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정체(政體)


국가·정체(政體) - 10점
플라톤 지음, 박종현 옮김/서광사

개정 증보판을 내면서 

초판의 머리말 

플라톤의 생애와 철학 

《국가》(政體) 해제 

일러두기 

대화자들 


제1권 

제2권 

제3권 

제4권 

제5권 

제6권 

제7권 

제8권 

제9권 

제10권 



1권

327a 어저께 나는 아리스톤의 아들 글라우콘(Glaucon)과 함께 피레우스로 내려 갔었네.


332c 그렇다면 시모니데스는 올바른 것(정의로운 것: to dikaion)이 무엇인지를 말함에 있어서 시인처럼 암시적으로 말한 것 같소. 그는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갚는 것, 이것이 올바른 것이라 생각하고, 이 합당한 것(to prosēkon)을 갚을 것(마땅한 것: to opheilomenon)이라고 일컬은 것 같으니까 말씀이오.


338c 들으십시오! 저로서는 올바른 것(to dikaion)이란 '더 강한 자(ho kreittōn)'의 편익(이득: to sympheron) 이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343a 대답해 주세요, 소크라테스 선생! 선생께는 보모가 있기나 합니까?



2권

357b그러시다면 선생님께선 바라시는 바를 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좋은 것(agathon)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말하자면, 우리가 그 결과를 바라서가 아니라 오직 그 자체 때문에 반기며 갖고자 하는 그런 것, 이를테면 기쁨이라든가, 또는 즐거움들 중에서도 해롭지 않은, 따라서 이를 지님으로써 나중에라도 기쁨 이외에는 아무것도 이로 인하여 생기지 않는 그런 것과 같은 좋은 것이 말씀입니다.


357c 우리가 그 자체 때문에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생기는 결과들 때문에도 좋아하는 그런 것이 있습니까? 이를테면 슬기로운 것이나 보는 것 또는 건강한 것 따위와 같은 말씀입니다. 


357d 수고롭기는 하지만, 우리를 이롭게 하는 것들이라고 말하거니와, 우리가 이것들을 수용하려 하는 것도 그것들 자체 때문이 아니라, 보수라든가 그 밖에 그것들에서 생기는 결과 때문입니다.


358b 저는 그 각각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 각각이 혼 안에 깃들임으로써, 그 자체로서는 어떤 힘(능력: dynamis)을 갖는지를 듣고 싶을 뿐이지, 그 보수라든가 또는 그 밖에 그것들에서 생기게 되는 결과들에 관해서는 개의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366e 시를 통해서건 또는 사사로운 이야기를 통해서건, 한쪽은 혼이 자신 안에 지닐 수 있는 나쁜 것들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인 반면에, 올바름은 가장 좋은 것임을 논변으로써(이론적으로) 충분히 펴신 분은 아직껏 아무도 없습니다.


367b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비단 올바름이 올바르지 못함보다도 더 낫다는 주장만 밝히실것이 아니라, 그 각각이 그것을 지니고 있는 당사자에게, 그 자체로서, 즉 신들이나 남들에게 발각되건 또는 그렇게 되지 않건 간에, 무슨 작용을 하기에, 한쪽은 좋은 것이지만, 다른 한쪽은 나쁜 것인지도 밝혀 주십시오.


368e 자네한테 내 말해 줌세. 올바름(올바른 상태, 정의: dikaiosynē)엔 한 사람의 것도 있지만, 나라(polis) 전체의 것도 있다고 아마도 우리는 말할 것 같은데


369a 올바름은 한결 큰 것에 있어서 더 큰 규모로 있을 것이며, 또 알아내기도 쉬울 걸세. 자네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먼저 나라들에 있어서 올바름이 어떤 것인지 탐구하도록 하세나. 그런 다음에 한결 작은 형태의 것에 있어서 한결 큰 것과의 유사성을 검토해보면서, 역시 개개인에 있어서의 올바름을 마찬가지로 검토해 보도록 하세나.


369b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나라가 생기는 것은 우리 각자가 자족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것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일세. 아니면 자네는 나라를 수립시키는 기원(起源: archē)으로서 다른 무엇을 생각하는가?


369c 자, 그러면 이론상으로 처음부터 나라를 수립해 보세. 그런데 나라를 수립시키는 것은 우리의 '필요'(chreia)가 하는 일인 것 같으이.


369d 그렇지만 여러 가지 필요 중에서도 첫째이며 가장 중대한 것은 생존을 위한 음식물의 마련일세. 그리고 둘째 것은 주거의 마련일 것이며, 셋째 것은 의복 및 그와 같은 유의 것들의 마련일세.


369d 자, 그러면 나라는 이처럼 많은 여러 가지 것의 마련을 위해서는 얼마나 큰 나라면 충분할까? 농부가 한 사람, 집 짓는 사람이 또 한 사람, 또 다른 한 사람으로 직물을 짜는사람이 있어야 할 밖에? 혹시 우리는 여기에다 제화공이나 아니면 신체와 관련되는 것들을 보살피는 또 다른 사람을 보탤 것인가? 


369d 그렇다면 '최소한도의 나라'(최소 필요국: hē anankaiotatē polis)는 넷 또는 다섯 사람으로 이루어지겠네


370c 이로 미루어 볼진대, 각각의 것이 더 많이, 더 훌륭하게, 그리고 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성향에 따라'(kata physin) 적기에 하되,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한가로이 대할 때에 있어서이네.


372c 선생님께서는 그 사람들로 하여금 요리도 없이 잔치상을 받게 하신 것 같습니다.


372d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께서 '돼지들의 나라'(hyōn polis)를 수립하고 계셨다면, 바로 이런 것들로 그것들을 살찌우지 않으셨겠습니까?


372e 관습대로죠. 그들은 고생을 견디어 내려고 하지 않을 사람들이라, 침상(kline)에 기대누워서, 식탁에 차린 식사를 하며, 또한 요새 사람들도 먹는 것과 같은 요리와 후식을 들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376c 장차 우리 나라의 '훌륭하디훌륭한'(kalos kảgathos) 수호자로 될 사람은 의당 천성으로 지혜를 사랑하며 격정적이고 날래며 굳셀 걸세.




3권

399e 역시 단연코 말하네만, 우리는 방금 전에 호사스런 나라라고 말했던 나라를 완전히 정화했네. 


400a 자, 그러면 나머지 것들도 정화하세나. 우리의 선법에 이어지는 것은 리듬에 관한 것이겠기 때문일세. 우리는 복잡 미묘한 리듬도 온갖 종류의 운율(basis)도 추구하지 말고, 예절 바르고 용감한 삶을 나타내는 리듬이 무엇무엇인지 보도록 해야만 하네. 이를 본 다음에 그런 사람의 말(노래말)이 시각과 선율을 따르도록 해서는 아니 되네. 하나, 이들 리듬이 어떤 것들이든, 그걸 말하는 것은 자네 일일세. 선법을 말했던 것처럼 말이네.


401e 그러니, 글라우콘! 시가(詩歌: mousikē)[를 통한] 교육(양육: trophē)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이런 이유들 때문이겠지? 즉, 리듬과 선법(화음: harmonia)은 혼의 내면으로 가장 깊숙이 젖어 들며, 우아함을 대동함으로써 혼을 가장 강력하게 사로잡고, 또한 어떤 사람이 옳게 교육 받는다면, 우아한(고상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 반대로 만들 것이기 때문에 말일세.


402c 절제(sōphrosynē), 용기(andreia), 자유로움(eleutheriotēs), 고매함(호방, 度量: megaloprepeia) 및 이와 같은 부류인 모든 것, 그리고 또 이것들과 반대되는 것들, 이 모두의 형상(形相: eidos)들이 어디에고 '옮겨가[며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가 알며, 그것들이 그 안에 있게 된 것들 안에는 그것들 자체가 그리고 그것들의 상(像)들이 '들어가 있음'(안에 있음: enonta)"을 깨닫고, 그것들이 작은 것들 안에 있건 또는 큰 것들 안에 있건 무시하지 않고, 그것들 모두가 동일한 '전문 지식'과 수련에 속한다고 우리가 믿게 되기 전에는 말일세.


