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중국정치사상사 | 07 춘추시대의 천 관념의 일반화와 자연화, 군주의 지위에 관한 논의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 - 상 - 10점
유택화 지음, 장현근 옮김/동과서


Reading_20min_20150223: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上)-7

천 관념의 일반화와 자연화

- 천과 도는 서주 시대에 각기 다른 관념이었다. 그러나 춘추시대에 이르면 ‘天道’는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  우선 천도를 천의 의지의 표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 천도는 해와 달의 운행 규칙이다.

- 천·지가 자연현상의 물질적 본원이다.

- 천도는 사물이 변화하는 모종의 규칙이다.

- 천도는 인륜관계이다.


- 이 모든 것에 공통되는 견해는 “사람은 천도에 의해 지배받고 좌우되기 때문에 천도가 정치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 天象示人說(천상시인설): 하늘이 특정한 형상으로 사람에게 뜻을 드러낸다.


- 天應人事說(천응인사설): 하늘이 사람의 일에 감응한다.


- 천도의 신비성을 부정하는 태도로는 天人相分論(하늘과 사람은 가는 길이 달라 상관이 없다)이 있다.

- 종합하면, “춘추시대에는 인간을 정치 세계의 주체로 삼게 되었고, 인간 스스로에게 정치의 흥망성쇠가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신이 정치를 결정한다는 관념을 사실상 한 쪽으로 밀어내 버렸다. 천을 자연으로 생각하게 된 것과 천도를 객관 필연적 범주로 사용하게 된 것도 천의 신비적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 두 가지 인식이 발전하면서 서로 합심 협력해 신권정치를 쇠락의 길로 힘껏 밀어냈다.”


군주의 지위에 관한 논의

- 서주 말년의 史伯(사백): 천명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인사를 더욱 중시. “인류역사에 대해 중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나 그 자손만이 군주가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


- 진나라 史墨(사묵): “사물의 대립과 전환이라는 각도에서 군주의 지위가 영원할 수 없다고 주장” “군주와 신하가 자리를 바꾸고, 사직의 주인이 갈리는 것은 옛날부터의 규율이었다.”


- 진의 丕鄭(비정): “義가 군주보다 높다는 것” “제가 듣기에 군주를 섬기는 사람은 義에 따르지 미혹함에 아부하지 않습니다. 미혹하면 백성을 오도하게 됩니다. 백성이 오도되면 덕을 잃게 되어 백성을 버리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군주가 있다는 것은 그로써 의로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吾聞事君者 從其義 不阿其惑 惑則誤民 民誤失德 是棄民也 民之有君 以治義也”(오문사군자 종기의 부아기혹 혹칙오민 민오실덕 시기민야 민지유군 이치의야)(國語, 晉語一)(국어 진어일)


- 군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등장하였으나 “결론은 오히려 군주의 권력은 지고무상해야 하며, 군주가 모든 것을 독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군주전제의 기본원칙이 등장한다.


- 군주전제의 기본원칙: “나라가 둘일 수 없다. 國不堪貳”(국부감이) 군권이 단일하고 지고무상한 지위를 가져야 하며, 권력이 나뉘어 행해지는 것은 철저히 금해야 한다.


- 파생되는 원칙

  - “군주된 사람은 기물과 명칭을 삼가하여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선 안된다. 是以為君 慎器與名 不可以假人”(春秋左傳, 昭公 三十二年)

- “군주의 명령은 둘일 수 없다. 君命無貳”(春秋左傳, 成公八年)


군명 권위 강화의 방법

- 군주·군명과 천을 같이 연결지음으로써 군명의 권위를 강화


- 혈연·종법의 전통을 이용하여 군신관계와 부자관계를 함께 연결. “종법적 가부장 전제를 정치관계 속에 끌어들인 것은 중국 고대 정치의 커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 전통적 도덕관념을 이용하여 신하의 행위를 도덕에 따라 규정. “경으로써 군주를 섬기고, 효로써 부모를 섬긴다. 事君以敬 事父以孝(사군이경 사부이효)”(國語, 晉語一)(국어 진어일)


“시대적으로 군주전제이론은 이미 사회정치사조가 되어 폭넓게 전파되었다… 춘추시대의 군주전제이론은 당시 사회 정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전국, 진, 한대에 더욱 완벽해진 군주전제이론체계를 위한 기초가 되었다.”







