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5 대포 범선 제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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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20분] 대포 범선 제국 – 1

Posted on 2016년 7월 18일

카를로 치폴라(지음),  <<대포, 범선, 제국>> , 미지북스, 2010. 

이탈리아 어 판, Vele e cannoni(범선과 대포)

영어판, Guns, Sails and Empires(대포 범선 그리고 제국)


차례

1장 유럽의 도약

1. 초창기의 거대한 대포

2. 대포 부족에 시달린 에스파냐

3. 영국의 혁신, 주철 대포의 등장

4. 영국산 대포, 유럽 시장을 평정하다

5. 에스파냐의 좌절

6. 네덜란드의 자립 노력, 대륙으로의 기술 확산

7. 스웨덴의 맹렬한 추격

8. 독일과 러시아의 진입

9. 영국의 연료 위기, 스웨덴산 대포를 부르다.

10. 해군과 대포를 향한 프랑스의 분투

11. 야포의 발전과 구스타브 아돌프

12. 범선 시대의 개막

13. 갤리언선의 탄생, 더 거대한 배에 더 많은 대포를!

14. 지중해식 해전 전통의 퇴장


2장 유럽 너머의 대포와 범선

1. 거대한 대포를 향한 투르크인들의 집착

2. 중세에 머물러 있는 이슬람 해군

3. 중국과 조우하다

4. 포탄에 실려 온 그리스도

5. 중국은 왜 우수한 대포를 만들지 못했는가

6. 정크선의 탄식

7. 아시아, 기술 혁신에서 길을 잃다


에필로그

1. 대포로 무장한 배와 상업적 모험의 결합

2. 해상의 승리, 지상의 패배

3. 대양에 군림한 유럽

4. 야포의 발전과 불균형의 심화

5. 포탄 너머로 가는 길


**

서문

1498년 바스쿠 다 가마의 캘리컷 도착

1947년 영국군의 인도철수, 1949년 중국에서 유럽 해군 철수

“아시아의 광대한 대륙을 해상력이 좌지우지했다는 것과 바다를 장악한 유럽 민족들의 지배”를 가능하게 했던 요인들에 대한 분석


프롤로그

14세기말 이후의 유럽 인들이 “어떻게 머나먼 향신료 제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모든 주요 해로를 장악하고 해외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가? 무엇이 유럽 인으로 하여금 불안한 수비적 위치에서 대담하고 공격적인 팽창 국면으로의 극적이고 갑작스러운 전환을 가능케 했는가?”


1장 유럽의 도약

대포

영국: 저발전 국가, 선진국에서 기술수입, 군비확장, 진취적이며 전권을 가진 리더, 노동력과 기술발전, 공정의 단순화, 비용절감, 기술효율성, 원자재 수급원활


참고,  <<축적의 시간>>

스웨덴에 부족했던 것들: 자본과 기업가 정신, 숙련 노동력, 제품의 국외마케팅을 지원하는 재정적·상업적 조직


프랑스의 경우: 내란과 정치적 혼란으로 숙련공 부족, 시대에 뒤진 귀족계급의 의식


범선

유럽의 범선 발전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

– 나침반 사용, 원양항해술 발전

– 역병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갤리선 노잡이 부족 ?> 인력을 기계적 동력으로 대체하는 기술발전

– 15세기 이후 교역의 확대


“대포와 돛으로 더 철저하게 전환한 나라들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인력의 시대가 끝나고 기계의 시대가 열리려는 참이었다.”



