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6 땅과 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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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20분] 땅과 바다 – 1

Posted on 2016년 8월 8일

칼 슈미트(지음),  <<땅과 바다>> , 미지북스, 2010.

원제: Carl Schmitt, Land und Meer: Eine weltgeschichtliche Betrachtung(1942)


역사책에 근거한 철학적 구상의 접점, 역사철학 입문서


칼 슈미트(1888-1985)

가톨릭 신학생 출신, 정치학과 법학, 히틀러 치하에서 베를린 대학 교수, 1936년 나치에서 숙청(‘가톨릭에 기반한 헤겔주의적 국가사상가’라는 비판을 받음), 미군에게 체포되어 수용소 생활, 석방 후 ‘탈-나치화’ 거부


전체 개요

– 인류사를 파악하는 관점(Perspektive)으로서의 땅과 바다의 대립구도

– 핵심 테제: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


구성

[1] 도입부: 1-2

[2] 핵심테제, 기본원리: 3

[3] 땅의 힘과 바다의 힘의 투쟁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 4-9(9에서는 영국에 의해 성취된 공간혁명)

[4] 공간혁명의 문화적·법적 의미: 10-19

[5] 에필로그: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하늘, 향후 전망: 20


§1: 신화에서 찾아본 대지와 해양의 대립구도

– 인간은 땅의 존재이다.

– 지수화풍地水火風(Four Elements): 인간의 생활공간과 에너지


§2: 역사적 결단, 선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인간의 행위와 결단으로서의 인간의 역사”, “인간은 전적으로 환경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 -> 인간은 “권력과 역사적 힘Geschichtsmachtigkeit의 작동공간Spielraum”을 창출해낸다.




칼 슈미트, 《땅과 바다》



이번 주부터는 칼 슈미트의 《땅과 바다》를 읽는다. 부제가 세계사적 고찰이다. 칼 슈미트는 독일사람인데 독일에서 나온 사상에 관한 책들을 읽을 때 '세계사적 고찰' 이런 말들이 있으면 역사책으로 보면 안된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일단 땅과 바다라고 하는 두 개의 요소를 세계사적으로 파악하는 것. 땅과 바다를 기본적인 원리로 놓고 그것에 따라서 세계사를 파악해 나가는 책이다. 세계사가 땅과 바다만 있는 것은 아닌데 관점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인류사를 파악하는 과점을 땅과 바다의 대립구도로 놓고 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역사철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역사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이야기하지는 않고 넘어가겠다. 우선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대포, 범선, 제국》에서는 16세기 유럽 여러 나라들이 대포를 범선에 실어서 해양제국을 건설한 것에 관한 책인데 이 칼 슈미트의 책은 그 시기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를 한다. 절반 정도가 그 부분에 대한 얘기. 다시 말해서 칼 슈미트는 16세기에서 20세기 이르는 세계사를 읽고 하나의 원리를 도출해내고 그 원인을 땅과 바다로 도출해 낸 다음에 그것을 다시 인류사 전체에 투영시켜서 인류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역사철학 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치폴라의 책은 경제사 책이라고 한다면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이 책은 땅과 바다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인 사실이 담겨 있는데 역사책과 철학적 구상이 어떻게 만나는가, 즉 접점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역사철학 입문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철학과에서 다루는 월쉬의 《역사철학》을 보면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즉 역사책과 역사철학이 만나는 지점은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역사철학 입문서이자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입문서로 좋다. 정리하자면 두 가지 측면을 얘기한다. 역사책과 철학적 구상이 만나는 지점인 그 접점을 보여준다. 둘째로는 그런 점에서 역사철학 입문서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다. 이 책은 130페이지 정도 되어 얇은데 사실 이런 대가들의 책들은 간단히 읽어서는 안되고 촘촘하게 읽어야 하겠다 싶어서 여러 번 많이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저자인 칼 슈미트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다. 단순히 나치 법학자라고 하면 다 말하지 않은 셈. 1936년에 SS친위대가 발표한 암약하는 반체제조직에서 슈미트가 비판을 받고 짤린다. 즉 주요한 공직에서 물러난다. 그 상태로 그대로 갔으면 괜찮은데 미국에 체포되어 수용소 생활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탈-나치화'를 거부했다고 나와있는데 과연 이게 나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겠다고 한 것인지 이게 좀 의문의 여지가 있다. 나치에 충성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거라고 지극히 소극적으로 생각해 보고 있다. 

