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 40 Hegel의 형이상학: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 무한자의 입장으로 올라섬


세상의 모든 철학 - 10점
로버트 솔로몬 외 지음, 박창호 옮김/이론과실천


+ 벌써 마지막달 강의다. 실제 강의는 작년 11월에 종료되었고, 나에게는 이번이 철학고전강의의 마지막 달이다.


2012.11 강의
37강: 계몽철학의 완성자로서의 Kant, 구성설적 인식이론
38강: Kant의 실천철학, 목적론과 사변철학으로의 端初
39강: Hegel 철학의 형성과정, Hegel의 Front, 철학의 목표로서의 ‘삶의 통일(Einheit des Lebens)’
40강: Hegel의 형이상학: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 무한자의 입장으로 올라섬; 철학사 공부 이후의 공부, 선생에게 이쁨받는 학생되는 법



20121130 40강: Hegel의 형이상학: 유한자와 무한자의 통일, 무한자의 입장으로 올라섬; 철학사 공부 이후의 공부, 선생에게 이쁨받는 학생되는 법

지난 번에는 헤겔의 지적 배경에 대해서 얘기했고, 오늘은 헤겔 형이상학에 대해서 다룬다. 헤겔에 대해서 논의 할때 상대적으로 많이 다뤄지는 부분은 오늘 얘기할 이론 철학 보다는 오히려 실천 철학 - 법철학, 역사철학, 예술철학 분야를 많이 다루는데 오늘은 그것에 관해서는 하지 않는다. 헤겔 형이상학을 이해하면 그 나머지 부분들은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헤겔에 대해서 얘기할 때 형이상학적 측면들 또는 헤겔의 입장에서 보면 형이상학이 아닌 존재론인데 존재론의 측면들을 배제한 non-metaphysica, 형이상학과는 무한한, 그런 해석들을 바탕으로 해서 헤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헤겔의 시스템은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으로 이렇게 3개 파트로 이루어져 있고 정신철학에서도 주관적 정신,객관적 정신,절대적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고, 객관적 정신안에 법철학, 역사철학이 들어가는데 객관적 정신론하고 절대적 정신론하고 관계를 끊어서 읽는 것을 non-metaphysical interpretation 이라고 한다. 이 non-metaphysical interpretation을 본인을 그렇게 공감하지는 않는데, 첫재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차원을 완전히 순수하게 긍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두번째는 그렇게 읽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여러가지 여건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버리면 되는데 굳이 조작하고 변형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래서 metaphysical interpretation 입장을 반영해서 헤겔에 대해서 얘기할 때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얘기하고 역사철학이나 법철학이나 예술철학 부분들은 상대적으로 논의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

형이상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읽을만한 책이 마이클 루 <형이상학 강의>. 부제가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분석적 탐구, 즉 분석철학적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칸트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칸트가 남겨놓은 문제가 무긍무진한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순수이성을 통해서 무한자에 대해서 앎을 가지려는 시도, 즉 이성의 사변적 사용을 문제를 삼았다. 경험 영역을 넘어선 대상에 대한 추론은 이성의 사변적 사용이다. 그래서 칸트는 전통적인 형이상학 대표적인 예를 들면 플라톤의 '갑자기', (플라톤이 다시 거론되는 맥락). 그렇다면 형이상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형이상학을 폐기시켜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고 칸트는 자기 나름의 형이상학을 내놓는다. <장래 형이상학을 위한 서론 Prolegomena zu einer jeden künftigen Metaphysik>, 이 것을 후세 사람들이 비판적 형이상학이다라고 이름을 붙인다. 형이상학인데 비판을 하는게 아니라 한계를 분명히 설정한, Kritik, 한계를 분명히 한다. 

형이상학은 형이상학인데 우리가 뭔가를 어떤 대상을 사유할 때 사용하는 범주에 대해서 직관의 형식, 오성의 형식과 같은 범주들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이게 바로 칸트의 비판적 형이상학. 그렇게 되면 무한자는 알수 있다없다가 아니라 무한자를 알려고 하는 이성은 도데체 어떤 것이길래 알려고 하는가를 따지는 것이 된다. 무한자 자체에 대해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무한자를 알려는 이성에 대해서 따지는 것.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이라고 하는것의 대상을 따져묻는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은 어떤 식으로 저런 야망을 갖게 되었는가를 따져 묻는 것. 


