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노자(老子)


노자(老子) - 10점
노자 지음, 최재목 옮김/을유문화사



머리말

일러두기


노자와 <노자>, 그리고 초간본 <노자>에 대하여


갑본(甲本)

초간본 <노자> 갑본 도판

제1장 지모를 끊고 괴변을 버리면

제2장 강과 바다가 수많은 골짜기의 왕이 되는 까닭은

제3장 죄는 욕심 부리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이 없다

제4장 도로써 군주를 보좌하는 사람은

제5장 먼 옛날 훌륭히 일을 잘 해내는 사람

제6장 일삼아 하려고 하면 실패하고

제7장 도는 항상 무위이다

제8장 함이 없음을 한다

제9장 천하 사람들이 모두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추한 것이다

제10장 도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제11장 무언가가 있었는데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12장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제13장 텅 빔을 이루는 것이 지극하고

제14장 형세가 안정되었을 때는 유지하기 쉽고

제15장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제16장 정당함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제17장 덕을 품음이 두터운 사람은

제18장 이름(명칭)과 몸(생명), 어는 것이 절실한가?

제19장 반대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제20장 지속해서 채우려는 것은


을본(乙本)

초간본 <노자> 을본 도판

제1장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는 아낌만한 것이 없다

제2장 배우는 사람은 [배울 것이] 나날이 늘어나고

제3장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제4장 사람들이 총애와 수모에 어지러워지는 것처럼

제5장 높은 경지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제6장 문을 닫고, 구멍을 막으면

제7장 크게 담은 것은 비운 것과 같다

제8장 잘 심은 것은 뽑히지 아니하고


병본(丙本)

초간본 <노자> 병본 도판

제1장 최선의 통치자는 아래에서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제2장 지대한 형상을 잡게 되면

제3장 군자는 평상시에 왼쪽을 높이고


부록_ 관점초묘죽간본 <노자> 교정문(校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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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5 다시 말하면 <노자>라는 책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예컨대 초간본·백서본·왕필본 등등처럼 여러 종류가 있으며, 주해본·해설서 또한 근대 이전 그리고 이후에 중국·한국·일본 등지에서 수없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 어느 한둘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종합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나온다. 


6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나는 이제까지 발견된 〈노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판본인 〈곽점초묘죽간본(郭店楚墓竹簡本) 노자(老子)〉 이하 초간본 〈노자〉를 우리말로 풀이하고 문자고증을 포함하여 상세히 주해하기로 한 것이다. 초간본 〈노자〉는 중국 초(楚)나라 때의 무덤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으로추정)에서 출토된 죽간(竹簡)의 형태로 된 것이다. 초간본 〈노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운운하는 현행본 〈노자〉 훨씬 이전에 성립한 가장 원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판본이다. 따라서 초기 노자 혹은 노자학파의 생생한 목소리를 발견해 낼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이후 판본에서 보이는 각 장(章) 배열의 순서나 문장 해석상의 여러 의문점을 풀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12 기타 종래의 연구 가운데 이 책에서 비교적 많이 참고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 팽호(彭浩), 〈곽점초간 《노자》 교독(郭店楚簡《老子》校讀)〉(武漢: 湖北人民出版社, 2001).

• 윤진환(尹振環), 〈초간노자변석(楚簡老子辨析)〉(北京 : 中華書局, 2001).

• 료명춘(廖名春), 〈곽점초간노자교석(郭店楚簡老子校釋)〉(北京: 淸華大出版社, 2003).

• 곽기(郭折),  〈곽점죽간여선진학술사상(郭店竹簡與先秦學術思想)〉(上海: 上海敎育出版社, 1999).

• 진고응(陳鼓應), 〈노자금주금역급평가(老子今託今譯及評價)〉 (臺北: 臺灣商務印書館, 2000(3차 수정본)).


이들 저서 가운데 진고응의 〈노자금주금역급평가〉는 이미 언급한대로 최재목·박종연이 〈진고응이 풀이한 노자〉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책 속에서 '진고옹, ~쪽'으로 표시한 것은 모두 이 번역본의 것을 말한다.


13 이어서, 국내의 많은 〈노자〉 관련 역•저서 가운데 비교적 많이 참고한 것은 다음과 같다. 

•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서울 : 들녘, 2003)

• 김홍경, 〈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 노자〉 (서울 : 소나무, 2001).

• 양방웅, 〈초간노자〉(서울 : 예경, 2003).

• 이석명, 〈백서노자- 백서본과 곽점본 • 왕필본의 텍스트 비교와 해석〉(서울 : 청계 , 2003).

• 김충렬, 〈김충렬 교수의 노자 강의〉 (서울 : 예문서원, 2004).


14 책에서 자주 쓰는 '진본(眞本)', '고본(古本)', '금본(今本)', '개작본(改作本)', '통행본(通行本)', 현행본(現行本)'을 개념적으로 구별해 두고자 한다.

• '진본(眞本)'은 고본을 가능하게 한 가장 원초(시초)의 편집을 말한다. 따라서 이것을 '조본(祖本)' 혹은 '원본'이라고도한다.

