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5 파시즘 6


파시즘 - 10점
케빈 패스모어 지음, 이지원 옮김/교유서가


책읽기 20분 | 파시즘  [ 원문보기]

제2장 파시즘 이전의 파시즘?(2)


급진적 우파의 지적 기원: “이탈리아 파시스트와 나치가 공통되게 활용했던 몇 가지 사상”

급진적 우파의 정치적 기원: “파시즘이 정치 스펙트럼 전반에 걸친 다양한 사상들을 차용하고 변형”


급진적 우파의 지적인 원천들

계몽주의, 일반의지론, 낭만주의, 이성에 대한 반발, 독일의 공동체(Volk),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이론, 모스카와 파레토의 정치 엘리트론, 니체, 사회다윈주의자들, 우생학, 고비노의 <<인종 불평등론>>


급진적 우파의 정치적 원천들: 내셔널리즘(민족주의, 국가주의), 사회주의와의 복합적 관계, 보수-자유주의 성향의 엘리트 계층


급진적 우파와 파시즘: “급진적 우파는 파시스트들에게 활용 가능한 모델을 제공해주었지만, 그들의 직접적인 전신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과 평화조약, 전간기 동안의 경제적 고통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대격변과 뒤이은 위기의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는 파시즘을 이해할 수 없다.”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 사이인 전간기를 시대적인 배경으로 해서 파시즘이 급격하게 등장하게 되는데, 이런 시대적인 맥락이 없으면 사실 파시즘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이전에 어떤 것들이 파시즘으로 흘러갈 준비가 되어있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지금 제2장의 목표이다. 물론 2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급진 우파의 운동이 파시즘과 완전히 유사하지 않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파시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3,4,5장에서 살펴본다.


이 책을 1장부터 읽지 않은 이유가 지나치게 학문적인 개념 규정만 하니 이것만 읽고 나가면 연역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파시즘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이 책을 읽는 순서를 오늘날 파시즘이라고 불릴만한 어떤 운동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그 다음에 전간기에 등장한 이탈리아, 독일을 이해하기 위해서, 3,4,5장이 이 책의 핵심부분인데, 2장을 읽고 있다.


2장에서는 지난 시간에 말한 것처럼 ‘대중의 약진’은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이 문제는 엘리트 지배의 존속이라는 과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민주정과 귀족정의 문제이다. 오늘은 2장을 끝까지 읽겠다. 급진적 우파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러시아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가가 논의되는데, "파시즘의 조건"과 "급진적 우파의 정치적 기원"을 보겠다.


먼저 "파시즘의 조건"인 60페이지를 보면 "급진적 우파의 토양이 된 당시의 지적·정치적·사회적·경제적 변화는 국경을 초월했고, 어떤 면에서는 좌파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고 되어있다. 여기서 보면 앞에서 프랑스의 모리스 바레스 얘기가 나오는데 가장 기본적으로는 외국인 혐오증이다. 외국인 혐오증이라는 것이 내셔널리즘, 즉 민족주의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국가주의라고 번역할 수 있는 내셔널리즘으로 전개된다. 급진적 우파의 토양을 몇 가지 추려보면 "비관용적이고, 비자유주의적이며, 메시아 사상"은 정치종교적인 측면이 있고, 그 다음에 "미셸 푸코에게 영향을 받은 일부 역사가들은 인구 계획, 의료화, 계량화에 대한 파시스트의 집착이 계몽 시대 과학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계몽주의 시대의 과학, "보편적 법칙으로부터 도출된 설계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계몽주의 사상은 분명 파시즘에 일정 부분 반영되었다."


60 급진적 우파의 토양이 된 당시의 지적·정치적·사회적·경제적 변화는 국경을 초월했고, 어떤 면에서는 좌파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60 이들은 일부 파시스트들의 비관용적이고, 비자유주의적이며, 메시아 사상에 기반을 둔 사고방식을 앞서서 나타내 보였다.