카를로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축적의 시간》


지난 시간까지는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초라 할 수 있는 지리에 대해 읽는 시간을 가졌다.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 지리 이야기》은 기초 중의 기초. 이 책 말고도 지리학에서 내놓은 성과들은 굉장히 많은데 당장에는 고급스러운 지리학 책까지 읽을 여력이 없어서 이번에는 다시 역사책으로 돌아왔다.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 지리 이야기》을 하면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또한 유럽 따로 아시아 따로 얘기할 것이 아니라 사실 붙어 있으니 유라시아 대륙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14-15세기 무렵에 유럽이 아시아 대륙을 해상을 통해서 침략하고 지배하는 시기가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유럽은 그렇게 되었는가. 그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카를로 M. 치폴라의 《대포 범선 제국》을 읽어보는게 좋겠다 생각해서 이번 주부터 읽으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보면 1장 유럽의 도약과 2장 유럽 너머의 대포와 범선, 그리고 에필로그 되어있다. 본문만 해서 15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이다. 얇다고 해서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두꺼워도 읽을게 없는 책이 있고 얇아도 탁월한 저작이 있다. 유럽이 어떻게 해서15세기가 지나면서 20세기 중반 이후로까지 아시아 대륙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다루고 있는데 원래 이탈리아어 판으로는 제목이 범선과 대포이다. 치폴라 교수가 쓴 영어판은 대포, 범선, 제국 이렇게 되어있다. 대포, 범선이라고 하는 것은 수단이 되겠다. 1400-1700년 유럽이 해양제국을 건설하고 아시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술적 요인이 대포와 범선이라는 것. 간단히 말하면 대포를 범선에 실고 해양항로를 건설한 결과 해양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 제목 자체가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런 책이 좋은 책이다. 제목과 내용이 합치하는 책. 서문에 보면 저자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1498년 바스쿠 다 가마의 캘리컷 도착부터 1947년 영국군의 인도철수 그리고 1949년 중국에서 유럽 해군의 철수까지 지난 450년은 근본적으로 매우 주목할 만한 일관성을 보여준다. 그 일관성이란 아시아의 광대한 대륙을 해상력이 좌지우지했다는 것과 바다를 장악한 유럽 민족들의 지배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이 바스쿠 다 가마의 시대를 가능하게 했는지를 탐색하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목적이다.


4 파니카 교수가 썼듯이 "1498년 바스쿠 다 가마의 캘리컷 도착부터 1947년 영국군의 인도철수 그리고 1949년 중국에서 유럽 해군의 철수까지 지난 450년은 근본적으로 매우 주목할 만한 일관성을 보여준다. 그 일관성이란 아시아의 광대한 대륙을 해상력이 좌지우지했다는 것과 바다를 장악한 유럽 민족들의 지배로 요약할 수 있다."


프롤로그에 보면 14세기까지만 해도 중세 유럽이 아시아를 지배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군사적으로는 굉장히 취약했다. 그 원인을 두 가지 정도 들고 있는데 하나는 인구가 많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유럽국가들의 군사조직이 비효율적이었다는 것. 널리 알려져 있듯이 유럽대륙을 침략했던 몽골기병은 아주 가볍게 무장한 기병이었다. 용맹하고 화려하긴 하지만 군사조직의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서양의 기마병들을 아주 무참하게 제압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 빨리 달리는 말과 쉽게 들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기동성을 가지고 유럽을 지배했었다. 그런데 이런 군사적 균형을 역전시킨 계기가 유럽이 15세기 이후로 개발해 낸 수단들에 있었다는 것. 프롤로그를 보면 "아무리 긴장이 고조된 상태라 할지라도 동기와 그러한 동기를 유효하고 성공적인 행위로 전환하는 수단은 별개다"라는 말이 있다. 또 "아무리 결연한 의지도 필수적 수단이 없다면 전투에서 승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말도 있다. 중세 유럽의 기사 조직이 굉장히 그 자체로는 멋있고 화려했다 할지라도 사실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은 아니었다. 사회 체계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이었지 전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 다시 말해서 어떤 조직이라 하더라도 본래 그 조직이 가지고 있던 목적에서 벗어나 버리게 되면 그 조직이 필요로 하는 본래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하는데 소홀하게 마련이다 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관료조직의 경직성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그런 것들이 왜 생겨나는가. 관료조직의 목적은 대국민 행정서비스에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참사나 대형재난 이런 것들을 보면 대국민 행정서비스나 복지 그리고 안전에 그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상부에 보고를 잘하는 조직이 목적으로 전도된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그 조직은 중세 유럽의 기사조직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단순히 15세기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 까지 유럽이 어떻게 아시아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래의 목적에 걸맞은 수단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잇게 된다. 14세기 말 유럽인들은 그런 수단에 집중했던 것. 


