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3 청일·러일전쟁 6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 10점
나카츠카 아키라 지음, 박맹수 옮김/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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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원제: 歴史の偽造をただす―戦史から消された日本軍の「朝鮮王宮占領」)


– 역사가의 기본 책무: 1차 사료의 발굴, 사료비판과 해석

– 책의 핵심내용: “청일전쟁(1894-1895) 개전에 즈음한 일본군 최초의 무력 행사가 주도 면밀한 계획에 바탕한 서울 경복궁 점령이었다는 것과, 그 사실이 일본 육군이 공식적으로 펴낸 ‘일청전사'[日淸戦史]에서 위조된 이야기로 바뀌었다는 것을 당사자인 일본 육군참모본부의 기록을 통해서 실증… 그와 같은 역사 위조가 결코 일시적 발상에서가 아니라 근대 일본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왔음을 정확한 사료를 실례로 들어 논증”


– 역사가의 책무: “학문으로서 역사에 걸맞는 공헌은, 정치적 정당화를 위해 왜곡되어진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고, 나아가 권력의 역사적 정당성을 물어 권력을 초월하는 통찰을 미래를 향해 제기함으로써,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역사 감각과 비판 정신 등이 뿌리내릴 수 있게 힘을 보태는 일일 것이다.”(타니우치 유즈루溪內謙, <<소비에트사의 새로운 세대>>)




일본 근현대사의 세번째 책인 《청일•러일전쟁》을 건성으로 읽은 듯한 느낌이 있다.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의 경과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또 그 당시 일본에서 일어난 일들도 본래 저자가 목적으로 하던 바는 그런 바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것이었을테데 이 부분을 도외시하고 전쟁의 의의라든가 이어지는 결과에 집중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아무리 일본 근현대사를 읽는다 해도 현재 한국인의 관점에서 읽는다고 하면, 그것도 하나의 보편적인 역사관을 상정하지 않은 일개 개인이 읽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꼭 정밀하고 조밀하게 읽을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다음에 《청일•러일전쟁》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오늘날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에서 열까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국가의식을 강하게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것 없이 그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별로 그런 것이 없었겠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국가의식 또는 민족의식 이런 것들이 형성되는 하나의 일종의 형성사를 볼 수 있다는 느낌이 있다. 지리적인 조건이나 또는 그보다는 문화적인 조건들이 결합될 때 하나의 국가 또는 민족, nation이라는 단어가 국가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민족, 국민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가 지리적인 조건, 종족적인 조건, 문화적인 조건들이 결합될 때에야 가능할 텐데 일본 근현대사를 읽어나가다 보면 과연 그런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일본과 한국은 상당히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그런 민족의식, 국가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본보다 오래된 것은 틀림없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한반도에서 일국 지배를 오래도록 해왔고 완벽한 행정력을 가지고 통제한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 땅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상당한 정도로 강력하게 또는 어떤 시기에는 방기한 적도 있지만 통제해왔기 때문에 일본과는 다른 민족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원을 알아보기가 어려운데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전후한 시점을 살펴보면 그런 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청일•러일전쟁》은 이로서 정리를 하고 그에 이어서 나카츠카 아키라의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를 간단하게 또 한번 소개하고 그 다음에 가토 요코 교수가 쓴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을 소개하기로 했었다. 오늘은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겠다.


역사책이라고 하는 것은 의식을 고양시키고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하는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무미건조하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규정해 들어가자면 일단 제1차 사료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1차사료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1차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가 1차사료다 라고 말해야 1차사료가 된다. 우선 역사책은 1차사료를 가지고 쓰여진다. 그 다음에 1차사료를 발굴한 다음에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묻는 사료비판이 있고 그것을 해석해서 역사책이 쓰여진다. 여기까지가 역사가가 하는 기본적인 책무이다. 이런 기본 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역사가에는 선악의 가치판단이나 민족의식, 국가의식이 있을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을 흔히 실증사학이라고 해서 역사가가 실증사학에만 매달리면 안된다는 자칭 역사가가 있다. 실증사학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사의 한 유파가 아니라 역사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실증사학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것을 놓고 해석을 판타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비판적으로 검토된 사료에 근거해서 하는 것이 역사가다.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는데 그 차이가 비판된 사료로서 이루어져야 해석의 차이가 타당한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겨나는 문제가 역사의 위조이다. 역사를 위조한다는 것은 역사가의 기본책무를 스스로 져버리고 있는 것이다. 가령 특정한 목적을 가진 국가나 미디어가 개입해서 그것을 위조된 역사를 날조하고 유포하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나카츠카 아키라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방금 얘기한 위조된 역사 그리고 그것을 미디어 의해서 의해서 또는 국가기관에 의해서 날조하는 문제이다. 청일전쟁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사실을 둘러싸고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역사가는 죄를 짓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청일전쟁을 둘러싼 경과를 어떻게 일어나고 진행되고 귀결되었는가를 일본역사가들이 서술하면서 공식적인 역사, 「일청전사」가 날조되었다고 하는 것이며, 어떻게 밝혀내었는지를 드러내 보이는 책이다. 그것의 핵심이 경복궁 점령이다. 이 책의 핵심내용은 1894-1895년 청일전쟁 즈음에 일본군 최초의 무력행사가 경복궁 점령사건인데 지금까지는 공식 전쟁사에 따르면 우발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는 목적 의식적으로 사료를 찾다보니 주도면밀한 계획에 바탕을 둔 점령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이 일본육군이 공식적으로 펴낸 「일청전사」에서는 위조된 이야기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아내었는가 육군참모본부가 기록한 이를테면 공식전사를 펴내기 위한 초록을 대조해 보고 알았다. 그리고 그 사료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니 「일청전사」가 날조되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역사위조가 결코 일시적인 우연적인 실수가 아니라 또 한번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이 책에서는 정확한 사료를 들어 논증하고 있다. 이때부터 일보에서 역사위조가 시작되었고 그러니 오늘날 내각의 관료들이 사료들을 말하고 싶어도 사실을 배운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일본 역사교육의 현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는 것도 있고, 잘못한 것을 알지 못하고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사과를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청일전쟁에 내놓은 공식전사가 위조되었다. 그리고 그 위조를 확인하는 방법은 육군참모본부가 내놓은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역사위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세가지가 이 책의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1894년 경복궁 사건에 대한 상세한 경과를 알아내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성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 위조에 관한 문제이다.


