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수: 요청과 지양


요청과 지양 - 10점
김석수 지음/울력


머리말

1. 들어가는 말

2. 칸트의 ‘요청’과 헤겔의 ‘지양’

3. 인식론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4. 형이상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5. 윤리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6. 사회철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7. 역사철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8. 미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9. 종교철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10. ‘포스트’ 시대의 철학자들과 칸트, 그리고 헤겔

11. 나가는 말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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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13 이 책은 이와 같은 대원칙 아래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를 다루어 보려고 한다.

1) 칸트철학과 헤겔철학도 근대철학 일반과 더불어 주제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래서 근원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는 철학인가?

2) 칸트철학과 헤겔철학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만날 수 없는 철학인가?

3) 오늘날 포스트(post) 철학자들이 이들 철학에 대해서 근대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철학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15 모더니티에 대해서 비판적인 현대철학자들은 근대철학을 곧 '의식철학' 내지는 '주체철학'으로 규정하고, 여기에는 타자와 함께하는 상호성의 철학, 즉 언어를 매개로 하는 소통의 철학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는 '나' 이외의 존재를 대상화하여 일방적 관계를 형성하는 폭력적 양상을 보여주었으며, 이런 흐름은 독일 관념론에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헤겔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24 이처럼 이 책의 마지막 집필 동기는 칸트의 '요청'과 헤겔의 '지양'의 다면성을 입체적으로 파악하여, 이를 포스트 철학자들의 주장과 새롭게 종합하는 데 있다. 이는 '요청' 속에 자리하고 있는 주관성과 관념성을 개선하는 길이자 '지양'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강한 통일성을 개선하는 '사이'(zwischen)의 길이다. 이 길은 '요청'을 통해 강한 통일이 안겨다 주는 구속을 견제하고, '지양'을 통해 주관성과 관념성을 극복하는 중용의 길이다.


2. 칸트의 ‘요청’과 헤겔의 ‘지양’

30 '경험적 사유 일반의 요청'은 현상계 내에서의 인식의 정당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인식주체는 자신의 주관 안에 갇히게 되어 주관주의 내지는 회의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칸트는 또 다른 차원의 '요청' 개념을 제기하고 있다. 이제 그는 '경험적 사유' 차원의 요청을 넘어 '실천이성' 차원의 요청으로 향해 나아 간다. 이를 통해 그는 물자체에 대한 이론적 차원의 실재성 확보의 어려움을 실천적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32 그는 '요청'을 통해 인간 이성의 월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선가험적 가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 이성을 참된 길로 인도함으로써 인간 삶의 바람직한 방향을 정립하려고 한다. 그의 '요청'은 실천적인 도덕적 삶이 이론적인 자연적 삶으로 환원되는 것을 원치도 않으며, 그렇다고 이론적인 자연적 삶이 실천적인 도덕적 삶으로 환원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는 이 '요청'을 통해 존재와 당위를 조화시키려고 한다.


33 그는 요청을 이론적 학설 차원이 아니라 실천적 고려에서 필히 전제되는 것들로 파악하며, 이것은 사변적 인식을 확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변적 이성의 이념들에 관여하여 이 이념들이 객관적 실재성을 갖도록 해준다.


33 이상에서 보듯이, 칸트는 이 요청에 이중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그는 이 요청을 통해 지성의 개념이 이성의 이념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즉,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의 이론적 인식에 한계를 설정하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 요청을 통해 그는 인간의 자율성을 확립하고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있는 존재(영혼, 자유, 신)에 대한 바람직한 접근을 시도한다. 이처럼 그의 요청은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당히 행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35 그가 인식에 한계를 긋는 것은 허무주의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인식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위대성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함이다. 그는 요청을 통해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인간의 믿음의 위대성을 제대로 확보하려고 한다.


37 이른바 헤겔의 '지양'은 '없애면서(폐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을 가지고' '올라가는' 삼자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38 근대성은 '존재 속에 귀속된 나'가 아니라 '존재와 마주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른바 존재에 대한 '의무'(lex)의 시대에서 존재에 대한 '권리'(ius)의 시대로의 이행이 근대 정신 안에 담겨 있다. 칸트 역시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인간을 권리 주체, 이른바 자율적 존재로 설정하였다.


38 그러나 헤겔은 존재 세계의 원리와 인간의 자유 사이에 근본적인 분열이 해소되지 못하는 칸트의 기획에는 인식론적 회의주의와 윤리적 주관주의가 자리하고 있음을 목격 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이 '요청'을 통한 주체와 존재의 만남 모색에는 이들 사이의 분열을 주체가 내면적으로, 이른바 주관적으로 극복하는 것에 머물러 있을 뿐이지 결코 객관적으로 극복하는 상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47 헤겔은 근대적 주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칸트식으로만 접근하여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현실의 모순을 실천 이성의 당위에만 호소하여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물론 그 역시 칸트처럼 현실의 모순을 근대적 주체 일반이 행사해 온 욕망 투쟁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칸트처럼 현실의 문제를 당위에만 호소하여 해결하려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도덕적 관념주의에 매몰될 뿐이다.


3. 인식론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55 칸트는 '사변적 인식'을 우리가 경험에서 결코 이를 수 없는 대상에 관계하는 인식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 인식을 경험적 대상에 관계하는 '자연적 인식'과 대조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KrV, B663). 그의 경우, 사변은 지성의 개념을 통해 감성의 직관으로부터 주어진 내용들을 종합하는 판단으로부터 멀어져 있다(KrV, B765). 그는 경험의 영역을 넘어서 있는 부분에 대해서 이성이 사변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전통 형이상학의 독단이 야기되었다고 비판한다(KrV, B832). 그래서 그는 이성의 사변적 사용을 제한하고 이성이 지닌 한계를 실천적 사용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한다(KrV, BXXV). 그러므로 칸트의 이성의 사변적 활동은 지성의 개념적 활동에 제한을 받아야 하며, 이 활동은 이성의 실천적 활동에 권한을 넘겨 주어야 한다. 이처럼 칸트의 비판철학은 이성의 이론적 사용에 한계를 설정하고, 이 한계를 이성의 실천적 사용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한다.


56 칸트와는 대조적으로 헤겔은 사변적 인식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원래 '사변'(speculatio)이라는 것은 라틴어 '본다'(specto)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감성을 통해 주어지는 소여를 넘어서 초감성적인 최종적 근거로 올라가는 인식 능력을 의미한다.


56 이른바 사변은 보이는 나와 보는 나를 통합하는, 즉 주체와 타자를 지양적으로 종합·통일하는 활동으로서의 앎에 관계한다. 그는 바로 이와 같은 시각에서 칸트의 감성적 직관이 받아들이는 소재와 지성의 개념 사이에는 너무나 분열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어 사변적 인식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WLⅡ, 267/ III, 47).


57 그렇다면 칸트와 헤겔은 왜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가? 이 문제를 좀 더 근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바라본 인식에 대한 태도, 그리고 인식주체들, 즉 감성, 지성, 이성의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57 우선 첫째로 칸트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그의 인식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지식의 성립 요건이다. 그에게는 어떤 지식이 참된 지식이 되려면 그 지식은 최소한 '보편성'(Allgemeinheit )과 '필연성'(Notwendigkeit)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의 이와 같은 태도는 사실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진 '학문 중의 학문', 이른바 형이상학이 총체적으로 위기에 직면한 것을 목격하고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어떻게 다시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연관되어 있다.


