帝 때 유교가 국교화되었다고 하지만 과거 시험을 보는 교과서로 채택되었다는 것 뿐이다. 유교는 어떤 측면에서는 항상 형이상학적인 관심이 있었다기 보다는 현실적인 예禮와 악樂의 문제, 예의범절의 문제에 치중 했었기 때문에 인간과 우주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진리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도가와 불교의 손을 뻗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교는 중국의 전통문화를 습합하고, 도교는 이론적인 측면이 약하니까 유교와 불교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유교는 형이상학적인 맥락이 약하니까 우주론을 받아들이고 이러다보니 대체로 유교, 도교, 불교가 별로 차이가 없는 이른바 삼교일치의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한다.


송나라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리학, 송나라와 명나라 때의 사상을 송명이학이라고 부른다. 성리학보다는 송명이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 송나라의 주자학, 명나라의 양명학이라고 하는데 두 가지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이 예전에 이쪽 분야의 학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요즘 연구의 추세. 송나라 때의 주자와 명나라 때의 왕수인 이런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다 똑같다. 이쪽이 조금 이론적인 측면이 강한다면 저쪽은 민중적인 실천적인 측면이 강하다라고 논의가 정리가 되고 있다. 


조선 성리학에 대해서 애기할 때는 양명학을 새삼스럽게 내세울 것 없이 조선에서는 이미 양명학적인 풍토가 있었다라는 것이 하나. 조선에서는 그렇게 이론적으로 따지지 않았다. 성리학이나 양명학의 구별 자체가 조선사람에게는 없었다가 둘. 조선 시대에는 중국 사람들이 논의 했던 이론적인 치밀함이 없었다. 조선 성리학의 특성을 가장 잘보여주는 사건이 상복을 몇년 입느냐의 문제. 조선은 禮學 예학 위주.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은 것이 小學 소학, 朱子家禮 주자가례다. 조선이 유교 국가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어폐가 있다. 조선은 유교적 예를 행한 나라이지 유교 국가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 개신교, 가톨릭이 있기는 하지만 개신교 이론을 만든 적은 없다.세계적인 목사는 있어도 세계적인 신학자는 없다. 즉 기독교국가는 아니다. 단 불교 국가이기는 하다. 현상윤 선생이 쓴 <조선사상사>를 보면 유교이론은 없고 불교이론은 있다. 독창적 불교이론은 나온적이 있다. 하지만 독창적인 유가이론은 없다. 조선에서 소학을 배우고 이 후 대학을 배웠다. 사서삼경(논어,맹자,대학,중용)에서 대학,주용을 먼저 배우고 나서 논어,맹자로 들어갔다. 조선에서 성리학의 연구가 15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정약용(1762~1836)의 <논어고금주>가 나올때까지 논어를 딱 꿰어서 읽은 사람은 없다. 이게 나쁜 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주자께서 모든 것을 다 결정해놓으셨으니 소학을 열심히 읽자는 것이었던 것. 즉 유가에서 만들어진 삶의 지표들을 우리의 삶 속에다가 집어넣어서 우리의 몸에 붙이는 것이 먼저이지 이것이 얼마나 이론적으로 정교하냐는 이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라. 이게 중요하다. 


사마천 <사기>가 쓰여진 것이 한무제 때. 한무제 때가 기원전156~87. 생각해보자. 사만천 <사기>는 다 읽고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할 정도로 텍스트가 방대하다. 그 시기에 한반도에 어떤 텍스트가 있었나. 한국 사람들은 사상이 없다고 하는게 문헌이 없다는 것. 사마천 <사기>라든가 반고 <漢書 한서> 그 텍스트 하나만 가지고서도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문서 전체를 다 커버할 수 있다. 이게 열등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특성을 잘알아야 한다. 


행실을 가다듬는 소학과 집안에서의 관혼상제를 가르치는 주자가례 이 두가지가 조선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했다. 이  두개가 묶여져서 조선시대에는 四禮便覽 사례편람이 있었는데 이 것이 조선예약의 표준적인 성과이다. <논어>를 조선시대에 본격적으로 읽어서 내놓은 텍스트가 정약용의  <논어고금주>. 조선시대의 유가적인 학문 연구의 성과를 볼려면  <논어고금주>.  정양용의 <목민심서>, <흠흠신서>는 사상서가 아닌 매뉴얼이다. 철저한 남인이었기 때문에 군왕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해야한다고 생각한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탐관오리들이 이 따위 짓을 하면 군왕이 욕먹는다는 등의 각각의 경우에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매뉴얼. 이를 잘 구별해야 한다. 텍스트의 위계에 대한 맥락 없이 다산선생 지식경영 써버리면 안된다. 


한국에서 서양철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당시 조선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첫째로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어서 괴롭다. 계속 해서 한자를 써야하는데 어중간한 차용상태에 있는것. 모국어가 아니니 한자를 잘 쓰기도 어렵고 이를테면 漢作한다는 것이 평생을 해야하는 일인데 쉬은 일이 아니다. 학문 그 자체에 몰두 할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게 안되니까 언어가 번역이 잘 안된 상태로 어중간하게 되고 이러다보니 이론, 아이디어를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 두 번째로 우리는 이거 필요 없고이론을 만들어낼 능력도 없다보니 할 수 있는게 무엇인가, 인사 잘하고 제사 잘지내자가 되어 버린 것.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해결 해버리느냐면 무조건 번역하고 그 다음에 그대로 따라해버리는 것.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간에 우리가 영원한 것에 대한 존숭을 계속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무목적적으로 실현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 자리가 바로 학교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올해 강의했던 것들에 대해 촘촘하게 다시 읽기를 바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