402d 그런데 어떤 사람의 혼 안에 훌륭한 성격(성품)들이 있게 된 데다, 이것들과 합치하고 조회되는 것들이 외모에도 있게 된다면, 그래서 이들 양쪽 것들이 같은 원형(原型, 模型: typos)에 관여(metechonta) 있다면 이는 이를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겠는가?


408d 가장 많은 건강한 사람과 가장 많은 병약한 사람을 다루어 본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그런 사람들[훌륭한 의사]일 것이며, 재판관(판관: dikastēs)들 역시 마찬가지로 온갖 성향의 사람들과 사귀어 본 사람들이 그런 이들일 것입니다.


408d 자네는 같지 않은 문제를 한 물음으로 제기했네.


408d 그러나 여보게나, 덕어도 판관은 혼(마음)으로써 혼을 다스리네. 혼으로서는 어릴 적부터 못된 혼들 속에서 자라고 사귀어 오면서 온갖 잘못된 짓들을 스스로 저지르기도 하고 줄곧 겪어도 보고서야 남들의 잘못된 짓들을, 신체적 질병처럼, 자기에게서 날카롭게 판단해 내게 될 수는 없다네. 오히려 혼이 그 자체로 훌륭하디훌륭하면서 올바른 것들을 건전하게 판단하려면, 자체가 어려서는 나쁜 성격들에 대한 체험도 없어야만 하며, 그런 것들로 더렵혀지지도 않아야만 하네. 바로 이런 까닭으로 훌륭한 사람들은 젊어서는 순진해 보이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들한테 잘 속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들 안에 못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본(paradeigma)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일세.


413e 만약에 어떤 사람이 어떤 경우에나 좀처럼 홀리지 않고 의젓하며, 자기 자신과 자기가 배운 시가(詩歌, mousikē)의 훌륭한 수호자인 걸로 보인다면, 그래서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자신을 단정하고 조화로운 사람으로 드러내 보인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가장 유용한 사람일걸세.


414b 그러니까 이들이야말로 외부의 적들에 대하여서도 그리고 내부의 동료들에 대하여서도 참으로 '완벽한 수호자들'(phylakes panteleis)이라 불러 지당할 것인즉, 이들은 내부의 동료들이 나라를 해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한편으로, 외부의 적들이 그럴 수도 없도록 하겠지? 하지만, 이제껏 우리가 수호자들이라 불러 왔던 그 젊은이들은 통치자들(hoi archontes)의 신념을 위한 보조자들(epikouroi) 및 협력자들(boēthoi)이라 불러 마땅할 테고?


415d 이들 자신이 곧이듣도록 할 방도는 결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아들들과 그들의 후손들, 그리고 또 그 이후의 다른 사람들이라면, 곧이듣도록 할 방도는 있을 겁니다.


415d 이 이야기도 전설(phēmē)이 이끄는대로 그 길을 갈 걸세.




4권

420b 우리가 이 나라를 수립함에 있어서 유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어느 한 집단(ethnos)이 특히 행복하게 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시민 전체가 최대한으로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그런 나라에서 올바름(올바른 상태, 정의: dikayosynē)을 가장 잘 찾아 볼 수 있는 반면, 가장 나쁘게 경영되는 나라에서는 올바르지 못함(올바르지 못한 상태, 불의: adikia)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며, 일단 이것들을 보게 되면, 우리가 오래전부터 추구해 오던 것에 대한 판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421a 법률과 나라의 수호자들이 실제로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면서도(meē ontes) 그런 듯이 여겨지기만 하는(dokountes) 사람들일 때, 이들이 온 나라를 송두리째 파멸시키겠지 만, 또한 오직 이들 수호자들만이 나라를 잘 경영하고 행복하게 하는 계기를 쥐고 있다는 사실도 당신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421e 바로 이 두가지, 즉 빈곤(penia)과 부(ploutos)로 인해서 기술의 산물들도 못해지지만, 장인들 자신들도 더욱 못해진다네.


422a 부와 빈곤일세. 앞엣것은 사치와 게으름 및 변혁(neōterismos)을 초래하는 반면, 뒤엣것은 변혁에 더하여 노예 근성(aneleutheria)과 '기량의 떨어뜨림'(kakoergia)을 초래하기 때문이네. 


423b 나는 이런 것이라 생각하네. 나라가 커지더라도 하나로 머물러 있게되는 한도까지, 즉 그 정도까지 키우되, 그 이상은 키우지 않는 걸세.


423d 이것으로 의도한 바는 다른 시민들도 저마다 타나난 성향에 따라 이 한 가지 일(기능: ergon)에 개개인이 배치되어야만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각자가 자신의 한 가지 일에 종사함으로써 각자가 여럿 아닌 한 사람으로 되도록 하고, 또한 바로 이런 식으로 해서 나라 전체가 자연적으로 여럿 아닌 '한 나라'로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네.


427d 여보게, 아리스톤의 자제여! 따라서 자네의 나라가 이제 수립된 셈일세, 


428b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엔 실제로 이 나라에 있어서 아주 명백한 첫째 것은 지혜(sophia)인 것 같으이. 


428b 우리가 자세히 말한 이 나라는 정말로 지혜로운 나라일 것으로 내게 생각되네, 그건 이 나라가 분별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428b 그렇지만 바로 이것, 즉 분별(euboulia)은 일종의 앎(epistēmē)인 것은 분명하이. 


428d 이 나라 전체와 관련해서 어떤 방식으로 이 나라가 대내적으로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가장 잘 지낼 수 있을 것인지를 숙의 결정해 주게 될 그런 지식 말일세. 그건 무엇이며, 누구에게 있는가? 그건 나라의 수호술(守護術: phylakikē)이며, 우리가 방금 '완벽한 수호자들'(teleoi phylakes)로 불렀던 그 통치자들(archontes)에게 있습니다.


429c 내말은 용기란 일종의 보전(保全: sōtēria)이란 뜻일세.


429c 법에 의한 교육을 통해, 두려워할 것들이 무엇무엇이며, 또 어떠한 것들인지, 이와 관련해서 생기게 된 소신(판단)의 보전일세. 그리고 이를 '언제나' (어느 경우에나) 보전한다고 함은 고통에 처하여서도 이를 버리지 않고 끝끝내 보전하여 지님을 의미하네. 


430e 절제란 어쩌면 일종의 질서(kosmos)요, 어떤 쾌락과 욕망의 억제(enkrateia)일 걸세. 


431c 이에 반해서 단순하며 절도있는 욕구는, 지성(nous)과 바른 판단(소신, 의견: orthē doxa)을 아울러 갖춘 헤아림(추론: logismos)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어서, 소수의 사람에게서, 성향에 있어서도 가장 훌륭하지만 교육도 가장 훌륭하게 받은 사람들에게서 만나보게 될 걸세. 


432a 용기나 지혜는 그 각각이 그 나라의 어느 한 부분에만 있어도, 뒤엣것은 그 나라를 곧 지혜로운 나라로, 반면에 앞엣것은 그걸 용기 있는 사람로 되게 하지만, 졸제는 그러질 못하기 때문일세. 절제는 정말로 나라 전역에 걸치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협화음처럼], 가장 약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과 가장 강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 그리고 중간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합창함으로써 전(全) 음정을 통하여 마련되는 것일세. 


433a 그렇다면 내가 일리 있는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 보게나. 내가 생각하기로는, 우리가 이 나라를 수립하기 시작할 당초부터 언제나 준수해야만 된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게, 또는 그것의 일종이 '올바름'(올바른 상태, 정의)일세. 자네도 기억하겠네만, 분명히 우리가 주장했고 또 여러 차례에 걸쳐 언급했던 것은, 각자는 자기 나라와 관련된 일들 중에서 자기의 성향이 천성으로 가장 적합한 그런 한 가지에 종사해야 된다는 것이었네.


