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 | 01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3


오뒷세이아 - 10점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71118_03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3

《오뒷세이아》 3번째 시간이다. 오뒷세우스가 고향까지 왔는데 고향에 돌아온 의미는 어떻게 봐야하는가.

이타케에 돌아온 것이 13권이다. 그 많은 어려움을 겪고, 흔히 사람들은 바깥에서 어려움을 겪고 오면 그때부터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뒷세이아》라는 작품을 읽을 때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지점에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제부터 벌어지는 사건들은 인간을 진정으로 자기이게 하는 셀프, 진정으로 자기이게 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나희덕 시인의 "속리산에서"라는 시가 있다. 산을 다 올라가면 힘들었지 하면서 그러나 산밑에서 밥을 끓여먹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정말 자기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더 힘든 일인지 위로하는 장면이 있다. 성경책에도 나온다. 역시 선지자는 자기 고향이 제일 힘들지 바깥은 오히려 낫다는 것이다.

《오뒷세이아》의 후반부가 바깥에 나와서 사는 삶과 집에 가서 사는 삶의 엄청난 대조가 있다. 


속리산에서

- 나희덕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서사시의 주제가 귀향이면서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헤어졌던 아내와 아들의 동심을 확인해야 한다.

《오뒷세이아》의 큰 주제가 귀향인데 귀향이라는 큰 주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요소가 외부의 모험과 같은 마음이 결합될 때 진정한 의미의 귀향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오뒷세이아》에서 다루지 않은 것이 있는데, 기원전 5세기쯤이니까, 이때만 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자기가 자기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에 대한 것이 없다. 그것은 20세기에 와서 발견한 것. 사실 그것을 발견한 선구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인데 그래도 배경에는 신이 있다. 자기가 보기에 자기가 낯설어 보이면 굉장한 고통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는 인간 내면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마음을 확인하는 여러 단계가 있다. 일단 아들에게 인정 받는 것이 1단계, 동네에 들어와서 발을 씻는 것이 2단계, 구원자들을 죽이기 전에 이것저것 처리를 하는 것이 3단계, 활로써 힘을 과시하는 것이 4단계, 그리고 구원자들을 죽이는 것이 5단계, 그 다음에야 비로소 마지막에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 진행된다. 


아들과 만나는 장면인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가 만나는 지점은 사실 서로 맞춰볼게 없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해도 칼로 해결할 수 있다. 감정의 뒤얽힘이 별로 없다. 그런데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 사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텔레마코스는 그렇게 해결이 된다고 치고, 부인을 만나러 가야한다. 부인 곁에는 이미 온갖 놈팽이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잘난 척을 다하고 있다. 과연 그 중에서 마음을 준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해봐야 한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살펴보고 적들을 처치하고 또 다시 살펴보고 그런 다음에 정말로 두 사람만이 아닌 내밀한 것들을 확인해 들어간다. 희랍의 서사시 중에서도 《오뒷세이아》가 재미있는 것은 내밀한 것들을 잘 다루고 있다. 


페넬로페는 시아버지인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짠다. 하루 종일 짜서 밤이면 다시 풀어버리는 끝나지 않는 영원히 되풀이 되는 이야기를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짠다는 관용적인 표현이 있다. 나중에 구혼자들을 죽이고 페넬로페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대단한 것을 하나 내놓는데 그것이 유명한 페넬로페의 침대 얘기이다. 하녀인 에우뤼클레이아에게 "그이가 손수 지으신 우리의 훌륭한 신방 밖으로 튼튼한 침상을 내다놓으시오."라고 말하자 역정을 내며 침대를 옮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얘기가 페넬로페와 오뒷세우스가 서로를 확인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침대라는 것이 상당히 내밀한 것.


23.177 에우뤼클레이아! 그이가 손수 지으신 우리의 훌륭한

신방 밖으로 튼튼한 침상을 내다놓으시오.


23.181 이런 말로 그녀가 남편을 시험하자 오뒷세우스는

역정을 내며 알뜰히 보살피는 아내에게 말했다.


23.183 여보! 당신은 정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는 구려.

누가 내 침상을 다른 데로 옮겼단 말이오? 아무리 솜씨 좋은 자라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신이 친히 오신다면 몰라도.

신은 원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 쉽게 다른 데로 옮기실 수 있으니까요.


부연 설명을 이어하자면 둘이 결혼할 때 살아있는 올리브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침대로 삼았다. 페넬로페가 침대를 옮겨놓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영역한 로버트 페이글스의 영역본을 보면 챕터의 제목은 원래 없었기 때문에 번역자가 정할 수 있는데 23권의 제목을 "The Great Rooted Bed"라고 했다. 거대하게 뿌리를 내린 침대. 굉장히 울림이 있다. 독자나 청중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세하게 만드는 과정을 얘기한다. 하나하나를 말하는 것 자체가 페넬로페에게는 남편임을 알려주는 너무나 생생한 것. 


23.190 우리 안마당에는 잎사귀가 긴 올리브나무

한 그루가 한창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데 그 줄기가 기둥처럼

굵었소. 그 나무 둘레에다 나는 돌들을 서로 밀착시키며 방을

들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것이 다 완성되자 그 위에 훌륭하게

지붕을 씌우고 튼튼하게 짜 맞춘 단단한 문짝들을 달았소.


경계심이 풀리는 과정이 23권 205행부터 되어있다. 서사시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도 남김없이 표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웅장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오뒷세우스가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를 내세우니 무릎이 먼저 풀리고 심장이 굴복하고, 눈물이 고인다. 그 다음에 달려가서 두 팔로 목을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에야 눈물이 내린다. 


23.205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가 그 자리에서 무릎과 심장이 풀렸으니

오뒷세우스가 말한 확실한 특징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울면서 오뒷세우스에게 곧장 달려가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머리에 입 맞추며 말했다.

"오뒷세우스여! 내게 화내지 마세요. 당신은 다른 일에서도

인간들 중에서 가장 슬기로우시니까요.


구혼자들을 모두 죽여버려야 했는가.

그것은 희랍세계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표현이다. 적을 완전히 절멸시키는 것. 편안함과 같은 마음은 폭력을 통해서만 성취된다는 것이 희랍세계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 그것의 폭력성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폭력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폭력성은 서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밑바닥에 놓여있다. 구약성서의 세계관도 굉장히 폭력적이다. 신약성서는 기본적으로 구약성서의 모든 세팅을 아예 걷어내고 폭력성을 단절시킨다. 희랍세계와 고대 구약에 등장하는 히브리 세계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상대의 절멸을 위에서 나의 생존이 유지되는 세계이다. 그들의 역사, 지리, 환경 자체가 굉장히 냉혹하지 않았나 한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한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같은 마음이 될 수 없다. 23군의 287행부터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오뒷세우스는 자기가 겪은 일을 재구성하는 것이고, 이런 재구성을 통해서 사실은 오뒷세우스 자아를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페넬로페도 남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자기 얘기도 계속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사람들이 이야기라고 하는 것에 굉장히 집착을 하는데 이야기를 해야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면 같은 마음에 이를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전에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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