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칼 바르트 교의학 개요


칼 바르트 교의학 개요 - 10점
칼 바르트 지음, 신준호 옮김/복있는사람


머리말

01 교의학의 과제

02 믿음은 신뢰다

03 믿음은 앎이다

04 믿음은 고백이다

05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

06 아버지 하나님

07 전능하신 하나님

08 창조주 하나님

09 하늘과 땅

10 예수 그리스도

11 구원자요 하나님의 종

12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13 우리의 주

14 성탄의 비밀과 기적

15 고난을 받으신 분

16 본디오 빌라도에게

17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음부에 내려가시다

18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다

19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다

20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

21 성령을 믿습니다

22 공동체 그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23 죄의 용서

24 몸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





01 교의학의 과제

10 교의학은 교회가 (각각의 인식론적 입장에 따라) 자신의 선포 내용을 비판적으로 (즉 성경을 기준으로 하고 교회적 신앙고백의 인도를 받으면서) 해명하는 학문이다.

 

14 신학 안에는 말씀의 기원 곧 '어디로부터'에 대한 질문이 있다. 이 첫 질문의 대답은 우리가 주석이라 부르는 분야에서 언제나 또 다시 주어지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떻게'에 대한 질문 곧 교회에 맡겨진 선포의 형식과 형태에 대한 질문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실천신학이라 부르는 분야에 위치한다. 주석학과 실천신학 사이의 정확하게 한가운데에 교의학 혹은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조직신학이 위치해 있다.


17 하나님 말씀의 재현으로서 교회 안에서 마땅히 효력이 있어야 하는 것을 우리는 교의 Dogma라고 부른다. 교회는 다음을 질문하며 또 반드시 지속적으로 질문해야 한다. 교회적 선포에서 발생하는 것은 교의에 어느 정도나 상응하는가? 질문의 목적은 단순히 교회적 선포를 더 낫게 만들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것의 수정, 심화, 상세화는 오직 하나님의 고유하신 사역이지만, 그러나 인간적 노력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 노력의 한 부분이 바로 교의학이다.


02 믿음은 신뢰다

19 그리스도교적 믿음은 만남의 선물(인간들은 이 만남 안에서 자유롭게 된다) 그리고 은혜의 말씀(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셨다)을 다음의 방식으로 듣는다. 그것은 그 선물과 말씀의 확실한 약속과 인도를 그것에 반대하여 말하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유일회적, 배타적, 전적으로 굳게 붙드는 방식이다.

 

24 '나는 믿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믿음에 대한 인식이며,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 자신을 통해 인식 될 수 있다"는 명제에 대한 깨우침이다.

 

29 믿음은 영원히 유일회적인 한 결단의 문제다. 믿음은 다른 견해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견해가 아니다. 일시적으로 믿는 사람은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믿음은 궁극적 관계를 뜻한다. 믿음은 하나님께 관계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영원히 유일회적으로 행하신 것에 관계된다.


03 믿음은 앎이다

31 그리스도교적 믿음은 이성을 조명한다. 인간은 조명된 이성 안에서 자유롭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며, 그렇게 하여 자신의 고유한 현존재의 의미 그리고 모든 사건의 근거 및 목적의 의미를 확신하게 된다.

 

33 그리스도교적 교의학과 신학의 역사가 앎Gnosis과 믿음Pistis을 분리시켰을 때, 그 시대는 언제나 그리스도교적 교회의 불운한 시대가 되었다. 바르게 이해 된 믿음은 앎과 동일하며, 바르게 이해된 믿음의 행위는 앎의 행위다. 믿음은 곧 앎이다.

 

04 믿음은 고백이다

40 그리스도교적 믿음은 결단이다. 그 결단 안에서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앎과 관련하여 책임을 질 자유를 갖는다. 그 책임은 그 신뢰와 앎을 교회의 언어 안에서, 그러나 또한 세상적 견해들 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 상응하는 실천과 행동방식들 안에서 공적으로 책임지는 것을 뜻한다.


05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  

51 하나님은 성경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되고 완성된) 그분의 자유로운 사랑의 사역 안에서 현존하고 살아 계시고 행동하시며,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분이시다.

