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고먼: 속죄와 새 언약 ━ 메시아의 죽음과 새 언약의 탄생


속죄와 새 언약 - 10점
마이클 고먼 지음, 최현만 옮김/에클레시아북스



감사의 말 | 11

서론: 속죄의 초점을 바꾸다 | 17

1장 새 언약의 약속 | 29

2장 신약에 나타난 십자가와 새 언약: 복음서와 사도행전 | 63

3장 신약에 나타난 십자가와 새 언약: 바울에서 요한계시록까지 | 93

4장 메시아의 죽음에로 세례 되다: 새 언약의 실천- 십자가를 본 받는 신실함 | 133

5장 메시아의 죽음에로 세례 되다: 새 언약의 실천- 십자가를 본 받는 사랑 | 177

6장 평화의 (새) 언약 | 219

7장 메시아의 죽음에로 세례 되다: 새 언약의 실천- 십자가를 본 받는 평화 | 275

8장 통합적인 새 언약 속죄 모델: 참여와 연기 | 327

인용 문헌 | 383

주제 색인 | 397

인명 색인 | 405

성경 및 고대 문헌 색인 | 409






서론: 속죄의 초점을 바꾸다

21 따라서 본서의 목표는 속죄에 대한 (실제로는 전혀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모델, 즉 "새 언약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준궁극적 모델들의 문제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나는이 모델이 기독교 전통에서 속죄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해석이라는 정당한 주장을 펼 것인데, 이 모델의 기원은 예수와 최초의 교회, 그리고 최초의 기독교 신학자(즉, 바울과 복음서 저자들 등 )로 거슬러 올라간다. 


22 나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신약에서 예수의 죽음은 구원의 원천만이 아닌 구원의 형태이기도 하다고 주장 할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그 공동체, 즉 예수의 구원하는 죽음에서 혜택을 받고 그 죽음에 참여하는 새 언약 공동체의 형태까지 결정한다. 



1장 새 언약의 약속

29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언약", "새 언약" 혹은 그와 아주 유사한 이름을 붙인 속죄 모델이나 이론이 없다는 사실은 신학계의 거대한 수수께끼 중 하나다. 이 책의 목적은 그 간극, 그 신학적 공백을 채우려는 시도로, 실제로는 새롭지 않지만 자주 간과되어 왔고 늘 합당한 수준의 연구가 되지 못한 속죄의 새 모델, 즉 새 언약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30 이 다양한 이미지를 기반 삼아 기독교 전통에서는 속죄와 관련하여 얼마나 많은 주요 모델 혹은 이론이 발전되었을까? 표준적인 답변은 "셋"이다. (1) 승리자 그리스도(Christus Victor) 모델, (2) (종종 희생 제사 그리고 / 혹은 처벌과 연관되는) 충족(satisfaction) 모델, (3) 도덕적 영향 모델. 물론 일부는 충족 모델에서 희생 제사를 분리해 별개의 모델로 부르는 쪽을 선호하는데, 그렇게 하면 기본적인 모델은 네가지가 된다. 어떤 학자는 진정한 모델 목록에서 도덕적 영향 모델을 제외하고 셋으로 보기도 한다.


44 신약에서 예수의 죽음은 단순히 우발적인 깨달음의 사건이 아니라 의도적인 자기 계시이자 효과적인 구원 행위였다. 우리가 이 시대에 해야 할 신학 작업은 다음과 같다. 1) 본문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고 기술해야 한다. 2) 오해를 일으키는 범주를 통해 혹은 충분히 숙고되지 못한 전통적인 범주를 통해 십자가를 잘못 해석하지도 않고, 성경의 증언에 포함된 근본적인 관점들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는 신학을 구축해야 한다. 



2장 신약에 나타난 십자가와 새 언약: 복음서와 사도행전

68 첫째 마가의 내러티브에서 십자가는 구원을 일으킨다. 그 구원은 종합적이어서 "눈먼 자에게 계시를, 추방된 자에게 화해를, 외부인 즉 이방인에게는 속량"을 가져다 준다. 


