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샌더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 어떻게 되는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 어떻게 되는가 - 10점
존 샌더스.가브리엘 파크레.로날드 내쉬 지음, 박승민 옮김/부흥과개혁사


서론 _ 존 샌더스 


01 포괄적 구원론 - 존 샌더스 

넓은 소망│하나님의 과분한 사랑│버리기 전에 받아 주심│위대한 반전│포괄적 구원론│믿음의 원리│예수님 오시기 전 신앙인│일반 계시와 섭리│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사상│유아들은 어떻게 되는가│선교 │결론 


존 샌더스에 대한 논평-가브리엘 파크레 

존 샌더스에 대한 논평-로널드 내쉬 


02 신적 견인론 - 가브리엘 파크레 

신적 견인론의 명칭│믿음의 선배를 통해 성경 해석에 대해 배우기│신적 견인론과 악의 문제│신정론과 신적 견인론│미전도인과 신적 견인론│성경에서의 신적 견인론│초대 시대의 신적 견인론│현대 시대의 신적 견인론│노아 언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복음 전도의 필요│하나님의 신비


가브리엘 파크레에 대한 논평-로널드 내쉬 

가브리엘 파크레에 대한 논평-존 샌더스 


03 제한적 구원론 - 로널드 내쉬 

포괄적 구원론과 일반 계시│포괄적 구원론과 로마서 1~3장│다른 본문 속에서의 일반 계시│기독교인과 신자 사이의 구별│유아 구원의 문제│포괄적 구원론과 성경│구원에 대한 보편적 접근 가능성│제한적 구원론과 성경│사후 전도론과 베드로전서 3~4장│사후 전도론과 관련된 다른 주제│기독교 선교를 저해하는 문제│사도행전을 통해 배우는 것│결론 


로널드 내쉬에 대한 논평- 존 샌더스 

로널드 내쉬에 대한 논평- 가브리엘 파크레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위한 참고문헌 





서론 _ 존 샌더스 

8 포르피리오스의 질문은 예수님 이전에 살고 죽었던 사람들 만을 문제로 삼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도 여전히 그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모르고 죽었던 모든 이들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이것은 이 문제가 중요한 두 번째 이유로 우리를 인도한다. 인류 대다수는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채 죽었다. A.D. 100 년에 어림잡아 1억 8천 1백만 명이 살았었는데, 그 중 백만 명 정도만이 기독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당시 복음이 도달하지 못한 종족이 6만 개 정도나 되었다고 한다. A.D. 1000년에 이르러 인구는 2억 7천만 명 정도가 되었다. 그 중 5천만 명 정도가 기독교인이었고 5만 개의 미전도 종족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 1989년에 들어와 인구는 52억 가량이 되었다. 그리고 52억 인구 가운데 약 17억 인구만이 기독교인이 되었고 1만 2천 개의 미전도 종족이 남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전에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과 또한 그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전혀 들어 보지 못하고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이스라엘 혹은 교회에 대해 전혀 들어 보지 못하고 죽었던 사람들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어도 매우 많은 사람이 이에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이다. 이 많은 사람을 생각한다면 미전도 인의 구원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과연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어떤 이해도 없이 죽었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운명이 어떻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9 이 문제가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타 문화권의 사람들, 특히 타 종교를 믿는 많은 사람과 자주 접촉하기 때문이다. 타 문화권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 들어 보지 못한 자신의 조상은 어떻게 되는가?" 바로 이런 일이 내 집에서 나에게 일어났다.


12 그런데 우리는 이런 구절들을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신다는 구절들과 함께 접할 때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는가 아니면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구원하기 원하시는가? 예수님의 속죄는 오직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인이 되어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한가? 이것은 과거에도 있었던 논쟁이다. 독자들은 이 책의 저자 들이 같은 본문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 볼 수 있을 것이다.


13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런 두 가지 신념, 곧 하나님의 구원 의지(보편성)와 예수님의 구원의 유일성(특수성)은 미전도인에 대한 복잡한 문제를 푸는데 한계선을 설정해 준다.


