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 | 01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1


오뒷세이아 - 10점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71104_01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1

제일 궁금한 것은 과연 이런 책을 읽으면 사람이 바뀌는가.

착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이제 읽어나갈 책들은 서양 문학의 고전들이다. 누구나 중요한 것은 알고 있지만 절대로 읽지 않고 읽은 척은 하고 싶은 책들이다. 예전에 라디오인문학을 할 때도 그런 책을 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보고자 이번에도 그런 책들을 정하여 보았다. 하지만 읽어보면 이런 것은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런 책도 읽고 있는데 이보다 더한 정신적인 고통은 웬만하면 견디겠다는 인내심과 맷집 정도는 생기지 않을까 한다.


어려운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내공이나 근육, 버티는 힘 정도는 확실히 늘어난다는 것인가.

텍스트를 읽는 힘은 늘어나지 않는 것 같은데 버티는 힘은 늘어난다. 


오늘은 책 소개를 한다면 어떤 책을 읽어나갈 것인지.

일단 서구 문학의 작품들을 보자면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출발점이다. 물론 그 이전에 《길가메쉬 서사시》가 있기는 하지만 난삽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책이다. 호메로스는 그보다는 남에게 알려져 있고 폼을 잡기도 좋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있는데 《오뒷세이아》를 읽는 것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기본적으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해서 《일리아스》는 트로이전쟁이 벌어지면서 전쟁이 끝나는 시점이고, 《오뒷세이아》는 전쟁 후에 거기에 참전했던 영웅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얘기이다.

《일리아스》는 전쟁에서 이긴 얘기이니까 즐겁다면, 아무리 위대한 승리라고 해도 승리 이후의 씀쓸함이 있다. 전쟁에서 이긴 남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사실 두 개의 서사시를 강의를 위해서라도 여러 번 읽어봤는데 읽어보니 《오뒷세이아》가 훨씬 더 쓸쓸하다. 읽으면 마음이 아프다.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된다. 서사시라고 해서 굉장히 장엄한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굉장히 사밀한,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요즘의 웬만한 인생한탄보다도 읽어볼만하지 않나 한다.


디어헌터라는 영화가 있는데 고향에 돌아가봤자 별 볼일 없는 부분이 나온다.

그 얘기다. 《오뒷세이아》가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라는 뜻인데 고향에 돌아가봤자 별볼일 없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계속 품고 있다. 가보니까 아내 페넬로페의 주변에는 괜찮은 남자들에 둘러쌓여 있고 굉장히 괴롭다. 어떻게 보면 고대 희랍판 디어헌터라고 할 수도 있다. 오뒷세우스는 운이 좋아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고, 아들도 번듯하게 자랐다. 반면 아가멤논은 바람난 아내의 정부로부터 죽임을 당한다. 아가멤논의 이야기가 《오뒷세이아》에도 나온다.


《오뒷세이아》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나 창작의 동기들을 얻어 낸 작품들이 많다.

《오뒷세이아》를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율리시즈이다. 율리시즈나 오딧세이라는 말들이 예를 들어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그런 얘기이다. 그 다음에 뭔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여행을 얘기할 때 오딧세이라는 말을 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


요새는 서정이 대세다 서사가 대세다 라는 말을 하는데 한쪽에서는 서사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한쪽에서는 서정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두 갈래 경향이 다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사적인 취향의 문제인데 저는 서정보다는 서사를 더 좋아한다. 서사는 말 그대로 이야기이다. 이야기이니까 구조가 있어야 한다. 서사시라는 이야기를 시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먼 옛날의 희랍에서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시인에게 들려달라고 하면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이 들려주고 싶었던 것. 똑같이 들려줌으로써 감동을 얻게 하고 싶었던 것. 그러니까 기억하기 좋게 시로 만들었던 것. 기본적으로서 서사시는 이야기다.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 전쟁이 끝난 다음에 집에 돌아온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주기 쉽게 하려고 시로 만들어서 서사시이다. 그런데 서사시라고 하는 것은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처럼 호메로스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이것은 희랍 사람들의 시대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일리아스》도 아킬레우스가 화가 났다가 화가 풀린 이야기이다. 친구인 파트로클레스가 죽은 후 헥토를 죽이는 얘기. 《오뒷세이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사적인 이야기들이 희랍에서는 비극으로 전개되었고, 그러다가 《아이네이스》에 와서 로마 건국신화가 거기에 덧붙여진다. 사실은 거대한 이야기가 아닌데 《아이네이스》는 목적이 있는 건국서사시가 된다. 이게 사실은 이데올로기적인 윤색이 있는 것. 그러다가 《고백론》과 같은 중세 문학의 단계를 거쳐와서 단테의 《신곡》에 이른다. 《신곡》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때부터는 서사시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변한다. 정말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인 것은 밀턴의 《실락원》. 현대인들에게 서정적인 것을 느끼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서사시를 읽고 싶다면 호메로스를 읽는 것이 좋다.