58 칸트는 대상 중심의 관점으로부터 나와서 대상을 인식하는 인식주체를 중심에 두는 관점으로 이행하려고 하였다. 그는 이러한 혁명적 이행을 통해, 지식 일반의 성립 근거를 인식주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마련하려고 하였다. 칸트의 이와 같은 전환도 사실은 존재 중심의 삶에서 주체 중심의 삶으로 이행해 온 근대 일반의 흐름 속에 자리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8 이는 존재를 무조건 믿고 따랐던 시대를 종식하고, 주체의 의심과 확인 과정을 통해 존재의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근대성의 철학을 흔히 주체철학, 의식철학, 반성철학이라고 한다.


61 칸트에 의하면, 인식이 이루어질 때 인간은 자신의 감성을 통해 외부의 존재가 자극하는 것(affizieren)에 참여해야 하며, 동시에 이 자극을 통해 받아들인 '잡다'(das Mannigfatige)를 지성을 통해 잡아 붙들어(greifen) 개념(Begriff)화 해야 한다.


61 칸트는 바로 이와 같은 태도에 입각하여 우리 인간의 인식이 제대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감성과 지성의 결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다양한 내용들을 받아들이는 선험적 직관 형식인 공간과 시간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의 사유는 공허할 수밖에 없으며, 이 직관 형식인 시간과 공간을 통해 받아들인 혼란스러운 내용들을 분류·정리하고 종합하는 지성의 개념적 작업이 없이는, 즉 범주의 개입이 없이는 우리의 감각적 직관은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


64 칸트는 지성의 능력과 이성의 능력을 확연히 구별하고 있다. 그는 전자의 능력을 감성으로부터 주어진 현상들을 자신의 규칙으로 통일하는 능력으로 보며, 반면에 후자의 능력을 지성이 이렇게 사용하는 규칙들을 "원리들 아래 통일하는 능력"으로 파악하고 있다. 더욱 더 중요한 점은 칸트에게는 이성이 지성의 개념과는 관계를 맺을 수 있어도 직접 감성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의 철학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성이 직접 감성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한 데 있다. 칸트에 의하면, 이럴 경우 우리는 독단주의에 직면하게 된다. 이성이 직접 감성과 관계를 맺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곧 인간에게 지성적 직관(순수 직관)을 허용하는 셈이 된다. 이것은 이른바 '사유하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등식을 성립시켜 주게 된다. 이는 칸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게 되는 것이다.


66 헤겔이 보기에 칸트에게는 지성은 감성에 묶여 있고, 이성은 지성에 묶여 있다.


76 헤겔의 사변 철학은 칸트의 선가험철학과 달리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로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의식을 의식하는 자기 의식을 통해 이들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의 지성의 힘에 대한 논의에는 이미 의식과 대상의 관계를 넘어 대상을 의식하는 의식을 다시 반성하는 자기의식으로 이행해야 함이 담겨 있으며, 따라서 주체 와 대상의 관계를 넘어 주체와 주체의 관계로 진입하는 차원이 자리하고 있다.


80 자신이 실재 그 자체라고 확신하는 이 주체가 스스로를 세계로 의식하고 세계를 자신으로 의식할 때 이른바 정신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정신은 현실과 내면성 사이에 걸쳐 있는 활동성으로서,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반성하며, 다른 한편으로 현실을 반성한다. 정신은 감각, 지각, 지성으로서의 의식일반을 거쳐, 자기 의식으로 나아가 그리고 이성을 넘어 모든 인식 활동의 여정을 거쳐 스스로를 진리로 만드는 단계이다.


81 헤겔이 보기에 칸트의 인식론에는 개념과 물자체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며, 인식주체의 무력함으로 인해 이 간극은 결코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헤겔은 칸트 의 이성이 지향하는 이념은 지성의 개념에 묶인 채 물자체로 나갈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칸트철학이 물자체에 대해서 불가지론에 빠지게 된 것은 그의 철학이 '표상적' 단계로부터 '개념적' 단계로 이행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자기 내 반성'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83 칸트의 인식론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감성적 직관의 수용성에 의해서 주어진 다양을 종합하는 지성의 사유가 존재의 내용을 왜곡할 수 있는 가능성, 이른바 지성의 일방적 인 구성의 가능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칸트는 감성의 다양성과 지성의 통일성을 새롭게 매개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83 이른바 우리가 통상 지식을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라고 할 때, 어떤 믿음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참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하듯이, 칸트가 직관을 통해 받아들인 내용도 인식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성의 사유 작용이 그것에 관여하여도 그것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참되게 정립한 것임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86 그는 이 연역을 통해 발견된 선험적 지성 개념들이 "경험 대상의 가능성 조건"이자 동시에 그런 대상에 대한 "경험 가능성의 조건"임을 보여 주려고 한다. 이처럼 그는 먼저 범주를 인식대상으로부터가 아니라 인식주관으로부터 찾아내고, 그리고 이 범주가 관여하여 대상을 통일하는 근원적 자리가 바로 선가험적인 자기의식, 이른바 통각임을 입증 하려고 한다.


94 그 역시 칸트처럼 개념의 체계로부터 진리를 담아내는 학문의 기초를 마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개념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칸트의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를 쉼 없는 운동을 통해 스스로를 실현해 가는 활동성의 차원에서 재정립하려고 하였다.


95 그는 존재와 본질이라는 양 계기의 완성으로서의 개념과 그로부터 진리가 진정 갖추어야 할 구체적 보편성으로 나아가려고 하였다. 이른바 칸트의 "선가험적 연역"에서 시도 된 개념은 소기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이 지닌 형식성과 추상성을 극복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에서는 개념이 이념으로 지양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진정한 개념이 된다.


100 지식은 어떤 것이 참 임이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 확실하다고 여기는 경우이다. 이처럼 칸트는 지식을 믿음과 명확히 구별하고 있다. 그는 지난날 형이상학이 믿음에 해당하는 것을 지식에 포함시킴으로써 독단을 일삼은 것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였다. 그래서 그는 제대로 된 믿음의 길을 열어 놓기 위해 지식에 한계를 설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0 이처럼 칸트는 우리 인간이 물자체로 나아가는 이론적 인식을 그만두되, 이를 통해 우리가 그것에 실천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에게 인식의 한계와 도덕적 믿음은 양립 가능하게 된다.


101 칸트는 바로 이와 같은 입장에서 '주어진 세계'에 관계하는 이론적 이성보다 '당위적 세계'에 관계하는 실천적 이성이 더 우위에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처럼 신과 다른 세계의 개념도 모두 도덕성과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무익하다.


103 칸트의 지식과 믿음의 구별은 헤겔에게는 '소외된 의식'으로 규정되며, 근대의 계몽정신과 믿음 사이의 분열로 파악된다. 칸트 철학에서는 중세적 믿음과 근대적 계몽의 분열이 제대로 극복되지 않은 것으로 헤겔은 평가한다. 헤겔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이 분열은 개념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절대자의 단계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104 그는 현실 앞에서 개념적 운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양심과 의무 의식에 기대어 내면으로 달아나 그 속에 집을 짓고 사는 금욕주의의 불행이 칸트의 이성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헤겔이 보기에 칸트의 신앙은 자기 한계에 절대적으로 머무름이자, 자기 타자에 절대적으로 굴복함이다. 따라서 칸트의 믿음은 초감성적인 것이 개념적 활동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나타나는 경우이다.


