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6 땅과 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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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20분] 땅과 바다 – 3

Posted on 2016년 8월 29일

칼 슈미트(지음),  <<땅과 바다>> , 꾸리에, 2016.

원제: Carl Schmitt, Land und Meer: Eine weltgeschichtliche Betrachtung(1942)


§6: 18세기 유럽 국가체제의 확립

§7: 약탈자본주의, 바다의 패권을 잡은 잉글랜드

§8: 15세기 이래 대양패권전쟁의 경과와 잉글랜드가 이룩한 공간혁명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1493년 교황의 칙령에 근거하여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를 양분(§14 참조)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재위시기(1558-1603)

대양약탈시대

“16,17세기에 이 양치기 민족은 사략선의 대양 주름잡이 민족, ‘대양의 자식들’로 변신하게 된다.”

1655년 크롬웰의 군대가 자메이카를 점령함으로써 스페인에 대한 해외에서의 승리가 암묵적으로 확인되었다.


1689년 오라녜 가의 빌렘 3세가 윌리엄 3세로 즉위

-네덜란드와 영국의 ‘대양의 자식들’이 활약한 시기는 1550년 경부터 1713년까지.

위트레흐트 조약(1713년)으로써 “유럽의 국가 체제가 공고화”



수요역사연구회, 《곁에 두는 세계사》



오늘은 7장부터 읽겠다. 대체로 봐서 9장까지가 땅과 대양의 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7장은 특히나 18세기 유럽 국가체제의 확립을 다루고 있고 거기에 벌어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책은 얇은데 다루고 있는 얘기들이 많아서 사실 제대로 하려고 하면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 역사적인 사실과 인과관계 이런 걸 따져묻고 사건들에 대한 설명들도 많다. 더군다나 칼 슈미트가 후기에서 헤겔의 법철학에 나오는 얘기를 써놨다. 만만하지 않다. 나치가 칼 슈미트를 가톨릭에 기반한 헤겔주의적 국가사상가라고 비판했다. 땅과 바다라는 관점 자체가 법철학의 구도에 들어가는 것. 


7장은 "대양의 자식"이라고 해서 프랭크 드레이크, 호킨스, 윌터 롤리, 헨리 모건 이런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사실 해적들이나 다름 없는데 이 사람들은 엘리자베스1세 시대에 이익에 따라 움직인 사람들인데 칼 슈미트는 칼뱅주의의 등장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약간 억지스런 역사철학이 있다. 칼 슈미트에 따르면 이들이 프로테스탄트이니 스페인의 세계 권력과 무역독점 또는 가톨릭주의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없었다고 본다.


51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무모한 유형의 "대양의 자식들"을 다룰 거야. 그 중에서도 유명한 이름들, 즉 프랭크 드레이크, 호킨스, 윌터 롤리 경, 헨리 모건 경처럼 여러 책에서 바다와 해적에 관한 전설에 등장하는 영웅들 말이야.


51 대담한 대양 약탈자들이 역사적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이들이 스페인의 세계 권력과 무역 독점에 첫 번째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야.


그 다음 네덜란드의 '제고이젠'이라 하여 독립전쟁 당시 스페인의 압정에 반항한 네덜란드 프로테스탄트교도 및 그들의 동맹을 말한다.


51 제고이젠 |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 스페인의 압정에 반항한 네덜란드 프로테스탄트교도 및 그들의 동맹.


그 당시에는 그런 의식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바다의 거지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제고이젠은 나중에는 네덜란드 애국자의 대명사가 된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잉글랜드의 해적 또는 사략선. 이런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트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이 시기가 이와 같은 사람들을 다 묶어서 '대양의 자식들'이라 한다면 이들이 활약한 시기는 1550년경부터 1713년까지로 본다. 위트레흐트 조약이 1713년인데 이 사람들이 이때까지 활약한 것


52 이들의 영웅적 시기는 1550년경에서 1713년까지 약 150년간 지속되는데, 이 시기는 가톨릭 세계 권력 스페인에 맞선 프로테스탄트 권력의 투쟁부터 시작해서 위트레흐트 조약까지에 해당돼.