오늘날 21세기 한국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내 것으로 갖고 싶다가 아니다. 인간은 오랜 역사 속을 살아가면서 자기 것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 이타심이 있는데 이 이타심이 발휘되는 범위가 나와 같은 친족집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다. 이것을 조금만 넓혀보면 나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것. 난 당신을 사랑해 라는 말보다도 훨씬 더 본능에 가까운 말은 사실 당신을 내 것으로 하고 싶어 라는 말이다. 사랑은 폭력적인 것. 그런데 그 사람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사랑은 사라진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 같은 분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하지만 우리는 불가능하다. 나의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나의 친족이라고 생각하면 사랑이 생겨나는 것. 그러면 그렇게 하려면 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자기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고 살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사랑이 넓혀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굳이 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자고 하는 것은 지금부터 2500년 전 아주 먼 옛날 이야기이고, 전혀 낯선 곳에서 낯선 시간에 일어난 일을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의 이해력을, 공감력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


그 확장된 눈과 마음을 가지고 자기 이웃과 자기 옆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인가.

돌아보는 것은 어렵고 마음을 가지기만 해도. 물론 그러려고 노력을 하지만 읽고 나면 그것은 안되는 것 같다. 천성이 너그러운 사람이나 그렇다. 


《오뒷세이아》의 여행이 앞으로 어떤 성격으로 진행될 것인지 짐작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주인공 소개를 해보면.

희랍의 주인공들은 무사들이다. 싸움은 잘하지만 굉장히 희랍세계에서는 독특한 인간이다. 아킬레우스처럼 적을 무찌르는 사람이기보다는. 서사시의 처음을 보면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 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러니까 첫 구절에 따르면 '많이도 떠돌아 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이다. 이것이 천병희 교수께서 이렇게 번역을 한 것은 한국어를 읽어내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신 것도 있는데 직역을 해보면 ‘임기응변에 능한’이 나쁘게 말하면 ‘꾀도 많고 교활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많이 떠돌아 다닌 것은 오뒷세우스의 의지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신들의 뜻에 따라 움직여 다닌 것도 있다. 나쁘게 말하면 간교한 사람이고, 그 사람은 희랍세계에서 낯선 사람이다. 아킬레우스처럼 우직하고 전우애에 불타는 사람이 아니다.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앞에 형용사로 '사려 깊은'이 들어간다. 좋게 말하면 사려깊은 인데 나쁘게 말하면 잔대리가 많다는 뜻도 된다. 희랍세계에서는 전형적인 두 종류의 인간이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이다.


오뒷세우스의 꾀 많은 이야기는 트로이의 목마를 생각해 낸 사람이다.

그렇다. 결국 트로이아를 멸망시켰고, 그렇기 때문에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헬레네가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감사하다는 얘기를 한다. 후일담이 여기에 있는 셈.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 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 여기서 오뒷세우스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희랍어 원문을 보면 "그 남자에 대하여 내게 들려주소서"라고 말한다. '그 남자'라는 것이 아직 이름을 모르는 것. 굉장히 재미있는 시작점인데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시인도 모른다는 것이고, 신이 들려줘야 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시인이 신에게 얘기를 들어서 사람들에게 전해주는데 이 사람들도 신이 시인에게 들려준 얘기를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된다.


1.1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 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시들을 보았고 그들의 마음을 알았으며

바다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전우들을 귀향시키려다

마음속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토록 애썼건만 그는

전우들을 구하지 못했으니, 그들은 자신들의 못된 짓으로 말미암아

파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바보들이 헬리오스 휘페리온의

소 떼를 잡아먹은 탓에 헬리오스 신이 그들에게 귀향의 날을

빼앗아버렸던 것입니다. 이들에 관해 아무 대목이든,

여신이여, 제우스의 따님이여, 우리에게도 들려주소서!


'그남자'라는 정체성이 이 이야기에서 조금씩 그려는 것인가.

그렇다. 다 들어야 하는데 끝까지 참아내지 못하면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저에게는 이 《오뒷세이아》가 글을 쓸 때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하는가, 그 구조가 굉장히 치밀하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서사시를 읽을 때 힘든 점이 구조를 모르면 허장성세가 난무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사시를 읽는 방법이라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 구조가 있다. 책을 쓸 때도 서사시의 구조를 흉내내보려고 한다.


무협지를 읽다보면 구조를 파악하게 된다. 읽다보면 플롯이 비슷하니 내용이 지겨워진다.

무협지보다는 훨씬 더 치밀하고 이 구조가 서양 문학에서, 심지어 괴테의 《파우스트》라고 하는 서사시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파우스트》가 마지막 서사시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에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구조를 조금 설명하면 《오뒷세이아》는 2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의 분류법으로 따지면 1~24장으로 생각하면 된다. 1~4권의 이야기는 텔레마코스의 이야기이다.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주는 것. 서양 문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아버지와 아들이다. 사실 다스베이터의 I'm your father의 기원이 오뒷세우스와 텔레마코스이다. 또 하나의 의미는 1~4권 사이에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것이 오뒷세우스의 젊은 날을 상징할 수도 있다.



………

오늘은 강유원 박사를 모시고 《오뒷세이아》에 대한 이야기를 드디어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여정의 시작이다. 대 모험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다. 《오뒷세이아》의 구체적인 구조와 전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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