칸트는 무한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밀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인간 이성의 사변적spekulative 사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결국에는 서로 비교 검증도 안되는 얘기들이 계속 나와서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없는 상태에서 독단에 빠졌다고 생각한 것. 독단적인 형이상학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을 하고 있는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그 형이상학 사유를 하는데 사용하는 사유의 범주와 방법들에 대해서 엄밀하게 비판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칸트의 생각이 미쳤던 것. 그것이 바로 비판적 형이상학이다. 그런데 헤겔은 바로 밀고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헤겔에서도 검증할 수 없는 전제를 하나 깔아야 한다. 그 것이 바로 스피노자주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한한 존재자들은 무한자의 분신이다. 유기적 전체의 일부. 무한자의 일부라는 것을 깔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헤겔도 결국엔 독단론자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헤겔 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한자들은 무한자의 일부다라는 이 유기체적 전체론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일단 받아들이면 그 헤겔의 체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더 이상 증명할 필요 없이 밑바닥에 깔고 들어가는 제일전체를 무엇으로 두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칸트는 그 제일전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했다. 학문을 진짜로 한다면 누구다 다 공통적으로 승인할 수 있는 규준 속에서 해야한다고 얘기한 것.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헤겔은 낡은 고대적 사고방식으로 돌아간 것이다. 스피노자주의에서 헤겔은 시작한다. 초월적인 무한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유한한 것들이 다 무한자의 계기element 들이다 하고 들어가는 것. 그럼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그것을 아는 방법이 헤겔이 내놓은 방법인 변증법Dialektik . 


변증법이란 무한자는 유한자 속에 내재해 있고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유한자들의 세계가 곧 무한자의 세계임을 아는 방법이다. 여기서 주의해야하는 것이 유한자인 인간이 내가 무한자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변증법의 방법인데 그렇게되면 우리는 무한자의 입장에 올라선다고 말한다. 무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즉 인간의 사유는 유한하지만 인간은 사유속에서 저 우주가 생겨났을 때부터 끝날때까지 언제까지 계속되는 무한한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속되게 말하자면 변증법은 영혼불멸한 것을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그것을, 즉 생각하는 방법을 또는 그 힘을 길러주는 것 이 것이 형이상학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효능이다.


헤겔에는 유한자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무한자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한자에게만 오로지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자 역시 이런 유한자가 역동적으로 움직여가지 않으면 무한자 역시 생성되지도 존립하지도 않을거라 생각했다. 

무한자는 유한자에게 논리적으로 앞서있다. 그리고 유한자들 각각은 그 무한자의 일부이고, 무한자가 가지고 있는 목적을 다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무한자는 유한자의 논리적으로 앞서있는 목적이고 동시에 유한한 것들도 그런 목적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한자들은 그 목적을 아직은 뚜렷하게 못한다. 그럼 누가 알고 있느냐.. 바로 철학자들. 


무한자는 유한자에 앞서있는, 유한자에 내재해 있는, 유한자에 선행하는, 논리적 내재적 목적telos이지만 유한자는 그 것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유한자가 그 내재해 있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움직여 간다.  무한자라고 하는 것은 사실 형체가 있는것이 아니고 논리적 내재적 목적, 가만히 있으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유한자가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내고 그 목적을 완전히 실현하면 그 목적이 드러나는 것. 그러면 무한자라고 하는 선행하는 목적은 결국 인간이라고 하는 유한자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를 헤겔은 유한자를 매개로 해서 성립하는 무한자라고 말한다.


무한자는 유한자에 선행하는 논리적 내재적 목적이 이지만 이는 철학자만이 알고있다. 그런데 무한자는 유한자가 역사적으로 전개된 다음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실현된다. 다시말해서 무한자는 유한자를 매개로 하여 성립한다. 

