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12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3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 10점
마르퀴 드 콩도르세 지음, 장세룡 옮김/책세상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80728_38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3

이제까지 읽어왔던 오뒷세이아부터 시작을 한다면 뭔가 신이 인간을 두고 장난을 치는 기분이고, 거기서 인간의 운명은 이리저리 휩쓸린다. 거기서 셰익스피어로 넘어오면 인간이 운명이 이런 것만은 아닌데 하면서 스스로 고뇌하고 자기의 길을 선택하거나 깨우쳐가거나 한다. 신의 뜻을 따르자니 그렇고 인간이 뜻대로 하자니 그렇고 하는 어중간한 상황을 가장 잘 집약한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인 맥베스이다. 그 다음으로 넘어가니 신은 빠지고 인간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사회를 이루고 제도를 이루어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 무엇이 가능하게 만드는가 하다보니 사회계약론이 나온다. 인간 이성에 대한 신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콩도르세에 이르러서는 사람 사는 세상은 역사적으로 어떻게 진보해 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까지 온다. 신이 없어도 인간이 스스로 이성의 진보와 합리성에 의해서 진보할 수 있다는 것. 지난 시간에는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에 대해서 배웠다. 그리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을 국가에서 해야 된다고 말했다. 공교육은 평등하기 위해서 누구나 다 여기까지는 설정해서 이르도록 하는 지식교육이다.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콩도르세는 계몽주의 정점에 있다. 프랑스혁명 때문에 실패하고 감옥에 가서 쓴 글. 프랑스혁명이라는 것이 계몽주의가 보여줄 수 있는 양극단을 다 보여준다.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세상을 계획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실천을 하다 보면 어떤 무리수를 둘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계몽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측면은 어떤 것인가를 다 보여준다. 사실 1789년 프랑스혁명이라고 하는 것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모습을 자코뱅 독재가 가지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서 몸에 붙어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몇 십 년 만에 계획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두대와 독가스가 대체로 상응한다.


계몽과 이성의 시대가 활짝 꽃을 핀다는 것은 과학적 이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계몽주의는 근대의 과학에 바탕을 둔 사회사상이다. 다시말해서 과학혁명의 성과가 프랑스로 건너 오면서 사회적으로 적용된 사례가 계몽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까닭에 17세기 과학형명, 18세기 계몽주의를 묶어서 이성의 시대라고 한다.


문제는 계몽주의자들의 이성이라는 것이 사회에 지식을 널리 전파해서 사람들을 깨우치려고 했다. 굉장히 탁월하고도 좋은 이성의 사회적 기능, 즉 올바른 지식을 공급함으로써 사고방식의 변혁을 목표로 하고 그것의 성과로서 그 유명한 백과전서가 있다. 백과전서에 실린 도판만 묶어서 따로 출간된 것이 있다. 이 해설집이 한국에서도 번역된 것이 있다. 


루소 때는 교육이라는 것이 훈육이라든가 하는 감정교육이 있는데, 콩도르세로 넘어오면 많이 드라이하다. 오늘날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굉장히 감성적이다, 예술과 낭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프랑스에서 예술과 낭만의 감성을 꽃피운 사람들은 프랑스 바깥에서 프랑스로 왔던 사람들이다. 파리는 시장이었고 모딜리아니이라든가 고흐라든가 피카소 모두 프랑스 사람이 아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과학적이고 기계적이다. 그것이 프랑스 유물론이다.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는 분류하자면 철학책으로 분류하는 것이 정확하다. 사실 철학은 판타지이기 때문에 이를 역사책이라고 하면 모독이 된다. 콩도르세가 가지고 있는 이성적 세계. 시작부터 끝까지 과학적 이성이 작동을 하는 세계를 목표로 하고 그런 세계를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에서는 큰 그림이 그려진다. 우선 출발점이 콩도르세의 얘기를 보면 "자연은 우리 인간들의 능력의 완전성에 대한 조건을 설정하지 않는다."로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의 능력은 자연적인 한계가 없다는 것. 인간이 완전해질 가능성은 무한하다. 이러한 완전가능성에 대한 진보는 당장 그 진보를 중단시키고자 하느 어떤 힘으로부터도 독립적이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를 보면 인간이 요즘 가진 목표가 신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콩도르세가 말한 것이 떠오른다. 자연과학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능력치를 극대화해서 진보가 거대한 우주에서 지구가 현재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역전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일반법칙이 산출되는 동안에는 어떠한 파국적 변화도 현재 인류가 지닌 능력과 자원을 박탈할 수 없을 것이다. 꼭 유발 하라리의 말 같다. 콩도르세를 읽을 때는 판타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유발 하라리 책을 읽으면서 이런 식의 심성구조를 가진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칙적으로 인간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이해하고 있고 그 이성을 바탕으로 문제가 생기면 다 솔루션을 제시해서 해결할 수 있는 존재다라는 것. 예들면 제레미 벤담의 《파놉티콘》. 우리는 원형감옥이라고 하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벤담은 전혀 나쁜 의도에서 그것을 구상한 것이 아니다. 과학적인 원리와 실천을 통해서 죄수들의 나쁜 마음을 없애고 교화를 잘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죄수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사회를 더 좋게 만드려는 의도였다. 벤담이 1832년에 죽었는데 1930-40년대 일본에서 한참 자연과학이 발전하던 시기에는 벤담의 아이디어가 만주국 같은 데서 실현되고, 옛 서대문 형무소 또는 학교건물에 일본을 통해서 수입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악을 물리치고 사회를 개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의 원조가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새로운 아틀란티스》가 사실 왕립 과학 아카데미들이 다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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