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3 청일·러일전쟁 2


청일.러일전쟁 - 10점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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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게는 1874년의 대만 출병의 성과를 유지·확대하려는 의지나 군사력은 없었다. 일본이 계속적인 전쟁의지를 갖게 된 것은 청일전쟁 이후이다. 대륙에 확보한 이권이나 식민지를 유지·확대하는 것이 아시아·태평양 전쟁까지 이어진 일본의 국가목표였다.

– 청일전쟁의 의의: 제국주의 국제체제에 가담, 계속적인 전쟁의지의 출발점, 매스미디어에 의한 국민의 탄생

– 복합전쟁으로서의 청일전쟁: 1)7월 23일 전쟁(대 조선), 2)협의의 청일전쟁(대 청), 3)농민전쟁 섬멸작전(대 조선민중), 4)대만정복전쟁(대 대만민중)

– 러일전쟁의 의의: 군사적 사회로 가는 길,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아시아의 승리가 아니라 아시아로 진출하는 유럽세력과 나눌 부분을 일본이 얻기 위한 전쟁

–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 구미 모델을 어떻게 배우는가; 근대국가 건설을 두고 내부에서 벌어진 구상과 실천의 경쟁; 구미의 여러 법제도가 정착해가는 과정; 군대가 국가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급성장의 과정에서 국제관계를 구축한 방식



조경달, 《이단의 민중반란 - 동학과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조선 민중의 내셔널리즘

크리스토퍼 벡위드,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판카지 미슈라, 《제국의 폐허에서 — 저항과 재건의 아시아 근대사



지난 시간에서 일본 근현대사에서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상세히 이야기했다. 오늘부터 본문에 들어가기로 한다. 일단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제1장 초기의회, 제2장 조약개정, 제3장 청일전쟁이다. 제2장 3절을 보면 "이토 히로부미와 자유당의 모색" 이렇게 되어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 메이지헌법을 성립시키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큰 역할을 한 것은 굉장히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이후로도 이토 히로부미는 한반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에 놓여있다. 결국 그 관계 속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저격을 받고 사망을 하게 되는데 어쩌면 그 사람의 행적이 최후를 예감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4장 대만 정복 전쟁, 제5장 청일 전후와 국민 통합, 제6장 민우사와 평민사, 제7장 러일전쟁과 한국병합 그리고 맺음말이 빛나는 메이지론과 내셔널리즘이다. 빛나는 메이지론, 일본 근현대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시바 사관이라고 하는 것의 주장이 담겨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두 권의 책을 읽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이번에는 7개의 챕터를 챕터 단위로 읽지 않고 전체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중심으로 해서 재정리한 내용을 가지고 얘기를 하겠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지난 시간에 거론했던 책 중에 가토 요코의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해당하는 부분을 조금 거론하고, 그리고 나카츠카 아키라의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는 내용 전체를 모아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의외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관련된 부분에 곁들여 읽는 책들이 2권이나 된다.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는 책이 얇은데도 하나의 굉장히 압축적이면서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역사책을 읽는 또는 역사공부를 하는 방법과 태도가 잘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894년은 한반도 역사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사건이 갑오농민전쟁이다. 갑오농민전쟁을 둘러싸고는 저작들이 많은데 그것도 다루면 곁들여 읽는 책이 3권이 되는 셈이라서 생각을 더 해볼 예정이다. 조경달 교수의 《이단의 민중반란》을 고려 중이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개관을 해보면 1894년에 청일전쟁이 일어났는데 20년 전에 1874년에 일본에서는 대만에 출병을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이것이 근대 일본 최초의 해외파병이고 그때만 해도 이 파병의 성과를 유지하고 확대하려는 의지나 군사력은 없었다. 일본이 아직은 침략의 의지나 물리력이 없던 것. 나중에 중일전쟁을 전후해서 나오는 대동아공영권 이런 얘기들은, 가토 요코의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을 보면 그때 그때 전쟁이 있을 때마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들이 만들어지는데 그런 논리들은 아직 나오지도 않을 때이다. 1874년의 대만 출병의 성과를 유지·확대하려는 의지나 군사력은 없었다. 일본이 계속적인 전쟁의지를 갖게 된 것은 청일전쟁 이후이다. 청일전쟁을 겪어가면서 한반도를 발판으로 삼아 대륙에 확보한 이권이나 식민지를 유지 확대하는 것이 아시아·태평양 전쟁까지 이어진 일본의 국가목표였다. 한나라의 국가목표가 해외에 확보한 이권과 식민지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것. 굉장히 멋있어 보이지만 어이없는 것이다. 침략적인 것이다. 집단적으로 사로잡히면 그렇게 되는 것. 특히 《일본, 군비확장의 역사》의 제1장을 보면 일본의 군대가 1800년 후반만 해도 아직 형편없는 상태였다. 청일전쟁이라는 것이 방아쇠를 당긴 셈.


전체를 개관해보면 청일전쟁이 벌어지면서 일본은 제국주의 국제체제에 가담하게 된다. 그 다음에 계속적인 전쟁의지를 갖게 되는 전쟁의지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려면 이 전쟁을 정당화하고 국민들에게 전쟁의 필요성을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선전활동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매스미디어에 의한 국민의 탄생이라는 효과도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청일전쟁을 크게 보면 국제관계론에서 보면 제국주의 국제체제에 가담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국제 관계와 국내 사정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보자면 이때 이후로 50년 동안 계속된 전쟁과 그 전쟁을 계속하려는 의지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전쟁을 수행하는 국민을 탄생시키기 위한 전국적인 노력이 시작되었다. 


