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 27 사대부와 남송도학운동, 주희(朱熹)와 사서(四書), 체제교학으로서의 주자학


세상의 모든 철학 - 10점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박창호 옮김/이론과실천



2012.8 강의
25강: 토마스 아퀴나스, 보편개념실재론의 의의, 사상사에서의 방법론적 전환: 한 사례로서의 소크라테스(Phaidōn읽기) 
26강: 송명이학(宋明理學)의 성립 배경: 유교의 체제교학화(體制敎學化), 삼교일치론(三敎一致論)
27강: 사대부(士大夫)와 남송도학운동(南宋道學運動), 주희(朱熹)와 사서(四書), 체제교학으로서의 주자학(朱子學)
28강: 송명이학의 형이상학(性卽理, 天命之謂性), 조선 성리학의 전개, 전승된 정신사적 유산



20120817 27강: 사대부(士大夫)와 남송도학운동(南宋道學運動), 주희(朱熹)와 사서(四書), 체제교학으로서의 주자학(朱子學)

* 송대 사대부의 등장
송대사대부의등장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먼저 송나라 역사를 알아야 한다.
금나라(金) 침입으로 북송(北宋)에서 남송(南宋)으로 넘어감.
세계사적 관점에서보면 남·북의 분리는 한나라 이후 국력이 가장 취약했던, 다시말해 황제 권력이 취약한 했던 시점에 송명이학이 등장
송명이학은 조선·일본으로 넘어가서 동아시아세계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는 사상이된다. 역사의 아이러니. 사상의 지배력 만큼은 가장 강력함. 국력과 사상은 비례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역사에서보면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로마 역시 철학이 없었다.
송명이학 이후 동아시아시대의 지식인과 서양은 다르다. 서양은 지식인이 one of them 임에 반해 동양은 지배계급이 됨.
나라가 강성해지면 쇼비니즘(chauvinism, 국수주의) 가 발전하지않는다. 남송이후 중화사상이 나타남.

남송 시대 핵심적인 특징은 항제의 일원적 지배가 관철되지 않았다는점. 중앙권력과 지역권력간의 일정한 정도의 갈등이 있었다.
국가 전체를 통치하는데 문제에 있어서 이를 뒷밧침하는 이론들이 등장하게 되고, 지역에서 일정한 정도의 자율적인 권력을 획득하고 지역사회를 지배영역으로 삼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는게 이들이 사대부이다.

사대부(士大夫)는 고려시대 말기 사대부를 설명할때 기원이 된다.
고려는 귀족 호족연합체로서 태조 왕권의 부인이 20명이넘었다는 것이 주목할 점. 고려에서 과거가 시행되었다고 하지만 극히 일부였으며 호족들(세속적인 귀족)에 의해 통치된 나라로 왕권이 강하지않았다. 과거를 통해 올라가도 요직에 올라갈 수 없었다.
실제로 고려말에 권문세가 출신들이 조선시대에도 이어짐. 과거 시험을 치뤄도 결국엔 세습이었고, 누구나 과거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은 내용상으로는 귀족이었는데 과거를 통해 정당화시킨다. 이는 귀족사회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 

귀족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상이 등장할 수 없다. 공부가 사적인 영역에서 머무르고, 공적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면 공부를 하지 않게된다. 송나라 들어오면서 귀족사회가 깨지면서 사대부의 등장

- 사대부(士大夫) =  士=선비+ 大夫=관료, 즉 지식인 + 공무원의 뜻
과거시험 합격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
과거시험을합격했다는 일체감과 연대의식, 문화적인 자신감으로 뭉친 사대부는 새로운 문화적 계층으로 신분세습에서 벗어나게된다.
과거시험 텍스트였던 오경정의, 텍스트의제국이라는 성격이드러남

- 사대부들이 처한 상황
황제의 일원적인 지배가 불가능하고 중앙과 지방 권력이 대립 불가피한 했던 시대.
황제가 지배하지 못하는 공간인 지방에서는 향리공간 이 생겨남
향리공간을 다스릴 수 있는 사회질서가 구상되고 이론적인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제기됨.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식으로 재구조화되고 있는가.
예전 70년대 구조가 해체되고 80,90년대를 거치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공간이 어떤 식으로 바뀌고 있는가를 생각하고 이것에 걸맞는 사회질서를 구상하고 이러한 사회질서를 뒷받침하는 이론적인 근거들을 발견해내는 것, 사실은 이러한 일을 한 사람이 송대 도학운동, 사대부들이었다. 