108 그는 칸트의 인식론은 인식 작용 이전에 인식의 틀을 먼저 설정하고 출발하는 인식도구설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식의 본질은 인식의 작용 속에서 드러나며, 인식의 한계 역시 인식 작용의 역사를 통해서 논의되어야 한다. 그는 이와 같은 문제 의식 아래서와 존재, 주체와 타자 사이의 인식의 문제를 운동적(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109 칸트에게 사변적 앎은 독단의 자리가 되지만, 헤겔에게 사변적 앎은 지성 단계의 대립과 분열의 단계를 넘어 이들을 통일해 낸 이성의 진리의 자리가 된다. 따라서 당연히 이론이성과 실천이성 사이의 구별도 통일로 이어져야 하며, 개념의 운동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111 칸트와 헤겔은 각기 한계철학과 변증법철학, 요청철학과 지양철학을 통해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였다. 칸트는 지식의 한계와 선험성에 기초하여 지식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서 '규제적'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벗어나려고 했다면, 헤겔은 지식의 발전과 역사성에 기초하여 이들 사이에 '변증법적'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벗어나려고 하였다.


112 결국 지식과 믿음의 관계에 대한 이들 사이의 입장 차이는 인간이 처해있는 모순을 인간 자신의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어 타자를 '요청'함으로써 해결할 것이냐, 아니면 인정 투쟁의 과정을 거쳐 이를 '지양'함으로써 해결할 것이냐에 기초하고 있다.


4. 형이상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123 볼프는 『제일 철학 또는 존재론』에서 형이상학을 "일반 형이상학"과 "특수 형이상학"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전통 형이상학이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존재론, 신학, 심리학 외에 우주론까지 포함하여 이 네 영역 중 존재론을 일반 형이상학으로, 신학, 심리학, 우주론은 특수 형이상학으로 분류하였다. 전자의 형이상학은 제1철학으로서 모든 존재자의 근원과 인식의 근원을 탐구하는 존재론에 해당하며, 후자의 형이상학은 전통 스콜라 형이상학에서 다루었던 신, 영혼, 세계(자유 의지)와 같은 초월자들을 다루는 영역에 해당한다.


124 칸트는 인식주체와 관련하여 대상 일반이 성립되는 조건, 대상들에 대한 인식의 참된 조건, 나아가 학문 일반의 성립 조건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의 『순수이성비판』 역시 학문의 참된 성립 조건과 관련하여 이성 능력 자체에 대한 엄정한 비판을 감행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과연 형이상학이 학문일 수 있는가가 그에게는 주된 관심사였다. 그래서 『순수이성비판』도 먼저 '분석론'에서 존재론을, 이른바 일반 형이상학을 다루고, 다음으로 '변증론'에서 특수 형이상학을 다루는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그 역시 볼프와 바움가르텐의 영향 속에서 형이상학에 속하는 부분을 존재론, 이성적 심리학, 이성적 우주론, 이성적 신론으로 구성하고, 첫 번째를 일반 형이상학에, 두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를 특수 형이상학에 편성하였다(KrV, B875).


129 그의 『순수이성비판』은 경험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순수이성이 할 수 있는 역할과 할 수 없는 역할을 엄정하게 검토하여 학문의 참된 조건을 정립하려는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순수이성비판』은 자연 형이상학의 가능성과 원천을 탐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보기에 이성 능력에 대한 이러한 엄정한 비판만이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이 성립되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는 이와 같은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순수사유와 감각경험을 구분하려고 하였으며, 아울러 순수 사유만으로 성립되는 논리학이나 감각경험과 관련된 자연과학과 형이상학이 서로 뒤섞이게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즉, 그는 사유가 한정된 특정한 대상에만 관계하는 형이상학을 경험에만 근거하고 있는 경험철학이나 순수사유에만 근거하고 있는 논리학과 구분함으로써, 사유와 존재의 완전한 일치나 불일치가 낳고 있는 독단과 회의의 길을 빠져나가려고 하였다. 특히 그는 이런 작업을 할 때, 우리의 사유가 존재 전체를 인식하려고 하는 소질에 대해서 경계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130 그의 형이상학은 사유와 존재의 정당한 만남과 그 한계를 엄정하게 규명하는 이성비판의 활동이다. 그러므로 그의 형이상학은 "선가험철학"(Transzendentalphilosophie)이기도하다. 왜냐하면 그의 선가험철학은 경험에 앞서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 주체의 선험적 능력 일반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134 헤겔은 칸트가 몰락해가는 형이상학을 새롭게 재건하려고 한 점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지만, 형이상학에 대한 그의 재건 작업은 형이상학을 제대로 재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이상학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이미 앞의 인식론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헤겔은 이성의 사변적 사용을 철저하게 비판한 칸트의 입장은 참된 형이상학의 길을 제대로 열어 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그는 칸트가 선가험철학의 관점에서 기존의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새롭게 재건하려고 한 형이상학은 그의 철학 전반이 그러 하듯이 공허한 형식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141 칸트주의적 전통을 이어받아 이를 토미즘과 결합하여 "형이상학적 존재론" 내지는 "존재론적 헝이상학"을 구축하려고 한 로츠는 헤겔이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하나로 통일 하려고 함으로써 존재의 초월성을 부정하고, 이로 인해 참된 형이상학을 붕괴시키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사유와 존재 사이에 일치를 확보하려는 것은 인간 능력을 넘어서는 월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칸트가 자신의 한계철학, 비판철학을 통해 부단히 주장했던 것이기도 하다. 로츠는 유한한 인간의 경우는 자신의 사유와 존재 사이를 온전히 일치시킬 수 없다고 본다. 인간이 비록 신으로부터 지성을 부여 받았지만, 인간은 신적 지성이 아니어서 감각을 매개로 하여 존재로 나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신의 사유와 존재 사이에는 유비적 일치 외에는 달리 확보할 방법이 없다. 물론 그의 이런 유비적 일치는 칸트처럼 상징적 일치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비적 일치를 주장하는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칸트의 상징적 일치는 사실상 사유와 존재의 분열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144 칸트는 지성의 순수한 개념을 '범주'라고 하고, 이성의 순수한 개념을 '이념'이라고 한다(Krv, B368). 그는 "지성의 개념"에 연원을 두고 있어 우리가 도저히 "경험을 할 수 없는 개념"을 '이념'이라고 규정한다. 이 이념은 경험 세계 전체에서 우리의 지성 사용과 관련하여 이를 원리들에 입각해서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즉, 이념은 지성이 현상들을 통일하기 위해 사용하는 규칙들을 원리들 아래 통일하는 역할을 한다.


144 헤겔이 보기에 칸트에게는 이념과 개념이 분리되며, 그래서 개념은 경험과 관계를 맺는데, 이념은 전혀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된다. 헤겔은 바로 여기에 칸트의 이념이 초월 적이지만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45 칸트에게는 감성적 직관만이 인간이 정당하게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직관이다. 그러므로 순수직관을 통해서 대상을 마련하려고 하는 것은 정당할 수 없으며, 그것은 가상체(noumena)를 소극적으로 사용하는 차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로서 그야말로 가상(Schein)을 유발하게 된다. 칸트에게 가상체라는 개념은 감성적 직관이 물자체에까지 확장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가상체는 감성이 무례함을 범하지 않도록 소극적 사용만을 허락하는 한계개념일 뿐이다.


147 이념은, '마치 ━인 것처럼'(als ob)의 차원을 지녀야지, '━이다'의 형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 이념은 '발견적' 개념이지 '명시적' 개념이 아니다. 우리의 이성은 이 이념을 통해 경험의 통일을 최대한으로까지 확장하지만, 그렇다고 이 이념에 대해서 실재성을 부여해서는, 즉 '이념의 실재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칸트는 이성의 자기 비판에 고삐를 늦추어서, 이념을 규제적으로 사용하는 데 주의하지 않고 이를 넘어 구성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성 자신이 '태만한 이성'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서 부단히 경계하였다.