저자는 크게 묶어서 하나의 이름으로 청일전쟁이다 라고 부르지만 각각의 국면을 4개의 국면으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7월 23일 조선의 경복궁을 점령한 사건. 이것은 조선을 상대로 한 전쟁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청나라를 상대로 한 협의의 청일전쟁이 있고, 그 다음이 세 번째로 조선 농민전쟁 섬멸작전, 여기서 섬멸이라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이게 조선민중을 상대로 한 전쟁이다. 이것을 잘 다루고 있는 것이 《이단의 민중반란》 이런 책들에 나온다. 여기서 말하기를 농민전쟁 섬멸작전을 일본이 해외에서 근대 이후에 벌인 최초의 학살이다 라고 말한다. 중국의 남경대학살 같은 것을 얘기하는데 이것은 나중 일이고 사실은 일본에서 섬멸 작전에 나섰다는 것이다. 사람을 싹 쓸어 없앤다는 것. 그래서 일본의 해외 침략 이후 학살 사건으로는 이것이 최초라는 것. 이런 점들을 유념해 둘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대만민중을 상대로 한 전쟁이 있는데 그것이 대만정복전쟁이다. 이렇게 4개를 묶어서 넓은 의미의 청일전쟁이라고 하겠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청일전쟁을 복합전이라고 부른다.


121 이 책에서는 개시 시점에 조선과의 '7월 23일 전쟁'도 고려하여, 광의의 '청일전쟁'을 1) 7월 23일의 조일전쟁, 2)협의의 청일전쟁(1894년 7월 25일 ~1895년 4월 17일), 3) 대만 정복 전쟁(1895년 5월 10일 ~ 동년 11월 30일)의 세 기간을 합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렇게 보면 벌써 일본은 청일전쟁부터 일본 이외의 아시아 민중들과 상당한 적대세력으로 대립하게 된다. 그 적대의 폭과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이 여기서 필요하다고 하겠다. 지금 현재 아베 총리가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를 개정해서 뭔가를 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아시아 민중들에게 적대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의 원인이 어디있는가. 일본이 식민지 청산을 자력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역사가 60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의 연쇄 속에서 벌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600년 전까지 일들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100년 안쪽에서 일어난 일들이 한번 매듭을 짖고 가지 못하면,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짖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노골적이고 아무런 성찰 없는 반일감정을 갖자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운 현대 국제관계 그리고 일본의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러일전쟁을 전체적으로 보면 러일전쟁이야 말고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사적 사회로 가는 시작이다. 청일전쟁이 계속적인 전쟁의지의 출발점이라면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은 군사적 사회로 가는 발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쟁을 통해서 내정의 어려움을 극복해본 경험이 있으면 그 경험이 상당한 정도로 긍정적으로 작용을 한다. 1894년 일본 내정의 위기가 대만과 청나라와 조선을 상대로 한 복합전쟁인 청일전쟁을 통해서 극복되었다고 한다면 1910년 대에도 내정의 위기가 있었다. 이 위기는 제1차 세계대전, 《중앙유라시아 세계사》에 나온 얘기처럼 앞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을 유럽대전이라고 쓰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1910년 대 내정의 위기는 제1차 세계대전, 즉 유럽대전을 통해서 극복했다. 그런데 그 중간에 1904년에 러일전쟁이 있다. 이 전쟁들이 내정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 또한 일본에게 계속해서 전쟁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일종의 적극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제국의 폐허에서》라는 책이 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을 때 아시아의 피해 받고 억압받던 민중들이 굉장히 환호했다. 일견 옮은 지점도 있지만 왜 환호했는가.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아시아의 승리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라다 게이이치는 이 책에서 분명하게 규정한다.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아시아의 승리가 아시아로 진출하고 있는 또는 진출하고자 하는 유럽 세력이 있고, 그 세력에 대항해서 일본이 이겼다는 것은 유럽세력을 아시아에서 전면적으로 물리쳤다는 것이 아니라 유럽세력과 서로 나눠 먹을 것을 일본이 아시아에서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다시 말해서 서구제국주의와 같은 놈이 된 것. 탈아입구,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의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라고 하는 일본의 오랜 꿈이 드디어 러일전쟁의 승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대한 전반적인 개관이고, 이 책에서는 핵심적인 주제를 여섯 가지 정도로 얘기한다. 첫째가 일본에서는 구미 모델을 어떻게 배우는가. 그리고 그렇게 배운 것들을 근대국가 건설에 적용하고 적용할 때 벌어지는 벌어진 구상과 실천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그리고 구미의 여러 법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정착해가는가. 그리고 근대국가와 사회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군대가 급속도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 데 이 군대는 어떻게 국가와 사회를 변화시켰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급격하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제관계는 어떻게 구축하는 가, 그리고 서구화라는 과정이 사실 일본을 통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아시아 공동의 지적유산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꽤 많이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일본에서는 계승되고 확대되었는가. 이런 여섯 가지 핵심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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