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3 단테 신곡 4


신곡 : 연옥 - 10점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열린책들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0502 13강 단테신곡(1)

20130509 14강 단테신곡(2)

20130523 15강 단테신곡(3)

20130530 16강 단테신곡(4)

20130613 17강 단테신곡(5)

20130620 18강-1 단테신곡(6)



20130530 16강 단테신곡(4)

오늘 읽을 부분은 <연옥편>이다. 라틴어 Purgatorio는 죄를 씻어낸다는 뜻이다. 

연옥 문턱에 도착한 날짜는 예수가 부활한 날. 지옥을 거쳐오면서 부활의 길로 들어섰다. 예수는 부활했지만 여기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연옥을 거치게된다. 주의해야할 점은 연옥은 가톨릭에서 개발한 교리이기 때문에 성서에서 그 전거를 찾을 수 없는 점. 사실 단테가 <신곡>을 쓸 때만 연옥이 개발된지 얼마 안된 교리였다. 쟈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을 보면 연옥이라는 개념을 널리 퍼뜨리는데 큰 기여를 한 책이 바로 이 <신곡>.


앞서 지옥편을 읽을 때 지옥문 글귀를 본 것처럼 지옥편 핵심은 하느님의 올바름을 드러내고자 하는것.  의의라고 번역하는데 섭리라고도 할 수 있다. 신의 필연성, 올바름을 드러내고자 하는데가 지옥이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번째 편지에서 나오는 믿음, 소망, 사랑 이것에 대비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지옥은 올바름에 대한 신의 섭리에 관한 것이고, 연옥은 무엇이고, 천국은 무엇인가를 개념화 해야한다. 이 세 개가 합해졌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구원, 또는 단테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신적인 인간으로 거듭나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할 때 우선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 무엇이그릇된 것인가를 가릴 수 있는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식별해내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게 지옥에서의 단테가 했던 일. 그렇다면 그에 이어서 연옥에서는 과연 무엇을 하는가. 오늘 <연옥편>을 읽을 때는 여러분들이 연옥 전체에서 단테가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핵심적인 테마가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파악하는것이 중요하다.


단테는 결론을 선취해서 말하자면 (저의 판단이지만) 단테가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모두다 거쳐서 성취하고자 하는것은 바로 聖化 성화다. 신성하게 되는것. 또는 神化  신화 deification. 신적인 인간. 인간은 인간이되 신적인 신간. 반대말은 物化 물화 reification. 단테 <신곡> 밑바탕에 놓여있는 핵심적인 대립구도는 deification과 reification의 대립. 그러니까 단테가 출발하기를 <지옥편> 첫구절처럼 내 인생이 절망에 상태에 있었다고 했다. 자기 내면의 있는 신의 섭리도 잃어버리고 있었고, 그에 따라 신의 섭리가 무엇인지 모르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것. 이런 아이디어들은 사실 서구사상에서 단테만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꽤 오래된 것. 가령 플라톤 <국가>를 보면 철학적 통치자의 커리큐럼이 나온다.플라톤이 말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무엇가를 배울 수 뒤나미스 dynamis를 타고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힘이 향하는 대상이 항상 문제라고 말한다. 어떤 대상을 향하는가에 따라서  이 사람이 찌질한 사람이 될 수 도 있고, 고귀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좋음을 향해야 한다. 좋음의 이데아를 얘기하는데 좋음이 무엇인지 알고 자꾸 사람들에게 가져다 대야 그것을 향해 간다는 것. 인간은 힘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의 섭리를 안다는 것은 뭐냐 방향을 아는것이다. 회개할 능력도 있고, 회개한 다음에 자기 스스로를 밀고 갈 수 있는 것도 있다. 방향이 문제. 단테가 지옥 처음에서 길을 잃고 해매고 있다는 것이 뭐냐면 길이라는게 곧 섭리. 그러니까 결국 <지옥편>에서는 길을 잃어버린자들의 모습을 봤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생각해보면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이제 어떤 길로 가야할지 알았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가. 길을 가야겠다. 무작정가면 안되고 희망을 가지고 가야한다. 그래서 <연옥편>은 희망을 제시하는 것. 그래서 <지옥편>이 사실 중요하다. '이런 길로 가면 안된다'와 '어떤 길로 가야한다'  이 두 개를 동시에 알려주는 것이고 , 그렇게 신의 섭리를 알았으니까 이제 연옥은 희망을 보여준다. 그 길을 갈 희망에 북돋아 오르는 것. 물화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신이 나에게 부여한 섭리를 다 잃어버린 상태. 내가 나에대한 주도권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 이게 물화이다. 자기소외된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내가 자기의 주인이 아닌 상태. 이 개념을 잘 알아놔야한다.