16 아무리 긴장이 고조된 상태라 할지라도 동기와 그러한 동기를 유효하고 성공적인 행위로 전환하는 수단은 별개다.


17 아무리 결연한 의지도 필수적 수단이 없다면 전투에서 승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어떻게 해서 향신료 제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는가 그리고 어떤 수단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대담하고 공격적인 팽창국면으로 전환하게 되었는가, 이런 두 개의 물음을 다시 묶으면 왜 '바스쿠 다 가마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수단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는 것이 치폴라 교수의 저작이다.


17 13,14세기의 유럽이 실패한 지점에서 르네상스 유럽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14세기 말 이후 유럽인들은 어떻게 머나먼 향신료 제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모든 주요 해로를 장악하고 해외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는가? 무엇이 유럽 인으로 하여금 불안한 수비적 위치에서 대담하고 공격적인 팽창 국면으로의 극적이고 갑작스러운 전환을 가능케 했는가? 왜 "바스쿠 다 가마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는가?


오늘은 첫 챕터인 유럽의 도약을 정리해서 읽겠다. 대포와 범선이 유럽에서 개발된 과정. 이 과정을 보면 오늘날에도 우리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 이 과정이 17세기 이후에 지금까지 이루어지는 추세를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 무슨 말인가 하면 최근에 서울대학 공과교수들이 쓴 《축적의 시간》을 읽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한국사회에서 경제, 기술 이런 것들은 아직 충분한 축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기술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다는 것. 거기에 덧붙여서 중요한 것은 경영 기술이 있어야 한다. 기술이 있다해도 배치하고 조직하는 경영능력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 어쨌든 그 책을 읽으면서 아직 한국은 기술 축적에 대한 감각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최근에 브렉시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해 영국이 그렇게 된 데에는 이른바 2차 산업의 멸망이 있었다. 그런데 같은 유럽 나라라 해도 독일은 2차산업이 탄탄하다. 국가가 어떻게 해서 산업 아젠다를 세우고 거기에다가 축적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유지하고 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적 복지국가를 어떻게 건설하느냐 이런 것들도 중요한 정책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브렉시트가 보여줬다. 그런데 유럽에서 17세기이후 산업기술이 발전해온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대포와 범선이 출현하고 이것으로서 해양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집약적으로 잘 알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우선 대포부터 보자. 대포는 성을 공격하는 공성용 대포하고 가지고 다니면서 야전에서 사용하는 야포가 있다. 처음 등장한 것은 공성용 대포. 중세의 가장 큰 방어물이었던 성이 무너졌다. 그래서 이제 르네상스 이후 성이 무너졌다는 것이 기술적 측면에서 또는 군사의 역사, 전쟁의 역사의 측면에서는 근대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포라고 하는 것이 공성용 대포 이후로 야전용 대포 개발이 이행되는데 대포에 수반되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무엇보다도 대포를 만드는 원자재, 철과 청동, 그리고 원료 생산지가 있어야 할 테고 그것에 종사할 수 있는 숙련된 노동력이 있어야 하고, 또 숙련된 노동력이라고 하는 것은 동시에 기술이 있어야 하고, 더불어 비용도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갖춰졌다 하더라도 그 것이 쓸모가 없으면 소용이 없을 테니 전쟁이라는 직접적인 필요가 거기에 덧붙여져야 한다. 