52 위트레흐트 조약 |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 1713년에 체결된 평화조약


칼 슈미트에 따르면 유럽은 이때 바로 유럽의 국가체제가 공고화된다고 한다. 그 이전에 나온게 161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니 대략 100년쯤 지나서 위트레흐트 조약이 나왔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30년 전쟁을 끝냈다. 유럽이 근대국가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데 그때부터 100년 정도에 걸쳐서 이런 저런 여파가 있었던 것. 그 결과 칼 슈미트의 평가처럼 '공고화'된다. '시작'이 베스트팔렌 조약이라면 '공고화'는 위트레흐트 조약이다. 이를테면 1904년에 러일전쟁이 있었다. 그때부터 100년이 지나면 2004년. 지금 불과 10년 전으로 100년 정도에 걸쳐서 동아시아 세계가 요동을 쳤다. 한중일 삼국과 외국에서 들어온 세력, 그 다음에 제2차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보면 한국은 이제야 조선이라고 하는 고전적 낡은 동아시아 체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게 1904년으로 이제 100년 겨우 지났다. 얼마나 역사가 더디게 가는지 우리 인생은 얼마나 짧은지 알 수 있다.


53 1713년 위트레흐트조약에 이르러 이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데, 당시 유럽의 국가 체계가 이때 공고화되기 때문이야.


칼 슈미트는 이때부터 바다라는 권역/element에 근거한 영국의 세계지배가 가시화되었다고 본다. 국가의 허가를 받고 약탈하는 배가 횡횡하기 시작했고, 이 지점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땅에서 싸우다가 바다에서 싸우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이 부분은 칼 슈미트 개인의 관점이 개입되어 들어가는 부분. 


53 바다 원소에 기초한 영국의 새로운 세계 지배가 처음으로 가시화되었지.


그 다음에 8장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집권기 때의 잉글랜드를 다룬다. 재위가 1558-1603년 이므로 그 이전 얘기. 7장이 17세기 유럽국가체제의 전반적인 개관을 다루고 있다면 8장은 그 이전에 바다의 패권을 잡기까지 잉글랜드가 어떠했는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의 순서로 본다면 7장이 8장보다 나중 얘기. 주의해야 한다.


48 사략선 | 사략선은 국가로부터 특허장을 받아 개인이 무장시킨 선박을 뜻한다. 근대 초기 유럽 국가들은 상비 해군력을 보충하기 위해 사략선에 교전자격을 부여했다.


59 모든 바다에서 영국의 사략선원들과 해적들이 약탈한 전설적인 노획물들이 영국의 섬으로 쏟아져 들어왔어.


영국이 가진 멘탈리티가 어디에 있는지는 따져 묻는다면 대체로 봐서 엘리자베스 1세의 집권기에 있다고 본다. 대영제국의 시대가 열리기 직전이다. 칼 슈미트는 " 사자의 새끼들은 대부분 양을 쳤고 거기서 나온 양털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직물로 가공되었다"는 말로 잉글랜드를 말한다. 


64 중세 말 무렵, 사자의 새끼들은 대부분 양을 쳤고 거기서 나온 양털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직물로 가공되었다. 16,17세기에 이 양치기 민족은 사략선의 대양 주름잡이 민족, "대양의 자식들"로 변신하게 된 거야.


양치기에서 '대양의 자식들'로 바뀐 계기가 무엇인가. 인클로져 운동,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것처럼 양들이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얘기도 나오고, 엘리자베스1세의 아버지인 헨리8세 시대에 있었던 일들.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엘리자베스 1세 집권기에 땅에서 사람들이 쫓겨나게 되고, 런던은 빈민들로 가득차게 되고 런던에서 장사꾼들이 생겨나고, 연극도 장사 삼아서 하게 되는 셰익스피어가 등장하고, 이윤추구에 대한 동기인 돈을 벌어야겠다는 굉장히 강력한 상업적인 추구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영국 사람들이 15세기 이래 대양에 대한 패권 전쟁을 계속 벌여서 그것의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이 대영제국의 성립이다. 이 부분을 9장에서 거론한다. 잉글랜드가 대영제국이 되면서 이룩하게 된 공간혁명에 대해서 나온다. "해양 지배 위에 기초한 세계 패권을 확보"하였다고 말한다. 