68 둘째, 십자가에는 계시로서의 성격이 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란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계시하는 사건으로서 십자가는 (적어도 함축적으로는) 행위와 존재의 불가분성에 대한 심오한 신학적 진술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그 일들을 행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68 제자들이 따르는 대상은 단순히 우연히 죽은 혹은 임의로 죽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제자들이 따르는 대상은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의 아들의 성품인, 따라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인 자기 희생과 화해를 가장 온전하게 드러내는 행위였기 때문에 그 죽음을 감당하신 분이다.


70 죄를 용서 받고 죄를 용서하는 이 새 언약 공동체는 율법의 두 돌판을 구현하며, 실제로 성취한다. 리처드 레이스가 설득력있게 주장했듯이, 마태복음 독자들은 한 분을 따르라는 부름을 받고 있는데, 그분의 "긍휼의 해석학"과 율법을 성취한다는 그분의 주장(5:17-18)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막 12:28-34에 기초한 마 22: 34-40)을 제자들에게 부과한다.


73 이 모두는 누가 신학의 핵심적인 차원들이다. 이제 이 유월절 식사 때 행한 마지막 만찬이 실제로는 첫 만찬, 새 언약의 첫 기념식이 된다. 언약을 수립하는 예수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새 언약 공동체가, 죄가 용서된 백성이 탄생한다


73 그렇다면 누가에게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 전체(고난, 죽음, 부활, 승천/즉위)를 구성하는 한 요소인 예수 죽음의 목적은(죄 용서를 가져오는) 속죄도 포함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는 것이다. 죄 용서도 분명히 중요하다. 죄 용서는 새 출애굽과 새 언약의 핵심 표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 용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 안에 두신 더 큰 목적에서 일부에 해당 할 뿐이다. 이 더 큰 목적이란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을 의미할 새 언약(정말로 새롭게된 언약)의 증인이 되고 그 언약을 전 세계에 증언 할 새 백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 것이 바로 누가가 상대적으로 속죄의 "기제"에 덜 사로잡힌 부분적인 이유이다.


89 "예수가 제자들 사이에 강력한 친교를 만드신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 목적은 세상에 하나님을 알리는 데 있다." 제자들은 그들의 선교적 사랑을 통해서, 예수 안에 계시된 무엇보다도 그의 죽음 안에 계시된 하나님을 증언할 것인데, 그 하나님은 "세상", 말하자면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



3장 신약에 나타난 십자가와 새 언약: 바울에서 요한계시록까지

101 바울은 과거에 그가 고린도교인들에게 말로 전했고 나중에는 편지로 보강했던 전승을 그들이 분명히 알고 기억할 것으로 가정했을 것인데(고전 11:23-25), 그 전승의 내용은 예수의 죽음이 새 언약을 가져 온 죽음이란 것이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새 언약"이란 표현을 들으면 자동으로 십자가와의 연관성을 떠올릴 것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바울에게 실제로 "새 언약" 언어는 고난 받은 인간으로서 예수의 죽음이라는 현실, (더 나은 용어가 없으니) 그 지상성과의 긴밀한 연결을 담고 있다. 


130 그리스도의 죽음은 새 언약을가져온다. 그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죄를 용서받고 화해된 제자들로 이루어진 언약공동체가 창조되었고, 이 공동체는 성령이 거주하고 또 성령의 힘을 입은 공동체로서 하나님께 십자가를 본 받는 충성을 바치고 십자가를 본 받는 사랑을 이웃에게 드러내는 새 언약 영성을 구현하며,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생명에, 그리고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하고 화해하고 언약을 수립하는 선교에 평화로이 참여한다.