처음부터 유럽에서 대포가 철제대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원자재만 놓고 보면 철이 청동보다 값이 쌌다. 게다가 철은 만족스런 주철 공정을 개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에는 철로 대포를 만들지 청동으로 만드는 일은 없다. 얼마나 값싸고 강력한 철제 대포를 만드느냐 거기까지 가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기술개발이라고 하는 것은 기술이 축적되어서 개발되어야 하는데 에스파냐는 숙련공이 부족해서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에스파냐는 궁극적으로 제국주의 시대의 군사력에서 뒤쳐지게 되었다. 왜 숙련공이 부족했는가. 자국에서 숙련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감각이 없었던 것. 정책적으로 이것을 계속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필요하면 대포를 사다 쓰면 되지 않나 생각했던 것이고, 그에 비해 영국은 대영제국이라 해서 제국시대의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는데 과정을 보면 저발전 국가였던 영국은 처음에는 선진국에서 기술을 수입하고 그러면서 군비확장해나가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때 진취적이며 전권을 가진 리더가 있었고 선진국에서 수입한 기술을 숙련공들을 계속해서 보유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 공정의 단순화, 비용절감을 하면서 기술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원자재 수급이 원활해 지면서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게 된다. 그때 마침 영국이 해외 침략을 하면서 수요가 급격하게 되었다. 


에스퍄냐는 어디에서 실패했고, 영국은 어느 지점에서 성공했는가를를 살펴봤다. 수발주자였던 스웨덴은 자본과 기업가 정신, 숙련 노동력, 제품의 국외마케팅을 지원하는 재정적·상업적 조직이 다 없었다. 이것은 굳이 15세기 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요구되는 기술발전에 따른 산업화에서 요구되는 것들. 스웨덴은 그런 것들이 부족했는데 그것을 채우면서 30년 전쟁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경우가 굉장히 재미있는데 일단 내란이 잤았고 정치적 혼란이 많았다. 게다가 종교적인 이유로 숙련공들의 많은 수가 해외로 이주하게 된다. 이것을 보면 안정된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프랑스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대에 뒤진 귀족계급의 의식이 있었다. 지금 시대는 대포의 시대인데 검을 가지고 폼을 잡고 그랬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을 보면 1789년의 프랑스와 1789년의 영국를 보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례는 나중에 동양에서도 그대로 발견되는 데 제2장을 보다보면 2장 5절의 중국은 왜 우수한 대포를 만들지 못했는가라는 섹션이 있다. 이것을 보면 치폴라 교수는 기술혁신에 있어서는 문화적인 측면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17세기 유럽의 이런 대포 생산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이것이 해양제국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 그것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겠다.


그런 담음 대포를 만들었으니 범선에 실어야 하겠다. 범선이란 무언인가. 갤리선은 지중해에서 많이 사용하던 것. 삼각 돛대를 달고 노잡이 있으며 선체가 길고 직선형이다. 지중해에서는 바람이 불규칙했으므로 돛을 달고 항해를 하다가 여차하면 노를 동시에 사용하는 갤리선이 유리했다. 대신에 이 배는 먼바다 원양에 나가면 강한 파도에 쉽게 뒤집어 진다. 또 전투를 할 때는 적선을 충각에 의해서 배를 들이받는 전투를 하는데 그러려면 돛을 내리고 노를 순식간에 저어서 들이받는 방식으로 해야 했다. 그래서 원양 항해는 적당하지 않았던 것. 유럽의 무역들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때는 갤리선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대서양이나 인도양으로 나아갈 때는 바다가 넓으니까 삼각 돛이 아닌 돛을 여러 개 달아 불규칙한 바람에 대응하기도 하고 노를 젓는 사람이 없으니 그 자리에 대포를 적재할 수 있었던 것.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있느냐는 말할 수 없고 어떤 바다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유럽에서는 원양항해를 하기 위해서 범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유럽의 범선 발전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보면 나침반 사용해서 원양항해술이 발전했고 무엇보다도 역병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했다는 것. 갤리선 노잡이가 부족했고 그러니 사람이 해야할 일을 기계적 동력으로 대체해야 했다. 그게 바로 기술발전의 결정적인 동기가 된다. 간단히 말하면 사람값이 비싸면 기술이 발전하게 된다는 것. 한국에서는 사람 값이 비싸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해서 싼 곳으로 간다. 지구상에서 싼 곳이 영원히 있을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이 하나의 바탕에 놓여있는 요소라면 그 자체적인 측면을 본다면 사각 돛이 도입되고 돛대가 늘어나고, 그리고 무역선의 적재용량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원양으로 나아갈 때 한꺼번에 많은 양의 화물을 실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먼바다에 싸움을 났을 때 배가 커졌으니 대포를 실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1장 마지막에 "대포와 돛으로 더 철저하게 전환한 나라들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인력의 시대가 끝나고 기계의 시대가 열리려는 참이었다"는 말로 끝내게 된다. 기계의 시대 인간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기계 즉 비인간 행위자가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 그래서 17세기 이후 지금까지는 기계와의 시대이고 이는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인간이 점차로 비인간행위자로 대체되고 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필요가 없게 되는 것. 사람은 기계화될 수 없는 일만을 사람이 해야 하는데 과연 그런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103 유럽에서 대포와 돛으로 더 철저하게 전환한 나라들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인력의 시대가 끝나고 기계의 시대가 열리려는 참이었다.


