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곤 외 옮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 10점
김인곤.강철웅.김재홍.김주일.양호영.이기백.이정호.주은영 옮김/아카넷


출간에 부쳐

일러두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단편들의 출전 개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01 희랍철학의 여명기

1.1 오르페우스

1.2 무사이오스

1.3 에피메니데스

1.4 헤시오도스

1.5 페레퀴데스

1.6 테아게네스

1.7 아쿠실라오스

1.8 7현인의 잠언들


02 탈레스

03 아낙시만드로스

04 아낙시메네스

05 피타고라스

06 크세노파네스

07 헤라클레이토스

08 파르메니데스

09 제논

10 멜리소스

11 엠페도클레스

12 필롤라오스와 기원전 5세기 피타고라스주의자들

13 아낙사고라스

14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해제

01 희랍철학의 여명기

02 탈레스

03 아낙시만드로스

04 아낙시메네스

05 피타고라스

06 크세노파네스

07 헤라클레이토스

08 파르메니데스

09 제논

10 멜리소스

11 엠페도클레스

12 필롤라오스와 기원전 5세기 피타고라스주의자들

13 아낙사고라스

14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07 헤라클레이토스

4.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DK22B1)
이 로고스(logos)는 언제나 그러한 것으로 있지만, 사람들은 듣기 전에도, 일단 듣고 나서도 언제나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 로고스에 따라서 생기건만, 내가 각각 의 것을 본성에 따라 (kata physin) 구분하고 그것이 어떠한지를 보이면서 상술하는 그러한 말들과 일들을 그들이 경험하면서도 (peiremenoi), 그들은 경험 없는(apeiros) 사람들 같기 때문이다. 남들은 깨어서 하는 모든 것들을 알아채지 못하는데, 이는 마치 그들이 자면서 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학자들에 대한 반박》 VII.132)

6.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DK22B17) 
많은 이들은 그들이 어떠한 것과 마주치든 간에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지(phronēousi) 못하고, 배우고서도 알지(ginouskousin) 못하지만, 자신들이 [안다고] 여긴다(dokeousin).
(《학설 집》 ll.8)

9.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DK22B72)
그들은 가장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갖는(homilousi), 즉 전체를 다스리는 로고스와 갈라선다(diapherontai). 그리고 날마다 마주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낯선 것으로 보인다.
(《명상록》 IV.46)

10. 플루타르코스 (DK22B87)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말(logos)에도 흥분하기 십상이다.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 관하여》 41a)

12. 프로클로스 (DK22B104)
어떤 지성(noos)이나 생각(phrēn)을 그들이 갖고 있는가? 그들은 대중의 시인들을 믿고 군중을 선생으로 삼는다. '다수의 사람들은 나쁘고, 소수의 사람들이 좋다'는 것은 알지 도 못하면서.
(《알키비아데스 I》 주석 525쪽 21)

14. 히폴뤼토스 (DK2B57) 
대부분의 사람들을 가르친자는 헤시오도스이다. 그들은 그가 가장 많이 안다고 알고 있다. 낮과 밤도 알지 못하는 그가. 그것들은 하나인데도.
(《모든 이교적 학설들에 대한 논박》 IX.10)

15. 플루타르코스 (DK22B106)
헤시오도스는 모든 날들의 본성이 하나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칼리무스의 생애》 19.1)

33. 플루타르코스 (DK22B89)
깨어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이고 공통의 세계(kosmos)가 있다. 반면에 잠들어 있는 자들 각각은 자기만의 세계로 돌아간다.

49. 위-아리스토텔레스 (DK22B10)
함께 잡혀진 것들(syllapsies) ━ 전체이며 또한 전체가 아닌 것, 한곳에 모이며 또한 따로 떨어지는 것, 함께 부르며 또한 제각기 부르는 것,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의 하나, 그리고 하나로부터의 모든 것.
(《우주에 관하여》 396b7)

50. 히폴뤼토스 (DK22B51)
그것이 어떻게 자신과 불화하면서도 (diapheromenon) 그 자신과 일치하는지를 (homologeei)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활과 뤼라의 경우처럼, 반대로 당기는 조화 (palintropos harmoniē)이다.
(《모든 이교적 학설들에 대한 논박》 IX.9)

52. 아리스토텔레스 (DK22B8)
대립하는 것(antixoun)은 한곳에 모이고(sympheron), 불화하는 것들(ton diapheronton)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은 투쟁에 의해 생겨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154b4)

68. 플라톤 (DK22A6)
어디에선가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나아가고 아무 것도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들을 강의 흐름에 비유하면서 "너는 같은 강물에 두번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크라튈로스》 402a)