433a 더 나아가서는 '제 일을 하고 참견하지(polypragmonein) 않는 것'이 올바름(올바른 상태)이라고 하는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들 하는 걸 듣기도 했고, 우리 자신도 몇 번이나 말하기도 했네.


433b 그러니 여보게나, 이것이, 즉 '제 일을 하는 것'(to ta hautou prattein)이 어떤 식으로 실현되는 게 '올바른 상태'(올바름)인 것 같으이. 자넨 내가 무엇을 근거로 이런 추단(推斷)을 하는지 알고 있는가?


433b 내가 보기엔, 이미 우리가 검토했던 것들, 즉 절제와 용기 그리고 슬기(phronesis), 이것들 말고 이 나라에 있어서 남아 있던 것은 이런 것이네. 이들 세 가지 모두가 이 나라 안에 생기도록 하는 그런 힘을 주고, 일단 이것들이 이 나라 안에 생긴 다음에는, 그것이 이 나라 안에 있는 한은, 그것들의 보전을 가능케 해 주는 그런 것일세. 그렇지만, 다른 셋을 우리가 찾아내게 되면, 그것들 말고 남는 것은 올바름일 것이라고 우리는 말하기도 했네.


433c 그렇지만, 만일에 이들 중에서 어느 것이 이 나라 안에 생기게 될 때, 이 나라를 훌륭한 나라로 만드는 데 제일 많이 기여할 것인지를 우리가 판정해야만 된다면, 이는 실상 판정내리기 힘든 일일 걸세. 그건 다스리는 자들과 다스림을 받는 자들간의 '의견의 일치'(homodoxia)일 것이지, 또는 두려워할 것들이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들과 관련해서, 그 것들이 어떤 것이건 간에, 군인들에게 '준법적인 소신'의 이루어짐으로써일 것인지, 아니면 다스리는 자들에게 '슬기'와 수호술이 있게 됨으로써일 것인지, 또는 저마다 한 사람으로서 제 일을 하고 참견하지 않는 것, 이것이 아녀자와 노예, 자유민, 장인, 그리고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에게 있어서 실현될 때에, 이 나라를 훌륭한 나라로 만드는 데 제일 많이 기여할 것인지를 판정내리는 것은 말일세.


434d 만일에 이 개념(eidos)이 개개의 인간에게 적용되어 거기에서도 올바름인 걸로 우리가 합의를 보게 된다면, 우리는 곧바로 이를 인정할걸세.


434d 우리가 이 고찰을 하기로 했던 것은 그 안에 '올바름'을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한결 큰 규모의 것에 있어서 먼저 보도록 시도함으로써, 개인에 있어서 올바름이 어떤 것인지를 한결 쉽게 알아내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서였네.


435b 올바름의 개념(형상) 자체의 관점에서 올바른 사람은 올바른 나라와 아무런 차이도 없고, 닮은 것일세.


439d 혼의 헤아리는(추론적, 이성적: logistikon) 부분이라 부르는 반면, 그것으로써 혼이 사랑하고 배고파하며 목말라하거나 또는 그 밖의 다른 욕구들과 관련해서 흥분상태에 있게 되는 부분은, 어떤 만족이나 괘락들과 한편인 것으로서, 비이성적(헤아릴 줄 모르는: alogiston)이며 욕구적인(epithymetikon) 부분이라 부른다 해도, 결코 불합리하지는 않을 걸세. 


439e 아마도 그 중의 하나, 즉 욕구적인 부분과 같은 성질의 것일 겁니다.


441d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우리 각자의 경우에도, 자신 안에 있는 부분들의 각각이 제 일을하게 되면, 이 사람이 올바른 사람으로, 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될 것이라는 점일세.


443d 사실 '올바름'이 그런 어떤 것이긴 한 것 같으이. 하지만 그것은 외적인 자기 일의 수행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기 일의 수행, 즉 참된 자기 자신 그리고 참된 자신의 일과 관련된 것일세. 자기 안에 있는 각각의 것이 남의 일을 하는 일이 없도록, 또한 혼의 각 부류가 서로를 참견하는 일도 없도록 하는 반면, 참된 의미에서 자신의 것인 것들을 잘 조절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배하며 통솔하고 또한 자기 자신과 화목함으로써, 이들 세 부분을, 마치 영락없는 음계의 세 음정(horos) 즉 최고음과 최저음 그리고 중간음처럼, 전체적으로 조화시키네. 또한 이들 사이의 것들로서 다른 어떤 것들이 있게라도 되면, 이들마저도 모두 함께 결합시켜서는, 여럿인 상태에서 벗어나 완전히 하나인 절제 있고 조화된 사람으로 되네. 이렇게 되고서야 그는 행동을 하네. 그가 무슨 일을, 가령 재물의 획득이나 몸의 보살핌 또는 정치나 개인적인 계약에 관련된 일을 수행하게 될 경우에는 말일세.


444b '올바르지 못함'은 이들 세 부분 간의 일종의 내분(stasis)이며, 참견(polypragmosynē)과 간섭(allotriopragmosynē), 그리고 혼 전체에 대한 어떤 일부의 모반(epanastasis)임에 틀림없지 않겠는가? 이는 자신이 지배함에는 적합지 아니하되, 오히려 지배할 부류의 것인 것에 복종하는 것이 그 성향상 어울릴, 그러한 것이 혼에 있어서 지배하려 드는 것일 테고, 이런 등속의 것들이, 그리고 이들 세 부분의 혼란과 방황이 올바르지 못함이며 무절제요, 비겁이며 무지라고, 요컨대 일체의 '나쁨'(kakia)이라고 우리가 주장할 것으로 나는 생각하네.




5권

455d 그러고 보면, 여보게나,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일(업무)로서 여자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것인 것은 없고, 남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의 것인 것도 없다네. 오히려 여러가지 성향이 양쪽 성(性)의 생물들에 비슷하게 흩어져 있어서, 모든 일(업무)에 여자도 '성향에 따라'(kata physin) 관여하게 되고, 남자도 모든 일(업무)에 마찬가지로 관여하게 되는 걸세.


457b 그러면 우리가 여성과 관련된 법에 대해 언급하는 가운데, 마치 하나의 파도를 피한 것처럼 말하도록 할까? 그래서 우리의 남성 수호자들과 여성 수호자들이 모든 걸 공동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것으로 정함으로써, 그 파도에 완전히 휩쓸리는 일이 없게 되었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가능하고 유익한 것들로 말함으로써 어떤 면에서 일관성을 갖게 된 것으로 말일세.


457d 또한 아이들도 공유하게 되어 있고,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을 알게 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아이도 자기 부모를 알게 되어 있지 않다네.


457d 그 가능성 및 유익성에 대한 불신감과 관련해서 볼 때, 이번 파도가 아까 것보다도 월등하게 큽니다.


457d 그것의 유익함과 관련해서 논쟁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이. 즉 여자들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 이것이 정녕 가능하다면, 이것이 최선의 것이 못 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으이. 그러나 그것의 가능성 여부와 관련해서는 최대의 논쟁이 있게 될 것으로 생각하네.


458d 그러나 이들은 공동의 주거를 가지며, 공동 식사(syssitia)도 하고, 그 누구도 그와 같은 것을 전혀 개인적으로 소유하지 못하므로, 함께 살 것이며, 체육 훈련이나 그 밖의 양육에 있어서도 함께 어울리게 되어, 자연적 필연성(anankē)에 의해 상호의 성적 관계로 유도되네.


459e 최선의 남자들은 최선의 여자들과 가능한 한 자주 성적 관계를 가져야 하지만, 제일 변변찮은 남자들은 제일 변변찮은 여자들과 그 반대로 관계를 가져야 하고, 앞의 경우의 자식들은 양육되어야 할 것이로되, 뒤의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네. 만약에 우리의 무리가 최상급이려면 말일세. 그리고 수호자 집단이 최대한 분쟁 없는 상태로 있으려면, 이 모든 일은 통치자들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로 모르게 행해져야만 하네.