66 결국 다른 이들을 다 따라잡아서 모든 경쟁자들을 격파하고 해양 지배 위에 기초한 세계의 패권을 확보한 건 영국인들이었어.


67 어느 날 땅에 대한 영국의 대양 지배가 되어버린 것이지.


그 과정을 그러니까 7장이 18세기 유럽 국가체제 확립에 대한 얘기인데 8,9장은 그 과정을 다루고 있는 것. 그래서 앞서 엘리자베스 여왕시대가 1558-1603년인데 1603년 이후에 1655년에 올리버 크롬웰이 자메이카를 점령한다. 그 당시 해외 식민지 점령도 무시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영국의 세계 해양에 대한 정책이 계속 유지된 것이고, 국내 레짐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해외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1655년에 자메이카를 점령함으로써 사실은 "스페인에 대한 해외에서의 승리가 암묵적으로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67 1655년 크롬웰의 군대가 자메이카를 점령하고 지켜냈을 때, 영국의 세계 해양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과 스페인에 대한 해외에서의 승리가 암묵적으로 확인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때부터 약 30년 정도가 지난 1689년에 오라네 공 월리엄 3세가 영국왕으로 즉위한다. 존 로크가 《정부에 관한 두 개의 논문》을 쓰던 명예혁명 시기이다. 철학의 고전으로 알려진 것들을 염두에 두고서 생각해보면 상당한 역사적 맥락을 알 수 있다.


67 1689년, 그들의 총독인 오라녜 공 월리엄 3세는 동시에 영국의 왕이 되었지.


이러한 부분들은 《곁에 두는 세계사》를 옆에 두고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반해서 프랑스는 1572년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 있었고, 1672년에 콜베르가 해임되고, 이렇게 되면서 상당한 정도로 해양 진출이 늦어지게 된다. 내란과 정치적인 혼란, 숙련공 부족으로 대포가 부족했다는 것이 《대포 범선 제국》에 나온다.


67 프랑스가 1572년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과 하인리히 4세의 가톨릭 개종과 더불어 위그노에 반대하고 가톨릭을 선택했을 때, 최종적으로 바다에 반대하고 땅을 향해 결단을 내렸던 거야.


67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 기독교 역사상 1572년 8월 24일부터 10월까지 있었던 로마 가톨릭교회 추종자에 의한 개신교 신도들을 학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면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과 1493년 교황의 칙령에 근거하여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세계를 양분했다. 그리고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집권 시기가 있었고 대양약탈시대를 열었다. 1655년 크롬웰의 군대가 자메이카를 점령함으로써 스페인에 대한 해외에서의 승리가 암묵적으로 확인되었고, 1689년 오라녜 가의 빌렘 3세가 윌리엄 3세로 즉위했다.



[책읽기 20분] 땅과 바다 – 4

Posted on 2016년 9월 5일

칼 슈미트(지음),  <<땅과 바다>> , 꾸리에, 2016.

원제: Carl Schmitt, Land und Meer: Eine weltgeschichtliche Betrachtung(1942)


§9: 15세기 이래 대양 패권 전쟁 최후의 승자인 잉글랜드가 이룩한 공간혁명

§10: 공간혁명은 무엇인가

§11: 역사적 사건들과 공간에 대한 생각의 변화사례

§12: 16, 17세기 전지구적 공간 혁명의 의의


§9

“해양 지배 위에 기초한 세계의 패권을 확보”


§10

“역사를 구축한 힘과 권력”이 공간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

역사적 힘들이 새로운 자극을 야기 —> 새로운 에너지의 파동 —> 인간의 의식 시야에 새로운 땅과 바다를 가져온다 —> 정치적, 역사적 행위의 새로운 척도, 새로운 학문과 새로운 질서


모든 거대한 역사적 변화에는 공간에 대한 생각의 변경이 결부된다. 이렇게 결부되면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변화가 생겨난다.


