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나 듀이: 이야기 마가


이야기 마가 - 10점
데이빗 로즈 외 지음, 양재훈 옮김/이레서원



추천의 글 | 제2판 서문


서론 | 이야기로서의 마가복음

제1장 | 마가복음서

제2장 | 내레이터

제3장 | 배경

제4장 | 플롯

제5장 | 등장 인물 1: 예수

제6장 | 등장 인물 2: 정치 지도자들, 제자들, 백성들

결론 | 독자


후기 | 대화로서의 읽기: 읽기의 윤리


부록 1: 마가복음의 전체적인 문학적 분석을 위한 연습

부록 2: 토막 이야기의 내러티브 분석을 위한 연습

주석





서론 | 이야기로서의 마가복음

25 마가복음은 여러 문학 양식을 골고루 반영하는 복합된 장르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마가가 새로운 양식의 문학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 새로운 문학 양식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를 통해 하셨고, 앞으로도 하실 것에 대한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양식인 '복음서' 장르이다.


26 마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이었든지 상관없이, 마가는 분명히 독자들에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주는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이것은 실제 있었던 사건들에 근거해서, 실제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한 이 이야기가,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28 마가복음이 강력한 효과를 주는 일관성 있는 내러티브이기 때문에, 이 내러티브를 전체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29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 우리는 마가복음을 조각조각 잘라내어 접하게 된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문맥과는 상관없이 몇 구절만 살펴보게 되거나, 마가복음에 나오는 토막 이야기들 몇 개만 따로 보게 된다. 이런 식으로 마가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소설이나 연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거나 관람도 해보지 못한 채 그 작품에서 인용한 몇몇 구절만을 듣는 것과 같다.


33 우리는 마가복음보다 훨씬 뒤에 만든 삼위일체 교리나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 혹은 예수의 죽음과 속죄 희생과 같은 교리의 틀로 마가복음을 읽는 경향이 있다. 만일 그런 것이 마가복음에 나오지 않는다면, 마가복음을 읽을 때는 그런 것들을 잠시 뒤로 물려 놓아야 한다.



제2장 | 내레이터

115 마가복음의 내레이터는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이 내레이터는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이든지 모두 알고 있다. 


116 예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혼자 계실 때 있던 일까지 모두 다 알고 있다. 비록 여인들은 무서워서 떨며 무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레이터는 그때 무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벌써 다 알고 있다.


118 내레이터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보면, 독자들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왜냐하면 독자들은 그 등장 인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모두 알기 때문이다.


122 이렇듯 어떤 것을 깨닫게 해 주거나 그렇지 못하도록 모호하게 감추어 놓음으로써 마가복음의 내레이터는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과 그것을 깨닫게 되는 때를 조절한다.


125 내레이터는 제자들과 다른 등장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법을 통해서, 그들에 대한 독자들의 판단을 나름대로 조정한다. 내레이터가 등장 인물을 묘사하는 것을 보면, 왜 독자들이 예수가 하는 말이나 행동들은 신뢰하고, 유대 지도자들은 불신하며, 제자들에 대해서는 신뢰도 했다가 불신도 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29 간략하면서도 아주 빠른 움직임을 만드는 마가복음의 스타일은 뭔가 급한 느낌을 주는 내러티브의 색깔을 강조한다. 이로써 '때가 찼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임했다'는, 예수가 던진 중심 메시지가 아주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다. 


131 전체 내러티브가 예루살렘과 죽음, 부활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그 뒷부분에서 속도가 떨어지면 독자들에게는 그 십자가의 사건이 유난히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제3장 | 배경

174 마가복음에서도 배경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이야기의 활동 양식이나 사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전체 배경은 플롯을 이끌어 가는 사건들을 신 대 인간의 터를 마련해 준다.


177 마가복음의 세계에서 이 창조 세계는 뒤틀린 상태로 있다. 인간들은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지만, 이야기 세계에 나타나는 모습은 도리어 그 반대이다. 인간들은 귀신들에 사로잡혔고, 질병에 눌려 고통 당하고 있으며, 풍랑에 압도되어 겁에 질려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들은 다른 인간들에 눌려서 신음하고 있다. 로마 제국은 이스라엘을 빼앗았으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로마 제국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 동족 위에 군림하고 있다.


181 예수가 여행하는 '하나님의 길'은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이루려는 예수의 노력을 나타낸다. 이 노력은 예루살렘에서 처형을 당하는 것으로 잠시 마무리한다.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공간적인 배경은 점점 좁아지는데, 이런 배경 설정을 통해 예수의 죽음을 향한 움직임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마지막으로 그 후의 이야기는 빈 무덤 사건과 갈릴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약속으로 다시 새롭게 열린다.



