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4 다이쇼 데모크라시 1


다이쇼 데모크라시 - 10점
나리타 류이치 지음, 이규수 옮김/어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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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류이치成田龍一(지음), 이규수(옮김), <<다이쇼 데모크라시>>, 어문학사, 2012.

원제: 大正デモクラシー―シリ(岩波書店, 2007)


– 이 시기를 가리키는 ‘デモクラシー―シリ’(democracy)라는 말이 과연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는가? 정확하게 말하면 메이지 헌법 체제, 즉 ‘위로부터의 근대국가화’에 대항하여 인민의 자립적 가치와 자유를 실현하려는 ‘내재적 근대화’ 운동 이라 할 수 있다. 즉 ‘liberalism’(자유주의) 운동의 시대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 시기 구분: 제1기(1905년 러일전쟁 강화반대운동 – 1912~13년 제1차 호헌운동), 제2기(제1차 호헌운동 – 1918년 쌀소동시기), 제3기(쌀소동부터 1924년 제2차 호헌운동)

– 이어지는 시기는 곧바로 만주사변(1931년)이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군부파시즘이 등장.


– 메이지헌법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지만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추진한 대중의 조직과 사상이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이후 민주주의의 재생기간의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 다른 한편으로 다이쇼 데모크라시 이후의 군부파시즘 또한 미완의 것으로 남았으므로 일본의 전후에는 재생가능한 유산이 둘 있는 셈이다. 일본은 이 둘 중에서 무엇을 재생해야 할 것인가?


– 밖으로는 제국주의, 안으로는 입헌주의 시대: 일본의 식민지배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라는 점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전성기.







가타야마 모리히데, 《미완의 파시즘》


이제 4번째 책인 나리타 류이치의 《다이쇼 데모크라시》을 읽는다. 메이지 천황 다음이 다이쇼 천황, 쇼와 천황, 헤이세이 천황이다. 쇼와 연호를 쓰고 이런 것들이 일본사람들에게는 익숙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데모크라시는 민주주의이니, 직역을 하면 다이쇼 민주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일본사람들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라고 말을 한다. 이 표현 자체가 어떠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어떤 뉘앙스인가. 데모크라시 시대인데 다이쇼 천황이 주권자로서 있다. 천황제가 유지되고 있는데 데모크라시라고 하면,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권을 가진 시대를 말하는 것이니, 그래서 천황의 연호인 다이쇼와 데모크라시를 나란히 놓을 수 없는데 놓여있다. 그러니 벌써 민주정이 아니라는 것을 첫째로 암시하고 있다. 둘째로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민주주의 국가는 아닌데 데모크라시적인 시대가 나타난, 정확하게 말하면 데모크라시적인 흐름이 나타난 것도 아니다. 공화정도 민주주의가 나타난 것도 아니다. 뭐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오히려 자유주의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의 한 시기를 다이쇼 데모크라시라고 정해두었다. 


10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말은 시기와 내용, 가리키는 대상 혹은 역사적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논자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역사 용어와 역사 개념으로서 확실히 정의되었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지표를 어떻게 삼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지겠지만, 이 시기에 접어들어 '일본' 역사에는 절단선이 생겨 새로운 시대상이 표출되었다는 인식이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44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초기의 사상적인 화두는 '민본주의'였다. 민본주의는 '입헌'과 '헌정' 등의 말과 함께 데모크라시를 고찰한 '신조어'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는 메이지 헌법 체제가 이전에 있었고 그 시대를 살았던 일본 국민들이 좀 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 자유를 얻으려는 어떤 과감한 운동들이 많이 생겨난 시기이다. 메이지 헌법 체제를 여러가지로 규정할 수 있겠지만 다이스 데모크라시 시대에서 한번 생각해보면 위로부터의 근대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국민들이 자유주의적인, 즉 인민이 가지고 있는 자립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시도들이 등장했다. 각각의 개인이 가진 가치, 국가에 의해서 휘둘리지 않고, 하나의 개체로서의 개인은 현실적으로 성립되지 않지만 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은 개체로서의 개인이 이상적일지라도 이것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시대였다고 규정할 수 있겠다. 이 시기를 평가할 때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인주의와 같은 보편적 규범을 근거로 삼아서 평가를 해야 한다. 즉 표준적인 의미에서 자유주의 시대로 나아가려는 시도들이 있다. 