462d 그러면 한 사람에 가장 가까운 상태에 있는 나라야말로 그렇겠군? 이를테면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손가락을 다쳤을 때, 혼에 이르기까지 전신에 걸친 전체적 공동관계(koinonia)는 거기에 있어서 지배적인 것이 주도하는 하나의 조직으로 뻗어 있어서, 그걸 지각하게 되거니와, 그 부분이 아파하는 것과 동시에 전체가 일제히 함께 괴로워하는데, 우리가 이 사람이 손가락에 통증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해서이네.


472c 우리가 올바름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게 되었다고 해서, 우리는 또한 올바른 사람이 '올바름 자체'와 조금도 다르지 않고 모든 면에서 올바름과 같은 그런 것이기를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가급적 그것에 가깝다면, 그리고 그것에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최대한으로 관여한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만족할 것인가?


472c 그러니까 그건 본(paradeigma)을 위해서였네.


473b 오늘날 나라들에 있어서 잘못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무엇때문에 이들 나라들이 그런 식으로 다스려지지 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최소의 것으로 무엇이 변혁을 봄으로써 한 나라가 이런 형태의 정체(政體)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인지 하는 것일 것 같으이.


473d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이: ho philosophos)들이 나라들에 있어서 군왕들로서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 이른바 군왕(basileus) 또는 '최고 권력자'(dynastēs)들로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지혜를 사랑하게)' 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게 즉 '정치 권력'(dynamis politikē)과 철학(지혜에 대한 사랑: philosophia)이 한데 합쳐지는 한편으로, 다양한 성향들이 지금처럼 그 둘 중의 어느 한 쪽으로 따로따로 가는 상태가 강제적으로나마 저지되지 않는 한, 여보게나 글라우콘, 나라들에 있어서, 아니 내 생각으로는, 인류들에게 있어서도 '나쁜 것들의 종식'(kakōn paula)은 없다네.


474a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그런 주장을 털어놓으셨는데, 일단 그런 말씀을 하셨으니, 선생님께서는 각오하고 계셔야 합니다. 그야말로 많은 그리고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이를테면 일제히 웃통을 벗어던지고서는 맨 앞으로 저마다 닥치는 대로 무기를 들고서 놀랄 짓들을 저지를 양으로 힘껏 달려올 것이라는 걸 말씀입니다.


474b 만일에 우리가 자네가 말하는 그 사람들을 어떻게든 피해 볼 작정이라면, 철학자들이 통치를 해야만 된다고 우리가 감히 주장하고 있는 그 철학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인지를 그들한테 정의(定義)해(diorisasthai) 주어야만 될 것 같으이. 그래서 철학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가 분명하게 되면,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철학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나라에 있어서 지도자로 되는 게 성향상 적합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철학에 종사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를 따르는 것이 제격임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그들을 막아낼 수 있게 될 걸 세.


475b 그러니 우리는 철학자(愛知者)도 지혜(sophia)를 욕구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지혜는 욕구하되 어떤 지혜는 욕구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모든 지혜를 욕구하는 자라고 주장하지 않겠는가?


475d 그렇지만 모든 배움을 선뜻 맛보려 하고 배우는 일에 반기며 접근하고 또한 만족해 할 줄 모르는 사람, 이 사람을 우리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475d 그렇게 되면, 많은 이상한 사람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사람들로 될텐데요. 구경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도 제가 생각하기엔 기쁜 마음으로 배우는 까닭에 그런 사람들인 것 같으니까요.


475e 진리(alētheia)를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하네.


476b 아마도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소리나 빛깔 및 모양을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로 만들어진 온갖 걸 반길 뿐, 이들의 사고(思考, 마음 상태: dianoia)는 '아름다움(아름다운 것) 자체'(auto to kalon)의 본성(physis)을 [알아]볼(idein) 수도 반길 수도 없을 걸세.


476d 이와는 반대로 '아름다운 것 자체'를 믿을 뿐만 아니라, 이것과 이것에 '관여하고 있는 것들'(ta metechonta)을 알아볼 수 있는, 그래서 '관여하고 있는 것들'을 '그것 자체'(auto)로 생각하거나 또는 '그것 자체'를 '관여하고 있는 것들'로 생각하고 있는 일도 없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 자네에겐 '깬 상태'(hypar)로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가


476d 그렇다면 이 사람의 사고(思考)는 알고 있는 자의 것으로서 우리가 이를 인식(지식, 앎: gnōmē)이라 함이 옳겠으나, 앞엣 사람의 사고는 의견을 갖는 자의 것으로서 [우리가 이를] 의견(판단:doxa)이라 함이 옳지 않겠는가 


477a '있으면서'(존재하면서: einai) '있지(존재하지) 않기도'(mē einai) 하는 그런 상태의 것일 때, 그것은 '순수하게(절대적으로) 있는 것'(to eilikrinōs on)과 '어떤 식으로도 있지 않은 것'(to mēdamē on)의 '중간에'(사이에: metaxy) 위치하지 않겠는가?


477b '있는 것'(實在: to on)에는 인식(앎: gnōsis)이, '있지 않은 것'(非實在: to m on)에는 필연적으로 무지(agōnsis)가 상관할진대, 그것들 '사이의 것'(to metaxy)에 상관하는 것으로는 무지(agnoia)와 인식(앎: epistēmē) '사이의 어떤 것'(metaxy ti)을 찾아야만 하지 않겠는가?"  만약에 그런 어떤 것이 있다면 말일세.


478e 그러면 아직 찾아야 할 것으로서 남아 있는 것은 이런 것, 즉 '있음'(einai)과 '있지 않음'(mē einai)의 양쪽 모두에 관여하는 것으로서, 따라서 순수한 어느 한쪽만의 것으로서 부르는 것이 옳지 못한, 그런 것 같으이. 그래서, 만약에 그런 것이나타난다면, 그것을 우리가 '의견의 대상'(doxaston)이라 일컫는 게 옳은 것이도록 하세나.


479d 그러고보니 우리는 아름다움이나 다른 여러 가지 것에 관련된 다중(多衆)의 많은 '관습'(관례: ta nomima)이 '있지(...이지) 않은 것'과 '순수하게 있는(...인) 것'의 중간 어딘가에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같으이.


479e 그렇다면 많은 아름다운 것(사물)을 보되, '아름다운 것(아름다움) 자체(auto to kalon)'는 못 보며, 거기로 자신을 인도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는 사람들을, 또한 '많은 올바른 것'을 보되 '올바른 것(올바름) 자체'(auto to dikaion)는 못 보는 사람들, 그리고 또 일체의 것에 대해서 그러는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그들이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은 갖지만, 자기들이 의견을 갖는 것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걸세.


480a '각각의 실재 자체'(각각인 것 자체, x인 것 자체: auto hekaston to on)를 반기는 사람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철학자들)로 불러야지 의견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불러서는 아니 되겠지?




6권

485b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철학자들)의 성향(자질)과 관련해서는 이 점에 대해서, 즉 이들은 언제나 있으며 생성(genesis)과 소멸(phthora)에 의해 헤매게 되는 일이 없는 저 존재(본질: ousia)를 자신들에게 드러내 보여주는 배움을 언제나 사랑한다는 데 대해서 우리가 합의한 걸로 해 두세나.


486a 고매함(호방함, 度量: megaloprepeia)을, 그리고 모든 시간과 일체의 존재(본질: ousia)에 대한 관상(觀想: thēoria)을 갖는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 있어서 인간적인(세속적인) 삶이 무슨 대단한 것인 듯이 여겨질 수 있을 것으로 자네는 생각하는가?


486d 그의 타고난 성품은 이런 사고가 각각의 실재'(각각인 것: hekaston to on)의 '이데아'(形相, 본 모습: idea)로 쉽게 인도되게끔 할 걸세.


487d 철학을 하기 시작한 많은 사람이 충분한 교육을 받기 위해서 젊을 적에 이를 건드려 본 다음에, 이를 그만두지 못하고서, 더 오래 계속해서 하게 되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대다수가, 아주 못된 이들이라고 우리가 말할 지경으로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아주 이상하게 되는가 하면, 가장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런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 칭찬하시는 이 일(활동)로 인하여 나라들에 쓸모없는 이들이 되는 이런 일을 어쨌든 겪게 된다고 말씀입니다.