61 보편적 법칙으로부터 도출된 설계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계몽주의 사상은 분명 파시즘에 일정 부분 반영되었다.


61 미셸 푸코에게 영향을 받은 일부 역사가들은 인구 계획, 의료화, 계량화에 대한 파시스트의 집착이 계몽 시대 과학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급진적 우파의 지적인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첫째는 비관용적이고, 비자유주의적이며, 일인 지배자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 믿는 메시아 사상이 있다. 그 다음에 보편적 법칙으로부터 도출된 설계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계몽주의 사상, 그리고 낭만주의. 사실 좀 이상한 것이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인데 낭만주의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낭만주의는 자연을 숭배하고 이성을 배척했으며, 예술가의 천재성으로 대중의 평범함을 상쇄하고자 했다." 그 다음에 여기서 좀더 나아가면 이성에 대한 반발이라고 하는 것이 개입될 수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종족적(ethnic) 특징과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폴크, 국민으로 번역이 되어있지만 국민이라고 번역하기에는 어중간한 단어로 민족이라고 번역할 수 있고, 사실 '공동체 정신'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폴크가 급진적 우파의 지적인 기원이 되고, 프랑스의 군중심리 이론가 귀스타브 르 봉이 있는데 군중은 비이성적이고 선동 정치가에 의해서 조종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62 낭만주의는 자연을 숭배하고 이성을 배척했으며, 예술가의 천재성으로 대중의 평범함을 상쇄하고자 했다.


62 독일에서는 낭만주의를 뒤이은 다양한 관념론적 사조의 영향 아래서 독일 '폴크(volk, 국민)'라는 개념 ━ 윤리적이고, 사회적으로 통합되었으며, 가부장제에 바탕을 두고, 종족적(ethnic) 특징과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이 형성되었다.


63 파시스트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 프랑스의 군중심리 이론가 귀스타브 르 봉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군중은 비이성적이고 선동 정치가에 의해서 조종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순서대로 말하자면 계몽주의가 있고, '일반의지'라고 불리는 보편적 이성에 따라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루소의 사상도 관련이 있고, 독일 낭만주의와 독일의 공동체 정신. 그리고 프랑스의 군중심리이론, 조르주 소렐은 "대중을 움직이는 동기는 신화와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그 다음에 "가에타나 모스카와 빌프레도 파레토는 정치 엘리트 집단의 권력 유지를 위한 폭력의 기능을 강조했다." 대중이 등장했다고 하는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엘리트는 폭력의 기능을 강조했다. 그리고 니체의 보편주의가 전용되고 오용되었다. 아주 온갖 것을 다 끌어왔다.


63 르 봉과 같은 유형으로, 역시 무솔리니가 인용했던 조르주 소렐이 있다. 그 또한 대중을 움직이는 동기는 신화와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63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가에타나 모스카와 빌프레도 파레토는 정치 엘리트 집단의 권력 유지를 위한 폭력의 기능을 강조했다.


63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보편주의가 강자에 대한 존중을 약화했다고 믿었다.


63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사상이 프로토-파시스트들에 의해서 전용되고 오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어서 사회다윈주의자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진화론으로 변형시킨 우생주의가 여기서 나타난다. 그리고 거기에 프랑스의 왕정 옹호자 고비노 백작이 1853년에 쓴 『인종 불평등론』, 그리고 이 책의 열광한 이들 중 한 명이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였고, 바그너가 유대적 요소가 제거된 게르만 기독교, "그는 반유대주의, '유대적 요소'가 제거된 게르만 기독교, 그리고 다신교적 전승을 혼합하여 이상화된 게르만 신화를 창조했다." 그의 사위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은 여기에 사회다윈주의와 인종주의적 사상을 첨가했다. 히틀러는 체임벌린의 추종자였고, 승리 아니면 죽음이라는 바그너의 꿈을 일생 좇았다.