마르크스의 인간론, 인간철학을 얘기할 때는 reification이 핵심개념이다. 루카치가 마르크스 이야기할 때 이 개념을 쓴다. 이 물화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물화를 초래한 원인을 찾아봐야한다. 이것을 <지옥편>에서 탐색했다.


외부가 차단된 상태에서 내 안에의 동력을 길어올려서 나의 뒤나미스를 끌어 올려서 좋음과 올바름과 아름다움을 향해가는것. 그러면 이제 고귀함을 향해가는 자기주도권을 회복하게 된다. 그럴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었다는 것. 그런 희망을 갖게되는 것이 바로 연옥.이다.


연옥편 33곡의 맨 마지막인 143행을 보자.


Dante, Divina Commedia, Purgatorio.33.143

새로운 잎사귀로 새롭게 태어난

나무처럼 순수하게 다시 태어났으니,

별들에게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죄를 벗어버리고 희망을 갖게된 것이다. 성서에서 예수는 너희들이 어린아기가 되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바로 그런것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신의 섭리를 다시 깨닫는것. 순진무구한 상태가 되는것. 물화된 상태를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나무처럼 순수하게 다시 태어났으니, 별들에게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은 천국과 연옥을 연결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천국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별들에게, 별들을 향하여. 이게 바로 희망. 


이 상태에서 준비가 되어있는 것을 누가 보증하는가. 베르길리우스가 말해준다.  27곡 139행을 보자.


Dante, Divina Commedia, Purgatorio.33.139

나의 말이나 눈짓을 기다리지 마라.

네 의지는 자유롭고 바르고 건강하여

거기에 따르지 않음은 옳지 않으리니,

너에게 왕관과 주교관을 씌우노라.


의지와 지성 이 모든 것들이 겸비된 상태 또는 의지의 교정이 완성된 상태. 왕관은 세속세계, 주교관은 정신세계를 말하는데 이 지상위에서 세속세계와 정신세계을 다 아우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여기서부터 단테는. 본격적인 deification.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신화가 되는것. 이게 바로 천국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연마를 하려면 어떻게 하는가 지옥에서는 신의 섭리를 알아야 한다. 연옥에서는 신이 준 희망을 알아야한다. 이제 천국에서는 사랑이 필요할 때이다. 첫째는 베아뜨리체의 사랑이고, 이것만 가지고는 안되니까 나중에는 마리아의 사랑이다. 베르나르두스가  마리아의 사랑으로 이끌어 간다. 신의 섭리를 깨닫고 나도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다음에 베아뜨리체와 마리아의 사랑을 거쳐서 인간은 신적인간으로 올라서는 것. 이게 바로 <신곡> 전체가 가지고 잇는 메시지.


연역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찌보면 온갖 파토스를 다 겪게 한다. 모든 처지를 구경이라도 하게한다. 그 길이 넓은 길이 아니고 좁은 길이고, 홀츠베게 Holzwege, 독일어로 숲 길이다. 하이데가 쓴 글 중에 Holzwege가 있다. 하이데거 철학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서구사상에서 사실상 근대세계에서는 배척되어버린 deification의 저 신비한 근원, 인간과 세계가 가지고 있는 신비한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어떻게 하면 이룩할 수 있는가를 하이데거가 얘기했는데 그래서 숲 길인 것. 서구에서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단테의 이미자가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미지가 다 공유 되고 있기 때문에 숲 길이라는 책 제목을 썼을 때 서양의 독자들은 캐치가 되는것.


