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고전강의 | 07 직업으로서의정치 2


직업으로서의 정치 - 10점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나남출판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일시: 2013년 2월7일 – 12월 5일, 매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 – 9시30분(총 40주)

장소: 과천시정보과학도서관


* 강의 목차

20130926 30강 직업으로서의정치(1)

20131010 31강 직업으로서의정치(2)




관중, 《관자》

존 롤스, 《정의론》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C.B 맥퍼슨,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나치시대의 일상사》

이언 커쇼, 《히틀러》

노마 필드,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20131010 31강 직업으로서의정치(2)

현재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권력과 정의'라는 주제로 묶을 수 있다 막스베버의 책 뒤에 보면 책임윤리와 신념윤리가 나오는데 베버 같은 사람은 번역하기가 쉽다.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사회과학이라는 것이 그렇다. 학문세계에서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표준용어를 쓰고 있고, 베버가 고유하게 정의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주제를 단순히 대학의 특정한 학과 분류로 나눠서 생각하지 말고 '권력과 정의'라는 주제로 생각해야 한다. 


ethic이라는 말이 학문세계에 들어온지 별로 안된다. 윤리라는 말로 이해를 하면 되는데 ethic이라는 말은 사실은 ethos라는 희랍어에서 나온 말. ethos는 관습이라는 뜻으로 오히려 명령과는 거리가 먼 말. 그런데 이 ethos와 가까운 말이 moral이다. 사실은 불어에서 moral이라고 쓰면 풍습이다. 따라서 ethic이라는 말을 쓰면 불어에서 moral, 독일어는 sitte. 이게 한 묶음이다. 엄격한 법칙이나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 하는 말이 아니라 관습적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Ethic이 담겨있는 텍스트가 《일리아스》이다. 소크라테스가 이런 ethos를 버리고 초월적인 것으로부터 받아들인다. 살아오면서 습득한 하나의 근거가 아니라 그것과 완전히 단절된 그 무엇으로부터 삶의 원리/원칙을 받아온다고 한 것이 소크라테스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신을 믿지 않는다 하여 고소를 당한 것. 그러니까 지금 ethos에 대립되는 초월적인 것에서 뭔가를 드러내 보이려는 단초가 소크라테스에서 시작된다. 이 부분을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확립한 사람이 플라톤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했던 것이 ethos의 펀더멘탈을 걷어내버리는 일. 쉽지 않다. 이것이 현실화된 아주 필연적인 조건이 기독교다.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서 가능했다. 로마인들은 세속화된 희랍인들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리는 기독교인들을 보고 뒤집어 졌다. 세속적인 것에 대한 철저한 차단이 일어난 상태에서 초월적인 것에 헌신하는 것을 로마사람들의 가치관이 뒤집어진 것. 그것이 기독교가 로마에 가져다 준 충격이다. 플라톤적인 Metaphysics를 신학적으로 정초한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이다. 동아시아에서 말하자면 천명이 있는 것. 순수하고 무잡한 것. 


중세 기독교시대까지만 해도 신앙이 있어서 이것을 철학적으로 정초할 필요가 없었다. ethic이라는 말을 법칙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것의 분리가 일어난 것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다. 순수라는 말은 일체의 현실적인 경험과 무관하다는 뜻이고, 실천이성이라는 말은 인간이 본래부터 도덕적인 원칙을 가지고 태어났다라고 말하는 것. 이때 칸트가 도덕을 Moralität라고 말하고, sitte의 명사형 Sittlichkeit를 대립되는 말로 사용했다. Moralität는 순수한 도덕법칙을 말하는 것이고, Sittlichkeit는 관습적 도덕을 말하는 것. 막스 베버는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를 쓰는데 책임윤리는 현실적인 것을 고려하는 것이고, 신념윤리는 순수한 법칙에 가깝다. 즉, 도덕은 관습이고, 윤리는 법칙이다라는 분리가 무의미하다. 법칙으로서의 윤리학, 관습으로서 윤리학 이렇게 쓰면 된다. 


