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5 파시즘 2


파시즘 - 10점
케빈 패스모어 지음, 이지원 옮김/교유서가


책읽기 20분 | 파시즘  [ 원문보기]

제6장 재에서 되살아난 불사조?


- 사후의 파시즘: 2차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 등장한 파시스트적 극우 정치운동과 정당들

- 설명: 현대의 극우와 역사적 파시즘의 관계


전간기 파시즘과 현대의 극우 운동의 실질적 연속성: 극단적 내셔널리즘, 소수종족에 대한 차별, 반페미니즘, 반사회주의, 대중주의, 기성의 사회적·정치적 엘리트 세력에 대한 반감, 반자본주의, 반의회주의


둘 사이의 차이점: 현대의 극우운동은 대중동원, 준군사조직적 폭력, 유일정당 체지를 추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 잠재된 차별의 가능성을 활용하고자 한다. 이것은 현대의 극우가 파시즘보다 ‘덜 악하다’거나 ‘덜 위험하다’는 뜻이 아니다.”


참조

후지이 다케시,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 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 , 역사비평사, 2012. 서평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은 해방 후 중국에서 돌아온 이범석이 1946년 10월에 출범시킨 단체이다. 이 책은 족청이 출범하고 1949년에 해산된 다음, ‘족청계’가 몰락하는 1953년까지의 해방공간을 다루고 있다.


족청은 “미군정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출범”하였으며, “남한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조직되었다.” 이렇게 조직된 “족청의 활동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이 훈련소에서 실시된 훈련이었다.” 이 훈련은 “광범위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 실시”되었는데, 이는 “족청의 목적이 대공투쟁을 위한 물리력의 동원에 있지 않고 ‘건국’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있음을 잘 보여준다.” 족청이 근본으로 삼은 이념은 민족주의였다. 1947년 10월 중순 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족청의 “단지(團旨)”는 이것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1. 우리는 민족정신을 환기하여 민족지상 국가지상의 이념하에 청년의 사명을 다할 것을 기함.” 족청이 내세운 민족주의는 “민족의 유대로서의 혈통”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이범석의 다음 말은 그것을 보여준다: “피! 무서운 피! 냉엄하고도 열렬한 피! 부자(父子)의 피! 골육(骨肉)의 피! 민족의 피! 이 피야말로 모든 문제의 시초요 결말입니다. 우리 조선민족청년단의 사업은 이 피에 대한 연구·분석·종합, 이 피의 조직·재생·배양, 그리고 활력, 무한한 활력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정부가 수립되면서 “족청 인사들은 뜻밖에도 한국 정부에서 큰 몫을 차지하게 된다. 이범석이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고 안호상이 문교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이범석은 국무총리직의 수행에는 “특별한 방침이 없었으나, 국방부 장관으로서 이범석에게는 “최적임자”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분명한 방침이 있었다. ‘반공 군대 건설’이 그것이다.” 이범석은 특히 군에 대한 정치훈련(政治訓練), 즉 “‘정훈공작’을 중요시했다.” “안호상이 문교부 장관으로서 내세운 방침은 ‘민주적 민족주의’였다.” 안호상은 “예전부터 민족을 강조했지만”, 이 시점에서는 “인종주의적 민족관을 분명히 했다.” 그러므로 그가 내세운 ‘민주적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와 같은 규범을 ‘민족’에 종속시킴으로써 ‘구미식 민주주의’를 배척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이는 나치의 인종주의와 연관된다. 본래 족청에서 나치즘의 영향을 뚜렷하게 보여준 이는 “독일에서 3년 동안 히틀러유겐트의 열광적인 멤버”였으며, “1931년부터 1935년까지 독일에서 살았으며… [족청] 중앙 훈련소 소장”을 지냈던 강세형이다. 안호상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기는 하였으나 족청에 가담했던 당시에는 물론 해방 이전에도 나치즘을 적극적으로 찬양하지 않았다. 문교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안호상은 “나치스 독일의 교육상 지도정신과 사범 교육의 혁신운동”을 살펴보면서 “나치스가 국가 민족을 위하여 분투하던 희생적 정신과 실천적 기백은 우리들이 꼭 본받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로써 족청계는 피로 연결된 민족주의에 나치스 이념에 대한 찬양을 더해 파시즘의 성격을 띠게 되거니와, 여기서 “세계 질서의 안정화를 위해 파시즘의 청산을 중요하게 생각한 미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인식”과 “갈등의 불씨”를 남기게 된다.