이부분에서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과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규율할 수 있는 사회질서 그리고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한다. 이러한 것이 이루어질 때 정치이론도 사상도 나오는 것이다.

송나라 성리학,주자학하면 고리타분, 보수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이들이야말로 시대가 직면했던 상황에 대해서 정면적으로 대결하고 그것에 대해서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했던 당대에서 가장 진보적인 일이었다.

송대사대분들은 주자에 의해 집약되지만 보수·진보로 고정적으로 나누어서는 안됨. 내가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소양을 어디에다가 꽂아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보수·진보를 행위로서만 가늠 할 수는 없다. 송대 사대부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 남송 도학운동
삼교일치론으로 인해 도교,불교,유교가 거의 차이가 없어졌을 때 유교가 가장 발빠르게 움직였다. 도교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철학으로 흘러갔고, 불교는 로컬라이즈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불교는 일종의 종말론이라고 할 수 있는 정토종과 선종이 생겨나고 교학으로서의 불교는 송대에 와서 거의 끝났다.

송대 사대부가 펼친운동을 남송 도학운동이라고 말하고 그들을 도학자라고도 부름.
처음에는 과거시험 합격을 위해 공부를 했으나 나중에는 과거시험과는 무관하게 중앙권력과의 관계를 끊고 학문 속에서, 향리 공간 속에서 공자님의 도에 합치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라고 하는 새롭게 생긴 목표 생활 속에서 실천했다.

여기서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식적인 시험과 타이틀에 무관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공부를 하는 것
출세와 영달에 연연하지 않고, 참다운 사유를 물으면서 참다운 학문을 닦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대부다라고 생각하기 시작.

- 서원의 시작
남송도학운동에서 향리공간을 장악하는 거점으로서 서원이 등장

조선에서 이를 극단적으로 수용했던 사람이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 처사 處士
16세기 조선 이래로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라는 것이 항상 스트레스였다.. 일본은 한문을 로컬라이즈를 해버렸다. 이는 학문의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고, 일본에서는 번역도 많이 일어났다.

서원은 과거 합격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학교
공부하는 강학당, 선열을 제사 지내는 공간이 기본적인 구조. 
조선 시대 서원은 중국의 서원을 그대로 모방한 것. 도산서원. 경주의 옥산서원.

* 남송도학운동
남송도학운동은 단순한 사상운동이 아니라 북송 때부터 내려왔던 것. 

-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의 신법(新法) 
국가가 어려우니까 나라를 잘 다스리려는 비책들이 나왔는데 여전히 국가의 이론적인 지배를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주희가 이런 것을 비판하면서 향촌 자치의 새로운 모형을 제시

- 남송도학운동
황제의 지배가 관철되어 있는 정도, 즉 사회가 변화한 것과 그것에 상응하는 행정조직이 얼마나 상응하게 있는가, 그 다음에 그것을 펼쳐보이는 관료집단들이 정말로 황제의 명을 충실히 받들어서 그들의 이념을 펼칠수있을만큼 이념적으로 무장이 되어 있는가.
또한 항상 놓쳐서는 안되는 문제,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은 얼마나 발전되어 있는가. 로마제국의 지배는 도로를 통해서였다. 의사소통 수단과 기술들이 얼마나 발전되어 있는가. 이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앙집권적 정책을 계속 내놓으면 국가의 통일적 지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중앙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각각의 지방이 가지고 있는 특성, 즉 중앙과 지방의 이질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정책들이 나오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 일원적인 아닌 이원적 지배가 이루어졌다고 보면 된다.

남송 지역의 향리공간은 소농과 가내수공업으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이 중요한 점.
유교가 공자님 시대의 유교와 남송 이후의 유교하고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중요한 요소는 경제적인 상황.
공자님이 활동하던 당시는 생산성이 굉장히 높던 시대였다. 철대 농기구가 도입되고, 새로운 신분과 능력있는 사람들이 발탁되던 혁신의 시대. 남송은 소농과 가내수공업을 중심으로하는 경제활동이었고 이러한 바탕 위에 송명이학이 성립.

