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이 토모아키: 신학을 다시 묻다 ━ 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


신학을 다시 묻다 - 10점
후카이 토모아키 지음, 홍이표 옮김/비아


한국어판 서문

01. 아아, 신학마저도! -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02. 왜 “예수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다고 가르쳤지만, 이 땅에 생겨난 것은 교회”였던 것일까?

03. 그리스도교적 유럽의 성립과 신학

04. 종교개혁과 중세의 몰락

05. 17세기 영국의 개혁과 신학의 시장화

06. 레 미제라블 - 프랑스 혁명과 신학

07. 실용주의로서의 신학

08. 신학의 현실성


집필 후기

옮긴이의 말




한국어판 서문

10 신학은 분명 '교회의 학문'이지만 교회라는 담을 넘어 지속해서 사회의 영향을 받았고 또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라는 컨텍스트는 신학의 텍스트를 낳고, 그렇게 나온 신학의 텍스트는 다시금 사회라는 컨텍스트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상호 관계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문제 의식 아래 신학이라는 학문이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감당해 왔는지 특히 그 변천 과정을 살펴 보았습니다.


11 특정 종교에 관한 가르침, 그리스도교 신학이라는 학문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갖고 있거나 의문을 표하는 이들에게도 신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방 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01. 아아, 신학마저도! -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28 오늘날 신학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것, 관심 밖의 것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근래에 와서는 그리스도교 내부에 있는 이들도 신학의 쓸모에 대해 의구심을 던진다. 예전에는 신학자라고하면 적어도 교회에서만큼은 존경을 받았지만, 오늘날 상당수 교인은 신학자를 그리스도교 복음을 일부러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34 이 책을 통해 다루는 것은 결국 신학이라는 학문의 사회사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즉이 책에서는 왜 '신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했는지, 왜 그러한 학문이 필요하게 되었는지, 역사의 흐름 가운데 신학은 인류사회나 교회에서 어떠한 기능을 수행해 왔는지, 그리고 오늘날에는 어떠한 자리에 놓여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34 신학은 필연적으로 그 신학이 논의되고 적용되는 사회나 시대의 영향을 받는다.


38 '신학'이라는 학문을 살펴보면 왜 특정 신학사상이 특정시대에 탄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고, 시대가 신학에 무엇을 요청했으며 신학은 그 요청에 어떠한 방식으로 답해 왔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신학의 '현실성'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02. 왜 “예수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다고 가르쳤지만, 이 땅에 생겨난 것은 교회”였던 것일까?

48 신학의 탄생은 예수가 가르친 것과 같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종말이 지연되었다는 의식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내일 이 세상이 문자 그대로 끝난다면 학문 체계를 수립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며 작품을 남기거나 대출을 받아 집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하느님 나라가 임하는데, 혹은 하늘 나라에 가는데 그러한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문자 그대로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어떤 의미로든 종말이 오지 않았다면 그 상태는 '잠정적'이다.


51 최종회가 끝날 때, 즉 마지막 이야기까지 끝으로 치달을 때 비로소 구원이라는 드라마는 완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 오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교라고 부르는 것은 이 오프닝에서 시작해 엔딩까지 진행되는 드라마의 최종회라 할 수 있다. 이 최종회 이야기는 2천 년이라는 세월이 넘게 진행되었으며 이 가운데 신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했다.


57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인 틀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형성해 나가야 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설명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학은 이러한 요청의 산물이며 결과적으로 당대 시대 정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03. 그리스도교적 유럽의 성립과 신학

70 서유럽은 어떻게, 왜 그리스도교화된 것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왜 로마를 중심으로 로마 제국과 함께 발전한 그리스도교는 지중해 지역을 버리고 북상하였던 것일까? 로마 제국의 붕괴, 분열도 여기에 한몫 했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사학자인 앙리 피렌이 이야기한 것처럼 지중해 지역에 이슬람교가 들어와 그리스도교가 쥐고 있던 패권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의 강대한 군사력과 경제력 앞에 그리스도교는 중심 지역을 로마로 유지하면서도 새로이 활동할 무대를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선택된 곳이 북쪽이었다.


77 사상을 지배하는 구조를 손에 넣은 교회는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 즉 '종말'로서의 하느님 나라 도래를 말하지 않게 되었다. 교회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의 종말은 곧 교회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세상의 종말이나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이야기한 사람은 이단으로 내몰렸다. 실제로 이 사상 종말의 강조는, 교회의 제도나 구조를 바판하는 이들이 주창하는 사상으로 전락해 갔다.


78 그리스도교화된 사회의 구조에서 그리스도교는 세계의 모든 구조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체계, 즉 신학이 필요했다. 중세 신학은 이 시대적 요구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 시기 신학은 오늘날로 치면 정치학임과 동시에 사회학이었으며 철학임과 동시에 도덕이고, 자연을 설명하는 과학이기도 했다. 즉 신학은 모든 현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낼 수 있는 이론과 사고 방식을 제공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교가 천상과 지상을 묶어 그 통행을 독점했기에 이 관계를 설명하거나 보장하는 일, 그리고 이 세계를 천상과 연결된 이론으로 설명하는 일을 교회가 책임지게 되었다.