65 프랑스의 왕정 옹호자 고비노 백작이 1853년에 쓴 『인종 불평등론』은 발간 이후 줄곧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890년대부터 읽히기 시작했다. 이 책의 열광한 이들 중 한 명이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였다. 그는 반유대주의, '유대적 요소'가 제거된 게르만 기독교, 그리고 다신교적 전승을 혼합하여 이상화된 게르만 신화를 창조했다. 그의 사위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은 여기에 사회다윈주의와 인종주의적 사상을 첨가했다. 히틀러는 체임벌린의 추종자였고, 승리 아니면 죽음이라는 바그너의 꿈을 일생 좇았다.


인종주의는 제국주의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였다. 그래서 유럽의 강대국들이 이것을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면서 이용했다. 이렇게 보면 급진적 우파는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 사상들의 산물이었다. "급진적 우파는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 사상들의 한 가지 산물이었다. 이 사상들은 신비주의와 과학주의, 전통주의와 모더니즘, 이성과 반이성을 포함했으며, 정치적·국자적 경계를 넘나들었다." 거기에 더해서 의사와 변호사들은 극우 진영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왜 극우진영에서 활동하는가. 여기서 보면 그 실마리를 볼 수 있다. "이 박학다식자들은 영역이 특화된 전문적인 학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분개했고, 정치적인 성공으로 이를 보상받고자 했다." "전문지식인에 대한 질시와 더불어, 유대인과 여성의 전문직 진출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했다."


65 인종주의는 제국주의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였다.


66 급진적 우파는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 사상들의 한 가지 산물이었다. 이 사상들은 신비주의와 과학주의, 전통주의와 모더니즘, 이성과 반이성을 포함했으며, 정치적·국가적 경계를 넘나들었다.


67 의사와 변호사들은 극우 진영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67 이 박학다식자들은 영역이 특화된 전문적인 학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분개했고, 정치적인 성공으로 이를 보상받고자 했다.


67 전문지식인에 대한 질시와 더불어, 유대인과 여성의 전문직 진출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했다.

이런 것들이 지적인 기원이라고 한다면 이제 급진적 우파의 정치적 기원을 보면 먼저 거론할 수 있는 것이 내셔널리즘이다. 내셔널리즘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민족주의라고 옮겨도 되고, 국가주의라고 옮겨도 된다. 민족의식과 인종의식을 굉장히 고양시키면서 특히 이탈리아나 독일과 같이 새로운 국가를 세운 지 얼마 안 되는 곳에서 널리 번성했다. 그리고 내셔널리즘은 급진적 우파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틀림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적 우파와 사회주의의 관계를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70페이지에 복합적이었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는 내셔널리즘보다는 국제주의를 우선시 했기 때문에 급진적 우파와 서로 결합되는 지점이 없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내셔널리즘 사이에는 잠재적인 접점이 존재했다. 19세기의 대부분 동안, 사회주의자들은 내셔널리스트였고, 자신을 '세계주의적인' 자본가나 귀족이 아닌, 국민과 민족의 대변자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파시즘은 노동자를 국가공동체 안으로 포섭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사상을 응용하고자 한 점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들이 급진적 우파에 매력을 느낀 것은 당연한 사건이겠다. "프로이센의 토지귀족인 융커는 독일토지연맹을 설립했으며, 프랑스 왕당파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반유대연맹을 조직했다." 또 "자유주의자들 역시 급진적 우파에 전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69 급진적 우파는 내셔널리스트들이 새로운 국가를 세운 지 얼마 안 되는 곳,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강했다.


70 급진적 우파와 사회주의의 관계는 복합적이었다.


70 사회주의와 내셔널리즘 사이에는 잠재적인 접점이 존재했다. 19세기의 대부분 동안, 사회주의자들은 내셔널리스트였고, 자신을 '세계주의적인' 자본가나 귀족이 아닌, 국민과 민족의 대변자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72 보수주의자들이 급진적 우파에 매력을 느꼈다.


