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8 포크를 생각하다 4


포크를 생각하다 - 10점
비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까치


책읽기 20분 | 포크를 생각하다 [ 원문보기]

2. 칼

- “부엌은 폭력적인 장소”, 칼은 가장 오래된 연장으로 “불씨 관리 능력보다도 100만-200만 년 정도 앞섰다.”


- 칼은 중세와 르네상스 이후까지도 누구나 가지고 다녔다. “당시에는 남의 칼로 음식을 먹지 않았다.”


- “강철은 16세기에 이미 칼 제작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금속이 되었다.”


- 칼의 전문화와 요리 문화의 변화: 서로가 원인인 동시에 결과가 되었다.

“음식은 칼이 만든다. 그리고 칼은 해당 지역의 자원, 기술적 혁신, 요리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취향이 신비롭게 결합한 결과이다.”


- 중국식 부엌칼: 모든 음식 재료를 한 입 크기의 조각으로 만들고, 그에따라 식탁에서 칼을 없앴다. “부엌칼과 젓가락은 완벽한 공생관계이다.”

중국인들의 치아상태인 ‘피개교합被蓋交合’은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유럽인들과 차이가 생겨났음을 보여준다.




포크를 생각하다》를 읽고 있다. 오늘은 제2장 칼을 읽는다. 이 책은 8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가장 기본이 냄비와 펜, 그리고 칼, 불, 그리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그리고 그런 모든 것이 일어나는 부엌이 중요한 것 같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가끔 "기술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는 이런 얘기를 듣는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기술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며 안되나 하는 생각도 한다. 철학은 무언가 기술적이 아니라 심오한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골고루 해야 한다.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요구되는 다양한 기술들, 그런 기술들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삶의 방식이 바뀌면 자신의 신념체계도 바뀐다. 또한 신념체계에 따라 삶을 바꿀 수도 있다. 어느 것이 먼저이다라고 말하기 어렵게 서로 호환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래서 자잘한 것들까지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춘추전국시대에는 폭발적으로 생산력이 좋아졌다. 철제 농기구의 도입 때문인데 그럼으로써 전통적인 의미에서 귀족을 지칭하던 '군자'를 일반적으로 공부 좀 하고 세상물정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바뀌게 되었다. 그런 지점에서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얘기들이 가능했던 것. 그전에는 유가 집단이 장례를 치르고 일생에서 필요한 의식을 행하는 집단이었다면 이제 정치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고 고차적인 도덕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들로 바뀌게 되고, 士라고 하는 집단이 부상하게 된다. 공자는 그런 집단들을 위한 여러가지 교육 커리큘럼들을 마련하고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런 것들이 가능해지려면, 즉 우리가 동아시아 세계에서 가장 기술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고리타분해보이는 유가집단을 생각할 때 유가집단이 어떻게 등장하였는가를 생각해보면 일단 춘추전국시대에 철제 농기구가 등장하고, 사회생산성이 발전하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으면 그냥 막연하게 하늘의 뜻이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 유의해서 읽어봐야 한다.


이번에는 칼이다. 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저자가 74페이지에 멋진 말을 써놨다. "부엌은 폭력적인 장소이다. 사람들은 데고, 찰상을 입고, 동상에 걸리고, 무엇보다도 벤다." 칼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다. 요리용 칼은 언제나 무기와 한발 거리다. "불씨 관리 능력보다도 100만~200만 년 정도 앞섰다." 칼이라고 하는 것이 인류에게는 가장 오래된 도구 중 하나이다. 칼을 만드는 것도 석기 시대부터 다양한 절단도구를 만들어냈는데 "고고학자들이 확인한 것만 해도 단순하고 날카로운 칼, 긁개, 음식을 두드리는 데에 쓰는 돌망치와 회전타원체가 있다."  사실은 청동에서 철로 넘어가야 칼이 좋아진다. 청동기 시대에는 예리하게 만들어 낼 수 없으니 돌이 오히려 날카로웠다. 청동기 시대에는 오히려 석기가 칼로 여전히 쓰였다는 것. 그런데 이제 "철에서 강철, 철에서 강철로, 상철에서 탄소강과 고탄소강과 스테인리스스틸로, 나아가 티타튬과 적층 합성물까지, 우리는 몰리드데넘과 바냐듐이 합금된 강철"까지 등장한다. 강철로 된 칼이 등장하면서 칼의 역사는 본격적으로 날카로움을 가지게 된다. 그와 동시에 위태로운 폭력성을 띠게 된다. 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74 부엌은 폭력적인 장소이다. 사람들은 데고, 찰상을 입고, 동상에 걸리고, 무엇보다도 벤다.


75 요리용 칼은 언제나 무기와 한발 거리였다.


75 칼은 요리사의 무기고에서 가장 오리된 연장으로, 어느 인류학자의 말을 믿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충 불씨 관리 능력보다도 100만~200만 년 정도 앞섰다.


76 고고학자들이 확인한 것만 해도 단순하고 날카로운 칼, 긁개, 음식을 두드리는 데에 쓰는 돌망치와 회전타원체가 있다.