 

53 그리스도교적 신앙고백의 형태는 신적인 것에 대한 인간적 추구 혹은 갈망의 긴 여정 위에서 마침내 어떤 특정한 단계에 도달하여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적 신앙고백의 하나님은 모든 신들과는 달리 어떤 발견된 혹은 고안된 신, 최종적으로 인간에 의해 발견된 신이 아니다. 그분은 인간이 그렇게도 찾아 발견하려고 시도했던 것의 성취, 아마도 최종적이고 최고이며 최선인 어떤 성취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하나님께서는 '신'이라고 불리곤하는 그 밖의 모든 것의 자리에 철저하게 서시며,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추방하고 배제하시며 홀로 진리이심을 주장하신다.


57 하나님께서는 증명될 수 없고 탐구될 수 없으실 뿐만 아니라, 또한 파악되실 수 없다. 성서 안에는 하나님을 정의하려는, 다시 말해 하나님을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어떤 시도도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이 성서에서 언급 될 때, 그것은 철학자들이 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즉 어떤 무시간적 본질, 세계를 뛰어넘는 낯설고 최고인 어떤 본질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는다.


06 아버지 하나님 

62 한분이신 하나님께서는 본성적으로 영원한 아버지시며, 자신의 아들의 근원이시며, 그 아들과의 합일 안에서 성령의 근원이시다. 이러한 존재 양식의 능력 안에서 그분은 은혜롭게도 모든 인간의 아버지시며, 그분은 시간 안에서 그 인간들을 (아들 안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자녀가 되도록 부르셨다.


07 전능하신 하나님

69 하나님의 권능은 의로운 권능이라는 점에서 무력함과 구분되며, 다른 권세들보다 우월하며, '권세 그 자체'에 승리하면서 대립한다. 그 의로운 권 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확증되고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의 권능이며, 또한 모든 가능한 것의 총괄 개념, 규정, 한계이며, 그래서 모든 현실적인 것 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권능이다.


08 창조주 하나님

77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으로써, 그분은 다만 자기 자신을 향해서 만 홀로 계시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계시되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은 자신과 구분되는 세계에게 그분 자신의 고유한 현실성, 그분 자신의 특성, 그리고 자유를 선사하신다. 그분의 말씀은 피조물인 세계 존재의 능력이 다 하나님께서는 세계를 무대로 창조하고 유지하고 다스리시며 그 세계 한가운데 인간을 그분의 영광의 증인으로 세우신다.


86 우리의 존재 그리고 세계 전체의 존재의 배경과 근거는 ━ 다만 만들어진 것이 아닌 ━ 창조다. 하나님의 외부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 지속적으로 무로부터 유지된다. 피조적 특성은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존재를 뜻한다. 그 존재는 시작과 끝을 가지며, 다시 소멸되기 위해 생성된다. 그 존재는 과거 한 때에는 없었으며, 미래의 어느 때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87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고 공간의 주인이시다. 그분이 또한 그 형식들의 근원이기 때문에, 그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제약과 불완전성을 갖지 않는다. 제약과 불완전성은 다만 피조적 존재에만 속한다.


91 하나님께서는 세계 안에서 보일 수 있게 되기를 원하시며, 그런 점에서 창조는 하나님의 의미있는 행동이다.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세계의 현실성에 대해 어떤 항변이 제기된다고 해도, 그 현실성의 선함은 다음에서 흔들릴 수 없이 유지된다. 세계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무대이며, 인간은 바로 그 영광의 증인이다.


09 하늘과 땅

92 하늘은 인간에게 파악되지 않는 피조물이며, 땅은 인간에게 파악될 수 있는 피조물이다. 인간 자신은 하늘과 땅 사이의 경계 선상에 있는 피조물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이 하늘과 땅과 피조물 전체의 의미와 영예이며, 또한 근거와 목적이다.


108 오직 영원과 동시에 시간을 하나님과 동시에 인간을 함께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의해 표현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의 현실성이다. 오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만 첫째 조항의 의미에서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여기서, 곧 그 인간의 구체적 형태 안에서 그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에 있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때문이다. 