제4장 | 플롯

209 마가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모든 플롯을 이끌어가는 활동적인 '등장 인물' 혹은 그와 같은 힘이다.


211 하나님의 대사인 예수의 모든 말과 행동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제각기 자기 힘을 내세우는 이들에게 도전장을 보낸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그런 반대를 유발시키는 데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자연과 사회 질서를 새롭게 만들기 때문에 갈등을 유발시킨다.


213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갈등을 빚어 내는 원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는 다르게, 하나님을 새롭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경계선을 지켜 주던 하나님이 아니라 이제 그 경계선을 뛰어넘는 하나님이 되셨다. 성전 안에만 계시던 하나님이 이제는 그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 되셨다(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 바로 그것을 상징한다).


233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만, 마가 이야기의 유대 지도자들의 관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가 세례 받던 장면을 보지 못했고, 그가 사탄과 대결하는 장면에서도 없었으며, 그가 따로 개인적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칠 때도 그 자리에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야기에서 그들이 예수에 대해서 관찰한 것들과 들었던 것에 근거해서 그들을 평가해야 한다.


234 그들이 보기에는 예수의 위험한 행동을 책잡아 그를 체포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재판을 받은 예수는 안 그래도 화가 난 유대 지도자들에게 한술 더 뜬다. "네가 복 되신 이의 아들, 기름 부음 받은 자냐?"라고 묻는 대제사장의 질문에 예수는 "내가 바로 그다"라고 대답한다.


235 유대 지도자들은 나름대로 율법과 전통이라는 기준이 있다. 그런데도 지금 내레이터는 독자들이 이야기에 두루 나오는 문화의 기준에 따르지 않고 도리어 예수의 편에 서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유대 지도자들을 인간적인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으로 보게 한다.



제5장 | 등장 인물 1: 예수

277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렇게 된 것은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말하듯이 특별한 방식으로 태어났기 때문도 아니고, 그가 신적인 속성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도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그에게 기름 부으시던 때, 곧 그가 세례를 받던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하나님도 아니고 어떤 신도 아니다. 그는 한 인간일 뿐이고, 한 인간의 아들이며, 하나님께 큰 권세를 받은 사람일 뿐이다.


292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다윗의 아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열어 놓은 새로운 세계는 '우리의 조상 다윗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서 사람들은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맺으며, 상대방 위에 올라서서 군림하지 않고 도리어 서로를 섬기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가부장적 조직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에게는 '아버지들'이 없다.


300 내레이터는 예수의 죽음을 어떤 영웅의 '고상한' 죽음으로 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 죽음 앞에서 당황하고 번민하며, 그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가의 예수는 어떤 순교자처럼 멋있게 절제된 죽음을 맞이하지도 않는다. 


300 마가가 예수의 죽음에서 그리는 유일한 승리의 모습은 그가 하나님께 철저하게 순종했다는 것 하나뿐이다.


301 오늘날의 독자들은 후대에 예수의 죽음과 결부한 신학적인 의미로 마가복음을 읽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마가는 예수의 죽음을 죄를 대속하는 죽음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다.


302 분명히 마가는 십자가의 죽음을 그냥 그대로 아주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그리고 있을 따름이다.


302 대부분의 1세기 사람들은 인간에게서 책임을 찾았고, 하나님께는 원인을 찾았다.


307 예수가 부활한 사실은 이런 방식에 따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는 점을 확증하는 표시이다. 다시 돌아오기까지 예수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선포하는 역할이 이제는 나아가서 예수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제6장 | 등장 인물 2: 정치 지도자들, 제자들, 백성들

313 유대 지도자들은 '단편적'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성향을 처음부터 계속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 | 독자

382 이상적 독자는 이 이야기를 매듭지어야 한다. 또한 그 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나가서 전해야 한다. 다른 등장 인물들이 다 도망쳤을 때도 독자들은 끝까지 충실하게 남아 있었다. 이제 이 독자들은 여인들처럼 자기들도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과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선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386 예수를 따르던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보란 듯이 나타나리라고 기대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성과 성전이 파괴되고 예수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했다. 아마 예수는 어쩌면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이 바라던 것과는 달리 그는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권능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이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389 어떤 면에서 볼 때 이야기의 시간적 제약은, 예수의 시대가 훨씬 지난 후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성전이 파괴된 이후 머지않아 곧 이룩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298 따라서 독서 행위가 진정으로 대화가 되려면, 우리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하며, 비록 내키지는 않더라도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대화에는 그 대화를 통해 나 자신도 바뀔 수도 있다는 위험 부담이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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