숙종~정조 때까지 120년을 진경시대라 하는데 그 당시 조선에서도 상업이 굉장히 발달했다. 그럼에도 흔히 말하는 근대적인 의미에서 맹아적인 형태의 상업 자본주의로도 나가지 못한 이유는 유교 때문. 조선의 유교는 송대 성리학을 가져온것으로 성리학이 곧 질곡이 됨. 사농공상. 
신유가(新儒家) 이것이 소농과 가내수공업으로 이루어진 자급자족 경제 위에 성립되었는데 그것 위에 성립된 도덕이 있는 것이고. 서원을 중심으로 해서 굉장히 지역폐쇄적인 도덕률이 세워짐. 상업이 발달하면 유교적인 이념도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옳다고 여겨지고 절대적이 됨. 소농과 가내수공업이 제일요인이고 이것에 따라오는 일종의 부수적인 요인이 이념, 즉 유교. 이념이 절대화되면서부터 제일요일을 억누르기 시작.
정약용을 보면 유교를 굉장히 혁신하려는 사상이 있을 것 같지만 소농과 가내수공업 중심의 도덕국가를 이상형 국가로 여김. 상업의 발전이 없음. 근대화 마인드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며 주의할 점이다.

구조적인 악의 문제가 생겨났을때 그 구조적 악을 구조의 문제로 판단하지 않고 부덕의 소치의 문제로 돌리는 것.
정치가에게 도덕적으로 깨끗할 것으로 요구. 법적으로 하자가 있는 것은 눈을 감으면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
도덕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을 닦으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
이념이 절대화되면서 새로운 사회구성이 나오지 않는다.
도덕중심으로 모든것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세계에서도 유가의 전통


## 철학의 영역
* 수기치인(修己治人) 
주자학의 모토. 유교의 모토가 아님.
"나를 닦아서 다른 사람을 다스린다" 
나를 많이 닦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이 나온다. 남을 가르치려는 태도가 여기서 나온다.

수기치인을 모토로 놓고 그 아래 삼강령 팔조목을 배치하는 이른바 향리공간에 이념과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만들어냄.
성리학의 기본적인 목표.

- 삼강령(三綱領) - 명명덕(明明德)·신민(친민)(親民)·지어지선(止於至善)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고 궁극적인 선함에서 멈춘다.
삼강령은 대학에서 나오는 말. (대학은 예기에 있던 것을 주자가 따로 떼어내서 만든 것)
(<대학> 大學之道 대학지도  在明明德 재명명덕 在親民 재신민 在止於至善재지어지선)

- 팔조목(八條目) -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사물을 궁리하고 앎에 이르며 성실한 마음을 바로 갖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한다.
격물,치지,성의,정심은 이론적인 측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실천적인 측면

- 家라는 개념. 
家라는 것은 가문. 수많은 분가를 거느린 일족을 말하는 것.
동족 내부에 상부상조를 하는 것. 이들이 바로 향리공간을 이룸.

하영휘: 양반의 사생활
문중을 이끌어 나가는 어른이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
家의 경제활동들은 모두 서얼들이 뒷받침.

* 향신의 등장.
서양의 절대왕정 시대가 끝날 때 젠트리 계급이 등장(역사고전강의)
예전에는 젠트리를 향신으로 번역했지만 둘은 서로 다른 개념.
젠트리는 왕이 귀족들의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각 지역의 유지들에게 치안판사 자리를 주고 '평화의 재판관' 호칭을 주면서 생겨난 것이고, 즉 왕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고, 향신은 향리공간에서 스스로 생겨난 새력자들. "지역유지"

수기치인, 삼강령, 팔조목 이런 말들이 <대학>의 구절로 있을 때에는 보편이론으로 보이지만 남송도학이라는 시대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정칙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 사상은 항상 이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원래 가지고 있던 맥락들을 잘 읽을 수 있다.

##여기까지가 남송도학운동이 생겨나게된 여러가지 이념적인 맥락.
좀더 범위를 넓혀서 생각해 보자.

* 왕안석의 신법과 도학운동의 차이
중국에서 시와 문장이 탁월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당송8대가(唐宋八大家, 당나라의 한유·유종원, 송나라의 구양수·소순·소식·소철· 증공·왕안석) 하지만 송대 도학자들은 아름다운 시와 문장을 지은 적이 없다. 그것은 학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