149 헤겔에게 이념은 개념과 실재의 통일태이다. 물론 이때의 통일은 칸트처럼 현상계 내에서의 개념과 실재의 통일이 아니라 존재 자체와 사유 원리 사이의 통일이다. 이런 면에서 이념은 더 이상 칸트의 규제적 원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 헤겔의 이와 같은 태도는 이성이 지성에 묶여있는 칸트의 입장에 대한 불만과 연계되어 있다. 이미 앞 절의 '연역'과 관련하여 논의하였듯이, 헤겔은 칸트의 '연역'이 '변증법'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개념과 범주가 지성의 정태적 틀에 갇혀버린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152 헤겔에게 신은 더 이상 규제적인 이념이 아니라 자기를 실현한 개념이다. 신이라는 이념은 외적인 합목적성을 넘어서 내적인 합목적성에 이른 존재이다. 마침내 이러한 이념은 "적합한 개념"의 상태로서 객관적 진리이자 진리 그 자체이다. 따라서 헤겔이 보기에 이념은 더 이상 칸트처럼 비현실적인 어떤 것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념은 현실적인 것들이 다가가야 할 피안에 존재하는 원형적인 어떤 것으로 여겨져서도 안 된다, 헤겔은 칸트와 달리 이념을 줄곧 현실에 자리 매김하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이념은 개념과 실제가 일치하는 차원이며, 그래서 대상으로서의 객관 세계와 주관 세계가 일치해야 하는 경우이다.


157 그래서 그는 도덕론과 과학론이 각기 자기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길을 택해야만 하였다. 결국 그는 정립, 즉 '세계에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원인성 외에 "자유에 의한 완전성"도 있다'는 주장과 '세계에는 모든 것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일어난다'는 주장을 모두 긍정하는 길로 나아가야만 했다.


157 그는 감각적으로 접근 가능한 자연법칙과 이를 넘어 인식은 할 수 없지만 사유 할 수 있는 자유가 서로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는 이와 같은 입장에 기초하여 사변이성에 제한을 가하고, 아울러 이를 통해 감각 불가능한 신, 자유, 영혼불멸에 대해서 실천적으로 접근하는 길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162 헤겔은 칸트가 이들 양 영역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여 통일하지 못한 것을 비판한다. 그의 이런 시각은 셸링에게도 일정 정도 빚을 지고 있다. 셸링은 '능산적 자연'(natura naturns)과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을 구별한 스피노자의 자연관, 즉 자연과 자유를 분리하지 않고 자연의 필연성과 인간의 자유를 통일시키고자 한 자 연관을 수용하고 있다. 그는 자연을 칸트처럼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자연과 생산되는 객체로서의 자연으로 구별하지 않고, 전자가 후자로 전환되는 "자연 자체의 근원적 이중성"을 중시하고자 한다.


163 셸링은 죽어 있는 기계로서의 자연을 살아 있는 주체로서의 자연으로 통일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칸트의 반성철학이 지니고 있는 대립 구조를 통일로 수렴하고자 한다. 더 이상 칸트처럼 실재와 이념을 구별하지 않고, 이념 역시 무한한 자연의 실재성으로부터 설명해 내려고 한다. 그는 실재적인 것을 이념적인 것 아래 놓는 선가험철학이나 이념적인 것을 실재적인 것 아래 놓는 자연철학 모두를 하나로 파악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연은 볼 수 있는 정신이고, 정신은 보이지 않는 자연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163 헤겔에게 자연은 정신의 외화태(Entzauberung) 이상이 될 수 없다. 자연은 타재(Anderssein)형식으로 존재하는 이념으로서, 시간적으로 최초의 것이라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앞서 있는 것이 아니다. 중심을 자신 안에 지니고 있지 못한, 이른바 중심을 외부에 두고 있는 물질은 중심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는 정신을 통해서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자연은 존재 일반의 형태를 얻은 절대이념이긴 하지만, 이성적 차원에서 볼 때는 절대정신의 내적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163 이념의 자기실현은 자연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 자연은 의지의 자유가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마주치는 최초의 항으로서, 정신이 자신의 본질을 인식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헤겔에게 정신은 자연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자리이자 자연 그 자체의 진리의 자리로서 "자연의 절대적 제1자"가 된다.


167 헤겔은 칸트가 차안과 피안 사이에, 자연과 자유 사이에서 인간이 유한적인 존재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모순을 파악해 낸 점에 대해서는 극찬하지만 이 모순의 해결과 관련하여 그가 정립과 반정립을 그냥 병렬적으로 양립시켜놓은 것은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라고 본다.


167 헤겔의 시각은 『정신현상학』에서 논의된 '금욕주의의 불행'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금욕주의는 욕망 투쟁의 현실, 이른바 현상적인 자연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이와 부딪쳐 주체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피해 내면으로 달아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5. 윤리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177 칸트는 윤리적 규범을 인간의 자연적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이성의 선험적 원리로부터 마련하려고 하며, 여기서 마련된 실천(윤리) 법칙은 경험적 요소들로부터 그 어떤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윤리학의 법칙과 인간학의 법칙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177 그는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스스로 마땅히 행해야 한다고 여기는 당위의 법칙, 이른바 윤리법칙을 스스로 세우고, 그것을 스스로 지키는 자율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윤리적 규범을 동기주의적, 의무주의적 관점에서 정초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욕망에 휩쓸려 들어가는 당시의 인간의 위기를 극복해 보려고 하였다.


178 헤겔은 칸트의 이런 입장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다. 그는 현실의 욕망법칙과 양심의 윤리법칙이 추상적으로 대립하여, 전자로부터 후자로 이탈하는 칸트의 관점을 의무지상주의, 형식주의, 주관주의로 규정한다. 그는 인간이 지켜야 할 규범이 현실과 갈등하고 대립하면서 변증법적으로 지양되어야지, 이를 벗어나 내면으로 침잠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주관정신이 객관정신으로 이행해야 하듯이, 정신의 자기 자유의 실현은 현실 속에서 이를 지양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179 헤겔에게는 규범이 그저 칸트처럼 의식 내부에 선험적인 것으로만 자리할 수 없고, 현실에 참여하여 갈등을 겪으면서 지양적 발전을 해야 하는 역사적인 것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런 그의 입장은 단순한 동기론, 의무론의 입장에만 머물지 않고, 이와 반대편에 있는 결과론 및 목적론과의 변증법적 종합을 시도한다. 따라서 헤겔에게는 의무와 행복이 칸트에서처럼 배타적인 관계에 놓여 요청을 통해 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발전의 두 계기로서 지양의 과정을 거쳐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다.


181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변증론, '제3이율배반론'에서 '선가험적 자유'를 마련하고 나아가 『실천이성비판』에서 '의지의 자유', '실천적 자유'를 마련하였다. 나아가 이를 통해 그는 자유가 도덕법칙이 존재하기 위한 근거가 되고 도덕법칙이 자유를 인식하기 위한 근거가 됨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도덕법칙, 즉 규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자연 세계, 욕망의 세계 바깥에 자유의 세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칸트는 도덕법칙은 자연세계의 욕망하는 현실로부터는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규범은 태생적으로 현실 바깥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그는 주어진 현실의 자연적 조건과 우리가 응당히 실현해야 할 당위적인 도덕적 조건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적어도 전자가 후자를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배척되어야 한다.