순서대로 보면 1차사료를 어떻게 발견했는가. 저가가 1994년에 딱 100년되던 해에 후쿠시마 현립 도서관 <사토문고>에서 구육군참모본부가 기록한 「일청전사」의 초안 일부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공식적으로 간행된 「일청전사」와 조금도 닮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간행된 「일청전사」가 신문이나 잡지, 학교교육을 통한 조작 그리고 잘못된 역사인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계속 나아갔다는 것.


그렇다면 이런 것을 통해서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타니우치 유즈루가 쓴 《소비에트사의 새로운 세대》라는 책에서 나온 얘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인용문이 멋있다. 역사가의 책무를 읽어보면 "학문으로서 역사에 걸맞은 공헌은, 정치적 정당화를 위해 왜곡된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고, 나아가 권력의 역사적 정당성을 물어 권력을 초월하는 통찰을 미래를 향해 제기함으로써,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역사 감각과 비판 정신 등이 뿌리내릴 수 있게 힘을 보태는 일일 것이다." 이를 다시 한번 보면 학문으로서 역사에 걸맞은 공헌은 즉 역사가 하나의 학문이라면 역사라는 학문이 할 수 있는 일은 첫째가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는 것이라는 것. 대개 역사적 진실이 왜곡되는 경우는 정치적 정당화를 위해서 왜곡되기 마련이다. 역사가들끼리 비판된 사료를 놓고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벌이는 것을 역사논쟁이라고 한다. 정치적 정당화를 위해서 벌이는 짓은 역사전쟁이다. 둘째로 할 수 있는 일은 권력의 역사적 정당성을 묻는다. 여기서부터가 역사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차원이다. 이게 그런데 앞에 나온 얘기와 긴밀하게 관련이 되어있다.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면 그게 어떻게 보면 역사적 진실을 왜곡했던 권력의 역사적 정당성을 묻는 것이 된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서 권력을 초월하는 통찰을 제기한다. 권력을 초월한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말 같지만 역사가의 기본적 책무, 즉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역사 감각과 비판 정신 등이 뿌리내릴 수 있게 힘을 보태는 일일 것이다.

8 나는 청일전쟁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1994년 봄, 후쿠시마 현립 도서관 <사토문고>에서 청일전쟁 발발과 관련된 진귀한 기록을 발견했다. <사토문고>는 후쿠시마 현 코리야마 시의 실업가 사토 덴키치(1887~1967)가 군사•전쟁과 관련된 방대한 서적•사료•사진 등을 수집한 문고인데, 거기에 구일본 육군참모본부가 기록한 <「일청전사」 日淸戰史>의 초안 일부가 소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일본군이 청일전쟁의 첫 번째 단계로 감행한 무력행사, 곧 조선왕궁인 서울의 경복궁 점령(1894)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일청전사」> 초안이 같은 참모본부가 공식적으로 펴낸 청일전쟁의 전사(戰史), 즉 <메이지 이십팔년 「일청전사」>(제1권은 1904년 간행, 이하 <공간전사>라 함)와 조금도 닮은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즉, <공간전사>는 단지 간략할 뿐 아니라 완전히 '꾸며낸 거짓말'이 었음을 이 초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구일본 육군참모본부가 조선왕궁점령 전말을 상세하게 기록하면서, 진실을 덮어버리고 그 자리에 조작된 이야기를 채워넣은 것이다. 공권력이 '역사를 위조한' 사실이, 다름 아닌 바로 그 참조본부의 기록을 통해서 입증된 셈이다.


9 "모든 권력은 과거를 자기 정당화에 이용하려고 한다. 정당화에 어울리지 않는 과거를 억압하며, 잘 어울리는 과거만을 문맥에서 떼어내 과장하고, 역사를 허구로 바꾸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권력이 행하는 이러한 과거 재단(栽斷)에 대해 역사가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 인가. 권력의 정당화에 봉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 모른다. 사실, 이제까지 역사가는 자신의 의지로 또는 강제로 '사관(史官)'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학문으로서의 역사에 걸맞은 공헌은, 정치적 정당화를 위해 왜곡되어진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고, 나아가 권력의 역사적 정당성을 물어 권력을 초월하는 통찰을 미래를 향해 제기함으로써,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역사 감각과 비판 정신 등이 뿌리내릴 수 있게 힘을 보태는 일일 것이다." - 타니우치 유즈루, <소비에트사의 새로운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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