족청은 이범석이 국무총리로 임명된 것에서도 나타났듯이, 이승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여순 사건을 계기로 “독자적인 존재”로 남기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이승만은 이 사건 이후 “모든 청년단체를 합처 민족 운동을 전개시키는 한편 우수한 청년을 선출하여 민병(民兵)을 조직할 계획”을 밝혔고, 이에따라 ‘대한청년단’이 조직되면서 족청도 해산된다. 그러나 족청 출신들, 즉 족청계는 ‘일민주의(一民主義)’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다시금 기반을 확보하려 한다. “일민주의는 미군 철수가 결정되어 정부로서 독자적 반공 체제 확립이 시급했던 1949년 4월에 국민보도연맹이 결성되는 데 맞추어 좌익을 전향시키고 포섭할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이념 체계였으며, 그와같은 일민주의의 체계화를 주도한 인물이 양우정이었다.” 족청계는 한국 전쟁 시기까지 부침을 거듭하였으나, 1953년 “이범석이 외유를 나가고 없는 사이에 이승만은 족청 제거를 명령해 휴전 체제 성립과 때를 같이해서 족청계는 권력 중추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경과를 서술한 후 저자는 “족청계의 성쇠는, 민족해방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던 대중 동원의 정치 공간이 한국 전쟁 휴전과 더불어 사라지게 되는, ‘해방8년’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규정한다.


족청, 족청계의 중심인물은 이범석이다. 그는 중국의 장제스의 영향을 깊이 받은 자이다. 그는 ‘쑨원(삼민주의)-장세스’ 모형을 염두에 두고 ‘이승만(일민주의)-이범석’ 체제를 세우려 했다. 이범석의 파시즘 이해는 장제스의 그것을 이어받은 것이다. “장제스에게 파시즘이란 민족주의·군사화·지도자 숭배로 이해”된 것이었다. 이범석은 반공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하고 대중 동원(“군중주의”)을 통하여 파시즘 체제를 세우려 노력하였다. 이범석의 시도는 실패하였으나 족청과 족청계의 성립과 몰락의 과정에서 제기된 것들은 이후 한국 정치에 중요한 계기들이다. 그것은 미합중국, 반공주의, 정치군인, 정훈, 과잉민족주의, 대중동원 등이다.


이 책은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를 주요한 논점으로 삼고 있으나, 이 책에서 제시된 ‘파시즘’은 장제스의 그것과 이범석이 받아들여 독자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파시즘에 관한 일반적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범석의 그것이 과연 파시즘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어렵다. 또한 ‘제3세계주의’에 관한 규정과 상세한 설명없이 논의가 전개됨으로써 족청과 한반도 정세의 핵심 요인인 미합중국 사이의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 시간에는 이 책을 왜 읽는가, 그리고 이전에 나왔던 1판과는 어떤 다른 점이 있는가에 대해서 얘기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책 내용에 들어가겠다.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의 책들은 책분량은 얇지만 내용은 아주 충실하고 단단하다. 그동안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는 특정 한국 출판사에 전권을 주고 번역을 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니었는데, 교유서가에서 첫단추 시리즈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들이 대체로 내용이 좋다. 에드워드 크레이그의 《철학》도 좋고, 《로마공화정》, 《제1차세계대전》, 사이먼 크리츨리의 《유럽 대륙철학》도 좋다.


《파시즘》을 읽겠다고 한 이유는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워낙 무분별하게 정의되어서 쓰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규정해야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고, 제6공화국 헌법이 개정될지 모르겠지만 19대 대통령이 선출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 파시즘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정리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시기에도 파시즘적인 부분이 있었다.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라는 책도 나와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정부 수립을 한 이후로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전간기 사이에 성립된 서구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그것이 꽤 오랜기간 동안 지속되다보니 60년이 넘다보니 찌꺼기들이 쌓여있었고, 군사독재시기도 오랫동안 있었다. 이런 것들을 청산하고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그런 때가 되었으니 파시즘을 한번쯤은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직접적으로는 티머시 스나이더의 《폭정》이라는 책이 파시즘에 대해서 연구를 해오고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깊이 있는 안목을 가진 역사가인 스나이더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을 때, 사실 《폭정》을 읽을 때 전간기 유럽으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교훈들이기는 하지만 파시즘에 대해서 세밀하고도 학문적인 정리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점이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파시즘》의 차례를 보면 10개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파시즘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20세기 대표적인 파시스트 국가였던 이탈리아, 독일의 경우를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파시즘의 확산, 현대사회에서 파시즘의 성격을 띤 여러 정치운동과 정당들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 파시즘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은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겠지만, 이 책을 파시즘의 입문서로 읽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읽기는 따분하고 어렵다. 그러니까 이 책이 얇기는 하지만 초보자용은 아니라는 것. 이런 책들이 가지고 있는 난점이다. 그래서 이 책을 1장부터가 아닌 우선 6장 "제6장 재에서 되살아난 불사조"부터 읽으려고 한다.