15 이런 세가지 관점은 서로에게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점들을 지니고 있다. 이미 지적했다시피 세 관점 모두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의 궁극성과 유일성을 주장한다. 제한적 구원론포괄적 구원론은 공통적으로 신적 견인론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의 운명은 죽는 그 순간에 확정되며, 죽고 난 이후에는 어떤 구원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한편 제한적 구원론신적 견인론은 똑같이 포괄적 구원론에 대해 구원에 있어 복음에 대한 앎은 필수적이라며 반박한다. 그러면서도 제한적 구원론과 신적 견인론은 구원에 필수적인 복음을 죽기 전에 사람을 통해 전해야 한다는 데는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 


16 물론 미전도인의 구원에 대해 이 책에서 논의하지 않은 다른 관점도 존재 한다. 다른 관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어떤 사람들은 철저한 불가지론을 가지고 있다. 곧 미전도인의 구원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성경적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나 노먼 가이슬러와 같은 이들도 있다. 이들은 하나님이 일반 계시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 메시지를 전달해 주신다고 말한다. 곧 하나님은 자신에게 있는 지식에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지식을 주신다는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은 이른바 중간 지식론이라는 관점을 지지한다. 중간 지식론은 하나님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으려고 하는 자들을 미리 아신다는 것을 전제하는 이론이다. 곧 하나님은 그들이 전해들은 복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게 될 지를 미리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을 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 몇몇 가톨릭 신학자들은 사후 전도론의 성격을 지닌 이른바 마지막 기회론이라 불리는 이론을 제안한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이 죽는 그 순간에(죽음 이후가 아닌) 그들을 만나셔서 회심할 기회를 주신다고 믿는다. 


17 •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보편적 구원론을 주장한다. 곧 절대적인 온 인류가 예수님을 통해 실제적인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초대 교부 가운데 오리게네스와 같은 보편적 구원론가들은 예수님이 결과적으로는 모든 죄인을 아버지와 화해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 마지막으로 다윈주의자들이 있다. 다원주의자는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조차도 거부함으로써 전통적인 보편적 구원론을 넘어서 버린다. 다윈주의자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게 된다는 전통적인 보편적 구원론을 공격한다. 왜냐하면 보편적 구원론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세계의 주요 종교를 통해 구원 얻을 성도는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다원주의자인 존 힉과 폴 니터는 모든 주요한 종교에는 궁극 실재와 연결되는 확실한 길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신념을 지속적으로 견지하는 것은 다른 신앙을 편협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18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불일치를 인정하면서도 어떤 주요한 주제에 있어서는 상당한 일치가 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다원주의를 제외하면, 위에 언급한 모든 입장은 어떤 공통적인 특징을 이루고 있다. 첫째, 계시와 구원에 있어 예수님의 궁극성과 유일성을 확언한다. 이런 결정적인 합의는 교회사 전체를 통해 나타났다. 예수님은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시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다. 


19 둘째, 성경은 계시의 원천이라는 사실이다. 다윈주의를 제외한 모든 관점은 성경에서 발견 할 수 있는 모든 가르침을 아우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관점이 될 수 있도록, 성경을 통해 증거를 찾는다. 


19 셋째, 역사적인 선례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 역사상 어떠한 관점도 새로운 것은 없다. 교회 역사 전체를 살피며 모든 관점의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상적인 목록을 만들 수 있다.


19 다음으로 역사적 선례는 기독교인이 결코 이렇게 중요하지만 어려운 주제에 있어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초대 교부에게서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한 마음에 이르지 못했다. 넷째, 교회는 죽은 유아들과 정신박약자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더욱이 성인이 미전도인으로 죽었을 경우에 대해서는 그 운명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24 미전도인의 운명에 대한 다양한 관점 