§11

역사적 사건 —> 새로운 공간지평 —> 새로운 사상


1)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복

2) 1세기 로마제국

3) 십자군 원정


공간확장과 문화적 전환

1) 새로운 정치적 삶의 형태,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의 새로운 도시문화

2) 신학과 법학을 갖춘 대학 — 교회의 지식독점 붕괴

3) 고딕예술 — 로마의 정적인 공간을 넘어 역동적인 힘의 장을 창출


§12

지구상의 공간지평이 확장되면서 우주의 ‘빈 공간’에 대한 사유로까지 전개

코페르니쿠스, 브루노, 갈릴레이, 케플러의 사유가 뉴턴에서 집약


르네상스 회화의 원근법: “텅빈 깊이를 지닌 공간”



지난주까지 15세기 이래 대양 패권 전쟁에 대해서 얘기했다. 잉글랜드에서 성취한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공간혁명을 9장에서 얘기하는데 그러면 이 공간혁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에 관한 것이 10장에서 나온다. 즉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것에 따라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다. 여기서부터 칼 슈미트의 역사철학이 본격적으로 제시가 된다. 역사적 사건들보다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역사철학적인 구도 그리고 법철학적 구도로 맞춰서 꿰는 얘기를 하고 있다. 현실에서의 사건들을 관념화하는 힘을 가지게 되는데 "같은 시대 속에서도 일상적 삶의 실천들을 위한 각자의 환경세계는 이미 그들의 다양한 직업에 따라 서로 다르게 규정"된다는 것. 


70 같은 시대 속에서도 일상적 삶의 실천들을 위한 각자의 환경세계는 이미 그들의 다양한 직업에 따라 서로 다르게 규정되지.


역사적인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나면 그렇게 일어난 현실에 대해 공간에 대한 생각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바꾸는 요소들이 "역사를 구축한 힘과 권력"인데 이것이 새로운 자극을 야기하여 새로운 에너지의 파동을 만들어 내고, 인간의 의식 시야에 새로운 땅과 바다를 가져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적인 실존공간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  10장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72페이지의 "모든 중요한 역사적 변화는 대개의 경우 새로운 공간 인식을 의미"하고, "정치, 경제, 문화의 지구적 변화의 진정한 핵심이 그 안에 놓여" 있다는 것.


72 모든 중요한 역사적 변화는 대개의 경우 새로운 공간 인식을 의미해. 정치, 경제, 문화의 지구적 변화의 진정한 핵심이 그 안에 놓여 있어.


이 책에 대해서 검색을 하다보니 식민지 지배에 관하여 정당화하는 논리라는 코멘트를 봤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낼 수 없다. 어떤 책을 읽더라도 어떤 단면을 잘라서 읽느냐에 따라서 그 책에서 얻을 수 잇는 것은 다르다. 이 책이 15세기 이래로 서구의 식민지 권력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식민지 지배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는가 까지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공간 인식'이 생겨났다는 것. 《대포 범선 제국》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사건의 나열뿐이 아니라 그런 것들로 생겨난 공간 인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거대한 역사적 변화에는 공간에 대한 생각의 변경이 결부되어 있고, 그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포괄적인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변경의 중요한 핵심이다 라고 다시 말할 수 있다. "역사적 변화"와 "공간인식의 변화"가 '결부'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공간인식의 변경은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변경의 중요한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공간혁명이 가진 의미에 대해 10장에서 얘기를 하고 11장부터는 역사적 사례를 들어서 설명을 해나간다. 그 사례가 ①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복, ②1세기 로마제국, ③십자군 원정이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복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아 저런 곳이 있었네 라는 0새로운 공간지평이 머릿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역사적 사건이 새로운 공간지평을 가져오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사상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 그런 것이 정치사상에서도 나타나게 되는 게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다른 점이 있다. 《국가》는 플라톤이 가진 공간지평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테나이, 폴리스라고 하는 것, 기껏해야 펠로폰네소스전쟁이 그 범위까지인데 반해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정치학》을 보면 폴리스에 관한 논의만은 아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폴리스에 관한 정치사상이기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새로운 공간지평에 따라 형성된 새로운 정치학을 얘기하는 지점들이 몇개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복 인하여 동방과 서방이 접촉하게 되었고 그것으로부터 헬레니즘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헬레니즘 시대의 과학적 업적은 이런 데에 기인하게 되는 것.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쿠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가 나왔고, 그리고 에라토스테네스가 최초로 적도를 정확히 계산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이게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난 일. 그건 바로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복과 그에 따라 알렉산드리아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73 알렉산더 대제의 정복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에게는 강대하고 새로운 공간의 지평이 열렸어. 헬리니즘 문화와 예술이 그 결과지.