권력과 정의라고 하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 지혜로운 자가 군주가 되거나 아니면 군주가 지혜로운 자가 되지 않는 한 분쟁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합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권력과 정의에 대한 항목을 놓고 논의가 벌어질 때는 권력은 권력이고 정의는 정의일뿐이다 라고 흔히 말한다. 이걸 잘 보여주는게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복종하는 장면이다. 아테네가 내려와서 3배나 많은 선물 주겠다고 한다. 바로 물질로 움직이는 것. 즉, 아킬레우스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보상이 이루어지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고, 그것으로서 권력에 대한 복종도 가능해지는 것. 이게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권력과 정의 관계론이다. 《맥베스》를 읽을 때도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하는데 이게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자연적인 것에 의존해서 권력의 근거만 찾는다. 정의라고 하는 것을 초월적인 것에 근거를 두고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정의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플라톤 계열이다. 이쪽 계열은 서구사상에서 주된 흐름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이렇게 남아있는 문제가 막스 베버에 와서 맨 마지막 챕터에서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로 나온다.



목차를 보면 6장이 <정치>와 <윤리>인데 정치라는 단어는 권력이라는 단어와 거의 의미연관이 같다. 즉, '권력과 정의'로 환원시켜서 말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서양에서만 제기된 게 아니라 동양에서는 일반적으로 법치라는 말을 쓰고 예치라는 말을 쓴다. 이런 문제에 걸리면 법치는 상앙, 이사, 한비자를 읽고, 예치는 공자, 맹자를 읽기 쉬운 데 중간쯤에 있는 춘추시대 말기에 관중이 쓴 《관자》라는 책을 읽으면 좋다.


권력과 정의, 법치와 예치는 영원히 화해될 수 없는 문제이고, 현실정치는 권력이고 이것을 떼어 놓고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겹쳐 들어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베버는 좀 더 좁혀서 얘기하기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라고 말을 한다. 그것 아래 놓여있는 주제가 수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부분이다. 


정의 따위는 필요없고 초월적인 것은 신경 쓰지말라는 것이 철저한 권력론이고 마키아벨리가 있다. 철저히 정의론으로 갔다가 완화시킨 사람이 플라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입장이 모호하다. 그 다음에 정의론 쪽에 있는 사람이 중세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이다. 칸트도 정의론. 칸트가 체계적으로 쓰지 않아서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이다. 존 롤스의 《정의론》은 제목은 정의론인데 사실은 권력론에 가깝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싸움을 덜하고 나눠먹을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기 때문. 존 롤즈 《정의론》을 읽으려면 《경제이론으로 본 민주주의》를 먼저 읽으면 좋다. 미국의 정치이론은 경제를 깔고 들어가기 때문에 이 책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좋다. 반면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는 그런 것이 없는데 플라톤 연구자이기 때문. 플라톤 국가에 관한 탁월한 연구서를 내놓은 사람이다. 권력의 입장에서 정당화하기 위해 정의를 가져오는 입장과 정의를 먼저 놓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입장으로 나뉘는데 굉장히 많이 다르다. 예전에는 한쪽은 정치학, 반대쪽은 정치철학이라고 했는데 요즘에는 단순한 이분법을 나눌 수 없다. 그래서 '권력과 정의'라는 주제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 주제 안에 《직업으로서의 정치》도 들어간다.  포괄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이런 주제를 생각하지 말고 기초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고전 텍스트를 기약 없이 읽어야 한다. 10년은 읽어야 한다. 



알단 목차를 보자. 

1장 문제 제기와 개념틀

1장은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읽고 외워야 한다. 암기사항. 


2장 <직업 정치가>의 제측면

3장 직업 정치가의 역사적 제유형 

2, 3장은 그냥 슬슬 읽어보면 된다.


4장 근대적 정당과 직업 정치가 

5장 직업 정치가의 자질 

1장에서 파생된 논의이기 때문에 4,5장도 그냥 읽어보면 된다.


6장 <정치>와 <윤리>

6장은 모든 논의를 정리하고 '권력과 정치'라고 하는 철학적 문제로 나아가는 부분. 막스 베버가 사회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철학자, 정치철학자로서의 입지를 갖게 하는 부분.


[1장 문제 제기와 개념틀]을 보면 '지배정당성의 근거'가 나온다. 지배정당성은 권위, 말빨을 말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계속 부딪치는 문제. 누가 누구의 말을 듣는다고 말할 때 말빨이 어떻게 서느냐에 대한 내용으로 베버는 3가지 유형을 말한다.


① 정통적 지배

신성화된 권위. 그리고 세습. 마키아벨리 《군주론》에서 세습 군주국을 말한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② 카리스마적 지배

개인의 인격성으로부터 나온다. 이걸 가진 사람들은 예언자. 데마고그(선동자), 정당정치가 같은 사람들이 카리스마적 지배를 한다. 이것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어디선가 교묘히 작동하다. 베버는 분석을 목적으로 유형을 나눠 놓았지만 사실상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은 섞여서 이다. Beruf 라는 단어가 소명과 직업이라는 뜻이 있다고 말했는데 소명은 비합리적 영역을 말한다. 그래서 ①, ②번은 분석이 잘 안된다. 