지난 시간에는 춘추시대의 정치사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춘추시대에 들어와서 아주 확고해진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변화, 일종의 형이상학적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천 관념의 일반화와 자연화이다. 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서주 말에 이르면 천을 자연현상으로 보는 현상이 나타났고, 그것이 도와 결합되는 경향이 있다. 원래 천과 도는 서주 시대에 각기 다른 관념이었다. 그러나 도는 규칙이라는 의미도 쓰이기도 했고, 천은 인격적인 개념으로 많이 쓰였다. 그런데 도라는 말이 천하고 결합되면서 천도라는 말로 쓰이게 되고, 춘추시대에 이르면 '天道'는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러면 천도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 천이 가지고 있던 약간의 신비한 성격이 천도에 부여된다. 천도, 천명이라는 단어는 상제의 의지표현으로 보는 것으로서 서주 시대의 천과 구별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천도를 천의 의지의 표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니까 천에 붙어 있는 의미와 도에 붙어있는 의미들이 천도가 결합되면서부터 여러 의미가 생겨난다. 이를테면 천도는 해와 달의 운행 규칙이다, 천·지가 자연현상의 물질적 본원이다, 천도는 사물이 변화하는 모종의 규칙이다, 천도는 인륜관계이다 등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모든 것에 공통되는 견해는 "사람은 천도에 의해 지배 받고 좌우되기 때문에 천도가 정치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영향을 준다."는 견해가 되겠다. 