01 포괄적 구원론 - 존 샌더스 

36 알다시피, 제한적 구원론자들은 미전도인으로 죽은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제한적 구원론자들은 "좁은 문"을 인용하면서 어떤 식의 "넓은 소망"도 불법적인 것이라고 결론 짓는다. 이런 "적음의 교리"는 불행하게도, 모든 사람이 사실상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는 보편적 구원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는 촉매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보편적 구원론으로 향한다. 심지어 불신자들 조차도 제한적 구원론자들의 가혹함 때문에 보편적 구원론을 지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제한적 구원론자들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셔서 죄 있는 미전도인을 모두 정죄하실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51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원수를 사랑하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며 천박한 사람을 자신의 잔치에 초청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 버리시기 이전에 은혜 안에서 모든 사람을 받아 주신다. 하나님은 모든 죄인을 받아 주신다. 불행히도 자신이 입은 옷 그대로 잔치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심판 받고 버림 받을 것이다. 이 말은 구원의 소망에서 제외된 자들이 결코 천국의 잔치에 포함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들에게 은혜를 허락하신다. 그리고 죄인을 받아주신 하나님의 받아주심을 의지하는 자들만을 초대하신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넓음은 매우 놀라운 것이다.


51 성부는 일반 계시와 양심, 인간 문화를 통해 성자와 성령으로 미전도인에게 다가가신다. 오직 예수님의 구원 사역만이 미전도인을 위한 구원을 가능하게 한다.


52 만약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계시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한다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그들에게 적용하실 것이다. 다시 말해, 만약 사람들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갖는다면, 미전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해 구원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53 어떤 기독교인은 오직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충분한 앎이 있어야지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지식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신학적 이해에도 불구하고, 구원자로서 구원 사역을 하신다.


78 나는 심판의 위협이 복음 전도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교의 탁자가 서 있으려면 한 개 이상의 다리가 필요하다. 만약 선교가 제한적 구원론이라는 다리에 의해서만 지지된다면, 탁자는 악의 문제의 무게로 말미암아 쓰러질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는데,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을 제외하고 누구도 구원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없는 분이 되고 만다. 게다가 만약 구원이 인간의 전도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실패와 불순종 때문에 영원히 고통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심판 받는 이유는 기독교인이 선교하지 않는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잃은 양을 찾아 다니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가? 이런 문제 때문에 선교의 탁자는 새로운 다리를 필요로 한다.


존 샌더스에 대한 논평-가브리엘 파크레 

86 특별 은혜가 이 땅에 오기 전, 하나님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노아 언약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일반 은혜를 주셨다. 이렇게 보존하고 준비시키는 일반 은혜는 특별 은혜를 대신할 수 없다. 구속사의 은혜는 바로 특별 은혜가 말해 주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하는 것이다. 왜 기독교는 언제나 이성주의자들("헬라인")과 걸리는 돌인 도덕주의자들("유대인")을 공격해 왔겠는가? 이것이 "특수성에 대한 공격"의 가장 깊은 의미다. 


86 라너가 기독교를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종교가 아니라고 한 것은 확실히 옳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천만 미전도인의 운명에 대한 문제를 이성적이고 공정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성적이며 공정하게 다룬다는 것이 '3D'로 표현된 기독교인의 삶, 즉 죄로부터의 영혼의 해방(deliverance),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지식과 신뢰가 있는 죽음(dead),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남(disclosure)을 제거하는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존 샌더스에 대한 논평-로널드 내쉬 

99 샌더스는 일반 계시를 통해 알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정보로 어떤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범신론적 종교 문화에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범신론의 종교 문화에서는 미전도인 신자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샌더스는 일반 계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규정하는 순간 어떤 사람은 넓은 소망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결국 특별 계시의 도움 없이는 구원 얻는 믿음을 바로 구성할 수 없다.


101 포괄적 구원론자들은 우리에게 "믿음의 원리"(히 11:6)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히브리서 11장 6절이 말하는 믿음은 최소한 두 가지의 필수적인 사실을 포함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곧 참되시고 인격적인 성경의 창조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과 또한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범신론자, 다신론자, 물활론자, 무신론자 등이 포괄적 구원론자가 말하는 믿음 원리의 조건들을 만족하게 할 수 있다고 보겠는가?



02 신적 견인론 - 가브리엘 파크레 

115 마지막 이론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강조하면서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악의 실재를 인정하고 있는가? 이런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한 답변은 미전도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의견과 유사한 점이 많다. 다음은 미전도인 문제에 대해 제안한 의견들이다. 