슈미트 생애에서 짚어봐야 되는 지점으로는 첫째가 가톨릭 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가톨릭문법학교에서 배운 다음에 7년동안 가톨릭 신학생 기숙사에서 생활했다는 것. 그렇다면 칼 슈미트는 가톨릭주의에 대한 통찰을 제대로 가진 사람. 가톨릭 신자로서 훌륭하다기 보다는 가톨릭의 정치적인 측면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아주 뚜렷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칼 슈미트의 사상을 읽어나가고자 할 때는 사상의 형성과정인데 서구에서의 가톨릭주의라고 하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주의가 무엇인지는 20분 만에 얘기할 수는 없고 중요한 지점이 있다는 것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그런 다음에 약력을 더 읽으면 모든 사건들이 동일한 값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런 다음에 히틀러 치하에서 베를린 교수가 되었다는 것이 인생의 전반부인데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이 가톨릭주의에 대한 통찰이 있다는 점이라 본다. 그런 다음에 1936년에 나치에 의해 숙청되고 공직에서 물러난다. 그런데, SS친위대가 암약하는 반체제 조직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평가했는가. '가톨릭에 기반한 헤겔주의적 국가사상가'라고 규정했다. 마치 한국의 국정원이 한 것처럼 생각하면 안되고 굉장히 적확하게 칼 슈미트를 규정한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헤겔주의적 국가사상가라고 하면 독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간단하지 않다. '가톨릭에 기반한 헤겔주의적 국가사상가'라는 말만큼 칼 슈미트에 대해서 잘 규정한 것은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칼 슈미트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칼 슈미트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여기에는 이념도 종교도 일체 없는 지금 상황에서 누가 나의 적이고 동지인지 구분하는 힘 또는 구분하는 범주 이런 것들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고 말한다. 어떻게 해서 이 개념을 칼 슈미트가 갖게 되었는지를 사실 추적해내는 게 만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 중간쯤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30년 전쟁에서의 독일의 특수한 상황을 거론하면서 처음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전쟁으로 시작되었다가 차츰 그런 대립은 사라지고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서 칼뱅파와 루터파의 대립도 심해지고 그런 과정을 설명한 다음에 칼 슈미트가 말을 한다. 그때부터는 동지와 적의 구분이 세계 정치의 축 역할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고 하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 형성사의 대한 실마리를 여기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본다. 다시 말해서 유럽의 30년 전쟁이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고 하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정도로 개요를 해놓고 책에 대한 얘기를 하겠다.

이 책은 인류사를 파악하는 관점으로서의 땅과 바다의 대립구도를 둔 역사철학 책이다. 굉장히 추상적인 것. 이 구도는 세계사 전체에 해당한다기 보다는 16세기부터 20세기 세계사로부터 이끌어 낸 것이다. 따라서 세번째 섹션의 첫 문장은 과도한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그 첫 문장은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라고 되어있다. 세계사가 아닌 16세기 이후의 역사를 바라볼 때는 어느정도 맞겠는데 그 이전에는 바다가 지중해 시대를 제외하고는 역사의 무대가 아니었다. 가령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했던 몽골제국은 대양의 힘과 전혀 맞서싸운 경험이 없다. 과도한 일반화이고 역사철학적 통찰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이것을 일단 핵심테제라 볼 수 있다. 

이 책은 다해서 20개의 섹션을 나누어져 있고 소제목은 없다. 이 책을 즐겁게 읽는 방법은 각각의 소제목을 달아보는 것도, 하나의 섹션을 읽은 다음에 핵심내용을 번호 옆에 적어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에 해당할 것 같다. 일반 크게 4개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도입부: 1-2
[2] 핵심테제, 기본원리: 3
[3] 땅의 힘과 바다의 힘의 투쟁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 4-9(9에서는 영국에 의해 성취된 공간혁명)
[4] 공간혁명의 문화적·법적 의미: 10-19
[5] 에필로그: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하늘, 향후 전망: 20

