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관념론 | 07 인식론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3


요청과 지양 - 10점
김석수 지음/울력


인식론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3-1

  1. 선험적 인식과 사변적 인식

  2. 연역과 변증법

  3. 지식과 믿음


이제 오성은 의식과 대상의 단계를 넘어 '살아있는 실체'로서의 주체로 이행하는, 이른바 주체와 주체 사이의 만남의 장인 '자기의식'으로 이행하게 된다. 감각적 확신이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존재나 지각이 의식의 관여를 통해 관계한 구체적인 사물이나 오성이 포착한 힘들은 모두 주체적 차원에서 파악되지 못했다(PG, 137). 이들 모두를 통일하는 자기의식의 활동을 통해서만 비로소 이들은 진리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자기의식은 감각하고 지각하는 세계의 존재로부터 나와 반성함이며, 타자 존재로부터 본질적으로 자기로 되돌아옴이다"(PG, 138). 이런 자기의식은 드러나 보이는 현상과 진리의 대립을 극복해야 하며, 따라서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대상을 넘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식은 대상으로만 대면하는 의식의 차원을 넘어 이 의식을 다시 의식하는 욕구(Begierde)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PG, 139).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식이 대상을 욕구적 차원에서 부정하고 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식 스스로의 붕괴를 초래하게 된다. 자기의식에서 부정되야 하는 것은 대상이지만, 이 대상 역시 자기의식을 통해 생명으로 승화되어야 한다(PG, 139). 이 자기의식은 대상과 의식의 관계에서 의식과 의식의 관계, 이른바 자기의식들 사이의 관계로 발전한다. 그래서 이 인정운동의 관계 속에서는 타자가 자기에게 대립자, 방해자로 이해되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를 성숙시키는 계기로 파악되기도 한다(PG, 145-146). 여기에서 자기의식은 타자의 지양이 곧 자기의 지양임을 인식하게 된다.


· 지각 perception, 개념 conception


· '근대 시민사회는 욕구 투쟁의 장이다.' - 헤겔


그러나 이 지양 운동은 칸트처럼 '요청'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대상과 맞서 싸우는 노동과 주체들 사이의 욕망의 투쟁을 통해 극복된다. 그러므로 헤겔은 데카르트와 칸트의 사유에는 스토아주의의 사유의 순결성, 이른바 형식성만 남아 있지 내용적 차원의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는 아무런 작업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칸트 속에 담겨 있는 스토아주의적 사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표기하고 있다. 사유의 자유는 생명이라는 삶의 내용을 성취하지 않고 순수한 사유만을 진리로 간주하므로, 이러한 자유는 생각에만 머무는 자유일 뿐, 생동하는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자유에게는 오직 사유 일반이 본질일 뿐이고, 즉 자립적인 사물들로부터 벗어나 자체 내로 복귀해 있는 형식 그 자체일 뿐이기 때문이다.(PG, 158)


이러한 자기의식은 현실 존재로부터의 완전히 벗어나 자기 내로 도피한 의식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자신의 온전한 자유태로서의 인식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은 사유와 사유자신과 일치한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사유와 존재가 구체적으로 관계를 맺는 상태가 되지 못한다(PG, 158~159). 그래서 이를 지양하고 외적인 현실과 맞서 부정성을 수행하려는 회의주의가 등장하게 된다(PG 159). 그렇지만 이 회의주의 역시 존재 현실과의 대면 속에서 무력함을 경험하고, 결국 '불행한 의식'에 이르게 된다. 스토아주의와 회의주의가 부정적 현실을 도외시하고 내면에 침잠함으로써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불행한 의식은 부정적 현실을 내면 가운데 끌어 들여 외적 모순을 내적 모순으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이 의식은 스토아주의의 순수사유와 회의주의의 개별적 사유를 다시 종합하려고 한다(PG 168).


이 단계에서는 또 다시 차안과 피안의 대립과 분열을 맞보게 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불행한 의식은 이성으로 이행하게 된다. 헤겔에서 이성은 '자신의 개별성 속에서, 절대적으로 그 자신이 곧 전적으로 실재라는 것을 확실히 의식하는 것'(PG, 177)으로서, 이 이후 이성과 현실의 분열이 지양되기에 이른다. 이 단계에 이르러 의식이 타자 존재와 부정적 관계를 이루고 있었던 것을 긍정적 관계로 승화시킨다. 이제 '이성적 의식은 자기 자신이 실재한다는 것을, 즉 일체의 현실이 이성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PG, 178-179) 이른바 자기의식이 실재 모두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PG, 179). 이로써 범주 역시 자기의식과 존재의 동일성으로 나타나며(PG, 181), 더 이상 칸트에서처럼 범주와 존재 사이의 분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지양 운동은 칸트처럼 '요청'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대상과 맞서 싸우는 노동과 주체들 사이의 욕망의 투쟁을 통해 극복된다. 그러므로 헤겔은 데카르트와 칸트의 사유에는 스토아주의의 사유의 순결성, 이른바 형식성만 남아 있지 내용적 차원의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는 아무런 작업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칸트 속에 담겨 있는 스토아주의적 사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표기하고 있다.   사유의 자유는 생명이라는 삶의 내용을 성취하지 않고 순수한 사유만을 진리로 간주하므로, 이러한 자유는 생각에만 머무는 자유일 뿐, 생동하는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자유에게는 오직 사유 일반이 본질일 뿐이고, 즉 자립적인 사물들로부터 벗어나 자체 내로 복귀해 있는 형식 그 자체일 뿐이기 때문이다.(PG, 158)