• '고본(古本)'은 초간본 〈노자〉를 말한다. 만일 초간본 〈노자〉보다 더 원본에 해당하는 것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금본에 대해서는 이것을 고본이라고 부른다.

• '금본(今本)'은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 출토의 백서 〈노자(老子)〉 갑본·을본(이하, 백서본 〈노자〉 갑본·을본), 왕필본(王弼本) 〈노자〉, 하상공본(河上公本) 〈노자〉, 부혁본(傅奕本) 〈노자〉 등을 말한다. 금본에는 고본에 없는 내용이 약 60% 이상 추가 되어 있다.

• '개작본(改作本)'은 고본을 개작한 것(예컨대, 태사담의 〈노자〉나 백서본 〈노자〉처럼)만이 아니라, 개작된 금본을 다시 개작한 것(왕필본 〈노자〉 등)까지 포괄한다. 그래서 개작본은 가끔 금본과 동일하게 불리는 수도 있다.

• '통행본(通行本)'은 백서본 〈노자〉와 체제를 달리하며, 내용상 현재까지 통용되는 판본들이며, 그 기준이 되는 판본은 왕필본〈노자〉이다. 따라서 근·현대의 학자들이 교정 ·주석한 판본(즉 '현행본(現行本)')과는 구별하여 사용한다.

• '현행본(現行本)'은 근 · 현대의 학자들에 의해 간행되어 통용되는 판본을 말한다. 위의 통행본과 구별된다. 물론 현행본은 왕필본〈노자〉를 표본으로 하면서도 백서본<노자>, 나아가서 최근에는 초간본〈노자〉까지도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원문을 교정(校定)한 것이 나오고 있다.


주석 중에서 말하는 '가차자(假借字)'는 당시에 글자가 없어서 서로 상통하는 글자를 임시로 빌려서 쓴 것을 말하고, '이체자(異體字)'는 다른 모양(=형태)의 글자를 말하며, '착오자(錯誤字)'는 잘못 옮겨 적음[誤寫]으로써 생긴 오자(誤字)를 말한다.


노자와 <노자>, 그리고 초간본 <노자>에 대하여

30 한편, 노자는 중국의 종교•정치 등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즉 노자는 도교(道敎)의 신(神)으로서 존숭되고, 신선(神仙)의 상징적 존재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자의 성명(姓名)이 '이이(李耳)'라는 것에서 같은 이(李)씨 성이었던 당(唐) 왕조(고조 이연(李淵))에서는 그를 더욱 신격화하고, 〈노자〉를 〈도덕경〉으로 존숭하기까지 하였다. 

심지어는 노자가 인도(印度)에 가서 석가(釋迦)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다든가, 석가는 원래 노자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 신(=노자의 변화신)이라는 '노자화호설(老子化胡說 또는 호화설(胡化說)이라고도 함)'과 같은 전설도 생겨나게 된다.


31 우리가 읽고 있는 통행본 〈노자〉는 글자 수가 5천여 자이며 상•하 2편으로 되어 있다. 상편은 37장, 하편은 44 장, 합계 81장으로 보는 것이 통례이다. 또 상편은 '도(道)'를 이야기하고 하편은 '덕(德)'을 이야기하기에 상•하편을 각각 '도경(道經)', '덕경(德經)'이라 부르고 양자를 합해서 〈도덕경(道德經)〉이라 부르는 것도 관례화되어 있다. 그런데,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왕필본 〈노자〉에 훨씬 앞서는 백서본 〈노자〉는 통행본 〈노자〉와 비교할 때 상•하편이 뒤바뀌어 있기에 〈덕도경(德道經)〉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노자〉에 왜 상•하편의 분명한 구별이 생겨났는지, 그리고 상•하 2편, 81장의 배열 순서가 왜 구체적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도 의문시되는 점들이 있다. 통행본〈노자〉는 같은 취지의 글을 치밀한 기획 아래 체계적으로 한 곳에 모았다는 그런 편찬의식은 느낄 수 없고, 단편적인 말을 잡다하게 집성한 책이라 보일뿐이다.


33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노자〉(혹은 〈도덕경〉)는 '본래 그대로의 어떤 것(조본 혹은 진본. 금본에 대해서는 고본이라 부름)' 다시 말해서 '노자(老子)리는 인물 혹은 그 동조자나 후계자의 격언집 그대로'가 아니고, 여러 인물들의 개작작업(개작본 과정)을 거쳐서(이것은 고본에 대해서 금본이라 부름)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판본(통행본)'으로 틀이 잡힌 뒤,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정비 작업이 가해져서 완비된 형태의 현재의 판본(현행본)이 이루어진 것이다.