첫번째 부분은 사실 프롤로그로 본다면 본 덩어리는 세 개이고 20번째 섹션은 향후 전망을 다루고 있는 에필로그. 딱 5개의 덩어리로 나누어진다. 그러면 오늘은 도입부에 해당하는 1, 2섹션을 읽겠다. 첫째 섹션은 '신화에서 찾아본 대지와 해양의 대립구도'라고 집약적으로 말할 수 있다. 칼 슈미트는 "인간은 무엇보다도 땅의 존재이다"라고 시작한다. 땅 위에서 번성해온 존재 인간. 먼 옛날 고대 서양에서도 지수화풍地水火風(Four Elements)을 말하는데 땅과 바다가 있고 풍은 하늘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은 땅과 바다와 하늘. 칼 슈미트의 역사철학적 구도에 따르면 땅의 존재인 인간이 본격적으로 바다를 하나의 근거지로 삼기 시작한게 16세기 이후이고, 그게 바로 영국에서 성취된 공간혁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늘이 새로운 공간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러니까 점차로 인간이 땅에서 바다로 해서 하늘로 나아가는 공간혁명을 일으켜왔다는 것. 

7 인간은 땅의 존재, 땅을 밝고 있는 존재다. 인간은 견고하게 정초된 대지 위에 서서 걸어가고 움직이지. 그 대지가 그가 서 있는 곳이자 그의 토대이다. 
 
예를 들어서 해남 땅끝 마을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은 여기서부터 육지가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똑같은 위치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공간개념이 다르겠다. 그럼 화火는 무엇인가. 바로 에너지를 가리킨다. 땅에서건 바다에서건 하늘에서건 에너지가 있어야 움직이니까 사실은 지수화풍 네가지 원소는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과 그 에너지를 말한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이 네가지를 거론한 다음에 인간은 땅의 존재이나 바다에 나가면 바다의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랜 옛날부터 땅의 인간들과 바다의 인간들이 서로 대립해왔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땅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바다의 존재 하늘의 존재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특징. 

8 대지(흙), 물, 불, 공기라는 전승된 4원소론에서 대지(흙)가 인간에 상응하고 인간을 가장 크게 규정하는 원소인 것도 이 때문이야.

9 해변에 가서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압도적인 넓이의 바다가 너의 시선의 지평을 둘러싸고 있는 걸 보게 될 거야. 해변가에 서 있는 인간이, 당연한 말이지만, 땅에서부터 바다를 바라보지, 바다에서 땅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지 않니?

두번째 섹션에서는 "역사적 결단, 선택하는 존재"를 말한다. 4개의 엘리먼트라고 했는데 이 단어는 요소라고 뜻도 있지만 영역·권역의 뜻도 있다. 인간은 땅의 존재이다를 다르게 말하면 땅이라는 원소에 얽매여 있는 존재다라는 뜻과 동시에 땅이라는 영역에 얽매여 있는 존재다라고 말할 수 도 있다. 인간은 육상동물이지만 바다로 나아가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자연적인 요소를 이겨내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환경으로 환원되지 않은 존재다. 여기서 칼 슈미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행위와 그 행위와 결단으로서의 인간의 역사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전적으로 환경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이고 결단 행위함으로써 인간은 권력과 역사적 힘Geschichtsmachtigkeit의 작동공간Spielraum을 창출해낸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이 바다로 간 것은 하나의 생물학적인 변형이 일어나서 유전적인 변형이 일어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서 결단한 행위가 만들어낸 것이고, 거기서 하나의 작동공간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어떤 작동공간을 창출해내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행위에 달려 있는 셈이 된다.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무형의 네트워크에 의해서 연결된다고 했는데 이 연결 공간을 사이버 스페이스라고 부른다. 그것도 하나의 창출된 공간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어떤 공간을 만들어낼 것인가. 그것은 참 앞으로도 많은 기대가 되는 부분일 수 있다.

14 인간이 전적으로 그가 사는 환경에 의해 남김없이 규정되는 생명체라면, 인간은 육지동물이거나 물고기, 새, 아니면 이 원소적 규정들의 상상적 혼합물에 불과하겠지. 그렇게 되면 4원소들의 순수한 유형들, 특히 순수한 대지인간과 순수한 바다인간들은 서로 연관 없이 아무 관계도 맺지 않은 채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그들이 순수할수록 이 무관계성은 더 강해지게될 거야. 