69. 아레이오스 디뒤모스 (DK22B12)
같은 강에 발을 담근 사람들에게 다른 강물이, 그리고 또 다른 강물이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리고 혼들은 젖은 것들로부터 증발되어 나온다.
(에우세비오스의 《복음의 준비》 XV.20에 인용됨)

84. 테오프라스토스 (DK22B125)
보리 음료도 젓지 <않으면>, 분리된다. 
(《현기증에 관하여》 9)

91. 플루타르코스 (DK22B94)
태양은 적도(metra)를 뛰어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뛰어넘는다면 디케를 보좌하는 에리뉘에스(Erinyes)가 그를 찾아낼 것이다.
(《망명에 관하여》 604a)


08 파르메니데스

7. 단편 1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 심플리키오스 (DK28B1)

충동(thymos)이 미치는 데까지 나를 태워 나르는 암말들이 [나를] 호위해가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이끌어 이야기 풍성한(polyphēmos), 여신의(daimonos) 길로 가게 한 후에.

아는 사람(知者)을 모든 도시들에 두루 데려다 주는 그 길로.

거기서 나는 태워 날라지고 있었다. 즉 거기서 아주 명민한(polyphrastoi) 암말들이 마차를 끌면서

[5] 나를 태워 나르고 있었고, 처녀들(kourai)이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축은 바퀴통들 속에서 열을 내면서 피리 소리를 내고 있었다 (돌아가는 두 바퀴에 의해 양쪽으로부터 힘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뉙스(밤)의 집을 떠나 빛을 향해 온 헬리오스(태양)의 딸들(Hēliades)인 처녀들이 

[10] 머리에서부터 너울을 손으로 밀어젖히고는 [나를] 서둘러 호위해 가고 있을 때.


거기에 뉙스와 에마르(낮)의 길들의 문이 있고,

그 문을, 아래 위 양쪽에서 상인방과 돌로된 문턱(oudos)이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에테르에 있는 그 문은 커다란 문짝들로 꽉 차 있는데,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polypoinos) 디케(정의)가 그 문의, 응보의(amoboi) 열쇠를 가지고 있다.

[15] 처녀들이 부드러운 말(logoi)로 그녀를 달래면서 

영리하게 설득했다, 어서 자기들을 위해 내리잠금목으로 꽉 죄어진(balanotos) 

빗장을 문으로부터 밀어내 달라고. 그러자 이 문이 

마개못 과 핀으로 짜 맞춰진, 청동으로 된 두 회전기둥을 [축받이] 구멍 속에서 번갈아 돌린 후에

활짝 나래 펴듯 열리면서 문짝들의 쩍 벌어진 틈(chasma)을 만들어 냈다.

[20] 그러자 그 문을 통해 

곧장 처녀들이 마차와 암말들을 마찻길로 이끌었다.


그리고 여신(thea)이 나를 반갑게 맞아들였는데, [내] 오른손을 [자신의] 손으로 

맞잡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epos)를 하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불사의 마부들과 더불어,

[25] 그대를 태워 나르는 암말들과 함께 우리 집에 온 젊은이(kouros)여!

잘 왔다. 그대를 이 길로 오도록 보내준 것은 나쁜 모이라(운명)가 

아니라(실로 이 길은 인간들이 밟고 다니는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테미스(옳음)와 디케(정의)이니 말이다. 자, 그대는 모든 것들을 배워야(pythesthai) 한다,

설득력 있는(eupeitheos) 진리의 흔들리지 않는 심장과,

[30] 가사자들의 의견들(doxai)을, 그 속에는 참된 확신(pistis)이 없다.

그렇지만 그대는 이것들도 배우게(mathēseai) 될 것이다. …라고 여겨지는 것들(ta dokounta)이 어떻게,

내내 전부 있는 것들로서(per onta) 받아들여질 만하게(dokimos) 있어야 했던가를.


8. 단편 2 프로클로스 (DK28B2)

자, 이제 내가 말할 터이니, 그대는 이야기(mythos)를 듣고 명심하라,

탐구의 어떤 길들만이 사유를 위해(noēsai) 있는지,

그중 하나는 있다(estin)라는, 그리고 있지 않을 수 없다 라는 길로서, 

페이토(설득)의 길이며(왜냐하면 진리를 따르기 때문에),

[5] 다른 하나는 있지 않다 라는, 그리고 있지 않을 수밖에 없다 라는 길로서,

그 길은 전혀 배움이 없는 길이라고 나는 그대에게 지적 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있지 않은 것을 그대는 알게 될(gnoiēs) 수도 없을 것이고(왜냐하면 실행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지적할(phrasais) 수도 없는 것이기에.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주석》 I.345)


12. 단편 6 심플리키오스 (DK28B6)

말해지고 사유되기 위한 것은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있을 수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mēden)은 그렇지 않으니까. 이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나는 그대에게 명한다.