제6장은 오늘날 2차세계대전 1945년 이후에 서구사회에서 등장했던 파시즘적 성격을 띤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여러 정치운동과 정당들에 대해서 다룬다. 그리고 그것이 전간기 파시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다룬다. 이 책의 175페이지를 보면 "사후의 파시즘"이라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이 서구사회에서 2차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극우정치운동 진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것이 6장의 전반부라고 할 수 있다면 후반부는 188페이지의 "설명" 부분이다. 현대의 극우와 역사적인 파시즘의 관계에 대해서 다룬다. 그리고 나서 결론으로 되어있다. 결론 부분부터 보면 "지금까지 검토한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파시즘의 유산을 공공연히 계승한 운동들은 대부분 주류 정치의 장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티머시 스나이더가 걱정했던 것처럼 "파시즘의 유산을 공공연히 계승한 운동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양사람들은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고 선진국이니 잘 나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196 지금까지 검토한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파시즘의 유산을 공공연히 계승한 운동들은 대부분 주류 정치의 장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사실 파시즘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정의에 따르면 좌파에서도 나올 수 있고, 우파에서도 나올 수 있다. 무솔리니만 해도 사회주의자였다. 지난번에도 얼핏 언급했던 것처럼 독일 나치도 민족 사회주의 노동자당이었다. 극단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는 게 어쨌든 파시즘과 가깝기 때문에 그것이 심각한 문제였다는 것을 생각하고 한번쯤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후지이 다케시의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이런 책들을 한번쯤은 재조명하면서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한다.


이번에 프랑스 대전에서 약진했던 국민전선, 얼핏 보기에도 파시스트 정당 같다. 그런데 과거의 파시스트 정당들은 폭력적인 극우정당들이었다.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 하면 민주적 적법성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한다. 그런데 내용은 인종주의적인 대중주의적인 정당이다. 그러니까 이런 점에서는 과거의 파시스트 정당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데 민주적 적법성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즉 선거를 통해서 집권을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간기 파시즘과 현대의 극우 운동 사이에는 실질적인 연속성이 있다. 이 연속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거론할 수 있는 것은 극단적인 내셔널리즘(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다 포괄하는 개념)이고, 소수 종족에 대한 차별, 기성의 사회적•정치적 엘리트 세력에 대한 반감, 반자본주의, 반의회주의 등이 있다.


파시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원리가 없고,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내놓는, 즉 대중영합주의가 아닌가 한다. 파시즘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대중영합주의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 대중영합주의가 아니면 엘리트주의로 몰릴 가능성이 있는데 사실 엘리트주의와 대중영합주의가 공존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지나친 엘리트주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정과 대중영합주의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있다.


어쨌든 이런 것들이 전간기 파시즘과 현대의 극우 운동 사이 실질적인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저자는 둘 사이의 차이점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내놓는 차이점은 "현대의 극우 운동은 대중 동원, 준군사조직적 폭력, 유일 정당 체제를 추구하지 않는다." 현대 극우주의는 가령 의회를 통해서 집권을 꾀하는 세력이라면 당연히 대중동원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대중 동원은 조금 보류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현대의 극우는 민주주의를 전복하기보다는 민주주의에 잠재된 차별의 가능성을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민주정의 약점이 다수의 의견을 따라간다는 것이 있는데 그 다수의 의견을 따르다 보면 중요하지만 의미 있지만 억압되는 소수가 있다. 또는 엘리트들에 의해서 이끌어져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의 가능성들을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저자가 중요한 말을 하는데 "현대의 극우가 파시즘보다 '덜 악하다'거나 '덜 위험하다'는 뜻이 아니다. 도덕 문제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다루겠다."


197 전간기 파시즘과 현대의 극우 운동 사이에는 실질적인 연속성이 있다(극단적 내셔널리즘과 소수 종족에 대한 차별, 반페미니즘, 반사회주의, 대중주의, 기성의 사회적•정치적 엘리트 세력에 대한 반감, 반자본주의, 반의회주의 등이 그 예다). 둘 사이의 차이점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현대의 극우 운동은 대중 동원, 준군사조직적 폭력, 유일 정당 체제를 추구하지 않는다). 대체로 현대의 극우는 민주주의를 전복하기보다는 민주주의에 잠재된 차별의 가능성을 활용하고자 한다. 이것은 현대의 극구우 파시즘보다 '덜 악하다'거나 '덜 위험하다'는 뜻이 아니다. 도덕 문제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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