77 철에서 강철, 철에서 강철로, 상철에서 탄소강과 고탄소강과 스테인리스스틸로, 나아가 티타튬과 적층 합성물까지, 우리는 몰리드데넘과 바냐듐이 합금된 강철을 써서 장인이 손수 만든 일본식 부엌칼을 큰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다.


칼이라는 것은 우선 날카로워야 하기 때문에 날카로움이 칼의 제1속성이다. "칼이 날카롭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각도의 문제이다. 베벨이라고 불리는 경사면이 양쪽에서 뾰족한 V를 이루면서 만나면 그날은 날카롭다."  지나치게 그것이 좁으면 부러진다. 사실 칼이라고 하는 것은 저자도 이야기 하고 있듯이 "과거에는 효과적인 칼질이 읽기나 쓰기보다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유럽에서 사람들은 어디든 자기 칼을 가지고 다녔고, 식사할 때 그것을 꺼내 썼다." 조선시대에도 그렇다. 장도라고 불리는 은장도. 조선시대 사람들은 자기 칼을 가지고 다녔다. "오늘날 우리가 남의 칫솔로 이를 닦지 않듯이 당시에는 남의 칼로 음식을 먹지 않았다. 손목시계처럼 습관적으로 차고 다녔기 때문에 아예 몸의 일부가 되어, 종종 차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6세기의 문헌('성 베네딕투스의 계율')은 수도자들에게 잠자리에 들기 전에 허리띠에서 칼을 풀라고 상기시킨다. 자다가 자기 칼에 찔리면 안 되니까." "강철은 16세기에 이미 칼 제작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금속이 되었다." 


79 칼이 날카롭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각도의 문제이다. 베벨이라고 불리는 경사면이 양쪽에서 뾰족한 V를 이루면서 만나면 그날은 날카롭다.


80 과거에는 효과적인 칼질이 읽기나 쓰기보다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81 중세와 르네상스 유럽에서 사람들은 어디든 자기 칼을 가지고 다녔고, 식사할 때 그것을 꺼내 썼다. 

 

81 오늘날 우리가 남의 칫솔로 이를 닦지 않듯이 당시에는 남의 칼로 음식을 먹지 않았다. 손목시계처럼 습관적으로 차고 다녔기 때문에 아예 몸의 일부가 되어, 종종 차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6세기의 문헌('성 베네딕투스의 계율')은 수도자들에게 잠자리에 들기 전에 허리띠에서 칼을 풀라고 상기시킨다. 자다가 자기 칼에 찔리면 안 되니까.


83 강철은 16세기에 이미 칼 제작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금속이 되었다.


칼에 대해서는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칼을 만드는 재료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청동은 아주 날카롭게 벼리기에는 너무 부드러워서 칼날로서는 불량한 재질이다. 석기 절단 도구가 청동기 시대에도 계속 쓰였다. 위대한 돌파구가 바로 강철이다. 칼이라고 하는 것은 부엌의 제1 도구이다. "유럽의 칼 전문화는 요리 문화 변화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였다." 전문화된 칼 또는 정밀한 칼질 이런 것들이 이제 유럽에서는 칼질을 어떻게 하느냐가 요리의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그래서 칼이라고 하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도구이다. 그런데 "음식은 칼이 만든다. 그리고 칼은 해당 지역의 자원, 기술적 혁신, 요리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취향이 신비롭게 결합한 결과이다." 칼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그 지역에 어떤 종류의 요리가 있는가에 따라서 칼의 종류도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세계 여러 요리 문화들은 각각 다용도 칼을 만들어 썼다. 


83 청동은 아주 날카롭게 벼리기에는 너무 부드러워서 칼날로서는 불량한 재질이다.


84 유럽의 칼 전문화는 요리 문화 변화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였다.


86 음식은 칼이 만든다. 그리고 칼은 해당 지역의 자원, 기술적 혁신, 요리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취향이 신비롭게 결합한 결과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길게 다루고 있는 것이 중국의 부엌칼이다. 88페이지를 보면 멋진 문장이 있다. "앤더슨은 넓적한 그 칼을 다음과 같은 작업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장작 패기, 생선 내장 꺼내고 비늘 벗기기, 채소 썰기, 고기 다지기, 마늘 으깨기, 손톱 깎기, 나무젓가락 깎아 만들기, 돼지 잡기, 면도 하기, 묵은 원한이나 새로운 원한 청산하기." 이렇게 중국에서 칼을 가지고 여러가지를 한 것은 연료 문제가 있었다. "중국의 부엌칼은 모든 재료를 작게 썰고 재빨리 익히고 낭비하지 않음으로써 부족한 연료를 최대한 활용하게끔 하는 절약의 도구였다. 칼을 웍과 함께 쓰면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의 맛을 끌어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중국 음식들을 재료를 잘게 썬다. 잘게 썰어서 볶으면 음식물 표면이 기름에 많이 닿아서 금세 익으면서도 씹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중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맥락을 보면 영국의 음식은 부자의 음식과 가난한 자의 음식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중국 음식은 칼 덕분에 통일성을 유지했다. "중국 요리사는 다양한 형태의 생선과 가금류, 채소와 고기를 모두 한 입 크기의 정확한 기하학적 조각으로 썰어낸다." 그리고 중국 부엌칼의 또다른 능력은 "먹는 사람이 칼질할 필요가 없게 해주는 점이다"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음식도 그렇다. 한국음식이나 중국음식이나 식탁에서는 칼을 쓰지 않게 부엌에서 끝낸다. 