15 인간은 전적으로 환경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란다. 인간은 존재와 의식을 역사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15 인간에게는 권력과 역사적 힘Geschichtsmachtigkeit의 작동공간Spielraum이 존재하기 때문이야. 인간은 선택할 수 있고, 어떤 역사적 순간에는 심지어 원소를 선택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의 행위와 능력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역사적 실존의 전체형태로서의 그 원소를 향해 결단하고 그 원소로 조직하기도하지.



[책읽기 20분] 땅과 바다 – 2

Posted on 2016년 8월 22일

칼 슈미트(지음),  <<땅과 바다>> , 꾸리에, 2016.

원제: Carl Schmitt, Land und Meer: Eine weltgeschichtliche Betrachtung(1942)


‘땅과 바다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본 세계사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

레판토 해전: “배 위에서 이루어지는 육지전” 방식의 최후의 해전


아르마다 해전에서는 영국의 범선이 스페인의 국가함대를 물리침으로써 “해양 전쟁 전술의 전환점”을 이루었다.

16세기에는 “포를 장착한 범선이 측면에 화포를 설치해 적을 향해 측면에서 포탄을 퍼붓는” 전술을 보였다. 이는 “제대로 된 해전”

참고: “14, 15세기 대서양 유럽이 개발한 대포로 무장한 배”(<<대포 범선 제국>>, p. 165)




허먼 멜빌, 《모비딕》

쥘 미슐레, 《바다》

찰스 킨들버거,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오늘은 3장부터 6장까지 읽는다. 정확하게는 3장부터 9장까지가 한 덩어리인데 그것을 다시 둘로 나눠서 읽는다.

3장을 보면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가 나온다. 사실 칼 슈미트가 이런 명제를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은 세계사가 아닌 16세기 이후의 역사를 보고 만들어낸 테제이다. 


17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란다.


16세기 이전에는 바다가 역사가 무대가 아니었다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러한 의식 자체가 없었다. 물론 지중해 시대가 있었으니까 지중해가 중요한 역사의 무대이기는 했지만 그렇다 해도 사람들은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이런 것을 의식한 것은 아니다. 16세기 이전 '유럽'의 역사는 지중해 중심의 역사다. 하지만 지중해를 잠깐 벗어나서 중동 지방만 봐도 물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따라서 '세계사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다. 역사적인 사실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칼 슈미트가 과도한 일반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꼭 유념해서 봐야할 필요가 있다. 3장에서는 리바이어던과 베헤모스의 투쟁이라고 하는 구약성서 욥기에 등장하는 상징까지 끄집어서 얘기하니 현혹되기 쉽다. 이런 건 대단한 설명이 아니다. 조심해야 한다. 역사철학의 과도한 일반화가 들어가서 사람을 혹하게 하는데가 있다. 


17 중세 시절 카발리스트들의 해석에 따르면, 세계사는 리바이어던이라 불리는 힘센 고래와 그만큼이나 강한 땅의 동물로 코끼리 아니면 황소로 상상되던 베헤모스 사이의 투쟁이라는 구나.


이제 지중해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보면 크로노스 섬이 있었고, 아테나이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쳤다. 그것만 부각시키니 대단한 것 같은데 사실 그 이후 펠로폰네소스전쟁을 보면 스파르타가 아테나이를 물리친 것도 사실이고, 또 페르시아가 여전히 그때까지도 힘을 유지하고 있어서 결국에는 지중해 세계의 패권은 페르시아가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20 아테네가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에서 그들의 적 "전능한 페르시아인"을 나무 장벽 뒤에서, 다시 말해 배 위에서 막아내었지. 아테네의 생존은 해전의 결과에 빚진 거야. 한편 펠로폰네소스전쟁을 통해 그리스인들의 권력은 땅의 권력 스파르타에게 굴복하지만,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도시와 부족들을 통합해 그리스 제국을 이끌 능력이 없었어.


역사철학자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역사철학적인 관점을 옳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취사선택해서 꿰어 맞추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그 다음에 "이탈리아의 농부공화국 태생으로 순수한 땅의 권력이던 로마는, 무역과 대양 권력이던 카르타고에 대한 투쟁을 거치며 제국"되었다고 말한다. "무역과 대양 권력이던 카르타고", 대양은 대서양, 인도양 이렇게 쓰는 것이고, 지중해는 대양이라고 하지 않으니 해양 권력이라고 하면 더 좋았을 것이다.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전쟁 이전과 이후 역사로 나눌 수 있을만큼 굉장히 중요한 사실. 그리고 그것을 이제 땅과 바다의 투쟁이다라고 하면 정형화하는 것. 이것은 역사철학적인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네치아에 대해서는 4장에서 자세히 나오는데 갤리선 만을 보유한 지중해 권력, 그러니까 범선을 이용한 대양 항해를 시도하지 않았던 지중해 제국이었다.  