10 예수 그리스도

101 그리스도교적 믿음의 대상은 (그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행동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 전에 우리를 위해 인간이 되기를 원하셨으며, 시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인간이 되셨으며, 그리고 영원히 우리를 위한 인간이시며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그러하신 사역은 아버지의 사역을 전제로서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결과로서 자체 안에 포함한다.


11 구원자요 하나님의 종

113 예수라는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이스라엘 민족의 (예언자적이고 제사장적이고 왕과 같은) 파송을 계시하고 실행하는 저 한 인간의 선택, 인격, 사역을 말한다.


114 우리는 예수 그리고 그리스도라고 둘로 나눌 수 없으며, 두 구성 요소 중 어느 하나만 취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 예수 그리고 이스라엘 출신의 직무 수행자인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참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 것이다.


12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130 인간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의 계시는 강제적이고 배타적이며, 그분 안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은 도움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인간은 하나님과 구분되는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아버지의 유일하신 아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분은 자신을 통하여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살아계신 유일하신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은혜와 진리가 그분의 인격 안에 있고,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과 모든 다른 인간들 사이의 권위 있는 중보자이시다.


13 우리의 주

139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재는 (그분의 신성의 능력 안에서) 모든 인간적 현존재에 대한 주권적 결정이다. 그 결정은 그 한 분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모든 인간을 대신하시며, 그래서 모든 인간은 그분과 결합되고 그 분께 의무를 진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분의 공동체는 그 사실을 안다. 공동체는 그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14 성탄의 비밀과 기적

150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에 의한 잉태 그리고 동정녀 마리아로부터의 탄생의 진리는 한편으로는 그분의 역사적 등장 안에서 성취된 참 하나님의 참된 성육신을 지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한 신적 은혜의 행동 및 계시의 행동의 그러한 시작을 다른 인간적 사건들 앞에서 특별하게 만드는 구별된 형식을 기억하게 한다.


158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참된 인간성의 합일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는 사실에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그 비밀이 그러한 형식과 형태로 현실이 되고 공개되는 것을 기뻐하셨다는 것뿐이다. 


15 고난을 받으신 분

160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승리가 아니라 굴욕이며, 성공이 아니라 실패이며, 기쁨이 아니라 고난이다. 그 삶에 의하여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역과 (그것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계시된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의 문제 곧 인간의 굴욕과 실패와 고난을 하나님 자 신의 것으로 만드시고 그렇게 하여 그 문제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긍휼도 계시된다.


170 하나님의 가장 깊은 비밀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 예수 안에서 죄인의 자리에 서시기를 피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며, 반역자로서의 인간 존재가 되기를 피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도 알지 못하신 자를 죄로 만드셨다.) 그러한 인간 존재의 고통을 직접 당하시기를 피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분 자신이 총체적 죄 그리고 총체적 속죄가 되셨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 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것이다.


16 본디오 빌라도에게

172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은 그것과 결합된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에 의해 (바로 우리의 삶이 발생하는 동일한) 세계사 안의 한 사건이다. 이 정치가의 동반 작용에 의해 그 사건은 한 외적 행위의 특징을 획득하는데, 그 행위 안에서 한편으로 하나님의 개입과 정의가, 다른 한편으로 세계 사건에 관련된 국가적 질서의 인간적 타락성과 불의가 작용하면서 공개된다.


17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음부에 내려가시다

181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시고 넘겨주셨다. 그 결과 그분의 의로운 법은 하나님께서 죄인의 자리에 서시는 방식으로 죄인들에 대해 실행되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적중되는 '저주'와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징벌'과 인간의 질주가 향하는 종점인 '과거'와 인간이 빠져있는 '버림받은 상태'를 영원히 유일회적으로 스스로 짊어지시며, 그것들을 인간으로부터 제거하신다.


18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다

19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인간은 영원히 유일회적으로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께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에 대항하여) 자신의 의로운 권리를 발견하도록 고양되고 규정되었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해방되었다. 그 삶 안에서 인간은 죄 그리고 또한 저주, 죽음, 무덤, 지옥 등을 이제는 자신의 앞이 아니라 오히려 뒤에 둔다.