4장 메시아의 죽음에로 세례 되다: 새 언약의 실천- 십자가를 본 받는 신실함

165 예수 제자들의 정체성은 그의 정체성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의 이름을 품는 모습으로 대변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의 운명, 즉 그가 받은 거절과 고난, 죽음에도 참여한 것이다. 이를 내러티브 관점에서 표현하자면, 예수의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5장 메시아의 죽음에로 세례 되다: 새 언약의 실천- 십자가를 본 받는 사랑

200 마가복음처럼 빌립보서에서도 노예/종으로서 예수의 죽음은 구원론적으로는 유일무이한 사건이며 윤리적으로는 패러다임의 전형이다.


201 바울의 편지들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바울도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종/노예로 보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바울도 다른 사람의 구원과 교화를 위해서는 고난까지 감수하는 종/노예로 자신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바울은 그런 역할을 맡으면서 (이 역시 예수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을 위한 종 됨의 본보기로 이해했다.


206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 " (막 10:38b-39) 


그렇다면 이 본문이 바로 메시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기독교 언어 전부의 궁극적 기원이자 원천이라고 주장 할 수 있겠다. 고난과 배풂과 사랑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세 번째 수난 예고 소환의 정수)은 단순한 모방이 아닌 참여다. 



6장 평화의 (새) 언약

233 바울은 선지자들이 약속한 종말론적, 메시아적 평화의 시대가 메시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속에서 이미 당도했고, 이 시대의 독특한 특징은 화해와 비폭력이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예수의 생전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믿었다. 누가도 평화의 시대가 이미 개시되었다고 보았다. 


233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인류와 평화를 맺으셨고, 인간 사이에도 평화를 수립하셨다고 믿었다. 이 평화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메시아의 선물로서의 평화이다.


233 바울에게 예수는 현재 평화의 주님이다. 예수는 성령을 통해 그의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며 계속해서 그 공동체들 안에 그 공동체들을 통해 평화를 만들어 간다. 



7장 메시아의 죽음에로 세례 되다: 새 언약의 실천- 십자가를 본 받는 평화

308 바울에게 평화 조성은 교회의 통상적이고 지속적인 실천 사항으로서, 이 공동체가 평화 새 언약의 일부라는 증거이자, 평화의 주님의 현존을 그들이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 다. 이 공동체는 그런 존재가 되고 그런 행위를 함으로써 예수 뿐만 아니라 바울의 본을 따르는 것이다.


310 바울에게 이 이중 전제(인간이 실천하는 폭력 대 하나님과 메시아가 실천한 평화)는 일반적인 세상의 현실을 담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하지마 분명히 우리는 여기서 팍스 로마나의 현실이 반영된 모습도 볼 수 있어야 한다. 팍스 로마나는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후예들이 세상에 참 평화와 정의를 가져왔다는 제국 신화로서 일종의 "실현된 종말론"이었다. 하지만 바울의 관점에서는 만약 (그때나 지금이나) 평화와 정의가 폭력과 전쟁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면 로마가 옳고 그리스도는 헛되이 죽은 게 된다.


310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셨고 또한 지금도 하고 계신 일은 철저한 평화 회복의 작업이요, 철저한 탈바꿈의 작업이다. 하나님이 원수를 친구로 만드셨다. 화해는 단순한 죄 용서의 선언이 아닌, 회심의 사건이자 새 창조의 행위다. 


325 나는 바울과 누가가 교회에 대한 유사한 비전을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평화로운 교회, 평화를 조성하는 교회는 약속과 소망으로 충만한 하나의 신호요, 개인과 집단, 생태계의 모든 차원에서 갈등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과는 철저하게 다른 방식을 세상에 전하는 증인이었다. 이 비전은 고대 세계와 현대 세계 모두에게 통하는 이야기며, 교회는 지금 다시 한번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 1세기에나 21세기에나 세상에 이보다 더 절실한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326 그 이유는 그들이 평화나 평화주의(혹은 바울에게는 생태신학)를 어떤 원리로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주님을 평화의 주님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8장 통합적인 새 언약 속죄 모델: 참여와 연기