또한 정치 정당 체제가 등장하게 된다. 또 경제측면에서는 국가 통제로부터 자본이 독립하려는 시도. 그 다음에 학술적인 측면에서는 아카데미즘. 대학자치로 대표되는 아카데미즘이 확립되고, 문화의 측면에서는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추구되는 시대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자유, 자립 이런 것들이 추구되던 시대다. 위로부터의 근대화가 메이지 헌법 시대였다면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는 내재적 근대화 운동의 시대라고 파악할 수 있겠다.


45 요시노는 민본주의를 데모크라시의 번역어로 삼았다. 당시 데모크라시에는 '민주주의'라는 또 하나의 번역어가 있었다. 이 뜻은 '국민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는 것으로 군주국 일본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배척당했다. 요시노는 민본주의를 주권의 존재가 아니라 주권 운용의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이어지는 시대를 보면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미완의 상태로 남았다. 완전히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1기는 1905년 러일전쟁 강화반대운동에서 시작해서 1912~13년에 있었던 제1차 호헌운동으로 진행이 된다. 제2기는 제1차 호헌운동에서 1918년 쌀소동시기이다. 제2기는 일본에서 위기가 있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전쟁위기가 체제위기를 벗어난 측면이 있다. 제3기는 쌀소동부터 1924년 제2차 호헌운동로 나눈다. 그래서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이렇게 셋으로 나눈다. 


294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제1기는 1905년의 러일전쟁의 강화에 반대하는 운동부터 1912~13년 제1차 호헌운동까지의 시기이다. 강화반대운동은 번벌 정치 타파 요구를 포함해 '밖으로는 제국주의, 안으로는 입헌주의' 이념에 의거한 전국적인 도시의 민중운동으로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기점이 되었다.


295 제2기는 제1차 호헌운동부터 1918년 쌀소동까지의 시기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개시에 따른 전쟁경기는 비특권 자본가 계층의 반동화를 불러일으켜 호헌운동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 체제를 궁지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296 제3기는 쌀소동부터 1924년의 제2차 호헌운동까지의 시기이다. 안으로는 쌀소동, 밖으로는 러시아혁명 이후 유럽에서 전개된 혁명적 운동과 ILO(국제노동기관)의 영향을 받아 근로대중의 정치적 자각이 고조되었고, 보통선거운동이 전국적 대중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그런 다음에 1931년에 만주사변이 일어난다. 만주사변때부터가 일본이 본격적으로 파시즘 체제로 들어가는 것. 그러면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메이지 시대에서 본격적인 파시즘 시대 사이의 중간에 껴있는 시기이다. 그러면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완전한 성과를 얻었다면, 역사에는 가정이 없으니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파시즘 체제가 일본에서 대두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메이지 헌법체제를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에 바꾸지 못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실패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정치, 문화, 학술 이런 여러 차원에서 내제적 근대화를 시도했고 그런 것들이 하나의 싹으로 남게 되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전체를 보면서 남게 되는 한가지 의문이 있다. 메이지 헌법체제를 왜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었는가. 흔히 말하는 자유주의 체제는 왜 실패했는가. 왜 파시즘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일본의 역사이기 때문에 속내를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그런데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읽으면서 가졌던 관심사는 이것이다. 왜 실패했는가. 물론 저자는 메이지헌법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지만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추진한 대중의 조직과 사상이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고, 그것이 아시아·태평양 전쟁 이후 민주주의의 재생기간의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고 말한다. 조금 옆으로 빼서 해보면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에는 분명히 내재적 근대화, 즉 자유주의가 성취되지 않았다. 이것에 실패함으로써 일본이 군부파시즘 시대에 들어간다. 그런데 《미완의 파시즘》과 같은 책을 보면 일본의 파시즘 역시 미완 상태였다고 말한다.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시아 태평양 전쟁 이전의 일본에서는 두 개의 미완성체가 있는 셈이다. 하나는 데모크라시, 그리고 하나는 파시즘이다. 현재 아베 정권이 들어섰다. 파시즘을 완성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데모크라시의 유산을 재생시켜서 완성하려 할 것인가. 이것이 몹시 궁금한 점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어떤 것을 완성시켜야 할 것인가. 당위적으로 보면 데모크라시이다. 국가주의를 재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주의를 재생시켜야 할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을 읽는 우리의 문제의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라서 다시금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시기를 간명하게 정리해보면 이때 분명히 일본은 밖으로는 제국주의 국가, 안으로는 입헌주의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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