  1. 한 관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큰 무게를 두면서 하나님의 능력도 함께 고려한다. 이런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선할 것이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속에 사는 모든 사람도 선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방식에 따라 바른 것을 찾을 것이고 바른 것을 따라 행할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누구도 심판하려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바른 길로 가도록 하실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은 구원 받게 될 것이다. 이 교리는 '보편적 구원론'이라 불린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다면, 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2. 다른 관점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하면서 악의 실재도 확증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존재를 결정할 것이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 이전에 어떤 사람은 구원하기로, 나머지는 그들의 죄 가운데 내버려 두기로 선택 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아니면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을 제공하시고 나머지에게는 그렇지 않으시기로 선택하셨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을 '제한적 구원론'이라 부른다. 그런데 만약 여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독단적인 결정 때문에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선한 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3. 또 다른 관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악의 실재를 함께 강조한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말한다.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를 못 가졌다면, 선과 악에 대한 어떤 지식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포괄적 구원론'이다. 그런데 만약 그리스도께서 할 수 있는 사역의 때와 방법에 세상적인 한계가 따라온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전능하다고 할 수 있는 가? 다시 말해 그리스도가 구원하는 대상이 자신 이후에 세상에 태어난 자들이며 그들 가운데서도 오직 자신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라면,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은 상당한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이런 대중적인 이론도 신정론의 문제와 미전도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133 개인 신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독교 전통은 미전도인에 대한 질문을 어렵게 만든다. 개인 신앙을 강조하는 전통은 선교사들이 열정을 갖고 복음 전도를 해야 할 이유가 되었고 뉴 잉글랜드 회중교도들도 이런 이유로 선교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개인 신앙을 강조하는 전통은 주류 교회 들, 특히 마르틴 루터의 영향을 받고 있는 교회들 안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만약 루터가 말한 대로 "믿음에 의한 칭의"가 구원에 있어 핵심적인 것이라면 공정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얻을 수 있도록 믿음을 가지게 해야 한 다. 그리고 만약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면"(롬 10:17), 모든 사람은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134 전통 로마 가톨릭이 루터의 "오직 믿음에 따른 칭의"로 말미암아 도전받고 비판받았지만, 사실 개인적 신앙은 언제나 가톨릭이 가르쳤던 것이다. 가톨릭에 있어 미전도인의 운명에 대한 질문은 19세기에 이르러 다윈주의의 영향을 받아 "마지막 결정"이라 부르는 가르침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개신교에서 신적 견인론으로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가톨릭은 연옥 교리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134 19세기에 들어와 카디날 뉴먼과 같은 가톨릭 신학자들은 죽음의 순간 그 자체가 "마지막 근본적인 결정"의 순간으로서 신자나 미전도인이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와 만나게 되는 때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석하는 학자들 대부분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에에서 행한 일들이 심판 때 고려되기 전에, 그리스도를 위해 최종적으로 결정한 바가 먼저 고려 된다는 개념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134 종교 다원주의가 더욱 세력을 떨치자, 로마 가톨릭 안에서 죽음의 순간에 마지막 결정이라는 가르침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상과 경쟁하며 성장한다. 여기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들의 가진 최고의 지식에 따라 구원 받을 수 있는데, 결국 그렇다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142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경 진리에 대한 정경적 해석은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사상을 발견하게 해 준다. 여기에 아주 명백한 사상이 있는데, 이 사상은 곧 개인 구원은 개인의 믿음과 분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선포된 복음을 듣는 것은 구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적 견인론은 누구에게든지 구원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경계인 "죽음"을 포함해 경계를 만드는 모든 사람과 싸우게 될 것이다. 


가브리엘 파크레에 대한 논평-로널드 내쉬 

147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셨다고 가정해 보자. 파크레가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불신자의 죽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선택한 불신자를 얻으려 하신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생각은 내가 생각하기에 역사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는 주제다. 과연 이런 생각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일까? 만약 사후 전도론이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간에게 지워진 경계로서의 죽음을 우리 마음대로 처분해서는 안 된다. 이 점에 있어 독자들은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신적 구원론이 잘 축조된 건축물이라 할지라도, 가정 이상에 아무 것도 아니다.