19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다

197 영원히 유일회적으로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은 부활의 증인들에게 맡겨진 앎에 의한 교회의 건립이다. 그 증인들은 하나님의 전능성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작용하고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이고 동일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 사역의 마지막은 동시에 종말의 시간 곧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전능성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온 세상에 전해야 하는 시간의 시작이다.


20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

205 교회의 기억은 또한 교회의 기대이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교회의 소식 전함은 또한 교회의 희망이다. 왜냐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말씀과 사역으로부터 교회는 알면서 유래하고 세상은 아직 알지 못하면서 유래한다) 종말을 향해가는 시간의 목적으로서 교회와 세상에 마주 나아오시는 분이며, 그분 안에서 발생한 결정을 궁극적으로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해 볼 수 있게 만드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 결정은 [궁극적] 척도가 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나라다, 인간성 전체와 모든 개별적 인간 존재는 그 척도에 비추어 측정된다.


21 성령을 믿습니다

218 인간들은 자유를 소유하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 안에 있게 된다. 자유 안에서 인간들은 그분의 말씀을 자신에게 전해진 말씀으로 그분의 사역을 자신을 위해 행하여진 사역으로, 그분에 관한 소식을 또한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 최선의 것을 희망해야 하는 자신의 과제로 인식 한다. 이 일은 물론 인간적 경험과 행동에 의해 발생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인간적 가능성과 결단과 노력의 능력 안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오직 하나 님의 자유로운 은사에 근거하여 발생한다. 이 은사 안에서 그 모든 것이 인간들을 향해 주어진다. 그와 같은 향함 그리고 은사 안에 계신 하나님이 성령이시다.


223 인간이 저 자유를 얻고, 그래서 듣는 자와 책임지는 자와 감사하는 자와 희망을 갖는 자가 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 그것은 어떤 인간적 영의 행위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직 성령의 행동에 근거하여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건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은사다. 그 사건은 하나의 새로운 탄생이며, 성령에 관계된다.

 

22 공동체 그 통일성. 거룩성, 보편성

224 인간들이 여기저기서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들 서로와 결합될 때. 그리스도교적 공동체가 여기저기서 생성되고 지속된다. 공동체는 오직 자신의 근거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통치되며, 오직 자신의 소식 전달의 직무를 성취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며, 오직 자신의 한계선인 희망 안에서 또한 자신의 목적을 인식한다. 이 점에서 공동체는 하나님 백성의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형태이며, 거룩한 인간들과 사역들의 공동사회다. 


234 교회는 자신의 소식 전달의 사명으로부터 살아가며,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 교회가 살아있는 곳에서 다음은 항상 질문되어야 한다. 교회는 그 사명에 봉사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목적적으로 존재하는가?


23 죄의 용서

237 그리스도인은 뒤돌아 본다. 그리고 자신의 죄에도 불구하고 성령과 거룩한 세례의 증거를 수용한다. 성령과 세례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그리고 그 인간의 고유한 삶의 칭의에 대한 증거다. 칭의에 대한 그의 믿음은 하나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자리에 서셔서 그의 길을 위한 무한한 책임을 떠맡으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243 삶은 모든 경우에 '오직' 죄의 용서로부터 살아간다. 여기서 그리스도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이 구분된다. 죄의 용서 곧 은혜라는 날카로운 산마루를 넘어가지 않는 어떤 것은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심판받게 되고, 심판자가 우리에게 질문하게 될 것은 다음이다. "너는 은혜로 살았는가? 너는 너 자신에게 우상을 세우거나 혹은 스스로 우상이 되려고 하였는가? 너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충성된 종이었는가? 그렇다면 너는 통과되었다. 왜냐하면 그때 너는 틀림없이 긍휼히 여겼을 것이며, 네게 빚진 자들을 용서했을 것이며,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을 위로했을 것이며, 스스로 빛이 되었을 것이며, 너의 행위들이 틀림없이 선했을 것이며, 그것이 죄의 용서로 흘러 나오는 행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위들에 대한 질문이 바로 우리가 대면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심판자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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