③ 합법성에 의한 또는 합법적 지배

베버가 말하는 것은 ③번이 모던한 지배방식인데 ③번에 따라서만 움직이면 Beruf가 직업의 뜻으로만 쓰이겠다. Beruf 단어자체가 비합리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정치가 가진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고, 행위자들 역시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다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①, ②번은 비합리의 영역이고, ③번이 합리의 영역이다.


베버가 개인의 인격성에 의해서 발현되는 카리스마적 지배 유형의 예를 든 것이 예언자, 그리고 국민 투표에 의해서 지배하는 사람이다. 국민투표가 합법적 지배인 것 같지마 카리스마적 지배에 넣었다. 중요한 지점. 국민 투표를 제안하려면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거나 카리스마가 없는데 하려면 무력이 있어야 한다. 국민투표는 사실상 카리스마적 지배이고 독재로 가는 길목이 된다.


베버는 ①, ②번을 완전히 털어내고 ③번으로 오면 합법적 지배가 구축된 국가를 근대국가라고 부른다. 실제로 ③번이 완전히 구현되어 있는 나라는 없다. 다 섞여 있다. 이것을 '조작적 정의'라고 한다. 분석을 위해 내놓은 분석틀이다. 이것을 베버 특유의 용어로 말하면 ideal type이다. '이념형'이라고 번역된다. 현실세계 속에 복합적으로 실현되어 있는 사태를 분석하기 위해 개념적인 요소를 내놓은 하나의 분석틀이다. 이것을 가지고 어느 정도 근대화되었는가를 식별해내는 것.


이 강의실을 합법적 지배로만 관철되는 국가라고 가정하겠다. 그러면 이 근대국가는 강의실 안이라는 영토가 있고, 안에 살고 있는 구성원 국민이 있다. 그리고 인민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추상적 주권이 있다. 이 세가지 요소가 국가의 정의다.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이라는 책이 있다. 영국에서 선거권이 어떻게 해서 추상화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로크 시대 때만 해도 재산세를 많이 납부하는 사람이 투표권이 많았다. 추상적 인민 주권이 아니었다. 완전한 의미에서의 근대국가가 아니었던 것. 지금은 1조원을 가진 자와 천만원을 가진 자가 동등한 주권을 갖는다. 추상적으로 한 표만 행사할 수 있다. 이것이 서양에서 성립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구체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다가 점차로 추상화되면서 실질적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야 추상적 주권이 완전히 성립되었다. 이 세가지가 있어야 근대국가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제 국가는 하나의 머신이다. 이 기계를 움직이는 로보트가 있어야 하는데 합법적 지배를 구성하는 요소가 관료와 행정수단. 관료를 움직이는 힘은 물질적인 보상과 사회적인 영향력. 그래서 관료들은 보상을 박탈당하고 승진이 안될 것을 제일 두려워한다. 보상 상실의 두려움. 근대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합법적 지배에 해당할 때 '권력과 정의'에서 정의가 빠진 것. 작동이 잘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 된다. 그래서 관료는 그것에 적합한 행정수단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관료와 행정수단 이 두 가지가 합법적 지배 유형의 근대국가에서 발견되는 하부요건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상태에서 행정수단은 결국 규범, 법, 행정적 조치에 따라 움직이는데, 이를 다 묶어서 좁은 의미의 폭력이라 한다. 강제력을 지닌 폭력이고, 이 강제력은 신체와 재산에 행사된다. 근대국가에서는 인간의 신체도 재산에 간주되므로 사실상 재산에 행사된다고 할 수 있다. 카리스마적 지배의 유형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보려면 《나치시대의 일상사》를 참조하고, 더불어 이언 커쇼의 《히틀러》도 읽어볼 것.


①, ②번에서 ③번으로 가는 것을 베버는 탈주술화라고 말했다. 즉, 마법에서 벗어나는 단계. Entzauberung. 그러니까 지금 현대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극장국가 북한》과 같은 상황에 있으면 주술화로 들어가는 것. 베버가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썼지만 경멸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음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근대국가라고 하는 합법적 지배유형에서 관철되는 국가라는 이 개념을 머릿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정치를 판단하는 개념틀이다. 베버는 탈주술화라고 하는 것을 일종의 근대화의 지표처럼 생각한다. 일본에서 쇼와 천황인 히로히터가 죽었을 때 갑자기 숙연하게 분위기가 형성 되었다. 그 분위기가 잘 나오는게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라는 책이 있다. 읽어보면 일본이 얼마나 탈주술화가 안되어있는지 알 수 있다.


