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C. 코플스턴: 중세철학사


중세철학사 - 10점
F. C. 코플스턴 지음/서광사


서론

제1부 중세 이전의 학파들 

제2부 카롤링거 왕조 르네상스 

제3부 10, 11, 12 세기

제4부 이슬람교와 유태교의 철학: 번역

제5부 13 세기





1장 서론

24 우선 첫째로, 철학에 대한 신학의 관계 그 자체는 중세 사상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주제였다는 것과, 여러 사상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제각기 다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26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공통적인 배경 때문에 중세 사상가들에 있어서 세계는 대체로 동일한 견지에서 해석되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인정해 두는 편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상가가 신학과 철학의 영역에 대해서 명확한 구별을 주장했든 부정했든, 그 어느 경우에도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계를 고찰했고 또 그렇게 고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8 중세 철학은 세 가지의 주요 단계로 분류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첫째는 12세기까지와 12세기를 포함하는 예비적 단계, 다음으로는 13세기의 구성적 종합의 시기, 끝으로는 14세기의 몰락해 가는 파괴적인 비판의 시기이다.



제1부 중세 이전의 학파들 

제2장 교부시대 

34 초기 그리스도교의 호교가들과 교부들의 저서 가운데 철학적인 요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거기서 철학적인 체계를 구한다는 것은 분명 소용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이들의 관심사는 본래 신학적인 것, 즉 신앙을 옹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35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의 철학적인 관념들은 그 성격상 플라톤적이거나 또는 신플라톤주의적(스토아주의와 혼합된)이었고 그 플라톤적인 전통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랫동안 그리스도교 사상을 계속 지배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35 테르툴리아누스가 이교의 철학을 이 세상의 어리석음과 거의 같은 것으로 보았던 반면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철학을 하느님의 한 선물로, 즉 마치 유태인들의 교육 수단이 율법이었던 것과 같이 그것이 이교 세계를 그리스도로 이끄는 교육 수단이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42 여기서는 그노시스주의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그노시스주의는 성서적·그리스도교적인 요소와 그리스적·동방적인 요소의 기이한 융합으로서, <지식> (gnosis)으로 신앙을 대신한다고 공언하며,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에 비하여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창조, 악의 기원, 구원에 관한 교설을 베풀었다. '그리스도교적인' 형태의 그노시스주의가 있기 전에 이미 유태적인 그노시스주의가 있었는데, 전자는 특히 그들이 그리스도교적인 주제를 빌어 온 한에서는 그리스도교의 한 이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 비록 그노시스주의가 2세기에 있어서 진정한 한 위기였고 그들이 '지식'으로 제공했던 기이한 영지적인 사색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고 매혹시켰다고 할지라도, 동방적·그리스적인 요소가 너무나 두드러져서 그것을 일반적 의미에서의 그리스도교의 한 이단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43 <그노시스>의 여러 체계에 있어서 공통적인 주요한 특징은 이원론적인 경향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그노시스>를 구제를 위한 수단으로 강조한다는 데 있었다.


49 비록 학문, 사색, 추론이 계시와 조화되지 않으면 진리일 수 없지만 명목적인 신앙, 즉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신앙은 이상적인 신앙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최초의 그리스도교 학자로서, 그리스도교를 철학과의 관계에서 보고 신학의 체계화와 그 전개에 있어서 사변적인 이성을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54 에우세비오스는 물론 신플라톤주의적인 의미에서 플라톤을 해석하여 일자 또는 선, <누우스> 또는 정신, 그리고 세계 영혼이라는 세 원리를 언급하고 있다.


64 그리스 교부들은 철학과 신학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교를 하나의 참다운 예지 또는 '철학'으로 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에 대한 예비 교육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64 그들이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사상을 채용했을 때 그것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그것을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의 철학 체계로 통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리스도교적인 예지를 설명하고 계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3장 성 아우구스티누스 1 

67 그가 보기에 마니교는 그리스도교의 조잡하고 불합리한 교리와는 달리 진리를 합리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68 자기 자신의 정열과 관능적인 욕망을 의식하고 있던 그는, 이제 자신의 그러한 결과를 자기 자신 밖에 있는 악의 원인에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70 신플라톤 학파의 저서를 읽은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지적 회심의 한 계기가 되었다면, 그의 도덕적 회심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와 심플리치아누스 및 폰티시아누스의 훈화에 의해서 준비되어 신약 성서에 의해서 강화되고 결정되었던 것이다.



제4장 성 아우구스티누스 2: 인식 

80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의 인식은 순전히 아카데믹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참된 행복, 참된 지복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서 추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자기 자신보다 더욱 위대한 대상, 즉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잡으려고 손을 뻗친다. 그리고 이러한 대상에 대한 인식은 평화와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84 "만일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떤 일에 있어서도 속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우구스티누스는 데카르트의 생각을 앞질러서, <만일 내가 속고 있다면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sum)고 말하고 있다.