50 왕필본(王弼本) 〈노자〉

그냥 왕본(王本)이라고도 한다. 위(魏)나라의 천재 사상가로 위진현학(魏晉玄學)을 대표하며 24세로 요절한 왕필(王弼 226-249)이라는 인물이 '18세 (243)'에 주석을 단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은 왕필이 그 당시까지 내려오던 여러 텍스트를 자신의 일관된 틀 속에서 정비•재구성하여 탁월하게 주석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현행본〈노자(老子)〉 혹은 〈도덕경(道德經)〉은 이것을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그만큼 왕필본〈노자〉는 현재까지도 가장 훌륭한 판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51 하상공본(河上公本) 〈노자〉

(노자 도덕경) 〈하상공장구(河上公章句)〉라고도 부른다. 한(漢)나라 문제(文帝)때 하상(河上)에 살았던 은둔한 선비(=하상공(河上公)혹은 하상장인(河上丈人)이라고도 함)의 것이라 전해지나 작자는 분명하지 않다. 이 책이 만들어진 연대에 대해서는 동한(東漢)•서한(西漢)•위진(魏晉) 등 여러 설이 있다.


54 백서본 〈노자〉의 등장

1973년 12월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백서 〈노자〉가 발굴되었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168년경이다. 백서란 '백, 즉 비단에 글을 쓴 책[書]'(=비단으로 된 책)이다. 이에 대한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대륙 쪽의 학자들)도 있었으나 별 대수롭지 않다는 평가(대만 학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다시 말해서 백서 〈노자〉에 대한 학계의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백서본 〈노자〉에는 갑본(甲本) • 을본(乙本) 2종이 있는데, 여기에는 가차자(假借字, 빌린 글자)가 많다. 이것은 선진 및 한대 초기만 해도 널리 쓰이는 글자가 많지 않았던 탓인데, 당시 학습•상용하던 글자가 3,300자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백서본 〈노자〉 갑본은 진대(秦代)의 판본이고, 을본은 한대(漢代)의 판본으로 보인다. 을본은 갑본을 토대로 다듬어진 것이다.


58 초간본 〈노자〉의 발굴과 그 의의

고고학의 혜택과 중국학의 발전

백서본 〈노자〉가 출토되고 20년 뒤인 1993년 8월 중국 호북성(湖北省) 곽점촌(郭店村)의 초(楚)나라 무덤에서 죽간(竹簡)으로 된 〈노자〉가 출토되었다. 이것은 백서본 〈노자〉보다 2세기 가까이 연대를 소급할 수 있는 것으로 학계에 대단한 충격을 주었다. 초간본 〈노자〉는 통행본〈노자〉와 비교할 때 저자 및 저작 시기가 다를 뿐 아니라 사상 내용 또한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같은 구절도 있지만 분량과 장(章)•절(節)의 순서 면에서도 크게 다르다. 이 때문에 노자라는 인물과 〈노자〉라는 책에 대한 종래의 주장을 흔들어 놓았고, 그 연구 방향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특히 초간본 〈노자〉는 중국에서 최초로 문자통일이 이루어졌던 진나라 이전의 초나라 지역에서 사용하던 문자, 즉 문자통일정책에 의한 표준 자형(字形)이 아닌 가차자(假借字)등으로 되어 있어 읽기가 쉽지 않다.


69 노자의 시상 혹은 그것이 담긴 〈노자〉라는 책의 비조(鼻祖)는 노담이며, 그는 실존인물로 보아야 될 것 같다. 이를 부정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한 일단 그렇게 추정해도 될 것 같다. 노자(老子)의 노(老)는 성(姓)이 아니고 존칭이며 노자(老子)는 우리가 흔히 쓰는 '노선생(老先生)', 즉 '늙은 선생 (Old Master)'을 의미한다. 


  노담은 기원전 571 년 이전에 하남성 녹읍현 출생이며, 기원전 535년에서 522년 사이 공자(17-30세)가 방문했을 때, 그에게서 예(禮) 등에 대한 조언을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노자와 노담을 주의 깊게 사용해야 하며, 또한 노자와 〈노자〉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기원전 384년에 함곡관에서 윤희에게 도•덕에 대한 상•하권 두 권의 5천여 언으로 된 책을 주었고, 기원전 374년에 진 헌공을 만나러 떠난 태사담은 노담과 다른 인물이며, 백서본 〈노자〉, 왕필본〈노자〉와 같은 개작본은 태사담이 개작한 〈노자〉를 근거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장자(莊子)와 한비(韓非)는 태사담이 개작한, 아마도 백서의 <덕도경(德道經)>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되는 〈노자〉(=1차 개작본)를 본 사람들이다.


  곽점에서 출토된 초간본 〈노자〉는 통행본 〈노자〉의 '성립 과정'에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노담, 그 사람의 사상이 기록된(또는 그의 직계나 그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현재 우리가 보는 완성된 〈노자〉의 '원본(즉 조본, 진본)'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조심스런 부분이 있으므로 일단 '고본'으로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고본으로서 죽간본에 담겨 있는, 공자와 동시대인 노담의 말은 그저 '소박한 형태'로서 금본(또는 통행본, 개작본)에서 볼 수 있는 정치철학적 언설 및 유가(儒家)나 타학파를 비판하는 주장·체계·의식이 분명하지 않았던 시기의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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