다음주에는 제2장 전반부를 자세하게 읽겠다. 





[책읽기 20분] 대포 범선 제국 – 2

Posted on 2016년 7월 25일

카를로 치폴라(지음),  <<대포, 범선, 제국>> , 미지북스, 2010.

2장 유럽 너머의 대포와 범선

1. 거대한 대포를 향한 투르크인들의 집착

2. 중세에 머물러 있는 이슬람 해군

3. 중국과 조우하다

4. 포탄에 실려 온 그리스도


16세기 이전 무슬림 군대와 유럽의 대결에서 무슬림 군대는 압도적 기동성을 우위로 하였고 유럽은 보루를 가졌다. 무슬림을 성벽을 부수는 대포를 채택했으나 이것을 야전 무기로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무슬림 세계에서는 기마술이 “맘루크 지배 계급의 생활 양식 전반을 좌우하는 중심축”이었다.

인도양 패권을 둘러싼 무슬림 해군과 유럽 해군의 싸움에서 “이슬람의 패배는 해전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과 전략에서 주로 기인한다.”


중국은 화약과 대포를 유럽보다 먼저 사용하였으나 기술을 대하는 태도에서 유럽과 다른 점이 있었다.


참조: 로버트 마르크스,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 

“아시아의 상승과 이후의 쇠퇴, 그리고 서구의 부상은 우연히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과 환경적 우연, 또한 각 지역의 상황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세계적으로 하나의 역사적 사태를 이루게 된 것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로버트 마르크스,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



지난 시간까지는 프롤로그와 제1장을 이야기 했다. 특히 대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역사의 발전을 말할 때 기술이라고 하는 것이 인류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영상을 보면 동물도 도구를 사용하기는 하는데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쓰면서 지구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 인류가 하나의 종이지만 지구상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도구이고, 도구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계기들을 찾아보는 것이겠다.


2장은 유럽 너머의 대포와 범선이다.  다시 말해 유럽이 범선에 대포를 실고 인도양과 대서양 항해를 나서는데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제일 먼저 인도양에서 만난 무슬림 군대 그리고 인도 중국과는 어떤식으로 부딪히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게 된다.