196 그는 미적 판단력을 통해 확보되는 '미감적 보편성'은 개인으로 하여금 주관적인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상태를 넘어 타인의 쾌에 함께 참여하는 활동이 되게 하며, 그래서 이성으로부터 나오는 보편적 법칙에 참여하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런 '미감적 보편성'에 기초하고 있는 취미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예의 범절을 갖추게 하며, 도덕성을 외적으로 촉진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196 우리 인간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이용하는 "기술적 소질"(technische Anlage)과 사회 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타인을 자신의 의도대로 재치있게 대할 수 있는 "실용적 소질"(pragmatische Anlage)도 갖추어야 하며, 나아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려는 "도덕 소질"(moralische Anlage)도 갖추어야 한다.


199 의무로부터 행하는 도덕적인 의무 이행은 의무에 맞게 행하는 합법적인 의무 이행과는 달리 상황 초월적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의무 이행에서 그 어떤 목적이나 결과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도덕법칙 그 자체를 존중해서 의무를 이행하는 이른바 정언명법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서 후자의 경우는 의무이행에서 어떤 목적이나 결과를 의식해서 의무를 이행하는, 그래서 가언명법과 일정 관계를 맺고 있다.


203 칸트는 법이나 제도를 통해 외적인 강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곧 내적인 도덕적 성숙이 이루어진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덕에 관한 논의로부터 욕망의 법칙을 넘어서 옳음의 법칙으로 부단히 나아가려는 인간의 마음의 힘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덕의 연마를 통해서 서로를 수단으로 취급하는 욕망의 나라를 넘어서 서로를 목적으로 대하는 "목적의 나라"로 나아가려고 하였다.


207 헤겔에 의하면,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이 관계하는 도덕성에서는 도덕과 자연이 분리되어 있으며, 자연을 넘어선 곳에서만 도덕이 성립될 수 있다. 이는 칸트가 주장한 도덕의 단계이기도 하다. 칸트의 도덕의 단계는 분리된 자연과 도덕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감각을 폐기하고 자연 너머의 세계를 요청하는 방식을 통해 메우려고 한다.


226 칸트의 입장부터 살펴보면, 그는 강영안의 주장처럼 행복을 도덕법칙 정초의 근거로 삼는 것을 거부한 최초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초월적 목적론이든 현세적 목적론이든 이들 속에 담겨있는 행복론은 인간의 자유를 확립하는 자율성 윤리학을 정초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행복에 기초하여 세워진 실천법칙은 영리의 규칙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우며, 만약에 우리 인간이 쾌락이나 행복에 기초하여 실천법칙을 세우려 할 경우, 그것은 곧 도덕의 안락사를 초래한다.


228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덕 속에 있는 행복을 주장하거나. 행복 속에 있는 덕을 주장함으로써 서로 대립해 있어 상호 파괴적인 현상을 지니게 되고, 행복주의나 금욕주의라는 양자택일적 관점을 설정함으로써 최고선의 바람직한 모습을 그려내지 못했다고 칸트는 보고 있다. 칸트는 이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면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에피쿠로스학파는 덕의 준칙을 행복에 대한 욕구로부터 마련함으로써 윤리법칙을 자연법칙에 예속시켜 인간의 자유와 그것에 기초한 인간의 존엄성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으며, 스토아학파는 덕의 준칙 그 자체로부터 행복을 마련하려고 함으로써 인간이 동물적 존재이면서 이성적 존재임을, 이른바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인간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착각에 빠져 있다.


232 최고선의 자리를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 자유와 영혼불멸과 신의 존재를 요청한다. 그는 인간이 의무를 다해서 그에 준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영혼이 불멸해야 하며, 또한 신이 존재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욕망의 법칙에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당위법칙을 수행 할 수 있는 자유로운 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도덕법칙의 가능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자유의 존재를 요청한다.


239 헤겔은 인간의 행위가 선으로 향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선을 자연으로부터 단순히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칸트와 피히테를 따라 인간 자신의 양심에서 울려 나오는 당위에 대한 응답의 과정을 통해 자연과 싸우는 과정 속에서 획득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는 내면의 당위 의식에 침잠해 있는 양심의 주관성에 기초하여 이성 자신의 자유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칸트의 길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었다. 헤겔은 자연과 자유의 변증법적 통일을 모색하듯이, 도덕성과 행복 사이의 지양적 활동을 통한 통일을 모색한다. 그는 칸트가 이들 사이를 대립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조화를 시도하려고 한 점에 대해서 높이 사지만, 칸트가 행복하고자 하는 경향성에 충분한 자리를 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 나무란다.


6. 사회철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246 근대인의 삶에서 자유라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자유를 향한 권리 확립의 시대인 근대는 인간 자신이 사적 소유의 주체가 되고, 바로 그 사적 소유를 자기의 권리 확립의 기반으로 삼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다. 사적 소유가 신분에 의해 결정된 봉건적 사회를 타파하는 것이 근대 부르주아지의 가장 절박한 소망 사항이었다. 이들에게 부자유는 곧 사적 소유의 부재에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근대 시민혁명과 더불어 새롭게 중심 무대로 출현한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사적 소유를 확립하여, 이를 통해 자신의 자유와 존엄성을 확립하는 것을 일차적 과제로 삼았다.


247 근대인들의 이와 같은 양상은 그들의 사유(생각) 양식에도 강하게 나타났다. 이들은 더 이상 기존 질서에 순종하기보다는 기존 질서의 지배 구조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자신들의 불행의 근원이 타자(신, 성직자, 귀족)에 대한 과다긍정, 이른바 숭배의 삶에 있었다는 것을 목격하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이들은 타자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추구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들에게 믿음의 길이 낳은 노예의 삶을 벗어나는 길은 의심의 길 외에 달리 없었다. 믿음의 삶이 안겨준 상처는 의심을 통해 확실성을 확보하는 길 외에 달리 없었다. 그러므로 근대인의 사유는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252 칸트는 이미 앞의 인식론 부분에서 다루었듯이, 인식 주체의 자기 능력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인식의 한계와 소유의 한계를 동시에 설정하는 "한계철학"을 구축하려고 하였다. 그의 한계철학은 인식과 사유, 앎과 믿음, 지성의 개념과 이성의 이념,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을 서로 구별하도록 만들었다. 그에 의하면, 이들 각각에 있어서 후자의 경우는 감각적 직관을 통해 내용이 주어질 수 없는 경우로서, 최소한 우리 인간이 보편성이나 필연성의 차원에서 지식을 마련 할 수 없는 경우이다. 인간은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가 아니어서 자체 사유 활동만으로 존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우리 인간의 지성은 존재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여 우리에게 내용을 제공해주고, 그래서 그것을 받아오는 우리 감성의 수용성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인식을 산출할 수 없다.


253 인간은 자신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어떤 존재도 온전히 스스로가 창조하여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의 내용을 전적으로 직관하여 인식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을 나의 것으로 완전히 소유할 수도 없다. 무언가를 알지 못하면서 소유한다는 것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칸트의 비판철학은 곧 한계철학으로서 이런 인식의 한계 설정을 통해서 이 세상에 소유 대상으로 전환할 수 없는 존재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 놓으려고 한다.


253 그의 철학에는 이미 인식의 한계와 소유의 한계가 동시에 자리하고 있다. 즉, 그의 "한계개념"에는 소유에 제한을 가하는 윤리적 태도가 개입되어 있다. 그는 이 "한계개념"을 통해 물자체에 대해 이론적 인식에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서로가 목적적 존재로 대우받는 도덕의 길, 자유의 길을 열어 놓으려고 하였다.