99 우리가 지니고 있는 유형적인 대상의 개념 내용은 감각 경험과 이에 대한 성찰에서 유래되는 반면에, 하느님의 이데아들이 끼치는 규제적인 영향(이는 하느님의 영향을 의미한다)에 의해서, 현세에서는 직관할 수 없는 영원한 초감각적인 실재에 대한 피조물들의 관계를 우리는 볼 수 있고, 하느님의 빛에 의해서는 필연적인 판단 안에 나타나 있는 개념들 상호 관계에 있어서의 필연성, 불변성, 영원성의 요소를 정신은 식별할 수 있는 것이다.



제5장 성 아우구스티누스 3: 하느님 

100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즐겨 사용했던 주요한 하느님의 존재 증명은 사유로부터의 증명, 즉 안으로부터의 증명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증명의 출발점은 필연적이고 불변적인 진리, 즉 "당신이 당신의 것으로나 나의 것으로도 그리고 다른 어느 누구의 것으로도 부를 수 없으면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현존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주어져 있는" 진리를 정신은 파악한다는 데 있다.


101 만약 절대적인 진리를 알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리의 근원, 즉 "그 안에서, 그에 의해서, 그를 통해서 모든 점에서 참다운 것들이 참답게 되는 그 진리"밖에는 생각될 수 없다.


106 하느님은 창조하기 전에는 그것들을 자기 안에 있는 그대로, 즉 범형으로서 알고 있었으나, 그것들을 지금 있는 그대로, 즉 하느님의 자기 본질의 밖으로의 유한한 반영으로서 창조했던 것이다.


107 아우구스티누스에 있어서 그 이데아는 말씀 가운데 들어 있으며, 그 말씀은 신플라톤주의의 <누우스>처럼 하위의 실체가 아니라 삼위 일체 가운데 둘째의 위격이며 이는 성부와 일체인 것이다.



제6장 성 아우구스티누스 4: 세계 

115 그는 일종의 플라톤적인 영혼 선재설을 적당히 다루어 본 것 같으나, 영혼이 지상에 오기 전에 범한 과실에 대한 벌로서 육체 안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주요한 문제는, 하느님이 각자의 영혼을 따로따로 창조했는가 아니면 아담의 영혼 가운데서 여타의 모든 영혼을 창조하여 영혼이 부모에 의해서 '유전되는가'(영혼 출생설)이다. 


116 그가 영혼 출생설로 기울게 된 것은 철학상의 이유가 아니라 신학상의 이유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러한 방법을 취할 때 원죄가 영혼에 전달된 결합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7장 성 아우구스티누스 5: 윤리 

119 의무의 불가피한 근거는 자유이다. 의지는 자유이기 때문에 불변적인 선을 외면하여 가변적인 선에 집착함으로써 하느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영혼의 선 아니면 육체의 선을 자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122 악의 원인은 불변하는 선을 외면하는 피조물의 의지이다. 즉 악이라 불변의 무한한 선을 피조물의 의지가 외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악은 엄밀하게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라는 이 말은 하나의 적극적인 실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122 이 설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일반적으로 스콜라 학자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그리고 유명한 여러 철학자들 가운데서, 예컨대 라이프니츠에서 그 지지자를 찾아볼 수 있다.



제8장 성 아우구스티누스 6: 국가 

128 그리스도 교회는 지상의 누룩으로서 활동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 교회와 그 사명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은 본질적으로 역동적이고 사회적이다. 말하자면 교회는 자신의 원리에 의해서 국가에 침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28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국가에 대해서 교회를 보다 높은 지위에 두는 중세적인 입장의 선두에 서있는 것이다.



제9장 위디오니시우스 

140 악은 단순히 비존재나 존재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존재해야 할 선의 결여에 있는 것이다. 예컨대 죄인도 존재, 생명, 실존, 의지를 지니고 있는 한에서는 선이다. 악은 마땅히 존재해야 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설의 결여에서, 즉 도덕률에 대한 의지의 잘못된 관계와 개별적인 덕의 부재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제10장 보에시우스, 가시오도루스, 이시도루스 

142 고대 세계의 철학이 중세에 전해진 하나의 경로가 위디오니시우스의 저작이라고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보완적이기는 하지만 또 하나의 경로로는 보에시우스의 저작이다.