이렇게되면 유한자와 무한자는 서로 긴밀한 상호작용Interaction 관계가 있는 것으로 된다. 그리고 유한한 인간은 무한자의 입장에 올라서는 것. 그러면 우리의 삶의 목표는 인간 삶Leben 전체의 경험Erfahrung을 통하여 무한자의 목적을 실현해 내는 것. 삶이 끝나는 시점에서 과정 전체를 살펴봄으로서 알 수 있다.


주체Subjekt

칸트의 '주관Subjekt'은 아느냐 모르냐 앎의 차원의 문제이고, 헤겔의 '주관Subjekt'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주관의 선택과 살아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주체Subjekt로 변역해야 한다. 

이 주체Subjekt는 무지한 상태에서 삶을 살아가고, 이러한 과정이 바로 겪음Pathos, 독일어로 Erfahrung이다. 헤겔 철학에서 경험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개념인데 그냥 경험이라고 하면 experience, 즉 감각 데이터를 생각하면 안된다. 


아직 발현되지 않은 내재하는 목적Telos을 '자기 안에 있다', 즉자적 상태An sich에 있다고 하여 즉자적 목적이라고 했다.

헤겔은 목적이라는 용어를 Begriff(개념)라는 단어로 사용한다. 개념Begriff는 내재한 목적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생물학적으로 태어난 순간부터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자각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 깨닫지 못하고 죽으면 즉자적 상태에 있는 것. Begriff가 즉자적 상태에서 겪으면서 실현되면 실현된Wirklichkeit 개념Begriff이 된다. '내 안에 있으면서도 남 앞에 드러낼 수 있는 것', 내 앞에 있으면서도 An sich 동시에 남 앞에 드러내 보일 수 있는 für sich, 즉  즉자-대자적An und für sich인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것이 바로 유한자와 무한자의 관계. 그래서 여기서 Leben이 An sich 상태에서 An und für sich로 가면 개념에서 개념으로 가는 것 추상적 개념은 실현된 개념 원래 똑같은 것이지만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 개념에서 개념으로 가는 것으로 헤겔은 개념의 운동Bewegung이라고 부른다.  감각적 확실성(소박한 정신)에서 절대적 앎으로 지금까지 얘기했던 모든 프로세스를 거쳐서 플라톤 철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nous의 입장, 또는 헤겔 철학의 절대적인 앎 입장에 까지 올라서는 경험의 과정 전체가 쓴 것이 헤겔의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이다.



<정신현상학>

감각적 확실성부터 시작해서 절대적 앎에 이르는 전체 프로세스를 개인차원에서 서술한 것. 인간 의식이 경험해 가는 과정을 서술. 서론을 보면 '의식의 경험의 학'이라고 씌여 있다. 이 프로세스를 겪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있는가, 철학자는 안다. 그러니까 정신현상학에는 2명의 서술자가 있는 것. 하나는 무엇을 겪을 지를 모르고 앞으로 Pathos를 향해가는 의식이 있고, 뒤어 철학자가 숨어 있는 것.


전진하는 의식이 있고 이를 지켜보는, 모든 프로세스를 지켜보고 있는 철학자가 있다. 근데 이 철학자는 사실은 회고적Retrospektive으로 보는 것, 배진적으로 보는 것. 전진하는 의식과 최종적인 귀결의 목적지인 절대적 앎의 이르러서 다시금 자신의 전개과정을 회고하는 절대적 지로서의 철학자의 회고적 시각, 이 두개가 동시에 나타난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으로 아리아노스의 편지 부분을 보면 전지적 의식이 telos까지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한다(상술).


p206 아킬레우스는 용기와, 영혼의 힘과, 육체의 민활성과 결합된, 정신의 지식, 그리고 그의 젊은 친우에 대한 열렬한 사랑 등으로 신에게는 때로 가장 위대한 인간이라고 여겨지옵니다. 그리고 또 신에게는, 그에 있어서 아무것도, 그가 지극히 사랑하는 친우를 잃어버렸을 때에 그로 하여금 삶을 경멸하게 하고 죽음을 원하게 한 그 절망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는 듯이 보이옵니다.


이것은 아킬레우스는 젊어서 죽었지만 사람이 겪어야할 모든 파토스를 다 겪어낸 사람으로서 평가하는 것. 