254 그는 감성의 감각적 활동 없이 지성의 사유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했듯이, 육체의 활동 없이 정신이 지향하는 자유를 제대로 성취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이와 같은 관점은 소유에 과다하게 윤리적 제한을 가한 전근대 사회에 대한 반격을 시도하는 근대적 사유, 이른바 소유와 권리의 연관성을 마련하여 인권을 정립하고자 하는 근대적 삶을 수용하고 있다. 칸트에 따르면, 내가 사유함이 나의 인식의 선험적 근거이듯이, 나의 소유함은 나의 권리의 선험적 근거이다. 내가 사유하지 않을 때 어떤 인식도 할 수 없듯이, 내가 소유하지 못할 때 나는 어떤 권리도 지니지 못한다.


254 내가 아무리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유하지 못하면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유의 내적 자유와 몸의 외적 자유는 나의 자유 확립에 불가피한 조건이다.


255 칸트에게 인식 활동에 참여하는 "선가험적 통각"은 감정 활동에 참여하는 "공통감"을 거쳐, 욕구 활동에 관여하는 "통일된 의지" 내지는 "일반의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그의 소유론 역시 바로 "통일된 의지"에 근거를 두고 있다.


255 그는 감각경험의 내용과 지성의 사유의 종합으로 인식이 성립한다고 주장하였듯이, "감각적 점유"와 "예지적 점유"의 종합으로 정당한 소유가 마련될 수 있다고 보았다.


256 그는 "물리적 점유의 감각적 조건이 없이는 예지적 점유의 현존재도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물리적 점유는 "예지적 점유"의 도식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현상 점유"는 예지적 점유를 통해서 비로소 정당한 소유가 성립된다.


257 헤겔 역시 '내 몸과 내 마음을 나의 소유로 가지고 있다'는 명제를 자신의 소유 이론의 기본 전제로 삼고 있다. 내가 살아 있고 자유를 누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 내 몸과 상관없이 사유 안에 머물러 있다면, 역으로 내 몸이 살아서 의식을 가지고 어딘가를 지향하지 못하고 죽은 덩어리로 머물러 있다면, 나는 진정 살아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헤겔의 주관정신은 객관정신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259 나는 사유와 몸을 가진 "살아있는 실체"로서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스스로를 타자화해야 하고, 또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로 복귀해야 함을 필히 수반한다. 따라서 존재하는 일체는 매개되어야 하고, 실체는 주체가 되고 주체는 실체가 되어야 한다.


259 그에게 추상법은 자유로운 의지가 스스로의 추상성을 벗어나 현존재성을 마련하기 위하여 최초의 감성적 재료인 사물에 관계하는 단계이다. 의지의 자유가 확보하려는 자유의 최초의 양식은 소유를 통해서 마련되는 것으로 이런 소유에 관계하는 주체를 그는 '인격'이라고 한다.


261 헤겔도 칸트처럼 취득의 참된 조건은 "욕체적 취득"이나 "형식의 부여" 및 "표지"만으로 부족하며, 그 이상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것들은 모두 소유의 필요조건은 되어도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적어도 소유의 정당성이 마련되기 위에서는 어떤 물건과 나의 의지 사이의 매개만으로 성립 될 수 없고, 나의 의지와 타인의 의지 사이의 통일성, 즉 "공통된 의지"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 "공통된 의지"에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계약에 들어갈 때에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권리를 확립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헤겔 역시 칸트처럼 주관적 소유를 넘어서 소유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의지"를 수용한다.


271 시민사회에서는 소유가 오로지 나의 의지와 너의 의지가 "공통된 의자"에 입각해야 한다는 형식성(추상적 정의)에만 근거하고 있어 빈곤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퇴치할 수 없다. 즉 시민 사회의 사법 단계에서는 개인의 소유와 권리에 급급해 있지 공동복지에 관심을 두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헤겔은 "경찰행정"과 "직업단체"를 도입하여, 추상법과 도덕성, (개인의) 소유와 (공동체의) 윤리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인륜성의 완성 형태인 국가로 나아가려고 한다.


271 그는 고대의 폴리스에 배경을 두고 있는 "경찰행정"과 중세의 길드에 근원을 두고 있는 "직업단체"를 근대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근대 시민사회의 내적 모순을 극복하고 사적 이익을 공동의 이익으로 지양시켜 내려고 한다.


281 헤겔은 칸트의 요청에 입각한 이런 태도는 공동체주의적 시각에 기초하여 복지와 연대성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려는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칸트주의적 입장에서는 헤겔의 이런 태도는 복지와 연대성에 대한 적극적 모색의 길을 열어주기는 하지만, 이것이 현실 속에서 부작용을, 이른바 다시 국가의 도구화를 낳을 우려가 있다고 염려할 것이다. 이처럼 칸트는 자유주의적 관점을 중시하되 공화주의의 길을 모색하였다면, 헤겔은 공동체주의적 전망을 통해 자유주의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해내는 길을 모색하였다.


286 칸트의 결혼관부터 살펴보면, 그는 결혼을 결혼 당사자 각각이 지니고 있는 소유물을 서로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사건으로 파악하고 있다.


289 그는 사법론(사적 권리론)에서 "물권", "인격권", "물건적 인격권"(물건처럼 관계하는 방식에 기초한 인격권)으로 구분하고, 결혼을 바로 이 세 번째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물건적 인격권"은 가족의 구성원들 각각이 서로에 대해서 마치 물건을 대하듯이 임하되 항상 서로를 인격으로 존중하는 차원에서 권리를 행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신체적 활동을 통해 욕망을 추구하는 것을 허용하되, 그들의 활동이 욕망에 포섭되지 않고 자유를 향한 인격적 차원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290 그는 현상적 인간과 예지적 인간의 구별에 기초하여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현상적 차원에서는 서로 이성 기관을 합법적으로 사용하여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되, 예지적 차원에서는 서로가 욕망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격체로서의 인간의 자리를 열어 놓으려고 하였다.


291 그는 한편에서는 현상의 욕망 세계에의 참여를 열어 놓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을 넘어선 인간 존엄성의 지평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그의 "물건적 인격권"은 바로 이런 긴장을 담고 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해서 합법적으로 물건을 다스리듯 권리를 갖되 그것은 현상적 차원에 머물러야지 물자체 차원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결국 결혼은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욕망의 현실에 대한 참여이자, 이를 넘어 인격적 존재가 되는 도덕적 세계로 나아감이다.


293 헤겔은 칸트가 결혼을 계약으로 바라보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였다. 헤겔에게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는 물건들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추상법의 단계가 아니라 인륜성의 단계에 속해야 한다.


298 헤겔은 결혼을 무의식적이고 생물학적인 자연적 욕망 추구로부터 의식적이고 정신적인 인륜의 단계로 이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결혼을 계약에 묶어 두는 관점보다는 사랑을 통해 지양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결혼관은 육체적 활동과 정신적 활동의 새로운 종합이자 소유와 사랑의 새로운 종합이다.