142 위디오니시우스가 중세 초기의 철학, 특히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제나의 철학에 신플라톤적인 사색에서 취한 요소들을 심어 주는 데 도움이 되었던 반면에 보에시우스는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지식을 중세 초기의 사람들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145 하느님의 인식은 하느님에게 있어서 영원히 현재에 있는 것, 즉 결코 사라져 가지 않는 순간에 대한 인식이다. 그리고 현재에 있는 사건에 대한 인식은 그 사건에 필연성을 부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관점에서는 미래이지만 하느님의 관점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는 필연적(자유가 없다는 의미에서)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제2부 카롤링거 왕조 르네상스 

제11장 카롤링거 왕조 르네상스 

156 철학에 관해서는 논리학 또는 변증론(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이는 철학의 한 부문이 아니라 철학하기 위한 준비 연구이다)이 유일의 연구 대상이었음은 분명하다. 9세기에 진정한 사변 철학자는 단 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바로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제나였다. 카롤루스의 르네상스는 당시의 학문을 전파하는 일을 목표로 삼았으며 그 성과는 충분히 주목할 만했다. 하지만 요한네스 스코투스의 체계의 한 예를 제외하고는 독창적인 사상이나 사색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제12장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제나 1 

158 9세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제나의 철학 체계이며, 그것은 평지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바위처럼 두드러져 있다.


160 요한네스 스코투스를 유명하게 했던 저작은 《자연 구분론》이며, 이는 대체로 862년에서 866년에 걸쳐 씌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다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화의 형식으로 씌어져 있다.


161 위디오니시우스와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에 의해서 시사된 노선을 따라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설을 표현하려는 요한네스 스코투스의 시도는, 그가 정통적인 그리스도인이었는지 또는 전적으로 범신론자는 아니라 해도 그것에 매우 가까운 것은 아닌지 어떤지를 논할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제13장 요한네스 스코투스 에리우제나 2 

167 우리는 하느님이 실체 이상이며 예지 이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 '이상'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하느님에게 적용된 경우의 실체나 예지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천사의 지성이든 인간의 지성이든 하느님은 모든 지성을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180 하느님이 만든 것은 어떠한 것도 악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악마들과 악인들의 실체나 본성은 선일 수밖에 없다. 


180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이 영원한 벌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벌이란 무엇인가? 우선 첫째로 그것은 신체적이거나 물질적인 성격의 것일 수는 없다. 한편 둘째로 그 벌은 하느님이 만들지 않는 것에만,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는 '본성' 밖에 있는 것에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하느님은 악마나 악인의 사악한 의지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벌받는 것은 바로 이 의지이다. 


186 그가 한 진지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신플라톤주의의 철학을 조화시키려고 했다거나 또는 오히려 그리스도교의 예지를 손쉽고 지배적이었던 신플라톤주의적 사상의 틀 속에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합리화하는 경향과 그에 관련된 긴장 관계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의 주체적인 입장에 관계하는 한에서는 하나의 만족스러운 조화가 확립되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3부 10, 11, 12 세기

제14장 보편의 문제 

192 정신 밖에 있는 대상은 개별적인 반면에, 개념은 수많은 개체들에게 차이없이 적용된다는 의미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192 만일 실재하는 대상은 개별적이고 개념은 보편적이라는 사실이 보편 개념은 정신 밖의 어떠한 실재에도 근거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즉 개념의 보편성이란 단순한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면 사유와 대상 사이에는 틈이 생기고, 우리의 인식이 보편 개념이나 판단 형식으로 나타내어지는 한 그 타당성이 매우 의심스러워진다.


195 투르네의 오도가 주장한 것은 영혼 전이성의 한 형식이었다. 이를테면 원죄에 의해서 감염된 인간 본성 또는 아담의 실체는 아이가 태어날 때 유전되며, 하느님이 창조한 것은 단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한 실체의 새로운 성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96 사유와 정신 밖의 실재와의 정확한 일치가 극단적인 실념론자가 생각하는 원리라고 한다면, 개체들만이 실재한다는 것이 극단적 실념론을 반대하는 자들의 원리이다.


197 로셀리누스는 보편이 단순한 말, 즉 <음성의 발성>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안셀무스는 그를 당신의 변증론상의 이단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보았다.


206 아벨라르두스에 의하면 이러한 말의 표현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어떠한 보편 개념도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막연한 표상, 즉 막연하고 불명료한 그 정도에 따른 유 또는 종의 표상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아가서 보편 개념은 추상 작용에 의해서 형성되므로 우리는 이 개념에 의해서 대상 안에 있는 것을 파악하지만 대상 안에 있는 그대로의 것을 아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207 유와 종에 대한 객관성을 부정하지 않고도 극단적인 실념론을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이 극단적 실념론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는 의미에서, 보편의 문제에 대한 아벨라르두스의 취급 방법은 실제로 결정적인 것이었다.



제15장 캔터베리의 성 안셀무스 

212 <나는 알기 위해서 믿는다>는 이 태도는 아우구스티누스나 안셀무스에 있어서 공통적이다. 안셀무스는 《왜 하느님은 인간이 되었는가》에서, 우리가 믿는 바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태만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경우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완전한 일치하고 있다.


218 철학의 발전에 대한 성 안셀무스의 유일한 공헌은 기껏해야 그 타당성이 문제가 되는 하나의 증명을 제공한 것뿐만이라는 식으로 그의 이름을 '본체론적 증명'과 결부시켜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는 명백하다.