인간 개인의 의식이 절대적 지로 이르는 이 과정, 그런데 헤겔은 이것을 철학자가 자신의 삶 전체를 회고하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정신현상학>에는 2개의 layer가 있는 것, 사실은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인류의 무지했던 시대부터 신적인 의식에 전 인류가 올라선 역사적인 프로세스까지도 넣어보면, 개인의 의식의 경험의 전개과정, 세계사의 전개과정, 그리고 철학자의 회고, 이 세 개의 layer가 펼쳐져 있다. 그래서 삼중적 저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제일 처음에 나오는 감각적 확신의 단계 그안에도 이미 아주 미약하나마 절대적 지혜, Telos가 내재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바로 인류의 역사 전개과정도 거기서  시작한다. 인간의 의식이 절대적 앎의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인류의 역사도 그 목적이 저 시초로부터 내재되어 있던 것으로 보는 것으로 내재적 목적론적 역사철학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의식은 절대적인 앎의 단계에 올라설수 있고, 최초의 소박한 의식에서 시작해서 절대적 앎에 이르렀으니, 이 단계가 동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이어지는 단절없는 또는 비약없는 그런 관계가 되니가 자연스럽게 바로 그렇게 함으로해서 헤겔은 유한자와 무한자를 통일적으로 파악을 하게 된다.


<논리학 Wissenschaft der Logik>

'이것은 안경이다'라는 말을 보자. 이것 안에다가 안경이라는 속성을 붙인 것. 다시 생각하면 이것 안에다가 안경 아닌 것은 집어 넣치 않는 것. 그러니까 이것은 안경이다라고 판단하려면 안경 아닌 것을 배재하는 것이 숨어있다. 즉 긍정판단에는 부정판단이 숨어 있다. 그런데 안경 아닌 것을 배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안경이 아닌 것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아야 한다. 다시말해 안경과 안경 아닌 것들의 대해서 알아야 긍정판단 뒤에 부정판단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경을 제외한 모든 것, 즉 '이것은 안경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이것 안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안경만 빼고 다 넣을 수 있는 것으로 무한히 많다. 즉, 부정판단 안에 포함되는 요소는 무한히 만다. 그래서 부정판다은 무한판단이다. 

'이것을 안경이다'라고 규정을 하면 안경 이외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숨어있다. 즉 무언가를 규정하면 규정된 속성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 부정하는 것. 그래서 규정은 부정이다. 뭔가를 규정하면 그 것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부정하는 것. 사실 무언가를 규정한다는 것은 따져보면 무엇을 부정한다고 하는 것과 짝 개념이 되는 것. 없음을 머릿속에 상정해야 있음을 설명할 수 있는 것, 없음과 있음은 서로 짝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짝개념이기때문에 어떤 것을 규정하려면 그것을 부정하는 뭔가를 전제하지 않으면 규정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동물이다'라고 말하면 식물은 안들어간다. 그러면 동물하고 식물은 섞이지 않는다. 그런데 동물이 동물로서 살아가려면 식물도 먹어야 한다. 즉 동물이 동물이려면 달리말해 동물이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려면, 또 하느님이 하느님이려면 다시말해서 하느님이 끊임없이 하느님을 드러내 보여야 생성Werden 을 해야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 동물 아닌 것에 의존도 해야 한다. 신도 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 하려면 유한자에 의지해야 한다. 무한자라고 해서 무한자 그 자체로 고립되어 있어서는 무한자의 자기정체성이 유지가 안된다. 즉, 불변의 존재와 생성이라고 하는 것이 서로 철저하게 구분되는 것 같은데 서로가 없으면 존립할 수 조차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해 있다, 


플라톤 <국가>는 2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 책이 나의 존재에게 파고 들어오면, 플라톤을 읽음으로해서 2500년의 입장에 올라서는 것. 미루어 체험하는 것, 추체험. 이런 방시으로 이 시간을 무한으로 더 늘려보면 있음과 없음이 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있음에서 없음으로 없음에서 있음으로 왔다갔다하는 운동만 있는 것. 그것을 헤겔은 생성Werden 이라고 불렀다.