그리고 1세기 로마제국은 카이사르가 브리튼 원정을 떠났고 비로소 로마는 처음으로 대서양으로 불리는 바다를 보게 되었다. 물론 지중해 세계에서 끝난 국가이기 하지만 그것을 봤다는 것.


74 3백년 후 카이사르가 갈리아와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 로마를 떠났을 때 사람들의 눈은 비로소 북서쪽을 향해 열리고 대서양에 가까이 다다르게 되지. 이것이 오늘날 "유럽"이라 불리는 공간의 실재를 향한 첫번째 발걸음이었어.


그리고 게르마니아, 《발칸의 역사》를 다음에 읽으려는데 바로 게르마니아 지역을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시리아, 아프리카, 일리리아 진출했다는 것.


74 게르마니아 | 유럽 중부, 도나우 강의 북쪽, 라인 강 동쪽에서 비슬라 강까지의 지역으로서, 로마인에게 정복되지 않은 게르만인 거주지를 가리킨다.


그것으로 해서 아그리파의 세계지도와 스트라본의 지리학이 가능했던 것. 학문이라고는 것이 그 이전에 역사적인 사건이 있어야 하고, 그 사건에 근거해서 생겨나기 마련이다.


75 아그리파의 세계지도와 스트라본의 지리학이 이러한 공간 확장의 증거인 셈이야.


그리고 세네카의 비극 『메데아Medea』에서는 "새로운 세계novus orvis"라고 하는 용어가 등장한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을 '신대륙'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세네카가 쓴 "새로운 세계"에서 따온 말. 이게 이제 로마 시기의 발견이고, 그 이후의 중세에는 칼 슈미트는 "바다로부터의 후퇴, 함대의 부재, 영토 구획"으로 말한다.


77 세네카가 사용한 "새로운 세계novus orvis"라는 표현이 1492년 발견된 아메리카 대륙에 곧바로 적용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야. 


77 바다로부터의 후퇴, 함대의 부재, 영토 구획은 초기 중세 시대와 봉건체제의 특징이었어.


78 순전히 육지적이고 대지경제적인 땅권력복합체에서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읽지도 쓰지도 못한 채 살아남지는 못했을 거야.


중세는 십자군 원정을 거치면서 오리엔트 지역을 재발견하고, 한자동맹과 튜턴기사단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서 이른바 "중세 시대의 세계 경제"를 열었다. 십자군 원정 1차가 1096년인데 8차까지해서 1270년이다. 이런 연대들 생각해볼 만하다. 


그리고 10장에서 한가지 더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공간확장이 되면서 문화적 전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째로 새로운 정치적 삶의 형태가 드러났고, 시칠리아는 중앙화된 정부가 출현하여 근대국가의 도래를 알리고, 이탈리아는 새로운 도시문화가 생겨났다. 둘째로 신학과 법학을 갖춘 대학이 생겨나고 그러면서 로마법이 재발견된다. 대학이 왜 중요한가. 성직자의 교육 독점에 종지부를 찍은 것. 달리 말해서 교회의 지식 독점이 다원화, 다변화되고, 새로운 세계를 열게되는 것. 세번째로 거론할 수 있는 문화적 변화는 고딕예술. 로마의 정적인 공간을 넘어 역동적인 힘의 장을 창출한다. 로마네스크 구조물과 고딕을 얘기할 때 로마네스크는 육즁하고 정적인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면 고딕은 끝없이 이어 붙인다. 역동적인 장이 만들어지고 그게 바로 새로운 공간감정이다. 견강부회라는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역사적인 사건을 벌어지고 그에 따라 공간인식이 달라지고 문화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이런 것들을 이어 붙어서 거대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78 공간 확장은 동시에 심대한 문화적 전화이기도 헀어. 유럽 곳곳에서 새로운 정치적 형태가 모습을 드러내지.


78 새롭게 신학과와 법학과를 갖춘 대학들이 전례 없이 설립되고, 로마법의 재발견은 새로운 교양 계층인 법률가의 형성을 주도했으며, 중세 봉건제의 전형이었던 교회성직자들의 교육 독점에 종지부를 찍었지.