- 사문 斯文 
斯文 =  이것 사, 글월 문 = this culture  = 이 학문
여기서 this가 무엇을 가르키는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당나라 때까지는 고대부터 계승된 모든 문화적 전통을 학문, 넓은 의미의 문화 활동이 학문이라 생각.
북송의 왕안석이나 촉학 소통파는 훌륭한 선비란 곧 시도 지을 줄 알고, 경제·정치·사회·문학 등 통합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 
남송 도학자들은 시를 짓는 것과 같은 것들은 학문 아니다라고 생각.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내면의 덕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고, 중앙 정부의 관료가 되거나 출세가 중요하지 않고 중앙정부가 일원적 지배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윤리적인 덕행을 쌓는 선비들이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이 훌륭한 통치라고 생각. 조선 시대 사림파들의 얘기.
이들이 생각하는 this culture의 학문의 내용도 다를 뿐더러 중앙집권이아닌 지방분권적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왕안석의 신법, 촉학 소동파는 참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범이라는 것은 사회 생활을 하는 가운데 습득된다고 보았다. 삶의 규범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 규범 현실주의
( 소크라테스는 규범의 근거는 초월적으로 따로 있다. - 형상초월론)
조선시대 규범 초월주의자는 남인(퇴계 이황의 후예). 남인들은 천주교가 되기 쉬웠다.

도학자들은 사회 현실 속에서 전승된 또는 옛날 내려온 사회적 규범은 우리 삶의 궁극적 규범이 될수 없고 따로 독립적으로 규범의 진정한 근거가 있다고 생각. 굳이 초월은 아니어도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
천 天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 형이상학적인 실체로서 있다. 현실적으로 인정 받는 것보다 이치를 얼마나 깨달았는가에 따라서 진정으로 도에 이르렀는지를 이야기 하게 된다.
남송의 도학은 탈역사적인 학문, 내성철학으로 잡게 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도 변함 없이 지켜야 할 하늘의이치가 따로있다. 그것을 내 안에 끄집어 들여오는 것이 중요하다. 天命. 끄집어 들여오는 것 = 性. 中庸(중용):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왕안섭의 신법이나 촉학의 소동파하고 남송의 도학자하고 어떤점이 다른가. 
1. 문 文의 내용이 다르다.
2. 참다운 인간, 훌륭한 인간의 근거가 어떻게 규정되느냐.

정치척인 경력이나 연륜이 중요하지 않고, (탈역사적인 내성철학이므로) 문화가치를 형성하고 문학공부를 하고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윤리와 도덕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문 세계를 구축.
도덕적 순혈주의(純血主義)로 빠져들게 된다.

조선 성리학의 병폐가 현재 진보운동에도 나온다.. 한국인의 성리학적 성향.. 도덕이라는 명분을 쥐는 자가 모든 사태의 종결자가 되어버림. 도덕은 개인 차원이다. 여기 공부하는 공간에서는 도덕이 통용되나 이 공간을 넘어가면 법적으로, 도덕이 통용되지 않는 공간.
도덕주의가 가지는 문제점. 개인의 또는 소규모 집단의 사적인 윤리로써 통용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공공영역에서의 합리적인 법개념을 대체할 수는 없다.

* 주희(1130-1200)
생몰연대가 남송(1127-1279)과 겹친다. 40세에 가닥을 잡았다. (정론을 확립했다.)
남송 시대 주희는 수기치인을 얘기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향리공간에서 실현할 것인가를 정책대안까지 마련. 
공부 커리큘럼을 다시 짰다. 서원에서 쓸 교재를 만들어서 공급함.

오경(시경,서경,역경,춘추,예기)에서 사서오경(四書五經) 체제로 개편했다. (대학,중용,논어,맹자,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
예기의 두장을 떼어 대학과 중용을 만들었다. (대학,중용,논어,맹자 사서 편찬. )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註) = 해설서. 즉 교과서를 만들었다.
소학(小學)을 편집. / 근사록(近思錄) 저작. (주자학을 공부할대는 근사록을 먼저 공부)

도통(道統):  유교에서 그 사상이 전해지는 정통적인 계보. 족보. 공자로부터 시작한 유가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정리. 
주희 사후 40년, 1241년에 자신이 도통으로 지목한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주희 이른바 송명이학자들이 공자 사당에 합제됨으로서 주자학이 체제교학의 자리에 올라섬.
주자학도 굉장히 진보적인 학문이었는데 여기서부터 보수가됨.
진보도 역사적인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을 끝내고 나면 보수가 되고 그것이 고착되면 수구가 된다.

*  中庸(중용)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천명이라는 것, 하늘의 명한 바 또는 하늘의 이치가 성이다. 성은 인간 내부에 있는 것.
인간이 내면을 닦으면 하늘의 이치에 이를 수 있다. 인간 내면의 근거를 하늘에 두는 것.
(왕안석은 인간의 내면을 일종의 관습적인 지혜를 요구)

率性之謂道 그 성을 따르는 것이 도다.
修道之謂敎 도를 닦는 것이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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