29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다른 나라들처럼 갤리라 불리는 노 젓는 배만 보유하고 있었어. 거대한 장거리 범선은 나중에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전해진 거야. 그러니까 베네치아 함대는 기본적으로 노의 힘으로 움직이는 갤리함대였던 거지.


이렇게 칼 슈미트의 말처럼 "한 민족이 역사적 실존 전체를 다른 원소" 즉 권역이 아닌 "바다를 향해 결단한다는 것"은 베네치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30 다만 한 민족이 자신의 역사적 실존 전체를 다른 원소가 아닌 바다를 향해 결단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히 해야겠지.


베네치아에서 벌어졌던 마지막 싸움은 《대포 범선 제국》의 18페이지에서 나온다. "배 위에서 이루어지는 육지전"이었던 레판토 해전. 


32 레판토 해전은 전반적으로 1500년 전 악티움에서 이용했던 것과 동일한 조선기술 수단을 가지고 이루어졌어. 스페인의 유명한 최정예 보병부대인 테르시오와 오스만 제국의 친위부대 예니체리가 갑판 위에서 맞섰던 근접전이었던 거야.


칼 슈미트도 이 부분은 뚜렷하게 말한다. 레판토 해전은 해전은 해전인데 배 위에서 이루어지는 육지전이다. 그러니까 이보다 얼마 안 있으면 스페인 아르마다함대를 영국이 물리쳤다. 영국의 범선이 스페인의 국가함대를 물리침으로써 "해양 전쟁 전술의 전환점"을 알렸다고 할 수 있다. 


32 레판토 해전이 있은 지 불과 몇 년 뒤인 1588년에, 영국과 대륙 사이에 영국해협에서의 스페인 아르마다함대의 패배는 해양 전쟁 전술의 전환점을 알렸지. 영국의 작은 범선이 스페인의 육중한 국가 함대보다 월등하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야.


레판토 해전은 갤리 선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즉 배 위에서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육지전 싸움방식의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실상 스페인이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을 이겼다. 스페인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배 때문이 아니라 유명한 최정예 보병부대인 테르시오가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 부대를 물리쳤던 것. 해전이라기 보다는 육지전이다. 그런데 그 스페인 함대가 해양 전술을 바꾸지 못한 상태에서 영국하고 싸웠고, 영국에서는 범선을 가지고 싸움에서 이겼다. 그래서 본격적인 대양의 항해 시대가 되는 것이 범선의 시대다.


5장에서는 그것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는 대양 항해를 자세히 얘기하기보다는 고래에서 대한 얘기를 자세히 한다. 그래서 《모비딕》과 쥘 미슐레의 《바다》에 대해서 얘기한다. 포유류이면서도 대양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고래가 가진 멋진 측면인데 특히 모비딕과 고래를 쫓는 에이해브 선장 사이를 슈미트는 "미묘한 적대와 동지적 결합"라고 표현했다.


40 허먼 멜빌은 『모비딕』에서 이 싸움의 과정에서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에 거의 "개인적 관계"라고 까지 말할 수 있는 미묘한 적대와 동지적 결합이 어떻게 맺어지는지 묘사하고 있어.


그리고 마지막 6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대양과 땅 사이의 투쟁이 드러나게 된 것이 16세기인데, 6부터 9장이 그 이야기. 이른바 해양에서 선두국가에 관한 얘기가 시작된다. 이에 관한 책은 찰스 킨들버거의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이 제일 좋다. 땅과 바다의 관계에서 이 시대부터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특히 16세기에는 새로운 군함이 등장하고 포를 장착한 범선이 측면에 화포를 설치해서 적을 향해 포탄을 퍼붙는다는 것. 이렇게 되면서 제대로 된 해전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게 바로 16세기 후반 영국인들이 이루어낸 성취이다. 이것에 관한 얘기가  《대포 범선 제국》의 165페이지에서 "14, 15세기 대서양 유럽이 개발한 대포로 무장한 배"라는 부분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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