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순전한 기독교 (양장) - 10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외 옮김/홍성사


머리말

1. 옳고 그름, 우주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

2.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

3. 그리스도인의 행동

4. 인격을 넘어서, 또는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첫걸음

옮긴이의 말





1. 옳고 그름, 우주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

32 첫째, 지구 위에 사는 인간은 누구나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기묘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연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기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이야말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대해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토대입니다.


56 우리는 우주가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우연히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게 만든 힘이 배후에 있는지 여부를 알고 싶습니다. 만일 그런 힘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 힘은 관찰 가능한 사실들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사실들을 만들어 낸 실재이므로 단순한 사실 관찰을 통해서는 찾아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 너머의 존재가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 사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그런 배후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57 인간으로서 우리가 열 수 있는 유일한 봉투는 인간 자신입니다. 그 봉투를 열어 보았을 때, 특히 '나'라는 인간을 열어 보았을 때 제가 발견한 것은 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어떤 법칙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 즉 '내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64 여러분은 먼저 도덕률이라는 사실이 정말로 존재하며 그 법칙의 배후에 어떤 점이 있고, 여러분이 그 법을 어김으로써 그 힘과 잘못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기 전에는, 정말이지 이 모든 것을 깨 닫는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기독교는 여러분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2.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

77 사실 실재란 대개 여러분이 짐작할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기독교를 믿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독교는 여러분이 짐작할 수 없는 종교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우리가 늘 예상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우주를 제시한다면, 저는 기독교를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기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닙니다.


96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해주며 새로이 출발하게 해주었다는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에 관한 이론들은 따로 살펴보아야 할 사항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떻게 효력을 갖느냐에 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이론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효력을 갖는다는 사실 그 자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99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임을 당했으며, 그 죽음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었고, 그가 죽음으로써 죽음의 세력이 힘을 잃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것이 공식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어야 하는 바입니다.


100 이 때의 벌을 즉결재판소의 '처벌'로 생각하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빚으로 생각하면, 돈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경우에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100 인간이 빠져있는 '곤경'이란 어떤 것일까요? 스스로 독립적인 위치에 서려고 한 것, 스스로 자기의 주인인 양 행세하려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타락한 인간은 개선의 필요가 있는 불완전한 피조물이 아니라 손에 든 무기를 내려 놓아야 하는 반역자입니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면서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 그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 왔음을 깨닫고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것, 이것이 이 '곤경'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101 이 회개, 즉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며 일종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로 찾으시기 전에 먼저 요구하시는 사항이 아닐뿐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면제해 줄 수 있는 일 또한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회개란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표현법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당신께 돌아가게 해주소서"라고 구하는 것은 "당신께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돌아가게 해주소서"라고 구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런 일은 당연히 일어날 수가 없지요.


114 극작가가 무대 위로 걸어 나오면 연극은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세상을 침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계 전체가 하룻밤 꿈처럼 사라지고 무언가 다른 것 ━ 그 전까지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무언가 ━ 이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될 그 날,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아름답게 또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무섭게 다가와 더 이상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을 그 날에 가서야 그의 편이라고 나서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때 하나님은 변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어서 피조물들은 저마다 거역 할 수 없는 사랑에 뒤덮이든지, 거역 할 수 없는 공포에 뒤덮일 것 입니다. 그때에야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하려 들면 이미 늦습니다.


115 지금, 오늘 이 순간이야말로 옳은 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때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기회를 주려고 잠시 지체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영원히 지체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기회를 잡든지 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의 행동

189 어떤 사람은 말할 것입니다. "원수의 행동을 정죄하고 그에게 벌을 주며 죽일 수도 있다면, 그리스도인의 도덕과 보통 관점의 차이는 무어란 말인가?" 거기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영원히 살 것을 믿는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중심, 즉 영혼의 내부를 천국의 피조물로 만들 수도 있고 지옥의 피조물로 만들 수도 있는 그 작은 흔적이나 꼬인 자국입니다. 따라서 전쟁이나 사형처럼 불가피한 경우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미워하거나 미워하기를 즐겨서는 안됩니다.


193 기독교 스승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가장 핵심적인 악, 가장 궁극적인 악은 교만입니다. 성적 부정, 분노, 탐욕, 술 취함 같은 것들도 이 악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악마는 바로 이 교만 때문에 악마가 되었습니다. 교만은 온갖 다른 악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맞서는 마음 상태입니다.


220 기독교를 믿을 때에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기독교를 믿으라는 것은, 잘 추론해 본 결과 기독교를 믿을 증거의 무게가 충분치 않은데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렇게 생기지 않습니다.


