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 | 06 허먼 멜빌의 모비딕 5


모비 딕 - 10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작가정신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324_21 허먼 멜빌의 모비딕 5

깊은 바다 속에 사는 흰고래, 이 고래를 잡으러 떠난 배의 이야기. 고래는 잡았고, 배는 깨졌고, 다 죽었다. 이제 《모비딕》의 막바지에 왔다.

피쿼드 호에 대한 묘사가 16장에 있다. 이슈메일이 선원으로 배를 타는 것인데 이게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일단은 철학적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으면 '은유'가 들어간다. 메빌이 사용하고 있는 은유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헤쳐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의 서사적인 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철학적인 것 같다. 철학의 개념은 너무나 다양해서 언어를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이 철학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철학개념은 이 세계는 은유로 가득 차 있고 이 은유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의미 연관을 가져다 전해주는가를 파헤쳐보는 것, 그래서 흔히 철학책으로 간주되는 것보다는 이런 서사시를 많이 읽는다. 


배를 타고 가는데 이 피쿼드 호라는 배, 《모비딕》에 따르면 이렇게 설명이 되어있다. "'피쿼드'는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지금은 고대 메디아 사람처럼 절멸한 매사추세츠의 유명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었다." 여기서 "메디아 사람처럼 / 절멸한 매사추세츠의 유명한"으로 읽을 수도 있고 "메디아 사람처럼 절멸한 / 매사추세츠의 유명한"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 부족이 멸망해간 과정이 인디언 피쿼드 족과 메디아 사람들이 한 순간에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 비슷하다는 의미. 나중에 피쿼드 호가 순식간에 바다에 잠겨버린 것을 보여주는 것도 된다. 피쿼드 호는 등장 자체가 피쿼드 호의 최후를 암시하고 있다.


16장 배

109 '피쿼드'는 여러분도 기억하겠지만, 지금은 고대 메디아 사람처럼 절멸한 매사추세츠의 유명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었다.


인생을 대개 항해로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인생을 항해로 비유하는 것은 희랍사람들의 비유이다. 한국사람들은 '인생은 나그네 길'이다. 바다를 접해서 바다로 나가는 사람과, 산과 들로 나가는 사람은 다르다. 일본 사람들이 항해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동아시아 세계에서 3국 중에 한국사람들은 인생에 대해서 '젊어서 노세'가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메디아는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 살던 강국이었다. 동시에 피쿼드 호의 시작도 이러하고 끝도 이러한데 피쿼드 호의 이름에서 끝을 암시한다면 16장에 보면 피쿼드 호에 대한 표사가 있다. "'피쿼드'호는 좀 작은 구식 배였는데, 갈고리 모양의 다리가 달린 구식 가구와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다. 사대양의 태풍과 고요 속에서 오랫동안 단련되고 비바람에 시달리며 얼룩진 선체의 빛깔은 이집트와 시베리아에서 싸운 프랑스 척탄병의 얼굴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피쿼드가 "사대양의 태풍과 고요 속에서"라는 표현을 보면 온 세상을 항해했다는 뜻일 것이고, "태풍과 비바람"은 온갖 일은 뜻할 것이며, 빛깔은 이집트와 시베리아는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말한다. 


"돛대들은 옛날 쾰른의 세 왕의 등뼈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낡은 갑판은 토머스 베케트가 피를 흘려 죽은 뒤 순례자들의 경재 대상이 된 캔터베리 대성당의 포석처럼 닳고 주름져 있었다." 돛대를 묘사할 때 사용된 것들이 서양 중세의 것이다. 이런 것들이 거론되었을 때 앞에서 이집트와 시베리아는 지리적인 개념일테고, 쾰른과 캔터베리 대성당은 기독교세계의 전부를 말하는 것, 우주의 진리가 있는 것, 하나의 소우주로의 세계. 서양에서 익숙하게 나오는 것이 대우주와 소우주의 개념인데, 대우주인 바다로 소우주인 피쿼드호를 타고 가는 것. 그래서 바다가 진리가 있는 곳이니까 세계의 축소판으로서 피쿼드에 이슈메일과 에이해브가 타고, 소우주에 타서 대우주를 향해 나아간다.