79 고대의 사원이나 뒤이어 따라올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들과 달리 고딕 양식의 예술은 공간을 변화시키는 고유한 힘과 운동을 표현하고 있는거야.


그렇게 해서 12장은 16,17세기 일어났던 전 지구적 공간혁명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말하면서 이제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구적 규모의 공간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몽골제국이야말로 최초의 세계사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겠지만 몽골제국이 세계사를 형성했다라는 것에 수긍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생겨난 어떤 문화적인 변경이라든가 학문 또는 사상적인 것이 있는가 한다면 사실은 글쎄 의심스럽다. 그래서 칼 슈미트의 이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인간의 전반적인 의식과 우리의 행성에 대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우주에 대한 천문학적인 표상도 바꿔버렸"다고 하는 것이 전지구적 공간혁명이 가진 의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끝없이 비어있는 공간에 대한 사유가 확장되어 나아가는 것이 천문학의 발전으로까지 이어 붙여진다. 코페르니쿠스, 지오다노 부르노, 갈릴레오 갈릴레이, 케플러 등의 천문가들. 최후에는 뉴턴에서 종합적인 설명을 얻게 된다. 빈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중세까지만 해도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그런 공간을 극복하고, 눈에 보지지 않은 법칙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학문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던 것. 


81 고대와 중세의 전통적인 개념을 일소해버렸고 인간의 전반적인 의식과 우리의 행성에 대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우주에 대한 천문학적인 표상도 바꿔버렸지.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실제 지구를 마치 공처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거야.


81 그 공간변화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주로의 확장, 그리고 끝없이 비어있는 공간에 대한 표상이었어.


83 그 이전에 일부 철학자들이 "비어있음Leere"에 대해 이야기한 바는 있어도, 비어있는 공간을 떠올린다는 건 있을 수 없었던 일이란다. 이전에 사람들은 비어있음에 대한 공포, 소위 '호로 바쿠이horror vacui"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콜럼버스의 이전 발견은 전 지구적 공간혁명과는 무관하고 역사적인 우연인데 여기서 칼 슈미트는 인간의 '의식적인' 발견에 대해서 우위를 부여한다. 


84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는 그 이전이 아니라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인정받고 있어. "콜럼버스 이전"의 발견은 전 지구적 공간혁명을 야기하지도 않았고, 그 혁명의 과정 중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야.


르네상스 회화에서도 공간혁명이 나오는데 르네상스는 중세 고딕 공간과는 다르게 원근법적으로 텅빈 깊이를 지닌 공간의 사람과 사물을 배치한다. 텅 빈 공간을 인간이 자유롭게 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세 조각상은 기둥과 벽에 비어있는 반면 르네상스 조각은 텅 빈 공간에 세워두었다. 그래서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건축은 역동성이 증가한다는 것. 음악도 청취공간이라는 뭔가를 배치한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종교개혁, 반종교개혁과 바로크는 모두 공간혁명의 총체성에 기여하게 되었던 것.


85 르네상스 회화는 중세 고딕 예술의 공간을 없애버렸지. 그때부터 화가들은 사람들과 사물들을 원근법적으로 텅 빈 깊이를 지닌 공간에 배치했어.


86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은 인간 모양의 입상들을 공간 속에 자유롭게 세워놓는데, 이는 중세의 조각상들이 기둥과 벽에 "묶여" 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야.


86 르네상스, 인문주의 종교개혁, 반종교개혁과 바로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공간혁명의 총체성에 기여했던 거야.


그리고 그런 공간혁명으로부터 중세적인 인간 공동체를 파괴되고 이제 새로운 국가, 함대, 군대를 구축하고 새로운 기계들을 발명하고, 거기서 그것을 바탕으로 비유럽 민족들의 식민화에 나서게 된 것. 이것이 진행되기 이전에 16,17세기 공간혁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는가를 안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라 할 수 있다. 


87 중세적인 인간 공동체를 파괴했으며 새로운 국가, 함대, 군대를 구축하고 새로운 기계들을 발명해냈으며 비유럽 민족들로 하여금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었지.


10부터 12장까지가 얇지만 굉장히 중요한 얘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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