신의 섭리와 그 섭리를 깨달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고, 결국에는 신적 인간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 이 희망을 가지고 본격적인 연마단계에 들어갔을 때 사랑, 섭리,희망,사랑 이 세가지가 포개짐으로써 하나가 그 다음 단계에 가면 이전 단계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새롭게 거듭, 재구조화된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섭리 1단계, 희망 2단계, 사랑 3단계 이렇게 수평적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다층적인 구조로로 되어있다. 처음에 섭리만 알고있는 상태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이 하라는게 너무 많네' 라는 의무감이 생기는것. 희망을 거쳐 가면 섭리라는 것이 기꺼이 해내 갈 수 있는 즐거운, 사랑으로가면 몸에서 저절로 행해지는 것. 이 세 단계가 다층적이면서도 동시에 혼용이 되면 부담없이 기꺼이 자유로운 구속 이렇게 되는 것. 이게 바로 단테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래서 예수가 내가 너희들에게 율법을 주로 온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러 온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연옥편>을 보면 앞서 <지옥편>에 나오는  죄악들이 또 나온다. 탐욕도 탐식도. 그러면 아주 단순한 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단테가 목록을 잘못 만든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연옥에 나오는 죄악들은 지옥에 나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이런 죄악들은 얼마든지 가볍게 극복해낼 수 있는 희망 속에 겪는 고통이다.  그래서 견딜만 한 것. 


큰 구조와 메시지를 이해했으면 이제 제 1곡을 보자. 


Dante, Divina Commedia, Purgatorio.1.1

보다 편한 물 위를 달리기 위하여

내 재능의 쪽배는 돛을 활짝 펼쳤으니,

그토록 참혹한 바다를 뒤에 남긴 채,

이제 나는 인간의 영혼이 깨끗이

씻겨 하늘로 오르기에 합당하게

되는 저 둘째 왕국을 노래하련다.


이렇게 직설법으로 말하지 않고 알레고리를  가지고 표현하니 이런 표현들이 정말 좋다.

'하늘로 오르기에 합당하게'  이렇게 연옥이 희망의 공간임을 얼핏 암시하는 부분들이 많다.  19행을 보면


Dante, Divina Commedia, Purgatorio.1.19

사랑을 이끄는 아름다운 행성은

뒤따르는 물고기자리를 희미하게 하며

동쪽을 온통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동쪽을 온통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희망이 있는 곳이다. 

이런 것이 연옥 편 제 1곡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115행을 보면


Dante, Divina Commedia, Purgatorio.1.115

여명은 새벽의 어슴푸레함을 몰아내

달아나게 하였으니, 나는 멀리에서

일렁이는 바다를 알아볼 수 있었다.


멀리에서 일렁이는 바다, 미지의 세계를 여행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황량한 벌판을 걸었으니, 마치

잃어버린 길을 되돌아오는 사람이

그곳까지 헛걸음을 하는 것과 같았다.


희망을 알아보았다 해도 어쨋든 모험을 하는 것.

adventus라는 라틴어에서 adventur이 나왔다. adventus는 또한 대림절을 의미한다. 11월 말부터 성탄절까지 예수의 탄생의 기다린다고 해서 대림. 사실 우리 인류에게는, 우주에게는 ,이 성스러운 세계의 시간 속에는 adventus는 모험이다. 작년에도 성탄절을 기념하고, 올해도 성탄절을 기념한다. 종교라고 하는 것은 신성한 기억을 되풀이 함으로써 자신의 일상을 계속  purify 정화하는 것. 예수가 올 것인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우리를 원죄로부터 해방시키줄 것인가 이러한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대림절이다.


<연옥편> 제1곡부터 9곡까지는 연옥의 introduction에 해당한다. 9곡 머릿말을 보자.

단테는 제후들의 계곡에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 꿈에 독수리가 자신을 채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잠에서 깨자 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잠든 사이 하늘에서 루치아가 내려와 그를 연옥의 문 앞까지 올려다 주었다고 이야기한다. 문지기 천사는 단테의 이마에 P자 일곱 개를 새겨 주고 두 시인은 본격적인 연옥 안으로 들어간다.


9곡에 연옥의 안쪽문, 즉 내문이 있는 것이다. <지옥편>에도 9곡에 지옥의 안쪽문이 있고, <천국편>에서도 9곡부터 천국다운 천국이다. 즉 지옥, 연옥, 천국 마찬가지로 9곡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3*3=9, 3은 중요한 숫자인데 이런 것을 찾는 것이 수학 數, 비밀 祕해서 數祕學. 서양 뿐만 아니라 동양사람들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사마천 <사기> 또한 그렇다. 