다니엘 헤드릭 사람이 있는데 A World History 시리즈로 나온 책으로 《테크놀로지》라는 책이 있다. 2009년에 나온 책. 최근에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을 보면 6장이 An Age of Global Interactions (1300-1800)로 되어있다. 원서로 20페이지 정도 되는데 카를로 치폴라와 겹친다. 치폴라의 책은 150페이지 정도되니까 이 책으로 출발해서 연결되는 것을 이어가면 지식의 폭도 넓어지고 통찰력도 자연스럽게 생기지는 않지만 생길 것을 예상할 수 있으리라 본다. 다니엘 헤드릭은 지구적 상호작용의 시대다라고 썼는데 한쪽에서는 일방적인 침략이다 할 수 있지만 다니엘은 상호작용이다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 시대가 되기 전에 그러니까 16세기를 중간 축으로 하여 16세기 이전 무슬림군대와 유럽이 대결하면 무슬림 군대가 압도적으로 이겼다. 전쟁의 규칙이 말을 이용한 기동성. 유럽의 군대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가볍게 무장한 경기병대의 우수한 전략이 있었다. 그리고 이 투르크 군을 막기 위해 유럽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방어물은 보루뿐이었다. 투르크군은 성벽을 공격해서 무너뜨릴 수 있는 대포를 찾아냈다. 그런데 이 대포는 야전 무기로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그 까닭을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중국에서도 대포가 발전하지 못했던 까닭과 비교할 수 있다. 왜 무슬림 군대는 대포를 공성용 대포만을 사용했는가. 이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 당시 맘무크 지배계급의 생활양식의 전반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기마병이었다. 기마술이라 하는 것은 단순한 전쟁의 기술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귀족의 생활양식이었으므로 쉽게 폐기할 수 없었다.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문서를 작성할 때도 문서를 단순히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문서도 txt파일로 만들어서 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가령 공무원 사회를 생각할 때 문서의 자간이나 모양, 빠른 시간 안에 보고해야 하는데 문서작성이라고 하는 것이 그저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슬림 사회에서는 기마술이 단순히 전투기술이 아니었고 그러니까 성벽을 부술 수 있는 커다란 대포만 있으면 끝났다는 것. 그런 까닭에 필요한 장인 기술자들을 양성하지도 않았고 또 전술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말을 이용한 기동전에서의 우위가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 것. 이게 도구의 문제인데 그 도구가 영원할 거라 생각하는 태도. 


범선은 하나의 중요한 사례가 있다. 1571년 10월 7일 갤리선 208척으로 구성된 기독교 세계 함대와 230척으로 구성된 투르크 함대가 레판토 해전을 벌였는데 에스파냐가 중심이 된 신성동맹 연합함대가 희랍의 파트라스만 나부퐉토스 앞바다에서 오스만 함대를 격파한 해전이다. 이 해전에서 유명한 돈키호테의 작사 세르반테스가 팔을 잃었다. 어쨌든 갤리선에서 구성된 전투에서 오스만함대를 이겼다. 기독교세계가 이겼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갤리선끼리 붙었다는 것이 중요. 장소가 지중해. 지중해에서는 갤리선이 범선보다 선체가 길고 직선형이어서 항해에 유리하다. 바람이 불규칙하니 돛과 노를 동시에 사용. 바람이 불면 돛을 사용하고, 바람이 없거나 전투를 할 때는 노를 사용한다. 이런 배를 군함으로 사용하면 적선을 빠른 속도로 들이받는다. 그런데 이 배는 선체가 길고 직선형이니 큰 바다에 나가면 꼼짝을 못하는 것. 오히려 대서양 같은 곳은 커다란 범선이 유리하고 노 젓는 사람이 없으니 그 대신에 대포를 실어서 저 멀리 떨어져있는 배에 대포를 쏜다. 갤리선은 대포를 적제할 수 없다. 레판토 해전에서 기독교 세력이 이겼다고 하지만 오히려 이 해전은 뒤떨어진 시대의 마지막 해전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은 그 이후에도 여전히 갤리선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홍해를 지나 인도양 앞바다에서 인도양 패권을 둘러싸고 무슬림해군과 유럽해군이 싸움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이슬람이 패배하게 된다. 갤리선과 갤리선이 싸움이 아니라 갤리선과 범선의 싸움. 따라서 이슬람의 패배는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과 전략에서 주로 기인한다. 물론 좁은 바다 지중해에서는 갤리선이 유리하겠지만 큰 바다인 인도양 더 나아가 대서양에서는 범선이 유리하게 된다. 물론 내륙에서의 싸움은 여전히 무슬림 세력이나 중국세력이 더 유리하다. 적어도 현재 바다에서는 그리고 바닷가와 붙어있는 연안 몇몇 지역에서는 유럽이 우세한 국면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염두해 둘 필요가 있겠다. 무슬림을 부수고 인도에 도착하고 더 나아가 중국으로 갔던 유럽인들이 중국 사람을 본다.