72 프로이센의 토지귀족인 융커는 독일토지연맹을 설립했으며, 프랑스 왕당파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반유대연맹을 조직했다. 자유주의자들 역시 급진적 우파에 전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다.

보수-자유주의 성향의 엘리트 계층은 급진적 우파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소수 민족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대중의 성장이 불가항력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를 굉장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파활동가들이 한 명의 강력한 지도자를 통하여 그렇게 해결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그쪽으로 보수화되어 갔다. 그래서 내셔널리즘, 사회주의 및 보수주의, 자유주의 이런 것들이 파시즘에 흡수되었다. 물론 좌파보다는 우파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이 흡수된 건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급진적 우파들이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영국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얘기가 75페이지에서 83페이지까지 설명을 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들이기 때문에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73 보수-자유주의 성향의 엘리트 계층은 급진적 우파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소수 민족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적들에게 다소간의 양보를 해줄 의향이 있었다. 그들은 '대중의 성장'을 불가항력적인 변화로 보았고, 그것과 타협하지 않으면 정치적인 파멸에 이를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이 파시즘의 전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급진적 우파운동의 지적인 기원과 정치적 기원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대중의 약진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한 것. 그러면 급진적 우파는 곧바로 파시즘과 동일시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완전히 유사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우리는 이해하는가. "급진적 우파와 파시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1차세계대전과 평화조약, 전간기 동안의 경제적 고통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이게 바로 급진적 우파가 파시즘으로 가는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다. 전시동원체제의 경험을 통해서 생각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거듭 다시 얘기한다. "1차세계대전이라는 대격변과 뒤이은 위기의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는 파시즘을 이해할 수 없다. 여러 나라가 전쟁과 혁명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공통된 사상들을 통해 이해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파시즘과 유사한 운동들이 복수의 나라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파시즘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은 채 생겨났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어째서 파시즘은 이탈리아에서 집권에 성공했을까? 이탈리아는 승전국, 독일은 패전국이었다." 어떻게 해서 성공했을까. 일단 급진적 우파가 파시즘으로 전개되어가는 핵심적인 매개체는 바로 "1차세계대전이라는 대격변과 뒤이은 위기의 상황들"이다. "1차세계대전과 평화조약, 전간기 동안의 경제적 고통"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84 급진적 우파와 파시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85 1차세계대전과 평화조약, 전간기 동안의 경제적 고통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87 1차세계대전이라는 대격변과 뒤이은 위기의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는 파시즘을 이해할 수 없다. 여러 나라가 전쟁과 혁명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공통된 사상들을 통해 이해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파시즘과 유사한 운동들이 복수의 나라에서 서로 독립적으로, 파시즘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은 채 생겨났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87 어째서 파시즘은 이탈리아에서 집권에 성공했을까? 이탈리아는 승전국, 독일은 패전국이었다.


"종합하자면, 급진적 우파는 단순히 극단적 내셔널리즘이나 아노미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다. 급진적 우파는 민족국가 건설과 제국주의, 그리고 인종의 질과 효율성의 향상에 대한 관심이라는 맥락 속에서, 일자리와 경제적 보상, 성공적인 교육, 정치적 명예를 두고 사회주의자, 소수 종족, 페미니스트, 자유주의자 등과 벌이는 매일의 경쟁 속에서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급진적 우파의 상황인데, 이 상황이 1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파시즘으로 전개되어 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74 종합하자면, 급진적 우파는 단순히 극단적 내셔널리즘이나 아노미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다. 급진적 우파는 민족국가 건설과 제국주의, 그리고 인종의 질과 효율성의 향상에 대한 관심이라는 맥락 속에서, 일자리와 경제적 보상, 성공적인 교육, 정치적 명예를 두고 사회주의자, 소수 종족, 페미니스트, 자유주의자 등과 벌이는 매일의 경쟁 속에서 뿌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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