303 칸트와 헤겔의 가족은 이미 해체를 통해 시민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가족은 시민사회로 나가는 예비 훈련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칸트와 헤겔은 가장을 중시하고, 개인보다는 가족 전체의 운명을 중시하는 가족 자체의 논리가 사회로 확장되어 국가 그 자체가 가부장적인 국가가 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들은 가족 구성원들 각자의 개인적 자율성을 강조함으로써, 보편이 개체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봉건적 구조를 타파하는 혁신적 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313 개인들이 국가의 법적 체계에 참여해야 하듯이, 개인들과 국가들은 세계시민법에 참여해야 한다. 그들이 세계시민법에 참여하지 않으면, 국가들이 불안전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개인들도 불안전할 수밖에 없다. 앞 절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점유가 정당한 점유가 되기 위해서는 "근원적 공동 점유"에 기초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취득한 것이 정당한 취득이 되기 위해서는 "선험적으로 통일된 모든 사람들의 의지"에 기초해야 한다.


314 국가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통일된 의지"에 기초하여 맺게 되는 "근원적 계약"을 통해 공화국에 참여해야 하듯이, 각 국가들도 "근원적인 사회적 계약"이라는 이념에 맞추어 세계시민사회에 참여해야 한다.


7. 역사철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346 그의 자연의 의도 내지 계획에 담겨있는 역사 이해는 인간이 현실적으로 갈망하는 자연적 행복과 인간이 마땅히 실현하려고 하는 도덕적 이상이 새롭게 만나는 최고선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의무와 행복이 일치하는 최고선을 위해 영혼불멸과 신을 요청하였지만, 그의 요청에는 여전히 주체의 자율성이 견지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자율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른바 도덕적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행복을 추구하는 길을 원치 않았다. 칸트에게는 인간 자유의 확립 근거는 도덕 법칙에 있지 최고선에 있지 않다. 이처럼 요청 자체에도 이성의 자율성과 신의 뜻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348 그의 역사철학은 자연의 역사, 인간의 역사, 신의 역사가 각기 고유한 가치를 지니면서 동시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자연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를 거쳐 신의 역사에 이르러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욕망의 길과 덕의 길이 항쟁을 거치는 과정을 필요로 하며, 마침내 덕의 길이 승리할 때 가능하다. 이처럼 그의 역사철학에는 도덕적 목적론과 윤리신학이 자리하고 있다.


349 칸트는 자신의 인식론에서 인간이 개념에 대해서 한계를 더 철저하게 느낌으로써 진정한 물자체, 이른바 자유의 나라에 진입하게 되듯이, 윤리학에서도 경향성과 욕망에 이끌려 도덕법칙을 더 철저하게 명령으로 느낄 때 도덕의 나라에 진입하게 된다. 역사철학에서도 자연적 욕망의 나라에서 시련을 많이 겪을수록 제대로 된 도덕적인 목적의 나라에 진입하게 된다. 따라서 칸트에게 자연성은 도덕성에 방해를 가하는 요소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성을 진척시키는 중요한 계기로도 자리하고 있다.


352 헤겔은 자연사를 넘어서 이성의 자기활동사를 중시하는 칸트의 관점은 수용하되, 이성이 자기 역량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초감성적 기체를 도입하여, 이로부터 자연의 의도 나 계획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고 나아가 신의 존재를 요청하여 역사의 궁극적 목적을 실현하려고 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한다.


354 헤겔은 바로 이런 시각에서 역사를 분류하고 있다. 그는 이성이 자연에 무반성적으로 참여하는 삶의 단계로부터 이를 반성하여 주관으로 돌아오는 단계로, 나아가 이를 넘어 이들 양자를 지양하여 통일하는 삶의 단계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역사를 "근원적 역사", "반성적 역사", "철학적 역사"로 분류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이성이 자연에 무 매개적으로 관계하는 단계로서 자연 사건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역사이다. 이 단계에서 역사가는 자신들 주변에서 발생하는 자연 사건들에 대해서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고민하기보다는 자기가 직접 목격한 그대로 생생하게 기술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즉 역사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는 사건사에 치중한다.


355 두 번째의 역사, 이른바 반성적 역사가 대두하게 되는데, 이 역사는 과거의 활동을 기록하여 이를 이후의 시대정신과 연관을 지어 해석하는 데 주목적을 두고 있다. 역사가는 자신의 정신으로 사료를 가공하며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을 부각시키게 된다.


355 마지막으로 철학적 역사가 대두하게 되며, 이는 첫 번째 역사의 특수성과 두 번째 역사의 보편성을 변증법적으로 지양 종합하며, 첫 번째 역사의 주관과 객관의 무매개적 동일성과 두 번째 역사의 주관과 객관의 분리를 넘어 이들을 지양하여 종합한다.


356 헤겔의 "철학적 역사"에서는 신의 섭리가 이성의 세계사 안에 자리하게 된다. 신의 나라는 인간의 세계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정신의 나라이다. 이런 헤겔의 "철학적 역사"는 칸트의 "철학적 역사"에 사뭇 다른 면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칸트의 "철학적 역사"는 이성이 감당할 수 없는 초감성적 기체에 기초하고 있고, 이성은 끝내 스스로 이 타자를 지양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헤겔에게 칸트의 이런 "철학적 역사"는 "근원적 역사"와 "반성적 역사"의 갈등이 해결되지 못한 미완의 역사일 뿐이다.


357 헤겔은 신국을 인간을 통해 실현되어야 할 정신의 나라로 파악하고 있다. 절대정신으로서의 신적 정신은 세계사 속에서 세계정신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것은 민족 정신, 개인정신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감춘다. 이런 세계정신은 민족정신의 사멸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자유를 실현한다.


362 헤겔에게 세계사란 결국 정신이 본래의 자기를 차츰차츰 정확하게 알아가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는 곧 세계사란 정신이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의 방해물을 넘어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에 대한 서술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유로운 정신의 실현이야말로 역사의 궁극 목적이 아닐 수 없다. 헤겔에게 세계사는 이성적인 통찰력으로 신의 섭리와 현실이 통일을 이루어내는 과정이다.


368 칸트는 모두가 결국 구원받는다는 일원교파보다는 일부가 구원받는다는 이원교파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여하튼 그는 인류의 도덕적 소질이 수많은 좌절과 갈등을 겪은 후 결국 자연적 경향성으로서의 욕망을 넘어 자유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이것은 앞서 논의한 칸트의 도덕 철학에서도 드러났듯이, 서로가 수단으로 취급 받는 인정 투쟁의 장, 가연명법의 작동 영역에서 벗어나 모두가 목적으로 대우받는 목적의 나라에 이른 것이기도 하다.


369 칸트는 자연신학의 길이 아니라 윤리신학의 길을 추구한다. 그에 의하면, 자연신학은 우리가 아무리 나아가도 창조의 궁극목적에 대해서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자연적 목적론은 참된 신학의 길로도 인도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칸트는 인간의 선의지에 기초한 도덕적 목적론만이 도덕(윤리) 신학의 길을 열어 준다고 보고 있다.


378 헤겔의 역사철학은 개체의 관심과 활동이 보편적 목적에 일방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자연 목적론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들 사이가 분리되어 목적이 개체에 규제적으로만 관계하는 칸트적인 도덕적 목적론도 아니다. 그의 이론은 정신이 역사 안에서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려고 하는 역사적(사변적) 목적론이다. 그의 역사적(사변적) 목적론은 더 이상 개체와 보편, 자연과 도덕이 어느 한쪽에 포섭되거나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또한 현실과 이념의 관계 역시 그러하다.


8. 미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386 그는 자연미를 전통적 목적론이나 근대적 기계론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도록 하고, 빈성적 판단력과 합목적성에 기초하여 이들 사이를 매개하는 역할로 재정립하고자 하였다. 그의 자연미에 관한 이론은 신화와 계몽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담고 있다. 그는 인간의 능동적 활동의 산물로 자리하고 있는 예술미가 자연미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실현하는 차원이 되어야지, 이를 저버리는 쾌적함의 추구로 이어져서는 안 됨을 강조하였다.