천도가 사람을 지배하고, 좌우하기 때문에 정치에 직접적으로 작용된다는 것을 달리 얘기해보면 天象示人說(천상시인설): 하늘이 특정한 형상으로 사람에게 뜻을 드러낸다는 말이 있다. 天應人事說(천응인사설): 하늘이 사람의 일에 감응한다. 대체로 보면 천과 도가 결합되어 천도가 되었다고 해도 도라는 말이 가지고 있었던 비인격성은 강하게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천이 가진 인격적 성격이 더 강하게 나오지 않았나 하는 판단이 든다. 천상시인성, 천응인사설을 보면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제 천이 가진 신비한 성격들을 긍정하는 태도가 주류였다면 부정하는 태도도 있다. 天人相分論(천인상분설): 하늘과 사람은 가는 길이 달라 상관이 없다)이 있다. 우리가 대개 중국정치사상를 말하면 공자를 떠올리기 쉬운데, 춘추시대에도 벌써 서주 말 춘추시대에 들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상당한 정도의 사상의 변화가 있었다. 선행하는 사상들을 살펴보면 위대한 정치사상이나 위대한 철학사상들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충분히 그런 것을 해낼만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춘추시대를 종합해보면, "춘추시대에는 인간을 정치 세계의 주체로 삼게 되었고, 인간 스스로에게 정치의 흥망성쇠가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신이 정치를 결정한다는 관념을 사실상 한 쪽으로 밀어내 버렸다. 천을 자연으로 생각하게 된 것과 천도를 객관 필연적 범주로 사용하게 된 것도 천의 신비적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 두 가지 인식이 발전하면서 서로 합심 협력해 신권정치를 쇠락의 길로 힘껏 밀어냈다." 춘추시대에는 인간이 정치 세계의 주체가 되었다. 천의 신비주의적인 관념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춘추시대에 첫번째로 본 것이 인간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 천관념이 변화했다는 것, 그 다음에 세번째로 군주의 지위에 관한 논의들이 다양하게 생겨났다. 우선 서주 말년의 史伯(사백)이라는 사람의 얘기를 보면 천명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일을 더욱 중시했다. "인류역사에 대해 중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나 그 자손만이 군주가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진나라 史墨(사묵)은 "사물의 대립과 전환이라는 각도에서 군주의 지위가 영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물이라는 것이 서로 대립하는 바가 있는데 어떻게 군주의 지위만 영원하겠는가. 그리고 "군주와 신하가 자리를 바꾸고, 사직의 주인이 갈리는 것은 옛날부터의 규율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다음에 진의 丕鄭(비정)은 중요한 얘기가 있는데 앞서 사백이나 사묵은 군주의 자격론의 얘기였다면 비정은 하나의 원리를 내세운다. "義가 군주보다 높다는 것" 그래서  "제가 듣기에 군주를 섬기는 사람은 義에 따르지 미혹함에 아부하지 않습니다. 미혹하면 백성을 오도하게 됩니다. 백성이 오도되면 덕을 잃게 되어 백성을 버리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군주가 있다는 것은 그로써 의로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吾聞事君者 從其義 不阿其惑 惑則誤民 民誤失德 是棄民也 民之有君 以治義也”(오문사군자 종기의 부아기혹 혹칙오민 민오실덕 시기민야 민지유군 이치의야)(國語, 晉語一)(국어 진어일) 의가 중요한 덕목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신하도 군주의 잘못을 의에 근거하여 시정할 의무가 생겨나고, 군신 간에는 절대적 예속 관계가 있어서 군주가 죽으면 신하도 따라야 한다는 관념들이 무너지게 된다. 군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등장하였으나 "결론은 오히려 군주의 권력은 지고무상해야 하며, 군주가 모든 것을 독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에 이르렀다. 이 부분은 저자의 말인데 이 지점에서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군주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이 나왔는데 오하려 "군주의 권력은 지고무상해야 하며, 군주가 모든 것을 독점해야 한다"는 이론이 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히 사회 정치적인 상황들이 있었고, 그런 상황들을 군주전제론을 강화했던 맥락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사회가 지나치게 혼란스러웠고, 사회의 혼란함을 빨리 해결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집중되다보니 군주전제론이 힘을 얻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군주전체는 사실상 이때 형성된 이후로 중국사회에서는 단한번도 변한적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모형을 받아들인 것이 동아시아의 세계에서 한반도이다. 이를테면 아테나이의 민주정, 또는 희랍의 도시정체가 있는데 이 폴리스 정체가 알렉산드로스제국을 거쳐 로마로 가면서 제거가 되었다. 그러다가 20세기가 다 되어서 1800년대 미국에서 그런 것들이 리바이브되기 시작했다. 도시국가이면서 동시에 소규모 도시와 거대국가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사례가 현재의 미국이다. 그러니까 그런 것처럼 선행하는 전통이 있어야 부활을 시킬 수 있는데 중국은, 중국모형을 받아들인 한반도는 이런 군주전제정 이외에는 어떤 모형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군주전제의 기본원칙은 무엇인가. "나라가 둘일 수 없다. 國不堪貳"(국부감이). 그에 따라 군권이 단일하고 지고무상한 지위를 가져야 하며, 권력이 나뉘어 행해지는 것은 철저히 금해야 한다." 여기서 파생되는 원칙으로는 "군주된 사람은 기물과 명칭을 삼가하여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선 안된다. 是以為君 慎器與名 不可以假人”(春秋左傳, 昭公 三十二年)" 그리고 "군주의 명령은 둘일 수 없다. 君命無貳"(春秋左傳, 成公八年)이 전해진다. 


그리고 군명의 권위를 강화의 방법으로는 첫째, 군주·군명과 천을 같이 연결지음으로써 군명의 권위를 강화한다. 그리고 혈연·종법의 전통을 이용하여 군신관계와 부자관계를 함께 연결한다. 이것은 주나라에서도 나왔던 것. 물론 "종법적 가부장 전제를 정치관계 속에 끌어들인 것은 중국 고대 정치의 커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세번째로 전통적 도덕관념을 이용하여 신하의 행위를 도덕에 따라 규정짓는다. "경으로써 군주를 섬기고, 효로써 부모를 섬긴다. 事君以敬 事父以孝"(사군이경 사부이효)”(國語, 晉語一)(국어 진어일)라는 관념들이 여기서 사용된다.


이제 춘추시대를 보면서 군주전제이론은 이미 사회정치사조가 되어 폭넓게 전파되었고, 춘추시대의 군주전제이론은 당시 사회 정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 진나라, 한대에 더욱 완벽해진 군주전제이론체계를 위한 기초가 되었다. 그러면 중국의 군주전제이론은 사실상 춘추시대에 확정되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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