487e 그러면 나라들에 쓸모없는 사람들이라고 우리가 동의하고 있는 철학자들이 그들의 나라들에서 [정작] 다스리게 되기 전에는, 그 나라들이 나쁜 것들의 끝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옳을 수 있겠습니까?


489b 진실은 본디 이러하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아픈 사람이 의사들의 문전으로 찾아갈 필요가 있으며, 또한 다스림을 요하는 모든 사람이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의 문전으로 찾아갈 필요가 있지, 진실로 쓸모가 있는 경우의 통치자가 다스림을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다스림을 받도록 청할 필요가 없다네.


490b 참으로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천성으로 '실재'(있는 것: to on)에 이르려 열심이고, '존재하는'(있는: einai) 걸로 생각되는 '많은 각각의 (x인) 것'(ta polla hekasta)에는 머물지 아니하고 나아가되, '각각인(x인) 것 자체'(auto ho estin hekaston)의 본성(physis)을, 그런 것을 포착하기에 적합한 혼의 부분으로써 — 그건 동류(同類)의 것에 적합할 것이기에 — 마침내 포착하게 되기까지는, 그것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무디어지거나 그 사랑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일세. 혼의 그 부분에 의해서 '참으로 있는 것'(to on ontōs)에 접근하여 그것과 교합하여 지성(nous)과 진리를 낳아, 앎에 이르게 되어 진실되게 살며 양육되는데, 그 진통(ōdis)이 그치게 되는 것은 이렇게 해서이니, 그러기 전에는 그 진통은 그치지 않다고 말일세.


496b 여보게 아데이만토스, 철학과 제대로 교류하는 자들 가운데서도 소수의 부류가 이제 남게 되네. 


497b 그 어느 것도 아닐세. 하지만 바로 그게 내가 불평하는 점이기도 하이. 오늘날의 것들 중에서는 그 어떤 '나라 체제'(katastasis poleōs)도 철학적 성향에 걸맞는 것이 없다네. 이 때문에 철학적 성향은 또한 뒤틀리기도 하며 변질되기도 하네. 마치 낯선 땅에 뿌려진 씨앗이 곧잘 그 고장 것으로 꼼짝없이 퇴화되어 가듯, 마찬가지로 이 부류도 지금으로선 자신의 힘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른 성격의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네. 그러나 만일에 그것[철학적 성향]이 최선의 정체를 갖게 된다면, 그것 자체가 최선의 것이 듯, 그땐 그것이 참으로 신적인 것인 데 반해 다른 것들은 인간적인 것들이라는 걸 밝히어 줄 걸세.


503a 통치자들은, 즐거운 일들이나 괴로운 일들을 통한 시련을 겪고서도, 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판명되어야만 하며, 이 신념을 힘든 일이나 두려운 일들 또는 다른 변화에 처해서도 내던지지 않는 사람들로 또한 판명되어야 한다고 했었네.


505a '좋음(善: to agathon)의 이데아'(hē tou agathon idea)가 가장 큰(중요한) 배움'이라는 것을, 그리고 바로 이 이데아 덕분에 올바른 것들도 그 밖의 다른 것들도 유용하고 유익한 것들로 된다는 것을 자네는 여러 차례 들었을 테니까 말일세.


506b 선생님께선 좋은 것을 앎(epistēmē)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즐거움(쾌락)이라고 보십니까? 또는 이것들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506c 어떤가? 인식(앎)이 결여된 의견(판단: doxa)들은 모두가 창피스런 것이라는 걸 자넨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가?


507b 앞엣것들은 [눈에] '보이기는'(horasthai) 하되 '지성(nous)에 알려지지는'(지성에 의해서[라야] 알게 되지는: noeisthai) 않는다고 우리가 말하는 반면에, 이데아들은 지성에 알려지기는(지성에 의해서[라야] 알게 되기는) 하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하네.


508b 눈은 감각과 관련되는 기관(organon)들 중에서는 어쨌든 태양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일세.


508b 태양을 '좋음'(善)의 소산(소생)으로, 즉 '좋음'이 이것을 자기와 '유비(類比) 관계에 있는 것'(anologon)으로 생기게 했다고 내가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게나.


508c 누군가가 눈길을 그 대상들에 보낼 경우에, 이를 그것들의 빛깔(표면) 위로 낮의 빛이 퍼져 있는 동안에 하지 않고, 밤의 어두운 빛이 퍼져 있는 동안에 할 땐, 눈은, 마치 그 속에 맑은 시각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침침해서 거의 눈먼거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자네는 알고 있겠지?


508d 그렇지만 태양이 대상들의 빛깔을 비출 때는, 눈이 또렷이 보게 되고, 또한 같은 이 눈 속에도 맑은 시각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 나는 생각하네.


508d 진리와 실재가 비추는 것, 이 곳에 혼이 고착할 때는, 이를 지성에 의해 대뜸 알게 되고 인식하게 되어, 지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 그러나 어둠과 섞인 곳에, 즉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에 혼이 고착할 때는 '의견'(판단: doxa)을 갖게 되고, 이 의견들을 이리저리 바꾸어 가짐으로써 혼이 침침한 상태에 있게 되어, 이번에는 지성을 가지지 못한 이처럼 보인다네.


509b 태양은 보이는 것들에 '보임'의 '힘'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들에 생성과 성장 그리고 영양을 제공해 준다고 자네가 말할 것으로 나는 생각하네. 그 것 자체는 생성(생성되는 것: genesis)이 아니면서 말일세.


509b 그러므로 인식되는 것들의 '인식됨'이 가능하게 되는 것도 '좋음'(善)으로 인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하게'(einai) 되고 그 '본질'(ousia)을 갖게 되는 것도 그것에 의해서요, '좋음'은 [단순한] '존재'(ousia)가 아니라, 지위와 힘에 있어서 '존재'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하게나.


509d 더 나아가, 마치 같지 않은 두 부분으로 나뉜 하나의 선분을 취한 것처럼 하고서, 이 각각의 부분, 즉 [눈에] '보이는 부류'(to horōmenon genos)의 부분과 '지성에 알려지는 부류'(to nooumenon genos)의 부분을 다시 같은 비율로 나누게나. 그러면 그것들의 상대적인 명확성(saphēneia)과 불명확성(asapheia)으로 인해서, 보이는 부류의 부분에서 또 하나의 부분으로 영상(影像, 映像, 模像: eikōn)들이 자네에게 주어질 걸세.


510b 이것의 한 부분에서는 모방(닮음)의 대상들로 되었던 것들을 혼이 이번에는 영상(모상)들로 취급하고서, 가정(전제: hypothesis)들에서 원리(근원: archē)로 나아가는 식이 아니라, 결론(종결: teleutē)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탐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네. 다른 한 부분에서는 '무가정(無假定, 무전제) 원리'(archē anypothetos)로 나아가는 것으로서, 가정에서 나아가서 앞부분의 영상(모상)들도 없이, 형상(eidos)들 자체를 이용해서 이들을 통해서 탐구를 진행하네.


510d 그들은 눈에 보이는 도형(eidos)을 추가로 이용하며 이것들에 관해서 논의를 하되, 그들이 정작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런 도형들이 아니라 이것들이 닮아 보이는 원래의 것들에 관해서이고, 그들이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은 정사각형 자체나 대각선 자체 때문이지.


511a 그런데 이건 내가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noēton) 것이라고 말한 종류(eidos)이긴 하나, 이 종류의 탐구와 관련해서는 혼은 어쩔 수 없이 가정들을 이용하게 되고, 원리(근원)로는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는데, 이는 혼들이 가정들에서 벗어나 더 높이 오를 수가 없기 때문이네. 그 아랫 단계의 것들에 의해 닮음의 대상들로 된 바로 그것들이며, 그 아랫 것들에 비해 명백한 것들로 판단되고 존중되는 것들이기도 한 그것들을 또한 혼은 상(모상)들로서 이용하네.


