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길기독사회문화원: 종교다원주의와 영성 ━ 새길에큐메니칼문고 3


종교다원주의와 영성 - 10점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엮음/도서출판 새길


머리말 | 에큐메니칼 문고를 내면서 | 정지석


제1부 종교 다원주의와 영성

탈종교 시대의 영성 | 길희성

근본적 근본주의를 향해 | 이찬수


제2부 이웃종교 방문기

가톨릭:기독교의 큰 형 로마 가톨릭 교회를 찾아가다 | 이현아

동방정교회:새로운 시각과 관심이 필요한 기독교종파 | 임영관

불교:개운사와 심곡암 방문을 마치고 | 김영희

범해스님의 현대 불교론

대화문화아카데미:오래도니 대화의 문턱 | 박유희




탈종교 시대의 영성 | 길희성

14 하느님(궁극적 실재, 절대적 실재, 무한한 것 등)을 찾는 영성 생활은 인간 존재 자체가 영적 존재(spiritual being)이기 때문이며 인간 안에 영적 삶을 촉발하는 선험적 요소가 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영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내재하는 영성의 선험적 요소를 자극하고 촉발하는 외적 요소나 환경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성은 각자가 속한 문화 속에 전수되어 온 특정한 종교 전통을 통해서 실현된다.

 

15 '종교'를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종교적 감수성, 심성 내지 영성, 종교적 갈망, 영적 욕구, 신앙, 종교적 경험과 의식 등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종교성의 외적 표현 혹은 표출물인 종교의 가시적 요소들이다. 종교학자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종교를 구성하는 이 두 가지 측면을 신앙과 축적되는 전통이라고 불렀다. 전자는 초월을 지향하고 경험하는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내적인 종교적 경험 내지 의식을 지칭하며, 후자는 종교의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요소들로서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종교적 환경과 맥락을 가리킨다.


23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할 위험성은 그리스도교나 이슬람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 다 존재한다. 성스러운 실재나 세계를 매개해주는 상징 자체가 어느 정도 신성성을 지니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상징이 절대화되고 숭배의 대상으로 변할 때 상징의 존재이유는 사라지며, 그러한 상징에 집착하는 종교는 결국 독선적이고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다.


26 나는 이것을 수피 영성가가 제시하고 있는 세 번째 단계의 영성에서 찾고자 한다. 즉 카바는 사라지고 하느님만 보는 영성의 단계이다. 상징이 사라지고 상 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서 오직 하느님만 보게 되는 단계이다. 나는 이것을 신비주의적 영성(mystical spirituality)의 길이라고 부른다.


30 종교가 사람들의 통일된 가치관과 도덕 규범을 제공하던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세계화(globalization)는 이러한 현상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이제 각자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에 책임을 지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며 과연 어떤 것이 좋은 인생이며, 인생의 진정한 선(good)이 무엇인가 등 삶의 가장 근본적 문제들이 개인의 선택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33 탈종교 시대의 영성은 종교 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인간의 순수한 종교적 관심과 영적 갈망을 충족하는 종교다원적 영성이어야 하며 성과 속, 종교와 비종교의 장벽마저 초월하는 비종교적 종교이어야 한다.

 

45 현대인의 초종교적 영성은 인간 존재의 신비에 대한 자각과 물음에서 시작한다. 외적 초월의 상징이 사라지고 초월의 통로들이 차단된 현대인들에게 남은 거의 유일한 통로는 인간 자신이다.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 양심의 소리, 영혼의 소리뿐이다. 현대인의 영성은 자신의 내면에서 신성을 발견하고 신을 만나는 신비주의적 영성이다. 인간은 결코 물질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초월적 자유를 갈망하는 영적 욕구가 존재한다는 데 종교들의 가르침은 일치한다.

 

근본적 근본주의를 향해 | 이찬수

51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넓게 애기하면, 변화를 타락으로 간주하고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변하지만, 그 변화 너머에 변하지 않는 것도 있으며, 그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의 기원에까지 소급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52 근본주의의 핵심이 역사 안에서 불변하는 기준을 붙들려는 데 있다보니, 역사에 대한 강조는 근본주의자에 대한 최대의 도전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오늘날 사용되는 근본주의라는 말은 18세기 계몽주의, 과학주의, 역사주의가 팽배하면서 역사 너머가 아닌 역사 내 사실을 강조하던 유럽적 분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났다. 역사주의, 계몽주의, 과학적 이성의 존중 등이 이른바 근대주의(modernism)의 특징이라면, 근본주의는 근대주의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다.

 

56 근대주의에 대한 반대는 특히 보수적인 미국 개신교를 중심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오늘날의 근본주의라는 말도 주로 19세기 후반 미국 개신교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용어인 것이다. 미국 근본주의는 18세기부터 등장한 진화론을 위시한 과학주의에 대한 반작용이고, 과학적 이성에 힘입은 유럽식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미국 내 기독교적 대응이며, 새로운 여성 해방 운동에 대한 기존 남성 문화 중심적 사고방식의 고수이다.

 

59 미국의 근본주의는 유럽의 근대주의에 대한 반작용인데 비해,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근대주의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미국으로부터 거의 일방적으로 주입되다시피 한 표면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60 과학적 이성을 적절히 소화해서 재창조해야 할 상황에, 과학적 이성을 이단시하는 움직임이 정통주의로 쉽사리 포장되는 경향마저 있는 것은 적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67 "근본주적 근본주의"라는 말로 표현해 볼 수 있겠다. 이것은 "하느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을 "하느님을 모든 곳에 계시는 분"으로 이해할 줄 아는 자세이다.


67 내가 사라지고 나면 이기적 중심이 사라진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중심이 된다. 그럴 때 다양한 사물들의 개성을 존중하게 된다. 종교 다원주의도 이런 맥락에서 성립된다. 일체 사물에게서 중심을 보고, 모두가 저마다의 독특성을 지닌 주인임을 하는 자세인 것이다. 자기 중심적 근본주의가 뒤집어지는 곳에서 이렇게 다중심주의, 다원주의, 근본적 근본주의가 성립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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