9곡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연옥에 들어가게 된다. 9곡을 보자.


Dante, Divina Commedia, Purgatorio.9.49

이제 너는 벌써 연옥에 도착하였으니,

저기 주위를 둘러막은 절벽을 보아라.

저기 벌어져 있는 듯한 입구를 보아라.


입구에 들어왔다. 이제 입구 속으로 들어가는데 94행부터 보면 연옥의 모습이 뚜렷하게 나와있다.


Dante, Divina Commedia, Purgatorio.9.94

우리는 그곳으로 다가갔는데 첫째 계단은

새하얀 계단으로 너무 깨끗하고 맑아서

나의 모습이 그대로 안에 비쳐 보였다.


자기 반성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나의 겉모습이 비춰보인 것이기도 하지만 생각을 반영하는 것을 뜻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 중 여기서는 생각을 비춰보이는 것.


둘째 계단은 어둡기보다 검은색인데

거칠고 메마른 돌로 되어 있었으며

가로와 세로로 온통 금이 가 있었다.


알레고리를 해석할 때 첫째 계단은 자신의 생각을 비춰보는 것이고,  둘째계단은 각주 15번에 나와있듯이 죄의 고백을 상징하고 있다. 입을 통한 고백. 입을 통해서 고통스러운 속죄의 기도를 드리는 것


그 위에 얹혀 있는 세 번째 계단은

마치 핏줄에서 튀어나오는 피처럼

새빨갛게 불타는 반암(斑岩) 같았다.


새빨갛게 불타는 반암(斑岩)흔 흔히 사랑으로 고양된 마음을 표현한다고 흔힌 얘기한다. 행위를 통한 수행을 드러내 보인다.  111행을 보면


Dante, Divina Commedia, Purgatorio.9.111

그보다 먼저 내 가슴을 세 번 두드렸다.


가톨릭에서 고해성사를 하기전에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라고 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지은 세 가지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표시이다. 오늘날에는 고백기도를 할 때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라고 하며 태만의 죄까지 해서 현재 가톨릭 교회에서 인정하는 죄는 4가지다.   121행을 보면


Dante, Divina Commedia, Purgatorio.9.121

이 열쇠 중 하나라도

잘못하여 열쇠 구멍 안에서 제대로 돌지

않는다면 이 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가 더 귀중하지만, 문을 열려면

다른 하나의 정교한 재주가 필요하니,

바로 그것이 매듭을 풀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을 나는 베드로에게 받았는데,

내 발 앞에 엎드리는 사람에게 잘못

열더라도 잠가 두지 말라고 말하셨다.」


잘못 열었어도 어쨌든 안잠겨있으니 들어갈 수 있다는 이런 부분도 <연옥편>이 희망의 공간임을 암시하는 구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다서 곧바로


그리고 그 거룩한 문을 밀면서 말하셨다.

「들어가라. 하지만 뒤를 돌아보는 자는

밖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20번 각주를 보면 뒤를 돌아보면 하느님의 은총을 상실하게 된다 라고 되어있다. 뒤를 돌아보면 밖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밖으로 가면 지옥으로 다시 간다. 그러니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얘기했다. 과거에 연연하는것. 이제부터는 희망이있는 연옥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유토피아 사회를 가만히 문자 그대로 보면 국가가 소멸한다고 한다. 공통체. 코뮤니티가 남는 것.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흔히 말하는 이상적인 고대 공동체. 즉 제도적인 장치가 사라지는 것. 플라톤 <국가>에서 보면 철학적인 통치자들은 결혼을 하더라도 공동 육아를 하게 되어있다. 그 처방이 왜그러냐면 간단히 말하자면 사적 차원에서의 가족을 폐기하는 것. 그냥 뻘소리가 아니라 아테나이라는 국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들어서면서 극도로 상업화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예전에는 토지를 둘러싸고 토지를 가진자와 가지지 않은자 사이에 계급 투쟁이 벌어졌었는데 이제는 거기에 덧붙여서 금융적 계급투쟁이 돈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여기서 그 핵심적인 것은 원래 희랍이 공동체 국가. 바로 사유재산이 없는게 공동체 국가. 다시보면 사유재산의 폐기는 마르크스의 얘기다. 사적 가족이 있으면 사유재산을 엄청 끌어모은다. 플라톤이 얘기하고자 하는게 뭐냐면 private property를 없애자는 것. 그러면 세상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핵심문제였다. 근데 이것을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소유권이라는 것 자체를 없애자는 것. 


