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중국인 이야기 1 - 10점
김명호 지음/한길사



목차
책을 내면서 덧붙이는 말

참새 소탕전의 추억
류사오치는 마오쩌둥의 속마음을 읽지 못했다
마오쩌둥, 장하오의 관을 메다
물과 햇빛과 바람을 싫어한 천하명장 린뱌오
문화대혁명을 뒤에서 음모한 캉성

전쟁을 하면서도 학문과 자유를 키운 시난연합대학
두부와 혁명
잊혀진 사상가 장선푸
우리 가슴에 대나무 한 그루씩을 심자
최고 권력자 장제스의 쟁우 후스
시베리아 추위도 장징궈의 웃음 앗아가지 못했다
영원한 자유주의자 레이전
장제스와 비극적인 대논객 천부레이

북벌부인 천제루
마오의 장정부인 허쯔전
마오의 딸들
무장한 여인
중공의 청춘
장춘차오를 감옥문에서 기다리던 원징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를 작곡한 녜얼
중국 현대미술의 반역자
예술은 사회와 인민의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화가들

마오쩌둥식 중·소외교
짜고 친 포격전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
아편과 혁명

성경을 든 첩보의 영웅
정보의 천재 리커눙
댄서들의 난동
상하이 황제
20세기의 여불위

강산을 사랑했지만 미인을 더 사랑한 사람
위안스카이와 한국인 부인들
푸이의 황후와 황비

참고문헌



343 1975년 출옥한 예첸위는 푸춘강을 찾았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4년에 걸쳐 황공망 이후 시인묵객들이 1,000여 편의 시와 산문을 남긴 푸춘강변 33킬로미터의 자연과 생활상을 담은 [푸춘산거신도]를 완성했다. 세로 1미터, 가로 33미터에 달하는 대작이었다.
  예첸위는 말년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치바이스·쉐비이홍·장다첸 등 대가들의 작품 100여 점과 함께 [푸춘산거신도]를 고향에 기증했다. 이유가 분명했다.
  "예술은 사회와 인민의 것이다. 나를 키워준 고향에 보답할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다. 미술작품을 놓고 불량한 상황이 발생할 날이 머지않았다. 경고가 필요하다."
 딸 예밍밍에 의하면 예첸위는 민간 공예가 없어질지 모른다며 학교를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돈 계산이 워낙 주먹구구식이라 거의 파산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401 장세스에게 타이완은 영원히 중국의 영토였다. 타이완으로 쫓겨와 있으면서도 "두개의 중국" 혹은 "한 개의 중국, 한개의 타이완" 등 중국의 분열과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공산당보다 더 무자비하게 다뤘다. 이 점에 있어서는 마오쩌둥도 장제스를 높게 평가했다.

540 푸이는 톈진 대표로 참석한 루중린을 발견했다. 37년 만에 또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손을 마주잡고 애들처럼 즐거워했다. 루중린은 이런 인연이 없다며 '치위'를 연발했다. 푸이의 회고록은 1959년까지만 기술돼 있다. 이날의 심정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