88 앤더슨은 넓적한 그 칼을 다음과 같은 작업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장작 패기, 생선 내장 꺼내고 비늘 벗기기, 채소 썰기, 고기 다지기, 마늘 으깨기, 손톱 깎기, 나무젓가락 깎아 만들기, 돼지 잡기, 면도 하기, 묵은 원한이나 새로운 원한 청산하기.


89 중국의 부엌칼은 모든 재료를 작게 썰고 재빨리 익히고 낭비하지 않음으로써 부족한 연료를 최대한 활용하게끔 하는 절약의 도구였다. 칼을 웍과 함께 쓰면 최소의 에너지로 최대의 맛을 끌어낼 수 있다.


91 부자의 음식과 빈자의 음식이 서로 다른 세계를 이룬 영국 요리와는 달리, 중국 요리는 칼 덕분에 서로 다른 사회계층 사이에 통일성을 유지했다.


91 중국 요리사는 다양한 형태의 생선과 가금류, 채소와 고기를 모두 한 입 크기의 정확한 기하학적 조각으로 썰어낸다.


91 중국 부엌칼의 또다른 중요한 능력은 먹는 사람이 칼질할 필요가 없게 해주는 점이다.


그러면 세계의 요리는 두 개로 나누는데 여기서부터 문화 얘기다. 프랑스 요리와 중국 요리. 유럽에서는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어서 내놓아도 식탁에 칼이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칼의 차이가 식사예절과 도구의 전반적인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식탁에서 서양사람들은 나이프를 사용하는데 그것을 얼마나 예의바르게 잘쓰느냐가 식탁예절이 중요한 점이 된다. 중국에서는 젓가락 하나 놓여있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점은 99페이지에 나오는데 치과에서 교정학에서 보면 위에 있는 앞니가 상자뚜껑처럼 아래 앞니보다 살짝 앞으로 튀어나온 피개교합이다. 이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있는 상태가 최근에 나타난 상황이다. 절단교합이 인류의 오래된 모습이라는 것. 브레이스라는 사람이 "수십 년에 걸쳐 호미니드의 치아 진화에 대한 세계 최대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서유럽에서는 18세기 말에 들어서야 '지위가 높은 사람들'부터 피개교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즉 귀족들의 이가 변하기 시작한 시기가 식단은 똑같은데 크게 변화된 부분이 '어떻게 먹느냐'이다. "피개교합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250년 전에 등장했다. 즉 식탁에 나이프와 포크가 도입된 시기에 등장했다."  "사람들이 나이프와 포크로 음식을 잘라 한 입 크기로 먹게 되면서부터 앞니가 붙잡는 기능으로 쓰이지 않았을테고, 그래서 윗니가 계속 자라 아랫니와 맞물리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피개교합이다."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보였던 피개교합은 사실 식사 행동이 빚은 결과이다." 그런데 브레이스는 상관관계가 있는데 인과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부엌갈로 자로 젓가락으로 먹기만 했으니 사실은 어금니가 맞물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예전 중국 사람들의 치아 표본을 살펴보니 지금부터 천년전 송나라때의 치열을 보니 지금 오늘날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브레이스 이후 중국인의 치열을 더 많이 분석하여 정말로 피개교합이 유럽보다 800-1000년 더 일찍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칼에 대한 동서양의 태도 차이가 우리의 치열에 시각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식탁에서 쓰는 도구를 둘러싼 문화적 관습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요즘은 서양음식을 자주 먹으니 식탁에서 칼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칼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문화적인 상황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치아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구들은 거기에 도입된 테크놀로지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우리의 육체를 변화시킨다는 점도 중요하다.


100 브레이스는 수십 년에 걸쳐 호미니드의 치아 진화에 대한 세계 최대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100 서유럽에서는 18세기 말에 들어서야 '지위가 높은 사람들'부터 피개교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01 오히려 크게 변했던 대목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였다.


101 피개교합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200-250년 전에 등장했다. 즉 식탁에 나이프와 포크가 도입된 시기에 등장했다.


102 사람들이 나이프와 포크로 음식을 잘라 한 입 크기로 먹게 되면서부터 앞니가 붙잡는 기능으로 쓰이지 않았을테고, 그래서 윗니가 계속 자라 아랫니와 맞물리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피개교합이다.


103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보였던 피개교합은 사실 식사 행동이 빚은 결과이다.


104 중국 요리에서 작게 써는 방식이 유형하고 그와 더불어 젓가락이 널리 퍼진 것은 유럽에서 나이프와 포크가 표준방식이 된 시기로부터 약 1,000년 전인 송나라 시절이었다. 


105 브레이스 이후 중국인의 치열을 더 많이 분석하여 정말로 피개교합이 유럽보다 800-1000년 더 일찍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06 칼에 대한 동서양의 태도 차이가 우리의 치열에 시각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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