막스 베버야 말로 근대 국가를 분석하는데 아주 좋은 개념틀을 제공한다. 그러면 ③번의 정치는 무엇인가. 관직 따먹기. 정권을 잡는 것은 무엇인가.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관료가 이 체제를 굴리기 때문에 관료들의 입맛에 맞게끔 굴러가기 쉽다. 합법적 지배유형이 관철되어 있는 국가에서 정치란 결국 관직의 배분을 둘러싼 쟁투가 되겠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이권을 철저히 감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베버가 결론에서 "자신의 영혼의 구원 또는 타인의 영혼의 구제를 원하는 자는,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것. 



이제 다시 앞으로 와서 


[01. 문제제기와 개념틀]

20 요약컨대, <정치>란 국가들 사이에서든, 한 국내 집단들 사이에서든, 권력에 참여하려는 노력 또는 권력배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노력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권력에 참여하려는 노력 또는 권력배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 하면 이권이 생긴다. 그래서 정치를 하는 것. 합법적 지배유형이 관철되어 있는 근대국가에서의 정치. 막스 베버가 정의하는 정치 개념이 굉장히 현실적이다.


23 이러한 정당성 관념들과 이들의 내적 근거는 지배구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물론 이러한 순수 유형들은 현실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베버는 순수 유형이라 했는데 베버의 용어를 가지고 말하자면 이념형. 베버도 끊임없이 고민했던 유형은 카리스마적 지배. 1차세계대전을 겪은 사람. 프로이센에서 태어나서 독일에서 죽은 사람. 


25 지속적 지배조직은 첫째 복종하도록 조율된 행정 간부진이라는 인적요건과 둘째 행정수단이라는 물적 요건을 필요로 합니다. 


26 이런 보상들을 상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야말로 행정 간부진과 권력자 간의 연대감의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토대입니다.


곧, 인사권자에게 충성하는 것이 행성 간부진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 그리고 조직은 조직 차체의 논리를 위해서 움직인다. 왜냐 근대국가는 추상적 주권체이기 때문에 국가에 충성한다는 말이 어렵기 때문.


29 근대국가의 발전은 어디서나 군주가 그와 공생해 왔던 독립적이며 <사적인> 행정권 소유자층의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 유심히 읽어야 한다. 추상적 인민주권의 성립과정을 다루고 있는 곳. 그래서 30페이지를 보면


30 근대국가는 공적 법인체의 성격을 띤 지배조직입니다. 이 지배조직은, 한 특정한 영토 내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지배수단으로 독점하는 데 성공한 지배조직입니다.


공적 법인체의 성격을 띤 법인이다. 공적 법인에게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 국가의 충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굉장히 많은 장치들이 동원되는 것이고, 그래서 동원 되는 장치 중의 하나가 국민 윤리, 국사 같은 것. 국가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화를 시도하는데 사실은 우리의 삶의 밑바닥은 다국적자본에 의해서 이미 세계화되어 있다. 이 두 가지 사이에 괴리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리고 책임윤리와 신념윤리. 책임윤리는 결과를 염두에 두고 그것에 적합한 수단을 고려하는 윤리. 흔히 말하는 현실적인 윤리. 신념윤리는 동기의 정의로움과 순수함에 대한 굳은 신념에 근거하여 결과에 상관없이 그것을 실천하려는 윤리. 


그러면 정치가들은 어떻게 움직이는 가를 볼 때《경제 이론으로 본 민주주의》와 같은 책을 보는 것. 

그 다음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보면 의외로 내용이 어렵다. 뒤에 붙어있는 자료들도 많다. 이 책을 사면 본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역사 해제를 먼저 읽을 것. 그 다음에 원래 이 책 자체가 따로 간행된 것이 베버가 쓴 《종교사회학논총》 안에 들어 있었던 것. 이 책의 서문이 있는데 이 서문이 붙어 있다. 이 부분을 그 다음에 읽을 것. 그 다음은 알아서 읽으면 된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벤담의 《파놉티콘》은 현대사회을 이해하는 얇지만 강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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