221 믿음의 습관을 훈련하는 첫 단계는 사람의 기분은 바뀌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상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그 주요 교리들을 찬찬히 정신에 새겨 나가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며 성경과 경건 서적을 읽고 교회에 나가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수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를 지속적으로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두는데도 정신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신념은 없습니다. 신념은 계속 북돋워 주어야 합니다.


231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긴다는 것은 노력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뢰하는 사람의 충고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신을 그에게 맡겼다면 그에게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입니다. 그러나 이 때는 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즉 전만큼 안달하지 않으면서 노력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제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즉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천국에 가기를 바라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희미한 첫 빛줄기를 마음으로 이미 맛보았기 때문에 자연히 이렇게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이런 일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4. 인격을 넘어서, 또는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첫걸음

241 신학은 지도와 같습니다. 단순히 기독교 교리를 배우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는 데서만 멈춘다면, 그 장교의 사막 경험보다 생생하지도 않고 흥미롭지도 못할 것입니다. 교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일종의 지도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지도는 정말 하나님을 만났던 수백 명의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더 먼 곳에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도를 써야 합니다.


247 인간이 자연적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인 생명 ━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으로서 생물학적 생명과 다른 생명,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생명 ━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다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생명을 같은 종류로 생각한다면, 우주의 광대함과 하나님의 광대함을 같은 종류로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사실 생물학적 생명과 영적인 생명 사이에는 너무나 중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는 이 두 가지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르려 합니다.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오는 생물학적인 종류의 생명, 늘 소모되고 쇠퇴하는 성질이 있어서 공기나 물이나 음식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자연의 보조를 받아야만 유지되는 생명은 바이오스 (Bios)입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안에 있는 영적인 생명, 자연 세계 전체를 만들어 낸 생명은 조에(Zoe)입니다. 바이오스는 어떤 그림자나 상징처럼 조에를 닮았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유사성은 사진과 풍경 혹은 조상과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유사성과 같은 종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바이오스를 가졌다가 조에를 갖게 된다는 것은 석상이 진짜 사람으로 변하는 것만큼이나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248 이것이 정확히 기독교가 말하는 바입니다. 이 세상은 위대한 조각가의 작업실이고, 우리는 그 조각가가 만든 조상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이 작업실에는 우리 중 일부가 언젠가 생명을 얻으리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261 시간을 우리가 곧장 따라가야 하는 직선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 직선이 그려진 종이 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직선의 일부를 한 걸음씩 밟아갑니다. 우리는 A를 지나야 B에 갈 수 있으며 B를 지나야 C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에서, 밖에서, 또는 사방에서 이 직선 전체를 품고 계시며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263 연약함과 잠과 무지라는 인간적 경험과 본성이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의 전적인 삶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시간을 초월한 진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263 하나님께는 역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완전한 실재이시므로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역사가 있다는 것은 자기 실재의 일부는 잃었고(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졌으므로) 일부는 얻지 못했다는(아직 미래에 있으므로) 뜻, 즉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현재라는 찰나뿐인데 그 현재조차 '지금은 현재'라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뜻입니다.


264 그는 우리가 '내일'이라고 부르는 날도 '오늘'처럼 보실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모든 날이 '지금'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어제한 일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는 어제가 이미 지나가 버렸지만 하나님께는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73 우리는 하나님이 낳으신 존재가 아니라 만드신 존재입니다, 즉 자연 상태 그대로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조상(이를테면)일 뿐입니다. 조에, 즉 영적인 생명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바이오스, 즉 얼마 못가서 소모되어 사라질 생물학적 생명만 있을 뿐입니다. 기독교가 제시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하시도록 자신을 그 분께 맡기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게 됩니다. 만든 생명이 아니라 낳은 생명, 언제나 있었고 언제나 있을 생명을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327 다른 사람의 영혼에 대해 여러분이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영혼은 전 창조 세계에 단 하나뿐입니다. 여러분의 손에 그 운명이 달려있는 영혼도 단 하나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라는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그 앞에 각각 홀로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옆집 사람에 대한 억측이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내세워 그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자연', 혹은 "현실 세계"라고 부르는 이 몽롱한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언제나 당신 옆에 계시던 그 존재가 마침내 손에 잡히는 모습으로 피하려야 피할 수 없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시는 날, 그런 잡담과 소문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340 자신을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십시오. 매일의 야망과 이루고 싶은 바람들의 죽음을,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몸의 죽음을 받아들이십시오. 온몸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남겨두지 마십시오. 주지 않은 것은 진정한 여러분의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죽지 않은 것은 죽음을 떨치고 일어 서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찾으면 결국 미움과 외로움과 절망과 분노와 파멸과 쇠퇴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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