387 헤겔은 칸트가 예술을 자연미에 예속되게 함으로써 객관정신의 장으로서의 도덕을 넘어 절대정신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칸트의 자연미에 대한 강조를 정신의 자유 실현을 위한 미발전 단계로 규정하고, 개념적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헤겔은 자연미에 종언을 고하고 예술미로 나아가고자 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예술조차 종언을 고하는 작업을 추구하였다.


395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은 쾌·불쾌의 감정에 기초하여 자연의 "형식적 합목적성"을 취하는 능력으로서, 이는 곧 "미감적 표상"에 관계한다. 이 미감적 표상은 대상을 규정하거나 소유하는 개념적 차원이 아니며, 쾌·불쾌의 감정에 의하여 대상을 판단하는 능력인 취미에 기초한다.


402 칸트에게 진정한 예술미는 자연미에 대한 미메시스로부터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그는 자연미를 통해서 우리가 기계적인 조직으로서의 자연을 넘어 예술로서의 자연으로 향할 수 있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궁극목적으로서의 자유의 나라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415 헤겔은 정신의 활동이 담겨있는 예술미가 자연에만 기초하는 자연미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인간정신의 활동을 통해 산출된 예술미가 즉자적인 자연이 산출 한 것보다 신적인 것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것으로 보려고 한다.


429 숭고 감정은 자연적 존재의 위력에 공포를 느껴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형태가 아니라, 인간 자신 안에 자리하고 있는 상상력으로 하여금 도덕심을 불러내어 자연의 위압을 넘어 신에게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숭고를 통한 초감성적인 신에게로 나아감, 즉 이성의 이념으로 나아감은 자연신학의 길이 아니라 윤리신학의 길이다.


437 헤겔에 의하면 종교는 예술을 지양하게 된다. 한마디로 예술보다 종교가 절대정신의 자기 실현에 더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정신이 자신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예술은 종교를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437 칸트는 자연과 신을 매개하는 자연신학이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윤리신학을 구축하려고 하였고, 이 과정에서 예술을 종교에 예속되게 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였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자율성에 훨씬 더 비중을 두고 있었다.


9. 종교철학의 관점에서 본 칸트와 헤겔

444 최고 존재로서의 신이라는 이념은 우리에게 규제적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구성적 역할은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이 이념에 대해서 이론적 실재성을 입증 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실천적 실재성만을 입증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비판철학은 절대자라는 이념과 관련하여 이성의 사변적 사용을 중단하고 실천적 사용의 길을 열어 놓으려고 한다.


444 문제는 우리가 도덕 법칙에 따라 의무를 이행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데 있다. 그는 우리가 도덕 법칙을 수행할 때 행복할 자격을 갖추는 것이지,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도덕을 통해 행복할 자격을 갖추어도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도덕을 넘어 종교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도덕적 의무를 수행한 것에 비례하여 행복을 희망할 수 있다.


457 헤겔은 지식과 신앙, 이성과 종교 사이의 구별을 통한 조화 모색을 시도하는 칸트의 입장은 실패했다고 보며, 이들 사이에 진정한 화해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신앙이 지식으로 종교가 이성으로 지양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에는 종교를 철학으로 이행시키려는, 이른바 종교를 세속화하려는 헤겔의 근본 목적이 개입되어 있다.


469 헤겔이 절대정신의 차원에서 종교의 단계도 철학의 단계로 지양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개념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교의 마지막 단계인 계시종교에서 조차 신은 "표상된 신"이며, 이 신은 의식과 완전히 통일된 개념적 차원의 신이 아니라 의식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대상으로서의 신"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제 철학은 대상의 형식을 지닌 이 신을 극복해야 한다.


470 외화된 존재, 이른바 대상 그 자체가 바로 정신 자신이라는 단계, 그것도 무한에 이르기 위해 한없이 외화를 거쳐 마련된 무한으로서의 대상 그 자체가 바로 자기라는 것을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단계가 될 때, 비로소 개념 운동도 끝이 나게 되며, 학문도 사명을 다하게 된다. 바로 이 단계가 철학이다. 따라서 철학은 분열된 앎을 넘어선 절대적 앎의 단계이다.


11. 나가는 말

547 헤겔도 감각적 확신, 지각, 지성적 차원에서 타자를 대상으로 파악하는 의식의 단계를 넘어 대상적 의식 자체를 의식하는 자기의식의 차원으로 이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칸트 역시 이런 차원에서 이성의 이론적 활동에서 실천적 활동으로 이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이론이성보다 실천이성에 우위권을 주게 되는 것도 대상화할 수 없는 존재를 주체로 맞이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칸트는 주체가 맞이하고 있는 타자를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 타자를 대상화해서 움켜쥐는 개념적 활동을 그만두고, 자신의 실천이성이 명하는 도덕법칙에 따라 타자를 존중하는 길을 열어 놓으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타자와 관련하여 어떤 목적이나 의도 없이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할 바로서의 의무를 그 자체를 위해서 다하려고 한다.


548 그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놀이가 자신만의 놀이로 끝나는 상황, 이른바 상상계에 매몰된 존재가 되지 않도록 상상력의 주체들이 각자 자신의 마음을 넓혀 타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공통감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그는 상상력이 절대 감당하기 어려운 이성의 이념과 관련해서도 그 앞에 엄숙하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타자에 대해 무한한 존경감을 갖기를 요구하는 숭고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이렇게함으로써 그는 현상계 너머 물자체로 나아가려고 했던 도덕의 길로 다시 접어 든다.


549 칸트는 이 윤리적 인간을 행복한 인간으로 다시 옮겨 놓기 위해 도덕적 목적론의 길을 택한다. 그의 도덕적 목적론은 기존의 자연신학적 목적론이 낳은 행복주의나 기복주의의 문제점을 피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행복한 존재가 되게 하는 데 있다. 이른바 그의 도덕적 목적론은 행복 그 자체보다는 행복할 자격을 갖추는 것을 중시한다. 그의 최고선에 대한 논의에서도 의무와 행복의 일치를 주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무를 다하고 그에 준해서 행복할 자격을 논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면에서 그는 도덕적이지 않은 자는 종교적일 자격도 없다고 주장한다. 칸트의 이런 태도에는 인간의 자유의 근간인 자율성을 포기하면서까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550 헤겔의 지성에 대한 논의에만 비추어 보아도, 그의 지양적 주체는 현상과 물자체, 욕망과 의무, 행복과 도덕, 쾌와 예술, 세속과 종교를 갈라놓지 않는다. 그의 지양적 주체는 역사 내에서 부단히 현실에 참여한다. 그 현실이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 하더라도 그 현실 속에서 주체가 살아야 하고, 이런 힘든 현실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그 주제는 더 구체적으로 자유를 실현하게 된다. 헤겔의 지양적 주체는 이성과 현실이 서로 인정 투쟁을 하면서 화해하고, 화해하면서 인정 투쟁을 해야 하는 주체이다.


553 칸트의 요청철학과 헤겔의 지양철학이 보편주의의 폭력을 낳을 수 있다는 해체 철학의 비판은 그 비판이 강해질수록 반대로 상대주의의 폭력을 낳을 수 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사유가 존재 현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요청도 지양도 해체도 존재의 물결을 함께 타고 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존재 세계는 그 어느 하나로 살아가도록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이 서로 긴장 속에서 견제하면서 함께 상생하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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