219 중세에 있어서 철학의 일반적인 발전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의 자연신학과 교의에의 변증론 적용으로 말미암아 그는 스콜라 철학과 신학에 공헌한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219 하느님은 그 이상으로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상으로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그것은, 정신 즉 관념 안에 만이 아니라 정신 밖에서도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관념 즉 정신 안에 만이 아니라 정신 밖에도 존재한다.


220 성 안셀무스는 자신의 논증이 하느님의 본성에 대해서 우리가 믿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증며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논증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에 관한 것이므로, 하느님의 여러 속성은 그 증명의 결론 안에 은연 중에 포함되어 있다.


221 가우닐로는 그 책에서 우리가 사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념이 정신 밖의 존재를 보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성 안셀무스는 논리적 질서에서 존재적 질서로의 부당한 이행을 범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221 만일 하느님의 관념이 온전히 완전한 한 존재의 관념이고 또 절대적인 완전은 존재를 지닌다고 한다면 이 관념은 존재하는 것, 즉 필연적으로 실재하는 존재의 관념인 반면에, 가장 아름다운 섬의 관념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의 관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16장 샤르트르 학파 

224 유럽 문명의 발전에 대해서 중세기가 이룩한 최대의 공헌 가운데 하나는 대학의 조직이었다. 그리고 중세의 모든 대학 가운데서 최대의 대학은 더 말할 나위 없이 파리의 대학이었다.


225 마치 교황청이 중세 종교의 국제적 또는 오히려 초국가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었듯이 파리의 대학은 중세 유럽 문화의 국제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교황청과 대학은, 마치 하나의 종교가 하나의 공통적인 지적 양상을 드러내고 더구나 학문의 용어인 라틴어가 교회의 용어였듯이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227 확실히 중세 시대에 있어서 지방의 생활이 지니는 정신력과 관심은, 종교적 생활과 지적 생활이 지니는 국제적인 성격을 보충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예컨대 연구를 위해서 파리에 왔던 학자들 가운데는 가르치기 위해서 그곳에 머문 사람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나라나 지방으로 되돌아가고 또는 지방의 교육 기관에 종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227 12세기의 가장 번창하고 흥미있는 비장 학교 가운데 하나는 샤르트르의 학교이다. 곧 언급하겠지만 이 학교에서는 플라톤주의가 뚜렷하게 혼합되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이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제17장 생 빅토르 학파 

243 가능성의 근원이며 모든 것의 존재의 원천인 그 가능성의 근거는 자립적이며 궁극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본질, 모든 능력, 모든 예지는 이 근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이 근거는 그 자체가 모든 본질의 근거로서 최고의 본질, 모든 능력의 원천으로서 최고의 능력, 모든 예지의 원천으로서 최고의 예지가 아니면 안 된다.


243 물론 이러한 논증은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지성, 즉 <이성의 눈>이 행하는 것이다. 이 이성의 눈은 유형의 세계를 보는 <상상의 눈>보다는 뛰어나지만, 하느님을 그대로 관상하는 <예지의 눈>보다는 못한 것이다.



제18장 이원론자와 범신론자 

245 13세기에 성 도미니쿠스는 알비파를 반대하는 설교를 했다. 카타리파만이 아니라 이 알비파도 이미 12세기에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들 교단의 주요한 교리는 비잔틴을 거쳐서 서유럽으로 흘러 들어온 마니교 형식의 이원론이었다.


247 베느의 아말리쿠스에 있어서 하느님이 만물의 형상이라고 한다면, 디낭의 다비드에 있어서의 하느님은 만물의 가능태라는 의미에서 제1질료와 동일시되었다.


248 1210년 다비드의 저서에 이단 선고를 내린 파리의 종교회의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다.



제4부 이슬람교와 유태교의 철학: 번역

제19장 이슬람교의 철학 

251 아라비아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서구로 완전하게 도입되었던 주요한 경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아비첸나와 아베로에스와 같은 중세 이슬람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단순한 전달자나 주석가 그 이상이었다. 그들은 대체로 신플라톤주의의 정신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변경하고 발전시켰으며,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주석에 있어 옳든 그르든 중요한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신학이나 신앙과는 모순된 의미로 아리스토텔레스를 해석했다.


253 최초로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른 고대 철학자들을 아라비아어로 번역한 것은 시리아의 그리스도교인이었다는 사실에서 볼 때, 이슬람 철학은 그 기원에 있어서도 그리스도교와의 관련을 지니고 있다.


253 6세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포르피리오스의 저작, 위디오스시우스의 저서들이 시리아의 그리스도 단성론자들의 학원에서 시리아어로 번역되었다.


256 동방의 그룹에 있어서 최대의 이슬람 철학자는 이슬람 세계에 있어서 스콜라 철학 체계의 참다운 창조자 아비첸나, 즉 이븐 시나(Ibn Sina, 980년~1037년)임에 틀림없다.