04. 종교개혁과 중세의 몰락

112 1555년의 정치적 결정은 '신학'에 새로운 의미와 역할을 부여했다. 그로 인해 발생한 현상 중 하나는 앞서 암시했듯, 신학의 상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 전까지 신학은 그리스도교 유럽 전체의 문제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과제 혹은 전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를 다루었다. 개혁시대부터 사고 방식이 지역화하면서 신학은 각 영방의 정치나 교파를 지탱하는 학문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근대에 가까워 질수록 개별 국가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116 그들에게 프로이센의 새로운 시도, 그 후의 통일 독일, "하느님에게 선택을 받은" 황제인 빌헬름과 이를 뒷받침하는 독일 루터파 교회의 (내셔널리즘과 결합한) 정치신학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를 설계해 나가고자 할 때 중요한 참고가 되었다.


05. 17세기 영국의 개혁과 신학의 시장화

123 16세기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신학은 내셔널리즘과 결합한 보수적인 정치이론이 되어 버렸지만, 17세기 영국에서는 시민혁명, 혹은 사회변혁의 이론으로 그 임무를 수행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신학이 사회를 유지하는 이론일 수 있지만, 사회를 전환시키기 위한 이론으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128 청교도의 등장은 국교회가 독점하던 종교 시장에 균열이 났음을 뜻한다.


129 17세기 영국에 등장했던 청교도들이 행한 것은 종교라는 시장을 민영화, 자유화, 시장화하는 첫 번째 시도였다.


134 그전까지 그리스도교 신학은 사회에서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신학의 성립은 종말에 관한 물음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연되는 종말의 도래 때까지 인간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그리스도교는 '교회에서 지내면서 종말을 기다려야 한다'에서 찾았다. 예정대로 종말이 오면 하느님 나라의 잠정적인 조직, 공동체로서의 교회나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는 사라진다. 종말이 없다면 '언제까지. 무엇을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신학은 이러한 종말에 대한 물음 가운데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신학이 종말에 관한 물음에 답하고, 종말이 일어날 때까지 교회나 그리스도교의 역할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종말을 망각했다. 그 결과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교회의 언급도 줄었다. 이러한 와중에 종말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교회나 기존의 종교 체제를 부정하는 이단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었다. 


06. 레 미제라블 - 프랑스 혁명과 신학

139 간단히 말하면 종교는 부정하지 않되 교회라는 제도는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프랑스혁명 이후 그리스도교에서 일어난 사상적 변화다. 교회라는 제도를 부정하는 그리스도교가 등장한 것이다. 


148 신학은 신을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세계 종교에 포함된 하나의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에 관한 연구로 위치가 바뀌었다. 그 결과 교회와 연결되어 진행된 신학 연구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신학은 국가를 위한 학문도 아니었으며 사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학문도 아니었다. 신학은 개인, 인간의 종교성에 근거해 행해지는 연구, 유럽사에서 일정한 의미를 갖는 특정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역사적 연구로 다시 설정되었다.


155 '교회 밖의 신학'의 첫 번째 비판 대상이 된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그리스도교로 변질시켜 버린 바울로와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었다. 이러한 신학을 따르는 아들은 예수와 나, 혹은 하느님과 나만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그리스도교 신앙이 성립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는 예수 이후 전개된 그리스도교 역사가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한 역사가 되며 교회(제도). 전통, 교리에 집착하는 것은 종교성의 잘못된 발현이 된다.


07. 실용주의로서의 신학

173 신학이 하나의 상품으로 시장에 반입되고 상품화된 신학들이 시장 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유통되면 신학의 진리성, 혹은 정통성은 거의 무의미해진다.


174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신학이 개인이나 교회 혹은 교단에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이다. 소비자가 된 신자들과 교회는 자신의 인생이나 교회 운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신학만을 찾으며 이를 소화하고 적용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이때 좋은 신학은 현재 자신의 상황에 적절한 응답을 제시하는 '사용 가능한 신학'을 의미한다.


174 시장화 된 신학계에서 그 신학의 좋음과 나쁨, 진리성을 결정하는 것은 교회. 교파의 지도자, 대학교의 신학자들, 국가기관이 아니라 소비자들 '대중'이다.


08. 신학의 현실성

182 역사 속에서 사회나 교회는 언제나 신학이 필요했고 또한 그렇게 나온 신학은 또 다른 사회와 교회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신학은, 이것이 진정 오늘날 사람들이 학문이라 부르는 것에 속하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혹은 신앙에 대한 해석과 반성을 통해 태어난 지적 활동이다. 공동체로서 그리스도교는 여전히 신학이 필요하며 여전히 하나의 학문으로 기능하고 있다.


188 그리스도교 교회나 종교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지내온 이들에게도 신학은 필요한 것일까? 지금까지 신학의 역사를 기술하며 각 시대에 신학이 어떻게 만 들어지게 되었는지를 함께 살펴 본이라면 신학에 대한 앎이 적어도 유럽의 역사, 그리고 오늘날 유럽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를 모르면 유럽을 알 수 없다는 말은 진실이다.


188 우리 대다수가 알고 있는 세계, 보는 세계는 매우 좁고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유럽을 알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아는 것은 비유럽 세계에 사는 이들에게만 주어진 과제가 아니라 모든 현대인에게 주어진 과제다. 물론 신학적 지식이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오늘날 유행하는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거나 좁은 시야,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날 수있는 것은 아니다.


194 절대적인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이렇게 자신을 상대화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학의 전통에 서 있는 지성의 핵심이다. 신학은 스스로 절대적인 입장이 되어 펼치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신학은 인간이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그때까지 인간을 잠정적인 존재로 깨닫도록 도움을 주는 학문이다. 모든 학문적인 작업은 가설이며 언제나 상대화 될 수밖에 없음을 신학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역사도 현실도 끝나지 않은 이때 죄인인 불완전한 인간은 진리의 일부만을 주장 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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