118 1571년 10월 7일, 대형 갈레아스선 여섯 척을 포함한 갤리선 208척으로 구성된 기독교 세계의 함대와 갤리선 230척으로 구성된 투르크 측 함대가 레판토 앞바다에서 맞붙었다. 3시간 동안의 격전 끝에 투르크 전함 30척이 침몰했고, 130척이 포획됐으며, 40척만 가까스로 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119 레판토 해전이 "크나큰 결과"를 낳지 않은 까닭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크나큰 승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레판토 해전은 시대에 뒤쳐진 전투였다. 전투는 새로운 유형의 선박과 무기가 해전의 새 장을 열고 해상 전략의 길을 가리키던 시기에 갤리선을 가지고 주로 충각으로 들이받거나 적선에 올라타 싸우는 옛날 방식으로 싸운 마지막 전투이다. 레판토의 승자는 패자만큼이나 구시대적이었다. 양측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관습과 기술에 사로잡혀 있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레판토 해전에서 승자는 없었다.


120 반대로, 레판토 해전보다 화려하지 않고 또 널리 회자되지도 않지만 16세기 전반기에 포르투갈이 인도양에서 무슬림을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둔 것이 역사적으로 더 큰 중요성을 띤다.


121 이슬람의 패배는 해전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과 전략에서 주로 기인한다. 자신들의 전통적인 적인 베네치아와 몰타기사단 세력과 마찬가지로 오스만 투르크는 대서양 세력이 거둔 해상 혁명의 함의와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근대가 이미 시작되었을 때도 여전히 "중세에" 머물러 있었다. 


122 포르투갈 인들도 갤리선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포르투갈 함대의 중추는 대포를 실은 거대한 원양 범선이었다.


그런데 인도와 중국은 화약과 대포를 유럽보다 먼저 사용한 곳 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전쟁이 별로 없었으니 화약과 대포를 필요한 만큼만 썼다. 여기서도 핵심은 기술을 받아들이는 태도이고 그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중국은 중체서용中體西用 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중국의 가르침은 그대로 유지한 채 서양의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서 착각하게 되는 게 뭐냐 하면 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최전방에 나와있는 것이고 바로 그 뒤에서는 과학이라는 것이 있고, 그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발전하는 데에는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태도의 변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추상적 원리의 차이가 있다는 말. 그래서 과학은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런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양식 전반을 규정하는 것들. 그렇지 않다면 기술만 발전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과학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만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 1800년 이후 아시아는 세계의 패권을 유럽에 내주게 되었고 이게 서구의 부상이라고 하는 주제로 많이 다뤄지고 있는데 이게 무엇 때문인가에 대한 논의는 아주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에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로버트 마르크스의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에서는 "아시아의 상승과 이후의 쇠퇴, 그리고 서구의 부상은 우연히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과 환경적 우연, 또한 각 지역의 상황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세계적으로 하나의 역사적 사태를 이루게 된 것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연한 사태에 불과하다는 것. 어떤 역사가들은 유럽이 이렇게 된 것은 유럽의 운명과 같이 필연적이다라고 하고 있다. 어느 쪽에서 이야기 하던 간에 적어도 1800년 이후에는 그 이전 세계 경제 패권을 쥐던 아시아가 바뀌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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