261 하나의 분명한 논문이 요구되는 아비첸나의 영향에 대한 문제는 이 이상 더 언급하지 않을지라도, 그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제, 즉 인식과 조명, 본질과 존재의 관계, 개별화의 원리로서 질료에 관해서 라틴의 스콜라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263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능을 인간 지성의 극치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가 그에 대한 주석에 전력을 기울였던 것은 당연하다.


266 아라비아 철학자에 대한 단테의 태로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은 《신곡》 가운데서 마호메트를 지옥에 두고 있는 단테가 어째서 아베로에스와 아비첸나를 고성소에 두었으며,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인 브라방의 시제루스를 천국에 두고, 심지어 시제루스의 강력한 반대자였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으로 그에게 찬사를 보내게 했던가를 철학자들이 편경없이 진지하게 문제삼기 시작했을 때이다.


267 분명한 것은 단테가 순수한 토마스주의자가 아니라 이슬람교도에, 특히 아베로에스에 상당히 힘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어째가 그가 가장 뛰어난 이슬람 철학자들을 선택하여 특별히 취급하고 있으며, 또 어째서 그가 가장 위대한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를 천국에 두고 있는가를 말해 줄 것이다.



제20장 유태 철학 

270 중세의 유태 철학자들 가운데서 가장 흥미를 끄는 사람은 모세즈 마이모니데스이다.


270 그는 《길 잃은 자들을 위한 안내》에서 신학의 합리적 기초를 철학에 두려고 했으며, 그에게 있어서 철학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의미한다. 예언자를 제외하고, 그가 인간 지력의 최고 모범으로 존경했던 사람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


272 비록 마이모니데스가 후에 성 토마스에 의해서 주어진 증명 형식 가운데 대부분을 앞질러 말하고 있었을지라도, 그는 성 토마스보다도 하느님에게는 적극적인 술어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강하게 주장했다.



제21장 번역 

277 아리스토텔레스, 아비첸나, 아베로에스의 체계들은 인간 이성의 시야를 폭넓게 열어 주었다. 그리고 중세인들이 획득했던 진리는 그리스 철학자와 그리스 및 이슬람의 주석들에 의해서 얻어인 것이므로, 틀림없이 그리스도교의 계시와는 관계없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분명했다. 이와 같이 새로운 번역은 중세인들이 철학과 신학의 관계를 밝히고 그 두 학문의 영역의 경계를 설정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278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일련의 계시된 교의가 아니라 이성의 업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대를 훨씬 뒤돌아 볼 경우 중세인들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재성을 과장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우리는 잠깐 동안 그들의 입장에 서서 어쨌든 인간 정신의 최고 성과의 하나, 즉 완벽함과 치밀한 추론에 있어서 초기의 중세 사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한 체계가 중세 철학자에게 끼친 인상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280 교회와 대학의 권위의 측면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공적인 태도를 위한 같은 요약된 사실에서 볼 때, 결국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하여 13세기와 14세기의 증세 철학자 모두가 한결같이 아리스토텔레스를 환영했다거나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280 중세 철학이 위대한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모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영감을 받고 특징지워졌다고 생각한다면, 13세기와 14세기의 중세 철학에 대해서 매우 불충분한 지식을 지니고 있음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제5부 13 세기

제22장 서론 
283 파리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승리의 터전이었던 반면에, 옥스퍼드라는 이름은 로저 베이컨의 철학에서처럼 아우구스티누스적 전통과 '경험주의'의 특유한 혼합을 생각하게 한다.

284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특권은 학내의 자치권과 교수자격이 있는 학위를 수여하는 권리이다. 학생들은 특별한 사정 이외에는 병역이 면제되었고, 대학은 일반적으로 상당한 액수의 과세, 특히 지방세가 면제되었다.

285 신학과정에서 학생은 4년 동안 성서 강의를 듣고, 그리고 나서 2년간 더 《명제집》의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6세가 되면 학사가 되어 2년 동안은 성서 중에서 두 권을 강의한다.

288 13세기에 수도회 안에서 전통적인 학파로 정착하는 여러 가지 사상의 흐름을 구별할 수 있다. 첫째는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사상의 흐름으로서의 그 성격은 보수적이며,

288 둘째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상의 흐름으로서, 이는 도미니코회의 특징이며 성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부분적으로)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완전하게)에 의해서 대표된다.

288 세째는 브라방의 시제루스에 의해서 대표되는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이다.


제23장 기욤 도베르뉴 
299 기욤도베르뉴는 과도기의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라비아 및 유태의 철학자들의 저서를 상세하게 알고 있었고, 또 그들의 설을 일정 한도에서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성 알베르투스와 성 토마스가 보다 완전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위한 길을 여는데 이바지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추종자들의 주요한 생각의 일부를 분명하게 거부함으로써 성 보나벤투라적인 태도를 위한 길을 열었던 것이다.