가브리엘 파크레에 대한 논평-존 샌더스 

156 포괄적 구원론에 따르면 자신에게 알려진 범위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은 후에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 만남은 복음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죽은 이후에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믿음이 확정되고 또한 그들을 구원한 분에게 그들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03 제한적 구원론 - 로널드 내쉬 

175 포괄적 구원론자들은 자신의 체계를 존속시키기 위해 기독교인과 신자 사이를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나는 이런 포괄적 구원론과 얽혀 있는 관련 주제로 눈을 돌리려 한다. 존 샌더스는 신자들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구원 받는 모든 사람"으로 정의한다. 반면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알고 이에 참여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천국에 가면, 서로 다른 길을 통해 천국에 들어온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신자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생각은 포괄적 구원론만이 주장하는 독특한 관점이다. 


175 포괄적 구원론자들의 믿음에 대한 이해. 포괄적 구원론자들은 믿음이 구원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말하면서도 믿음이 그 믿음의 지시 대상으로서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포괄적 구원론자들은 미전도인의 구원이 자신이 가진 지식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포괄적 구원론자들이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어떻게 수많은 미전도인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일반계시의 지식만으로 그리스도와 아무 관련이 없는 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178 나는 사람들이 단순히 여기저기 퍼져있는 정보의 조각들을 아는 체하며 이에 동의하는 것을 통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구원하는 믿음이 믿음의 필요 조건의 하나로 어떤 정보에 대한 앎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포괄적 구원론자들과 같이, 구원을 위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것도 또한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 믿음도 필요 없다고 하는 생각은 얼마나 위험하고 비성경적인 것인가? 더욱이 이같이 위험한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만약 어떤 사람이 이른바 "믿음의 원리"라고 부르는 것에서 이런 문제를 깨닫게 된다면, 포괄적 구원론 체계의 나머지 내용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179 구약의 신자들은 특별 계시와 중요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구약 신자들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내다보는 표징과 의식과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구약의 신자들을 빗대어 현대 미전도인도 구원 받은 신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것은 말도 안 된다.


186 여호와 하나님을 믿은 1세기 신자들의 공동체 전체는 일종의 과도기적인 세대였다. 예수님은 새 언약을 수립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이 예언한 죄인들을 위해 죽고 다시 살아날 사명을 지닌 약속된 메시아, 즉 예수님에 대해 듣는 것은 신실한 유대인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자신의 유대교 형제, 자매들에게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열심이었던 이유다. 마찬가지로 이와 똑같은 메시지를 듣는 것은 여호와를 믿는 이방인에게도 중요한 것이었다.


204 또 다른 주제: 사후 전도론자들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유일한 이유가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절할 수 있는 기회가 미전도인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대안이 사후 전도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틀린 것이다. 사람들이 버림받는 이유는 로마서 3장이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10, 23) 따라서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 버림받는 조건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버림 받았다(시 51:5, 엡 2:1-3).


208 생각해 보라. 개인적으로 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집과 가족을 떠난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지로 갔다고 가정해 보자. 선교사들 때문에 선교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만약 선교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도 거절하게 된다면, 선교사가 희생한 결과는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선교지 사람들의 정죄를 확정하는 것이 된다. 반대로 만약 선교사들이 선교지를 떠나 집에서 안락함을 즐기며 평생을 보낸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렇다면 미전도인의 영원한 소망은 더 이상 위태로워지지 않을 것이다. 선교지 사람들이 포괄적 구원론과 사후 전도론의 가정 아래 있다면, 오히려 그들의 구원가능성은 선교사가 오지 않았을 때 이세상에서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만약 미전도인이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듣고 거부하게 된다면 더 이상 포괄적 구원론 혹은 사후 전도론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 땅에서 그들의 정죄는 확실해지는 것이다. 