헤겔은 개념과 실재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을 때까지 부단히 지양 운동을 전개하며, "개념만이 진리를 담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표상의 단계를 쉼 없이 부정해간다(PG, 262).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칸트는 여전히 개념이 표상에 물려있다고 볼 수 있다. 표상이 개념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진리대응설에서 정합설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고, 사유와 존재의 불일치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 되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 되는, 마침내 '이성이 자기자신을 세계로, 세계를 자기자신으로 의식하는' 정신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PG, 324). 온통 실재라고 이성이 확신하는 것이 진리로 고양되고, 이 이성이 자기자신을 세계로, 그리고 세계를 자기 자신으로 의식하기에 이르렀을 때, 이성은 곧 정신이 된다(PG, 324). 정신은 감각, 지각, 오성으로서 의식 일반을 거쳐, 자기의식으로 나아가 그리고 이성을 넘어 모든 인식 활동의 여정을 거쳐 스스로를 진지로 만드는 단계이다. 이제 실체가 주체가 되고, 개념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개념이 되는, 그래서 의식과 자기의식의 화해를 이루어내는 '절대지'에 이르게 된다. 칸트의 인식론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감성적 직관의 수용성에 의해서 주어진 다양을 종합하는 오성의 사유가 존재의 내용을 왜곡할 수 있는 가능성, 이른바 오성의 일방적인 구성의 가능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칸트는 다양성과 오성의 통일성을 새롭게 매개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인식론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3-2

  1. 선험적 인식과 사변적 인식

  2. 연역과 변증법

  3. 지식과 믿음


칸트는 감성의 직관으로부터 주어지는 다양이 통일을 이루어야 대상으로서 인식될 수 있고 경험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들 다양을 통일하는 그 무언가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그것이 바로 지성의 자발적인 활동, 이른바 선가험적 자기의식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한다. 모든 표상과 개념들을 근원적으로 결합하고 통일하는 '선가험적 통각'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선가험적 통각을 통한 근원적 종합은 경험적 종합과 범주적 종합 모두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이다. 결국 칸트는 이 과정을 삼단계로 설명한다. 우선 첫째로 감성적 직관으로부터 주어지는 다양을 개념을 통해 통일하고, 둘째로 이 개념을 범주에 의해서 판단의 통일로 가져오고, 마지막으로 선가험적 통각을 통한 범주들의 통일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결국 대상 성립과 대상 경험 가능성이 자기의식에 기초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 선가험적 통각의 근원적 통일에 감성적 직관의 잡다, 개념의 다양성, 심지어 범주의 다양성도 모두 예속된다. 이는 헤겔이 의식일반에 해당하는 감각적 확신, 지각, 오성에 관여하는 대상에 대한 인식이 결국 자기의식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하는 점과 맥을 같이 한다. 헤겔에서 의식은 자기의식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칸트를 괴롭히는 문제는 직관의 다양성과 범주의 통일성이 서로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직관의 다양이 필연적으로 종합의 규칙으로서 범주 아래 있어야 한다'는 선가험적 연역의 주장만으로는 범주의 객관적 타당성을 증명하기에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범주가 대상에 '의미'를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직관의 다양과 범주의 통일이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칸트는 이 점을 고민했기 때문에, 범주 적용의 문제와 관련하여 원칙론과 관련하여 도식의 문제를 다룬다. 그의 선가험적 도식은 개념의 감성화와 감성의 개념화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 구실을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헤겔이 볼 때,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순수오성개념, 즉 범주의 비역사성, 비운동성에 기초하고 있다. 헤겔은 칸트의 범주의 연역과 도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한다. 범주를 즉자 대자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고 자기의식에 따른 주관적 형식으로 파악하는 데 머물고 말았다. [WL II, 268-269]


헤겔의 시각에서 볼 때, 칸트의 사유는 존재와의 대면을 통한 대립의 지양적 통일, 이른바 '없애면서 가지는' '구체적인 사유'로 발전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칸트는 시간, 공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범주의 경우에서도 변증법적 운동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또한 그의 도식론은 이 부분을 상당 부분 메워보려고 노력했지만, 현상계 바깥을 나가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성비판의 일면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대로 범주의 원천이 지각의 통일에 있고, 따라서 범주에 의한 인식에는 실제로 객관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범주에 있다고 보는 객관성 그 자체도 결국 주관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단지 이것만을 봐도, 칸트의 이성비판은 주관적인 관념론에 불과하며, 이 주관적 관념론은 내용을 떠나서 오직 주관성과 객관성 사이의 추상적 형식만을 다루며, 더욱이 첫째 형식, 곧 주관성을 최후의 절대적인 긍정 규정으로 보는 입장을 지나치게 고집한다(Enz I, 123).


─ 칸트 철학이 물자체에 대해서 불가지론에 빠지게 된 것은 그의 철학이 '표상적' 단계로부터 '개념적' 단계로 이행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자기 내 반성'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Enz | 254/VGP, 338). 권대중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칸트의 인식론은 경험론의 잔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대응론에서 정합론으로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응론으로 회귀해버린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 형이상학적 연역 - 범주의 발견, 선가험적 연역 - 그 범주를 적용

─ 통각(apperception):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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