제24장 로버트 그로스테스트와 알렉산더 할레시우스 
315 알렉산더 할레시우스는, 그의 주저가 체계적 사고의 끊임없는 노력이고 또 그리스도교적인 신학과 철학을 스콜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제25장 성 보나벤투라 1 
316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회의 전통, 즉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전통을 받아들여 이를 유지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이 결심은 단순히 신앙심이 깊은 보수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보나벤투라는 파리에 있어서 새로운 철학의 경향을 알지 못했거나 적어도 무시하며 이 경향에 대한 분명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318 성 보나벤투라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에 전적으로 충실했다. 

322 신학은 자료를 계시에서 얻어진 하느님 자신에서 하느님의 결과로 나아가지만, 철학은 가시적인 결과에서 출발하여 원인으로서의 하느님을 입증한다.


제26장 성 보나 벤투라 2: 하느님의 존재 
329 하느님의 존재는 영혼 자신의 내성을 통해서 영혼에 명백하게 나타나며, 외계의 피조물은 주로 하느님의 존재를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그의 확신때문이다.

332 성 보나벤투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명확한 관념, 더구나 하느님에 대한 직접적인 직관이나 체험이 있다고 가정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는 확실히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흐릿한 인식이 분명 있다고 가정했다.


제27장 성 보나벤투라 3: 하느님에 대한 피조물의 관계 
339 범형론에 대한 순수 철학적인 학설은 말씀의 신학을 위한 길을 준비하는 반면에, 말씀의 신학은 철학에 의해서 얻어진 진리에 빛을 비춘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신학의 매개자일 뿐만 아니라 철학의 매개자이기도 하다.

344 시작없는 영원한 운동이나 시작없는 시간이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 보나벤투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 영원론은 필연적으로 창조의 부정과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제28장 성 보나벤투라 4: 물질적 피조물 
354 성 보나벤투라는 그의 스승 알렉산더 할레시우스로부터 모든 피조물의 질료 형상적 합성, 즉 모든 피조물은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설을 받아들였다.

354 질료는 일정한 형상을 떠나서 그 자체로는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고 일단 유형적 형상이나 정신적 형상과 결합하면 그 질료는 경우를 따라서 언제나 유형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유형적 실체 안에 현존하는 질료는 정신적 실체 안에 현존하는 질료와는 다르다.

361 <종자적 형상>은 질료 가운데 있는 능동적인 능력이다. 이 능동적인 능력은 이끌어 내어질 형상의 본질이며, 이 형상에 대해서는 <완전한 존재>에 대한 <불완전한 존재>, 또는 <현실적 존재>에 대한 <가능적 존재>의 관계에 있다.


제29장 성 보나벤투라 5: 인간의 영혼 
362 하느님이 창조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영혼의 전체이지 이성적인 능력만인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이성적 능력과 감성적 능력을 갖춘 하나의 영혼이 있으며, 하느님이 창조하는 것은 이 영혼이다. 육체는 최초의 인간 아담의 육체 안에 <종자>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종자에 의해서 전해진다.

363 영혼은 신체 전체의 형상이므로, 영혼은 신체 전체에 있다. 영혼은 단일하므로, 일부는 여기에 일부는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영혼은 신체의 충족한 운동 원리이므로 어떤 특수한 위치도 차지하지 않으며, 어떤 일정한 위치나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다.

365 하느님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하며 또 그러기 위해서 영혼은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영혼이 죽음을 면할 수 없다면 하느님과 비슷하게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불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

367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무엇을 말했든, 그의 주석자 아베로에스는 이들 지성은 인간 각자의 개별적인 것도 아니고 개개인의 부분이거나 능력도 아니며 오히려 단 하나의 실체, 즉 우주적 지성이라고 분명하게 주장했다.

378 범형론은 피조물의 세계를 하느님에 대해서는 원형에 대한 모조품의 관계, <범형>에 대한 <모사>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또 한편 조명설은 감각적 피조물의 성찰, 자기 자신의 성찰, 마지막으로 완전한 존재의 성찰에 의해서 영혼이 하느님에게 되돌아가는 단계들을 제시하고 있다.

378 보나벤투라는 그리스도교적인 생의 철학자로 불리워질 수 있다. 그는 이성과 신앙을 함께 사용하여 자신의 종합을 이루고 있다. 이성과 신앙, 철학과 신학의 종합은 그가 그리스도, 즉 하느님의 몸과 일치하고 있는 대목에서 강조되어 있다.

379 자연적 이성을 사용하는 형이상학자 자신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는 비록 하느님의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을지라도 그 말씀의 조명없이는 참되고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형이상학자의 학문이 신학에 의해서 완성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완전하여 이 불완전성으로 말미암아 그것의 가치는 하락된다.


제30장 성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380 토마스 아퀴나스(1274년 사망)의 학설을 옹호하기 위해서 파리로 출발했던 곳이 쾰른이었고, 1280년 11월 15일에 그가 사망한 곳도 쾰른이었다.

383 형이상학 또는 제1신학이 하느님을 제1존재자로서 다루는 반면, 신학은 신앙에 의해서 알아진 것으로서 하느님을 다룬다.