희랍시기 말기부터 형성되었던 사유재산 개념이 쭉 전개되다가 이게 사회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원리로 자리잡은 나라가 로마. 로마의 로마법대전에 서구의 사유재산개념이 세팅되어있다.  나는 내몸뚱아리 주인이고, 집안의 가장은 여자와 자식들의 주인이고..이런 식으로 재산권 개념이 로마에서 세팅되었다. 즉 로마하는 나라가 현대 서양문명의 기본세팅을 갖고 있다. 좀바르트 같은 사람은 자본주의 기원을 로마에서 잡는다. 즉 제도주의 차원에서 보면 법적으로 제도가 있어야 자본주의가 성립하는 것 그런데 로마가 무너지고 중세가 되었다. 서양사람들은 대단히 역동적인 세상을 살았는데. 중세시대에는 사유재산이 없다.  모든 땅이 하느님의 것. 소유권이 아닌 사유권 私有權만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장미의 이름>을 보면 사도들이 재산을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한 엄청난 논란이 벌어진다. 중세시대에는 이단 싸움보다 사용권이냐 소유권이냐 하는 문제가 컸다. 소유권 입장에 서면 근대인이고, 사용권은 고대인이다. 


중세를 크게 둘로 나누면 500-1000년, 1000-1500년이다. 그런데 500-1000년 사이 이 때의 역사는 로마라는 찬란한 문명이 선행했는데도 A4 반매가 안된다.  다시말해서 완전하게 붕괴된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이게 사실은 마르크스가 생각한 이상적인 공동체의 실측도를 그려보면 이게된다. 지금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 그리고 국가라는 억압적인 제도를 해체하려고 한다. 사유재산 없애려는데 이를 없애면 문명이 무너진다. 생산력이 확 떨어지면서 로마 가두를 만들던 사람들이 이제 싸움이 없어진다. 왜 가톨릭사제가 독신인가,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돈을 못번다. 그래서 교회라고 하는 제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돈이 500년 동안 모였다. 그래서 1000-1500년에는 중세의 절정기에 이르렀다. 


이와달리 동로마 제국은 500-1500년까지 절정에 있었다. 그사이에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 있다. 이 법전의 제1 출발점이 소유권이다. 가톨릭 세계가 가지고 있는 사용권 개념이 깨지면서 사유권 개념이 나오고 유스티아 법전이 다시 사용되 된 것. 그러니까는 국대국가라고 하는 것은 사유 재산권에서 시작한다. 사유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자들끼리 계약을 해서 국가를 만드는 것이 바로 로크의 <통치론>이다. 근대라고 하는 사회는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는 자만 법적인 권리를 가진다. 사유재산을 폐기하면 다시 전으로 돌아가는 것. 문명은 무너지고 생산력은 완전히 내려간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과 같은 것을 주장을 이어받은 후계자들이 마르크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국가소멸론과 계급 투쟁론이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 국가의 위력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좌파는 복지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는 마르크스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 계속해서 있어왔고, 단테 시대에도 한판 나온것. 토마스 아퀴나스, 마르실리우스, 단테 <제정론>. 마르실리우스 같은 사람은 국가가 교회를 통제해야한다. 그래야 종교에 따른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적극적으로 근대이론을 성립했고, 단테는 적당히 중간 정도를 말했다. 단테가 이런 연옥에서 말한 神化  신화 deification 이런 것은 멋있는 것이기는 한데 사실상 살기는 힘든 것. 인류가 가진 필연적인 딜레마다. 뭔가 배우고 공부하고 문명을 이룩하려면 필연적으로 이것을 유지하기 위한 생산력이 있어야 한다. 책도 만들어서 읽어야 한다. 과연 이것이 행복을 주는냐는 별개의 문제다. 단테는 중세 끝트머리에 있는데 단테 시대의 이런 아이디어 들도 막상 현실화되기 시작하면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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