511b 이는 '이성(logos) 자체'가 '변증술(dialektikē)적 논변'(dialegesthai)의 힘(능력)에 의해서 파악하게 되는 것으로서, 이때의 이성은 가정들을 원리로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밑에(hypo) 놓은 것(thesis)'(基盤: hypothesis)들로서 대하네. 즉 '무가정(無假定)의 것'(to anypotheton)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원리(근원)'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들이나 출발점들처럼 말일세. 이성 자체가 이를 포착하게 되면, 이번에는 이 원리에 의존하고 있는 것들을 고수하면서, 이런 식으로 다시 결론(종결) 쪽으로 내려가되, 그 어떤 감각적인 것도 전혀 이용하지 않고, 형상(形相, eidos)들 자체만을 이용하여 이것들을 통해서, 이것들 속으로 들어가서, 형상들에서 또한 끝을 맺네.




7권

515d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풀려나서는, 갑자기 일어서서 목을 돌리고 걸어가 그 불빛 쪽으로 쳐다보도록 강요당할 경우에, 그는 이 모든 걸 하면서 고통스러워할 것이고, 또한 전에는 그 그림자들만 보았을 뿐인 실물들을 눈부심 때문에 볼 수도 없을걸세. 


515e 또한 만약에 그로 하여금 그 불빛 자체를 보도록 강요한다면, 그는 눈이 아파서, 자신이 바라볼 수 있는 것들로 향해 달아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방금 지적받은 것들보다도 정말로 더 명확한 것들이라고 믿지 않겠는가?


516a 그래서 그가 빛에 이르게 되면, 그의 눈은 광휘로 가득 차서, 이제는 진짜들이라고 하는 것들 중의 어느 것 하나도 볼 수 없게 되지 않겠는가?


516a 그러기에, 그가 높은 곳의 것들을 보게 되려면, 익숙해짐(synētheia)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네. 처음에는 그림자들을 제일 쉽게 보게 될 것이고, 그 다음 으로는 물 속에 비친 사람들이나 또는 다른 것들의 상(eidōlon)들을 보게 될 것이며, 실물들은 그런 뒤에야 보게 될 걸세. 또한 이것들에서 더 나아가, 하늘에 있는 것들과 하늘 자체를 밤에 별빛과 달빛을 봄으로써 더 쉽게 관찰하게 될 걸세. 


516c 자신의 변화로 해서 자신은 행복하다 여기되, 그들[동료 죄수들]은 불쌍히 여길 것이라고 자넨 생각지 않는가?


571a 줄곧 그곳에서 죄수 상태로 있던 그들과 그 그림자들을 다시 판별해 봄에 있어서 경합을 벌이도록 요구받는다면, 어둠에 익숙해지는 이 시간이 아주 짧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는 비웃음을 자초하지 않겠는가? 또한 그에 대해서, 그가 위로 올라가더니 눈을 버려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올라가려고 애쓸 가치조차 없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기들을 풀어 주고서는 위로 윈도해 가려고 꾀하는 자는, 자신들의 손으로 어떻게든 붙잡아서 죽일 수만 있다면, 그를 죽여 버리려 하지 않겠는가?


517d 아직도 제대로 못보는 상태인 데다 주위의 어둠에 충분히 익숙해지기도 전에, 법정이나 또는 다른 곳에서 올바른 것의 그림자를 또는 이 그림자들을 생기게 하는 상들과 관련해서 말다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그리고 '올바름 자체'를 결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도대체 이것들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두고서 열띤 논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게 되어서, 몹시도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면 말일세.


519d 가장 훌륭한 성향(자질)을 지닌 자들로 하여금 앞서 우리가 가장 큰(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배움에 이르도록, 그래서  '좋음'(善)을 보게끔 그 오르막을 오르지 않을 수 없도록 하되, 이들이 일단 이 길을 올라, 그것을 충분히 보게 되면, 이제 이들이 허용받고 있는 걸 이들에게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것일세.


519d 바로 거기에 머물러(katamenein) 있으려 할 뿐, 저들 죄수들 곁으로 다시 내려가서(katabainein) 저들과 함께 노고와 명예를, 이게 다소 하찮은 것이건 대단한 것이건 간에,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일세.


519d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들에 대해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게 되며, 이들로서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들로 하여금 더 못한 삶을 살도록 만들게 될 텐데요?


520d 우리가 기른 자들이 이 말을 듣고서도 우리에게 불복하여, 저마다 번갈아가며 이 나라에서 노고를 함께 하려고 하지는 않고, 자기들끼리 대부분의 시간을 순수한 것(to katharon) 속에서 살려고 할 것으로 자네는 생각하는가?


521c 밤과도 같은 낮에서 진짜 낮으로 향하는 '혼의 전환'(psychēs periagōgē)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지혜의 사랑)이라고 우리가 말하게 될 실재(to on)로 향한 등정(오름: epanodos)일 것 같으이.


525a 혼은 '당혹해 하면서'(aporein), 자기 안에서 '사고 작용'(ennoia)을 가동케하여, '탐구를 하지'(zētein) 않을 수 없게끔 될 것이며, "하나 자체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게 될 걸세. 이렇게 해서 '하나'에 대한 공부는 실재(to on)의 고찰로 이끌로 주며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도록 하기에 적합한 것들 중의 하나로 될 걸세.


526e 정작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기하학의 많은 부분이 그리고 그 고급단계가 '좋음(善)의 이데아'를 더 쉽게 '보도록'(katidein) 만드는 데 어떤 점에서 기여하는 면이 있는가 하는 것일세.


532a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변증술적 논변'에 의해서 일체의 감각(aisthēsis)을 쓰지 않고서 '이성적 논의'(이성: logos)를 통해서 '각각인(~ᄂ, x인) 것 자체'(auto ho estin hekaston)로 향해서 출발하려 하고, 그래서 '좋은 것 자체'(auto ho estin agathon)를 '지성에 의한 이해(앎) 자체'(autē noēsis)에 의해서 파악하게 되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을 때, 그는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것'(to noēton)의 바로 그 끝에 이르게 되네. 마치 동굴을 벗어난 그 죄수가 그때 '가시적인 것'(to horaton)의 끝에 이르렀듯 말일세.


533d 따라서 변증술적 탐구 방법(hē dialektikē methodos)만이 이런 식으로, 즉 가정들을 [하나하나] 폐기하고서,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리(archē) 자체로 나아가네.


540b 15년일세. 이들이 쉰 살이 되었을 때, 이들 중에서도 [시험들을] 무사히 치렀으며 실무에 있어서나 학식에 있어서 두루 모든 면에서 가장 훌륭했던 자들을 이제 최종 목표로 인도해서, 이들로하여금 고개를 젖히고서 혼의 눈으로 하여금 모든 것에 빛을 제공하는 바로 그것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어야만 하네. 그리하여 '좋음(善) 자체'(to agathon auto)를 일단 보게 되면 이들은 그것을 본(paradeigma)으로 삼고서, 저마다 여생 동안 번갈아 가면서 나라와 개개인들 그리고 자신들을 다스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만 하네. 이들은 여생의 대부분을 철학으로 소일허자머느 차례가 오면 나라 일로 수고를 하며, 저마다 나라를 위해 통치자로도 되는데, 이들이 이 일을 하는 것은 이것이 훌륭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어서 일세.


540e 이 나라에서 열 살 이상 된 사람들을 모두 시골로 보내되, 그들의 아이들은, 오늘날 그 부모들의 것을 이들 자신도 지니게 되는, 그 성격들에서 벗어난 상태로 넘겨 받아서는, 이들 이들 자신들의 '생활방식'(tropos)과 법률 안에서 양육할 것이네. 이는 우리가 앞서 그때 언급했던 그런 것들일세. 또한 나라와 우리가 말한 정체(政體)는 이런 식으로 해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쉽게 확립되어, 스스로 번영하며, 그 안에 있게 되는 민족(ethnos)에 최대로 혜택을 입도록 하겠지?