383 철학자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의 일반적인 빛의 작용하에서 연구하고 이 빛에 의해서 제1원리를 보지만, 신학자는 초자연적인 신앙의 빛에 의해서 연구하고 이 빛을 통해서 계시된 교의를 받아들인다.

389 그리스도교 서구 세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아라비아인의 철학에 필적할 수 있는 순수한 철학이나 자연 과학으로서 독자적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성 알베르투스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즉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해서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이 철학을 간단하게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31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1 
393 그의 온 생애는 온통 연구와 교수 활동에 바쳐졌었다.

396 성 토마스는 신학자였으며 그의 철학은 그의 신학과의 관계 속에서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

396 성 토마스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어떻게 철학의 본질이나 본성을 손상하지 않고 철학을 신학으로 도입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신학의 본질이나 본성을 손상하지 아니하고 철학을 신학으로 도입하느냐였다.

398 성 토마스는 <존재>를 철학의 무대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본질의 철학을 넘어서고, 특히 플라톤이나 플라톤의 영향하에 있는 철학을 넘어섰다고 주장되어 왔다.

399 성 토마스 철학의 주요한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주관성'보다는 오히려 '객관성'에 있다. 인간 지성의 직접 대상은 물질적인 사물의 본질이며, 성 토마스는 감각 경험의 성찰에 의해서 자신의 철학을 수립하고 있다. 그가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함에 있어서 그 논증 과정은 언제나 감각적인 세계에서 시작하여 하느님에게로 나아가고 있다.

400 성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좇아 형이상학을 존재로서의 존재에 대한 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제32장 성 토마스 아퀴스나스 2: 철학과 신학 
402 철학자는 경험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이성에 의해서 피조물을 통해 알 수 있는 데까지 하느님을 논증해 가는 반면에, 신학자는 자신을 계시한 분인 하느님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403 따라서 신학과 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신학자가 자신의 원리를 계시된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다루고 있는 대상을 계시된 것이거나 계시된 것에서 연역될 수 있는 것으로 고찰하는 반면에, 철학자는 자신의 원리를 이성에 의해서만 이해하고, 자신이 다루고 있는 대상을 계시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이성의 자연적 빛에 의해서 이해할 수 있고, 또 이해된 것으로 고찰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414 성 토마스는 영향력과 중요성이 점차 커가고 있는 하나의 체계에 직면했었다. 그 체계는 많은 측면에서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모순되는 것처럼 생각되었으나, 그 체계의 위엄성과 명확한 일관성 그리고 포괄성으로 말미암아 많은 학생들과 스승들, 특히 파리 대학의 인문학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당연했다. 아퀴나스가 용감하게 자기 자신의 체계를 수립함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용했다는 것은, 개혁 반대주의자의 행동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다르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은 극히 '근대적'이었으며, 스콜라 철학의 장래를 위해서나 철학사 전반에 있어서도 실로 극히 중요한 것이었다.


제33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3: 피조물의 원리 
417 성 토마스에 의하면, 그의 자연 신학에서 전제되어 있는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들은 생득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성찰하여 거기서 추상함으로써 파악되는 것이다.

417 성 토마스의 하느님 존재 증명은 <경험적>이다. 이를테면 그 증명은 피조물에서 하느님으로 나아가고 있다.

428 본질은 존재에 의해서만 실존하고, 창조된 존재는 언제나 일정한 본질을 지닌 존재이다. 창조된 존재는 본질과 함께 생겨난다. 이 두 개의 구성 원리는 객관적으로 다를지라도, 존재는 더욱 근본적인 원리이다. 창조된 존재는 가능태 의 현실(태)이므로, 가능태는 존재를 떠나서는 아무런 현실성도 지니지 않는다. 존재는 "모든 것 가운데서 가장 완전한 것"이며 "모든 완전성의 완전성"이다.


제34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4: 하느님의 존재 증명 
430 성 토마스는 이론적인 무신론이 일반적이었던 세계에서 살지는 않았으며, 또 하느님의 인식이 인간에게 생득적임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던 어떤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의 명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비존재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음을 제시하려는 성 안셀무스의 유명한 논증도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431 성 토마스는 하느님에 대 한 자연적인 인식은 애매하고 막연하여 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432 성 토마스는 《대이교도 대전》이나 《신학 대전》에서, 안셀무스의 논증은 관념의 영역에서 실재의 영역으로의 부당한 진행이나 이행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하느님이 그 이상으로 더 큰 것으로 생각될 수 없는 그러한 존재로 생각되었을지라도, 그러한 존재가 생각되어 있는 존재를 떠나서, 즉 정신 밖에 존재한다는 결론이 반드시 나오는 것은 아니다.

436 성 토마스의 하느님에 대한 존재 증명의 다섯 가지 가운데 첫째는 운동에 의한 증명이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발견되어 마이모니데스와 성 알베르두스에 의해서 사용되고 있었다.