왜냐하면 그대를 탐구의 이 길로부터 우선 <내가 제지하는데>(eirgo)

그러나 그 다음으로는 가사자들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5] 머리가 둘인 채로 헤매는 (왜냐하면 그들의 

가슴 속에서 무기력함이 헤매는 누스를 지배하고 있기에) 그 길로부터 [그대를 제지하기에]. 그들은

귀먹고 동시에 눈먼 채로, 어안이 벙벙한 채로, 판가름 못하는 무리로서, 이끌려 다니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있음과 있지 않음이 같은 것으로, 또 같지 않은 것으로 통용되어 왔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모든 것들의 (panton) 길이 되돌아가는 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주석》 117)


13. 단편 7 플라톤 /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DK28B7)

그 이유는 이렇다. 이것, 즉 있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이 결코 강제되지 않도록 하라.

오히려 그대는 탐구의 이 길로부터 사유를 차단하라.

그리고 습관(ethos)이 [그대를] 많은 경험을 담은(polypeiros) 이 길로 [가도록],

즉 주목하지 못하는 눈과 잡소리 가득한 귀와 혀를 사용하도록 강제하지

[5] 못하게 하라. 다만 나로부터 말해진, 많은 싸움을 담은 테스트(poly dēris elenchos)를 논변으로 (logoi) 판가름하라(krinai).

(1~2행: 플라톤 《소피스트》 237a, 258d / 2~6 행: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학자들에 대한 반박》 VII. 111)


14. 단편 8 심플리키오스 (DK28B8)

…길에 관한 이야기(mythos)가 아직 하나 더 

남아 있다, 있다 라는, 이 길에 아주 많은 표지들(sēmata)이

있다. 있는 것은 생성되지 않고 소멸되지 않으며, 

온전한 한 종류 의 것(oulon mounogenes)이고 흔들림 없으며 완결된 것(ēde teleston)이라는.

[5] 그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있게 될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전부 함께

하나로 연속적인 것으로 있기에. 그것의 어떤 생겨남을 도대체 그대가 찾아낼 것인가?

어떻게, 무엇으로부터 그것이 자라난 것인가? 나는 그대가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라고 

말하는 것도 사유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있지 않다 라는 것은 

말할 수도 없고 사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필요가

[10] 먼저보다는 오히려 나중에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해서 자라나도록 강제했는가?

따라서 전적으로 있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없거나 해야 한다.


또 확신의 힘은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도대체 어떤 것이 

그것 곁에(para) 생겨나도록 허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디케(정의)는 

족쇄를 풀어서 생겨나도록 또 소멸하도록 허용하지 않았고,

[15] 오히려 꽉 붙들고 있다. 이것들에 관한 판가름(krisis)은 다음의 것에 달려 있다.

있거나 아니면 있지 않거나 이다. 그런데 필연인 바 그대로,

한 길은 사유될 수 없는 이름 없는 길로 내버려 두고 (왜냐하면 그것은 참된 길이 아니므로)

다른 한 길은 있고 진짜이도록 허용한다는 판가름이 내려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있는 것이 나중에 있을(epeita peloi)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그것이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20] 왜냐하면 생겨났다면 그것은 있지 않고, 언젠가 있게 될 것이라면 역시 있지 않기에.

이런 식으로 생성은 꺼져 없어졌고 소멸은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나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전체가 균일하기에.

또 여기에 조금도 더 많이 있지도 않고 (그런 상태는 그것이 함께 이어져 있지 못하도록 막게 될 것이다),

조금도 더 적게 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전체가 있는 것으로 꽉 차 있다.

[25] 이런 방식으로 전체가 연속적이다. 왜냐하면 있는 것이 있는 것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속박들의 한계들 안에서 부동이며 

시작이 없으며 그침이 없는 것으로 있다. 왜냐하면 생성과 소멸이

아주 멀리 쫓겨나 떠돌아 다니게 되었는데, 참된 확신이 그것들을 밀쳐냈기 때문이다.

같은 것 안에 같은 것으로 머물러 있음으로써, 그 자체만으로 놓여 있고

[30] 또 그렇게 확고하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왜냐하면 강한 아낭케(필연)가

그것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한계의 속박들 안에 [그것을] 꽉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이 미완결이라는 것은 옳지(themis) 않다.

왜냐하면 결핍된 것이 아니며, 만일 결핍된 것이라면 그것은 모든 것이 결핍된 것일 테니까.

같은 것은 사유되기 위해 있고 또 그것에 의해 사유가 있다.