8권

543a 됐네. 여보게, 글라우콘! 이런 것들은 이미 합의를 보았네. 즉 장차 완벽하게 경영될 나라에 있어서는 여자들이 공동의 것이어야 하며, 아이들과 일체 교육이 공동의 것이어야 하고, 전시와 평화시의 활동도 마찬가지로 공동의 것이어야 하지만, 군왕들은 이들 가운데서 철학(지혜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그리고 전쟁과 관련해서 가장 훌륭한 자들로 드러난 사람들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말일세.


543b 우리는 또한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동의했네. 일단 통치자들(hoi archontes)이 임명되면, 군인들을 앞서 우리가 말했던 그런 거처들로 인도해서 거주토록 하는데, 이 거처들은 그 누구를 위한 그 어떤 개인적인 것도 갖지 않고, 모두를 위한 공동의 것들만 갖는다는 걸 말일세. 


545d 혹시 이 점은 단순명료한 것인가? 즉, 정체(politeia)가 바뀌는 것은 관직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 자체에서 모두가 비롯되는 것이고, 이는 그 집단 안에서 내분(내란: stasis)이 생길 때라는 것이 말일세. 반면에 이 집단이 한 마음 한 뜻일 때에는, 그것이 아주 소수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변혁될 수가 없겠지?


551e 그건 그들이 무장한 대중(plēthos)을 이용하게 됨으로써 이들을 적보다도 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거나, 또는 대중을 이용하지 않음으로써 바로 싸움에서 자신들이 정말로 소수자로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일세. 게다가 또 이들은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돈을 기부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네.


557a 민주 정체(dēmokratia)가 생기게 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겨서, 다른 편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추방한 다음, 나머지 시민들에게는 평등하게 시민권과 관직을 배정하게 되고, 또한 이 정체에서 관직들이 대체로 추첨에 의해서 할당돌 때에 있어서라고 나는 생각하네.


558c 그러니까 민주정체는 이런 점들을 그리고 그 밖에도 이것들과 유사한 점들을 갖고 있겠으며, 또한 즐겁고 무정부 상태의(長이 없는: anarchos) 다채로운 정체이며, 평등한 사람들에게도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일종의 평등(isotēs)을 배분해 주는 정체인 걸로 보이네.


560c 그리하여 마침내는 이것들이 청년들의 혼의 성채(城砦: akropolis)에 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고(思考)에 있어서 최선의 파수꾼들이며 수호자들인 훌륭한 학문들과 활동들이, 그리고 진실된 말들이[전혀 없다시피] 텅 비어 있음을 알아차리고서는, 이를 점령해 버릴 것이라 나는 생각하네.


560d 공경(aidōs)을 어리석음이라 일컬으며 망명자처럼 불명예스럽게 밖으로 내몰아 버리는가 하면, 절제를 비겁이라 부르며 모독하면서 내쫓아 버리고, 절도(節度)와 적정한 지출을 촌스럽고 비굴한 것이라 설득하며, 많은 무용한 욕구와 한편이 되어, 이를 추방해 버리겠지?


560e 그것들은 ‘오만 무례함’(hybris)과 무정부 상태(무질서: anarchia), 낭비성 및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태’(無恥: anaideia)에 성장(盛裝)을 갖추게 하고 화관을 씌워서는 많은 가무단과 함께 돌아오게 하네. 그리고선 이것들을 찬양하며 미화시켜 부르는데, 오만 무례함을 교양 있음(eupaideusia)이라, 무정부 상태를 자유라, 낭비성을 도량(megaloprepeia)이라, 그리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태를 용기라 부르네.


566a 민중의 선봉에 선 자도 이와 마찬가지로 아주 잘 따르는 군중(ochlos)을 거느리고서, 동족의 피를 흘리는 것을 삼가지 않고, 사람을 부당하게 고발하여, 이런 것들은 그들이 곧잘 하는 짓들이어서, 법정으로 이끌고 가서는, 그를 살해하네. 사람의 목숨을 사라지게 하여, 경건하지 못한 혀와 입으로 동족의 피를 맛보고, 추방하며 살해하고, 채무의 무효화와 토지의 재분배에 대한 암시를 하네. 그러니 다음으로 이런 적들에 의해 살해되거나 아니면 참주가 되어 사람에서 늑대로 바뀔 수밖에 없도록 운명지어질 것이 필연적이겠지?


568c 그러나 내가 짐작하건대, 이들은 다른 나라들로 돌아다니면서 군중을 모아 놓고서, 이름답고 크며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지닌 사람을 고용해서는, 그 정체들을 참주 정체들과 민주 정체들로 이끌고 갈 걸세.




9권

571e 반면 어떤 사람이 스스로 건전하고 그리고 절제 있게 처신할 때는, 그리고 이 사람이 잠자리에 들 때는, 이렇게 할 것으로 나는 생각하네. 그는 자신의 이성적인(헤아리는) 부분(to logistikon)을 깨워서, 훌륭한 말들과 고찰들의 성찬과 대접을 받게 하여, 홀로 명상에 잠기게 하는 한편으로, 욕구적인 부분(to epithymētikon)에 대해서는 모자람(endeia)도 충족(plēsmonē)도 느끼지 않도록 해 주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이 부분이 잠들게 되어, 그것의 기쁨이나 고통으로 '최선의 부분'(to beltiston)에 소동을 일으키는 일이 없게 하며, 이 부분이 자체로 혼자 생각을 하게 하고,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또는 미래의 것이든, 그걸 깨치게 되었으면 하네.


572d 더 나아가서, 이 아버지에게 일어났던 일들과 똑같은 일들이 아들한테도 일어난다고 상상해 보게. 그를 이끄는 자들에 의해 완전한 자유라 불리는 갖은 불법(paranomia)으로 인도되는데, 그의 아버지와 친척들은 이들 중간 상태에 있는 욕구를 지원해 주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대로 다른 쪽을 도우네.


573b 그래서 이 사람 안에서 유익하고 아직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의견(판단: doxa)들이나 욕구들을 이것이 발견하게라도 되면, 이것들을 죽여 버리거나 내쫓아 버리어 마침내는 그한테서 절제를 숙청하고서, 밖에서 들여온 광기로 채우게 될 걸세.


573b 선생님께서는 참주적 인간의 탄생을 완벽하게 말씀하셨습니다.


576c 그러면 가장 사악한 것으로 드러나는 자가 또한 가장 비참한 자로 드러나겠지? 또한 가장 오래도록 그리고 으뜸으로 참주 노릇을 한 자가 으뜸으로 그리고 가장 오래도록 비참한 자로 되는 게 진리이겠지?


577d 만약에 사람이 나라와 유사하다면, 사람에 있어서도 같은 질서 체계(taxis)가 있는 게 필연적이어서, 그의 혼도 많은 굴종과 부자유로 충만해져, 혼이 가장 선량한 부분들은 노예 노릇을 하나, 가장 사악하고 가장 광적인 작은 부분은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 필연적이지 않겠는가?


581b 바로 이것들 때문에 우리가 인간들의 일차적인 세 부류(genos)를 '지혜를 사랑하는 부류', '이기기를 좋아하는 부류', 그리고 '이(利)를 탐하는 부류'라 말하네.


582e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ho philosophos)과 이성적 추론(논변)을 좋아하는 사람(ho philologos)이 찬양하는 것들이 가장 진실된 것들일 게 필연적입니다.


584c 그러므로 괴로움에서 벗어남을 순수한 즐거움이라고도, 즐거움에서 벗어남을 순수한 괴로움이라고도 우리가 믿는 일을 없도록 하세나.


588b 좋으이. 우리의 논의가 이에 이르렀으니, 처음에 언급된 것들로, 즉 그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들로 되돌아가도록 하세나. 아마도 그때 말했던 것은 철저하게 올바르지 못한데도 올바른 것으로 간주되는(평판이 난) 자에게는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는 것'(adikein)이 이익이 된다는 것이었을걸세.


588b 이제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 보도록 하세나.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는 것'과 '올바른 것들을 행하는 것'(to dikaia prattein)이 각각 어떤 힘(dynamis)을 갖는지에 대해서 이미 우리가 합의한 터이니 말일세.