109 '피쿼드'호는 좀 작은 구식 배였는데, 갈고리 모양의 다리가 달린 구식 가구와 어딘지 모르게 비슷했다. 사대양의 태풍과 고요 속에서 오랫동안 단련되고 비바람에 시달리며 얼룩진 선체의 빛깔은 이집트와 시베리아에서 싸운 프랑스 척탄병의 얼굴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오래된 뱃머리는 턱수염이 난 것처럼 보였다. 돛대들은 옛날 쾰른의 세 왕의 등뼈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낡은 갑판은 토머스 베케트가 피를 흘려 죽은 뒤 순례자들의 경재 대상이 된 캔터베리 대성당의 포석처럼 닳고 주름져 있었다.


이런 문자 텍스트로 만들어진 것을 읽고 애잔함까지 가기에는 많은 매개들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잘 안된다. 사유를 일깨우고, 또 상상력을 일깨우는 매체로서의 또는 매개물로서의 이런 텍스트들이 작동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뇌 어떤 부분에도 건드려지지 않는다.' 


피쿼드 호에 대한 마지막 묘사는 이렇다. "고귀하지만 왠지 모르게 우울한 배! 고귀한 것들은 모두 그런 기미를 띠고 있는 법이다." 우울함이라는 것은 세상의 쓰라림과 쓸쓸함을 다 겪어서 그것을 다 자기 안에서 품고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멜빌은 그러한 우울함이야 말로 고귀함과 등치시킨다. 


110 고귀하지만 왠지 모르게 우울한 배! 고귀한 것들은 모두 그런 기미를 띠고 있는 법이다.


피쿼드 호를 타고 이제 바다로 간다. 진리를 찾으러 간다.

에이해브가 불에 대해서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에이해브가 가지고 있는 진리관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이 독백이다. "이 축복받은 평온이 오래 지속되게 해주옵소서. 하지만 뒤섞이고 뒤엉킨 삶의 실오라기는 날줄과 씨줄로 엮이고, 평온한 날씨는 반드시 폭풍과 교차한다. 우리의 삶에도 온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결같은 전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독백의 마지막인 "우리가 더 이상 닻을 올리지 않을 마지막 항구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어디에 있는가"라는 것은 결국 없다는 말. 진리를 터득한 것도 아니고 그러하니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뿐인데 나아가는 것이 진보라고 한다면 뭔가 좋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겠지만 그것 없이 계속 나아가는 것. 이것이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니힐리즘이다. 


585 "아아, 풀이 우거진 숲 속의 빈터여! 아아, 영혼 속에 끝없이 펼쳐진 봄날 풍경이여. 그대 안에서 ━ 지상 생활의 지독한 가물에 시달려 이미 오래 전에 바짝 말라버렸지만 그대 안에서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클로버 밭에서 뒹구는 망아지들처럼 뒹굴 수 있고, 덧없이 지나가는 몇 분 동안이나마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차가운 이슬을 몸에 느낄 것이다. 하느님, 이 축복받은 평온이 오래 지속되게 해주옵소서. 하지만 뒤섞이고 뒤엉킨 삶의 실오라기는 날줄과 씨줄로 엮이고, 평온한 날씨는 반드시 폭풍과 교차한다. 우리의 삶에도 온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결같은 전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정해진 단계를 거쳐 나아가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 즉 유년기의 무의식적인 도취, 소년시절의 맹신, 청춘시절의 의심 (모든 사람에 게 공통된 운명), 이어서 회의, 그다음에는 불신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만약에'를 심사숙고하는 성년기의 평정 단계에서 정지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그 단계를 다 거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첫 단계로 돌아가서 유아기와 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 '만약에'를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우리가 더 이상 닻을 올리지 않을 마지막 항구는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지친 사람도 싫증내지 않을 세계는 어떤 황홀한 창공을 항해하고 있는가? 버려진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우리의 영혼은 아이를 낳다가 숨진 미혼모가 남긴 고아와도 같다.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비밀은 어머니의 무덤 속에 있으니, 그것을 알려면 무덤으로 가야한다."


에이해브의 입을 빌려서 멜빌이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저 혼자 살아남아 이렇게 알리러 왔다"고 욥기의 말을 인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슈메일은 살아남아서 우리에게 알려준다. 



다음주에는

18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장 자크 루소인데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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