[35] 왜냐하면 있는 것 없이 ([사유가] 표현된 한에서는 그것에 의존하는데)

그대는 사유함을 찾지 못할 것이기에, 왜냐하면 있는 것밖에 다른 아무 것도 

있거나 있게 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왜냐하면 모이라(운명)가 바로 이것을 온전하고

부동의 것이게끔 속박하였기에 그러 하다. 이것에 대해 모든 이름들이 붙여져 왔다,

가사자들이 참되다고 확신하고서 놓은 모든 이름들이,

[40] 즉 생겨나고 있음과 소멸되어감, 있음과 있지 않음,

그리고 장소를 바꿈과 밝은 색깔을 맞바꿈 등이.

그러나 맨 바깥에 한계가 있기에 그것은 완결된 것,

모든 방면으로부터 잘 둥글려진 공의 덩어 리와 흡사하며, 

중앙으로부터 모든 곳으로 똑같이 뻗어나와 있는 (isopales)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45] 저기보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크다든가 조금이라도 더 작다든가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같은 것(homon)에로 도달하는 것을 막을 만한 있지 않은 것이란

있지 않고, 또한 있는 것은 있는 것 가운데 더 많은 것이 여기에, 그리고 더 적은 것이

저기에 있게 될 길이 없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것은 전체가 불가침이기에.

왜냐하면 모든 방면으로부터 자신과 동등한 것으로서, 한계들 안에 균일하게 있기에


23. 단편 16 아리스토텔레스 / 테오프라스토스 (DK28B16)

왜냐하면 많이 헤매는 지체들의 혼합이 매번 어떤 상태에 처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누스가 인간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왜냐하면

사람들 모두에게 그리고 그들 각각에게 있어서 [누스가] 생각하는(phroneei) 것은 동일한 것,

즉 지체들의 본성(physis)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더 많은 것(to pleon)이 사유(noēma)니까.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Γ5, 1009b22 / 테오프라스토스 《감각에 관하여》 3)


30. 아리스토텔레스 (DK28A25)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생성과 소멸을 완전히 제거 했다. 있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생겨나거나 소멸하지 않고, 다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여겨질 뿐이라는 것이다. 멜리소스 와 파르메니데스 주변 사람들이 그러한데 그들이 물론 다른 여러 훌륭한 말들을 하긴 했지만, 적어도 자연학에는 걸맞지 않은 방식으로(ou physikos) 말했다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있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어떤 식으로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학적 탐구와는 다른, 더 앞선 탐구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감각되는 것들의 실체(ousia) 너머에 다른 어떤 것이 있다고 상정하지 않지만, 만일 어떤 인식 또는 사고가 있으려면 그런 부류의 것들(physeis) [이 있어야 함]을 최초로 통찰하였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저것들에 해당되는 말(logos)들을 이것들에다 옮겨놓았다.

(《천체에 관하여》 Ⅲ.1.298b14)


31.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DK28A26)

파르메니데스와 멜리소스 주변 사람들은 [운동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들을 [자연을] '멈추게 하는 자들'(stasiotai), 자연 부정론자들'(aphysikoi)로 불렀다. '멈추게 하는 자들'은 멈춤(stasis)으로부터, 그리고 '자연 부정론자들'은 자연이 운동의 원천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는데,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은 이 자연을 제거한 것이다.

(《학자들에 대한 반박》 X.46)


32. 심플리키오스 (DK28A14)

아니면 멜리소스도 파르메니데스도 자신들의 책에 '자연에 관하여'라는 표제를 붙였기 때문인가? …그리고 실로 바로 이 책들에서 그들은 자연을 넘어선 것들(ta hyper physin) 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자연에 속하는 것들(ta physika)에 관해서도 논의하였으며, 아마도 이 때문에 그들은 '자연에 관하여'라는 표제를 붙이는 일을 주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에 관하여> 주석 556)


39. 심플리키오스 (DK28A20)

하나의 있는 것이 '잘 둥글려진 공의 덩어리와 흡사하'[단편 8.43]다고 그가 말한다고 해서 놀랄 것 없다. 왜냐하면 시로 쓰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일종의 신화적인 허구에 매달리고 있어서 그런 것이니까. 그렇다면 그가 이것을 이야기한 것이 오르페우스가 '은백색 달걀'을 이야기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주석》 146)


46. 플루타르코스 (KRS 304)

바로 그가 실제로 배열(diakosmos)을 만들어 놓은바 있는데, 그는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라는 원소들(stoicheia)을 섞어 이것들로부터, 그리고 이것들을 통해, 모든 나타나는 것들(ta phainomena)을 완성해내고 있다. 그는 땅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하늘, 태양, 달, 별들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을 했으며, 인간의 생성에 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자연학(physiologia)에 몸담고 있으면서, 남의 저술을 난도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저술을 지은 옛 사람으로서, 중요한 것들 가운데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채 넘어간 것이 없었다.

(《콜로테스에 대한 반박》 11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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