327 예수 죽음의 목적은 새 언약, 평화의 언약을 가져 오는 것. 그것을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성령 충만한 예수의 제자들로 구성된 새 언약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1) "하나님께 신실하라", (2)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불가분한 언약의 두 요구 사항을 예수의 죽음에 참여함으로써 성취할 것이다. 이 성취는 신실한 증언과 고난(십자가를 본 받는 믿음) 약한 자를 환대하고 모든 사람을 종의 자세로 사랑하는 모습(십자가를 본 받는 사랑), 그리고 평화 조성(십자가를 본 받는 소망) 같은 실천으로 표현될 것이다.


328 속죄에 대한 다른 많은 해석에는 예수의 죽음이 가져온 "혜택"과 그의 죽음이 가능케하고 동시에 요구하는 "제자도의 실천" 사이에 내재적인 균열이 존재하는 반면, 이 모델은 그러한 균열을 극복한다. 나는 본서 전체에서, 신약이 예수의 죽음을 단지 구원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구원의 형태로도 이야기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은 그 공동체, 즉 새 언약 공동체의 형태도 결정한다. 그들은 예수의 구원하는 죽음에서 혜택을 입고 그 죽음에 참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331 요한복음을 설명하며 이야기했듯이, "그 아들의 죽음을 수용한다는 것은 곧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를 수용한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한다는 의미다."


331 우리는 십자가가 믿음과 사랑 양쪽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 뒤, "바울이 새 언약 신학에 공헌한 가장 혁신적이고 중요한 내용"이 "이 백성가운데 거하기 위해 오신 '새로운 영'은 다름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의 성령이며, 따라서 그 영은 십자가를 본 받는 영, 십자가 형태를 띤 영"이라는 주장이라고 정리했다.


347 다양한 부류의 그리스도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영성"이란 단어는 초월 경험을 가리킨다. 나아가 더 특정하자면 하나님 혹은 예수에 관한 경험을 가리키는 데 이 경험은 세상 속의 삶과는 관련이 없는 경험이다. 말하자면, 영성의 목적은 신비로운 경험들을 통해 다사다난한 이 세상 밖으로 옮겨가는 데 있다. 


347 그 영성은 고유한 특성상 현세적이며 선교적이고 심지어 정치적인 영성이다.


349 영성은 "생명을 불러 일으키는 메시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 참여는 성령을 통해 가능케된 현세적인, 변혁적인 참여다. 이 참여에서 십자가는 새 언약에 속한 우리 삶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그 삶의 형태이기도 하다.


374 그리스도의 죽음은 새 언약을 가져온다. 그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죄를 용서받고 화해된 제자들로 이루어진 언약 공동체가 창조되었고, 이 공동체는 성령이 거주하고 또 성령의 힘을 입은 공동체로서, 하나님께 십자가를 본 받는 충성을 바치고 십자가를 본 받는 사랑을 이웃에게 드러내는 새 언약 영성을 구현하며,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생명에,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하고 화해하고 언약을 수립하는 선교에 평화로이 참여한다. 


380 새 언약 모델은 현세적인 영성을 담고 있는데, 이 영성을 내면성의 외면화(exteriority of interiority ) 로 지칭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영성은 또한 일종의 정치로서, 세상 안에 존재하는 방식이되 세상의 방식은 아니어서 진실을 증언한(신실한), 환대한, 타인을 섬긴 샬롬을 만들어 낸 메시아의 (로마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통해 형성되는 영성이다. 


380 가장 중요한 마지막 내용, 그렇다면 새 언약 모델에서 속죄는 그저 속죄의 수혜자가 아닌 속죄의 참여자를 만들어 낸다. 그들은 십자가에 참여하며, 따라서 생명을 주고 자신을 주시는 하나님께 참여하는 자들이다. 이 참여가 가능하게 된 것은 그보다 앞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황에 참여하셨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성육신하고 사시고 죽은 사건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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