214 20세기 말에 들어와 복음주의 안에서는 포괄적 구원론과 사후 구원론을 영향력있는 입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약점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입장을 지지했던 복음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면밀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내 생각에 많은 사람에게 포괄적 구원론과 사후 구원론은 미전도인의 운명에 대한 어려움들을 나름 고통없이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확실히 이 이론들은 우리 정서에 강력한 호소력을 준다. 그러나 만약 실제 포괄적 구원론과 사후 구원론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것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값비싼 신학적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포괄적 구원론자들과 사후 전도론자들이 세운 가정은 깊은 사색 가운데 나왔지만, 그들의 결론은 신학적으로 해롭다.


로널드 내쉬에 대한 논평- 존 샌더스 

224 내쉬는 죽은 유아들이 스스로 범한 자범죄가 없기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반대로 성인 미전도인은 그런 개인적인 죄가 있기 때문에 버림 받는 것이라고 주장 한다. 만약 그렇다면, 학살당한 유아들 같은 경우에는 더욱 형편이 좋다. 왜냐하면 학살당한 유아들에게는 성장할 기회가 전혀 없었으며, 개인적인 죄를 지을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구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쉬의 논리라면 역사적으로 미전도 국가에서 살다가 죽은 유아들은 모두 구원 받은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보다는 조금 더 살았기 때문에 정죄당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확실히 내쉬의 논리에서 하나님은 아이들을 사랑하셔서 그리스도를 통해 아이들을 구원하는 분이지만 성인들은 사랑하지 않으시는 그래서 성인들을 위해서는 전혀 영생을 주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러나 내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예수님의 속죄에 기초해 아이들과 성인을 모두 사랑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두 그룹에게 모두 구원을 주시려는 분이다.


226 제한적 구원론에 따르면 성인 미전도인은 인간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들어야만 구원 받을 수 있다. 선교사가 성인 미전도인에게 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모두 정죄 받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선교에 실패하게 되면 성인 미전도인은 구원의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셔도, 기독교인의 선교하지 않는 죄 때문에 구원하실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기독교인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무능력한 존재가 된다. 만약 하나님이 구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안맞는 것이 되고 만다. 


226 다시말해, 하나님이 은혜로우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지만, 또한 공의로우셔서 죄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이것이다. 바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인과응보적인 공의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 행하셨다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공의는 인과응보적일 뿐 아니라, 분배적이다. 제한적 구원론자들은 후자의 경우를 지나쳐 버린다. 하나님은 자신의 분배적인 공의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구속을 오직 소수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분배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이 확보하신 구원을, 살아 있든 모든 사람 개개인에게 유용할 수 있도록 하신다.


228 근본적으로 나는 하나님의 은혜, 자비, 공의, 사랑에 대해 내쉬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는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이 많으셔서 이 지구에 사는 모든 개개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알고 있다. 하나님의 분배적인 공의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사람에게 제공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 때문에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 때문에 예수님은 예수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제한적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모든 미전도인 신자들에게 구속을 적용하신다. 내가 이해하는 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분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사랑을 죄인들에게 나누도록 해준다.


로널드 내쉬에 대한 논평- 가브리엘 파크레 

235 제한적 구원론은 구원을 인류 가운데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제한시킨다. 그리고는 궁극적으로 구원의 영역을 우리 노력이 복음을 전파하는 곳까지로 한정시키며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인내가 의미하는 것에는 그분의 자비의 넓이(모든 사람에게 미치는)뿐 아니라 길이(죽음 너머에까지 미치는)도 포함된다. 죽음의 장벽을 허무신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을 듣지 못한 자가 없을 때까지 인내하시면서 미전도인에게 말씀을 전하실 것이다.


235 세 번째 이유는 복음에 대한 응답이 운명을(따라오는 모든 결과를 포함해) 결정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복음에 대해 궁극적으로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이세상에서의 선교사든, 저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이든 어떤 차이도 만들지 못한다. 선교사의 선교는 지금 여기에서 영원한 구원의 복의 가능성을 진척시키는 것이지, 어떤 허구적인 "삶의 선택"을 끝맺는 것이 아니다. 


236 더욱이 하나님은 공정하시다. 죽은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설교가 복음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도록 하는데 더 유용한 것은 아니다!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복음에 반응 할 수 있는 조건은 같다. 죽음 이후 복음에 대한 반응이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지금 선교사들이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정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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