헤겔 <논리학>의 첫번째 변증법이 있음과 없음의 변증법이고, 있음과 없음의 성과물로서의 생성으로 시작된다. <정신현상학>의 변증법은 시초부터 끝에 이르는 전 과정을 쭉 살펴보는 것. 논리학에서는 서로 모순되고 대립되어 보이는 것이 사실은 대립된 것이 아니라는, 사태롤 바라보는 그런 태도를 변증법이라고 한다. 무한자에 입장에 올라서려면 <정신현상학>에서처럼 소박한 의식에서 절대적 앎에 이르는 전과정을 상세히 서술해봐야 한다. 


이리하여 헤겔에 와서 다시금 누스nous 철학이 부활했다.

고대 철학을 마치소 중세철학을 마치고 누스nous 철학의 몰락을 얘기했다. 그런데 다시금 누스 철학이 부활하는 현상, 헤겔이 죽은 후 다시 없어서 버리는 소멸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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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 강의를 마치고 해야할 일

- 다섯 단락 글쓰기에 대해 하지 않고 남은 것이 있으면 완성해야 한다.

- 정암학당에서 나온 플라톤의 대화편를 손에 닿는 대로 읽어야 하며,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론> 읽을 것

- 이번 전체 강의의 녹음 파일을 여러번 들어야 한다.

- 칸트 <실천이성비판>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어보면 자신이 철학적 사색의 힘이 늘어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F. M. 콘퍼드 <쓰여지지 않은 철학>을 읽어보고 '조금은 알 것 같네' 라고 생각이 들면 철학적 사색의 힘이 늘어났다고 보면 될 것이다.

- <역사고전강의>를 다시 한번 읽어야 한다. 적어도 3번을 보아야 하는대, 역사책은 계속해서 복습해야 한다.

- (옵션)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서 PATIENTIA 아리아노스의 편지 부분을 중심으로 되풀이해서 읽을 것

- 브라이언 매기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를  이번 철학사 강의를 복습한다는 생각으로 읽을 것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를 정리해야 합니다. 공부 안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시 마십시요. 우리는 유한자입니다. 유한한 인생에서 의미있게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면 나와 같은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물론 회사 다니는 사람은 어쩔 수 없겠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인간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업무적으로만 관여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인간관계를 단순하게 만들어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삶이 정돈됩니다. 


그리고 마이클 루 <형이상학 강의>를 사놓고 여러차례 되풀이 해서 읽어야 합니다. 익숙해 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는 소피의 세계로 내려는 가면 안됩니다. 철학사가 우선 기본이고, 내가 이런 문제가 궁금해 그러면 철학사 속에서 이런 문제가 다뤄졌었나를 생각해 본 후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면 중요하지 않은 문제구나 라고 생각하고 지나갈 수 있다. 다뤄졌다고 하면 이 문제를 주로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철학자가 누구인가를 살펴보고 그 철학자가 그 문제를 다룬 방식들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철학 공부를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그 사람이 철학에 대해서 생각하는 'what is philosophy'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무한자의 입장에 올라서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한자의 입장에 올라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래된 책을 읽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에게 이쁨받는 학생되는 법

아주 간단합니다. 선생은 공부를 열심히하는 학생을 좋아합니다. 자신가 선생이야라고 의식하는 사람은 사실 선생이 아닙니다. 나는 내 힘 닿는데까지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그것이 내 삶의 중요한 내재한 중요한 목적이지, 공부하는 삶을 실현하는 것이 나의 인생의 목표이고, 신이 나에게 부여한 일종의 소명이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학생입니다. 훌륭한 학생의 모습을 계속해서 지니고 변함없이 가는 사람이 훌륭한 선생입니다. 


학생의 이념idea을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학생의 초월적 이데아를 그것을 현실성Wirklichkeit으로 실현된 목적Begriff’으로 만들어 내려는 사람이 바로 학생. 그것에 몰두하는 사람이 결국 선생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이쁨받는 방법은 딱 하나 공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학생의 이데아를 현실화 해야한다, 그것에 걸맞는 것을 수단으로 취해서 계속해야 한다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공감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면 저절로 이쁨받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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