588d 다채롭고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형태(모습: idea)의 짐승을 형상화하되, 일부는 유순한 짐승들의 머리를 갖고 일부는 사나운 짐승들의 머리를 가진 걸로, 그리고 그 자체에서 이들 모두를 자라나게도 바뀌게도 할 수 있는 걸로 형상화하게나.


588d 더 나아가 다른 하나는 사자의 형태를,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람의 형태를 형상화하게.


588d 셋인 이것들을 하나로 합쳐서, 어떻게든 서로 합쳐서 함께 자라나도록 하게나.


588e 이것들의 바깥쪽에 하나의 상(像)을, 즉 인간의 상을 삥 둘러 형상화하게나. 그래서 안쪽 것들은 볼 수 없고 다만 '외피'(덮개)만을 볼 뿐인 자에게는 하나의 동물, 즉 인간으로 보이게 되도록 말일세.


589a 반면에 올바른 것들이 이롭다고 주장하는 자는 이런 주장을 하지 않겠는가? 행하고 말해야 할 것들은, 이로써 내부의 인간이 이 인간을 최대한 장악하게 되며, 많은 머리를 가진 짐승을, 마치 농부처럼, 유순한 머리들은 키우고 길들이되, 사나운 것들은 자라지 못하게 막아가며 보살피게 되는 한편으로, 사자의 성향을 협력자로 만들어서 공동으로 모두를 돌보며, 서로를 그리고 자기 자신과도 화목하도록 만드는 그런 방향으로 조장하는 것들이어야 한다고 말일세.


589d 여보시오, 아름다운(훌륭한) 것들과 추한(부끄러운) 것들이란 이런 것들을 통해서 관례적인 것들(nomima)로 되었다고 우리가 말하지 않소? 아름다운 것들(ta kala)은 우리의 성향에 있어서 야수적인 것들이 인간적인 것에, 아니 그보다도 어쩌면 신적(神的)인 것(to theion)에 종속하는 것들로 만드는 것들인 반면에, 추한 것들(ta aischra)은 온순한 것을 사나운 것에 굴종하는 것들로 만들지 않소?


590d 따라서 그런 사람도 최선의 인간(ho beltistos)을 지배하고 있는 것과 닮은 것에 의해서, 지배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가 저 최선의 인간이며, 자신 속에 신적인 지배자(to theion archon)를 가진 인간의 노예가 되어야만 한다고 우리는 말하지 않는가?


592b 알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제껏 우리가 수립하면서 언급해 온 나라, 즉 이론상(논의상)으로나 성립하는 나라에서 그러려 할 것이란 말씀이군요. 그 나라는 지상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gēs... oudamou... einai] 저는 생각하니까요.


592b 그렇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것을 보고 싶어하는 자를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보고서 자신을 거기에 정착시키고 싶어하는 자를 위해서 하늘에 본(paradeigma)으로서 바쳐져 있다네. 그러나 그게 어디에 있건 또는 어디에 있게 되건 다를 게 아무것도 없으이. 그는 이 나라만의 정치를 하지, 다른 어떤 나라의 정치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네.


591b 그럴 것 같군요.





10권

595b 비록 어릴 적부터 호메로스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일종의 사랑(philia)과 공경(aidōs)이 나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말릴지라도 말일세. 그 분은 이 모든 훌륭한 비극 시인들의 최초의 스승이며 지도자였던 것 같기 때문일세. 그렇지만 진리(alētheia)에 앞서 사람이 더 존중되어서는 아니 되겠기에, 내 할 말은 해야만 하겠네.


598b 바로 이 점을 생각해보게. 그림은 각각의 경우에 어느 걸 상대로 하여 만들어지는가? '실재'(實在: to on)를 상대로 있는 그대로 모방하게 되는가, 아니면 보이는 것(현상: to phainomenon)을 상대로 보이는 그대로 모방하게 되는가? 그것은 '보이는 현상'(phantasma)의 모방인가, 아니면 진실(진리: alētheia)의 모방인가?


598b 모방술(模倣術: hē mimētikē)은 진실된 것에서 어쩌면 멀리 떨어져 있으며, 또한 이 때문에 모든 걸 만들어 내게도 되는 것 같으이.


606e 그러니, 글라우콘! 호메로스의 찬양자들로서, 이 시인이 헬라스(Hellas)를 교육했으며 인간사(人間事)의 경영 및 교육과 관련해서 그에게서 배우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의 온 생애를 설계하여 살아가는 데 모실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네가 만나게 될 때, 자네는 이들을 이들 나름으로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서 좋아하고 반겨야 하며, 또한 호메로스가 가장 시인다우며 비극 시인들 중에서도 첫째 간다는 데 동의해야만 하네. 그러니 시 가운데서도 신들에 대한 찬가들과 훌륭한 사람들에 대한 찬양들만이 이 나라에 받아들여야 할 것들이라는 걸 자네가 알아야 하네. 하지만, 만약에 자네가 서정시에서든 서사시에서든 즐겁게 하는 시가(詩歌)를 받아들인다면, 자네 나라에서는 법과 모두가 언제나 최선의 것으로 여기는 이성 대신에 즐거움과 괴로움이 왕 노릇을 하게 될 걸세.


608c 그렇지만 우리는 [사람이] 훌륭함(덕)에 대한 가장 큰 보답들과 제시된 상들에 대해 아직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았네.


608c 이미 언급된 것들보다도 더 큰 다른 것이 있다면, 굉장히 큰 걸 말씀하시겠군요.


617d 이는 아낭케의 따님이며 처녀이신 라케시스의 말씀이시다. 하루살이들인 혼들이여. 이건 죽게 마련인 종족의 죽음을 가져다 주는 또 다른 주기의 시작이니라. 다이몬이 그대들을 제비로 뽑는 게 아니라, 그대들이 다이몬을 선택하리라. 첫번째 제비를 뽑는 자는 자신이 반드시 함께 할 삶을 맨 먼저 선택하게 되리라. 훌륭함(덕: aretē)은 그 주인이 없어서, 저마다 그걸 귀히 여기는가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가에 따라, 그걸 더 갖게 되거나 덜 갖게 되리라. 그 탓은 선택한 자의 것이지, 신을 탓할 일이 아니니라.


618c 여보게나, 글라우콘! 바로 여기에 인간에게 있어서의 모든 모험이 있는 것 같으이. 우리가 각자가 다른 학문들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더라도, 이런 학문의 탐구자 및 학도가 되도록 최대한으로 마음을 써야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으니. 누가 자신으로 하여금 유익한 삶과 무익한 삶을 구별하며,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것들 중에서 최선의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또한 그럴 줄 알도록 해 줄 것인지를 어떻게든 배우고 찾아낼 수 있도록 해 주는 그런 학문이 만약에 있다면 말일세.


618d 이 모든 것에서 더 못한 삶과 더 나은 삶에 대한 결론을 얻고서는, 혼의 본성에 유의하면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학문 말일세.


619a 그런 삶들 가운데서 언제나 중용(to meson)의 삶을 선택하며, 이승의 삶에서도 저승의 모든 삶에서도, 양극단의 지나침을 피할 줄 알려면 말일세.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되는 것은 이런 식으로 해서이기 때문이네.


621c 글라우콘!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소실되지 않고 보전되었으니, 우리가 이를 믿는다면 그것이 우리를 또한 구원해 줄 것이며, '망각의 강' 또한 잘 건너서 자신의 혼도 더럽히지 않게 될 걸세. 만약에 우리가 혼이 불사의 것이며 모든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견디어 낼 수 있다고 믿고서 내 주장에 설득된다면, 우리는 언제나 그 윗길을 가며 모든 방식으로 분별을 갖고 올바름(정의)을 수행할 것이니,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과도 그리고 신들과도 친구이기(화목하기) 위해서일세. 바로 이 이승에 머무는 동안이나, 또는 경기의 우승자들이 성금을 거두어 들이듯 올바름의 상을 받게 될 때에나 말일세. 그리하여 이승에서도 그리고 앞서 우리가 말한 그 천 년 동안의 여정에서도 우리는 잘 지내게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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