442 그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든, 기본적인 증명은 실제로는 세번째의 증명 또는 ‘길', 즉 우연성에 의한 증명이다. 그 우연성에 의한 논증은 첫번째 증명에서는 운동이나 변화라는 특수한 사실에 적용되고, 두번째의 증명에서는 인과성의 질서 또는 인과적인 생성에 적용되고, 네번째 증명에서는 완전성의 단계에, 그리고 다섯번째 증명에서는 목적성, 즉 우주의 질서를 이룸에 있어서 무생물들의 협동에 적용되고 있다.


제35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5: 하느님의 본질 
446 술어들이 하느님에 대해서 부정되는 경우, 그 술어들이 부정되는 것은 그 술어에 표현된 어떤 완전성이 하느님에게 없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은 풍요함에 있어서 그 한정된 완전성을 무한히 초월하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447 그와 같이 하느님의 <존재>는 받아들여지고 한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자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은 무한하고 완전한 것이다. 필연적인 존재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이어서 변화될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은 불변적인 것이다. 시간은 운동을 요구하나 불변적인 존재에는 운동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은 영원한 것이다. 하느님은 순일하고 무한하기 때문에 하느님은 하나이다.

449 자연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서 생겨난 우리의 관념 들 그 자체도 하느님을 오직 불완전하게 나타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하느님은 선하시거나 살아 계시다고 말하는 경우, 하느님은 선 또는 생명이라는 완전성을 포함하고 있거나 오히려 그 완전성 자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물론 이는 피조물의 모든 불완전성과 제한성을 초월하고 이를 배제한다는 의미에서의 완전성이다.

450 우리가 하느님에게 적용하고 있는 명사들은 피조물 가운데 나타나 있는 완전성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몇 가지의 중요한 결론이 끌어내어진다. 첫째로, 우리가 하느님과 피조물에 적용하고 있는 명사들은 일의적 의미에서 이해되어서는 안되다는 것이다. 

462 성 토마스에 의하면, 하느님에게 가장 적합한 이름은 불타는 덤불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가르쳐 준 이름, 즉 존재하는 분 (Qui est,He who is)이다. 하느님에게 있어서는 본질과 존재 사이에 어떠한 구별도 없다. 말하자면 하느님은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존재 그 자체이다. 즉 하느님의 본질은 존재하는 것이다.


제36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6: 창조 
464 하느님은 변화할 수 없다면, 즉 창조에 있어서 자신을 밖으로 나타낼 수 없다면, 즉 창조에 있어서 자신을 밖으로 나타낼 수 없다면 하느님은 세계를 <무로부터> 창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의 〈무〉 (nihll)라는 말을, 하느님이 그것에 의해서 세계를 만들어 낸 하나의 재료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이 세계를 무로부터 창조했다고 말해지는 경우, 그것은 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가 그 다음에 어떤 무엇이 있었다거나, 또는 <무로부터>라는 그 말은 〈어떤 무엇으로부터는 아니다>라는 것과 같은 뜻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465 본래의 뜻에 있어서 창조는 운동도 아니며 변화도 아니다. 그리고 창조는 운동이 아니므로 창조 행위에는 아무런 연속이 없다.

467 무한한 완전성으로서의 하느님은 자기충족적이므로, 하느님에게는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대상은 필요가 없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의지는 다른 대상들에 대해서는 자유이다. 

467 우리는 하느님이 스스로 선이라고 생각한 대상 또는 목적을 자유로이 선택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468 하느님은 자신의 선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선을 제공하고 확산하기 위해서 창조했던 것이다.

468 말하자면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선을 나타내고 이를 분유(이에 참여) 함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이성적인 피조물은 하느님의 선을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가 있다.

471 《신학대전》에서 그는, 창조된 모든 다수는 일정한 수일 수밖에 없으나 무한의 다수는 일정한 수일 수가 없으므로, 현실적인 무한의 다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475 성 토마스가 라이프니츠의 '세계 최선설'(optimism)에 동의하지 않는 것. 즉 이 세계가 최고의 가능한 세계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475 만일 하느님이 본성의 필연성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 즉 지성과 의지에 따른다. 다시 말하면 자유에 의해서 창조한다면, 그리고 또 하느님이 전능하다면. 보다 좋은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하느님에게는 언제나 가능할 수밖에 없다.

478 하느님은 선, 즉 전 세계의 선을 위해서, 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수적으로 물리적(자연적)인 악을 원했다고 말해도 좋겠다.

478 하느님은 어떠한 의미에서도 도덕적인 무질서나 죄를 원하지 아니하고 이를 허락했을 뿐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인간이 자유로워서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보다 더 큰 선을 위해서이다.

479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는 악의 문제에 대한 성 토마스의 철학적인 해답은 다음의 두 가지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하느님은 어떠한 의미에서도 도덕적인 악을 원하지 않으며, 단지 그 도덕적인 악을 제지함으로써, 즉 인간의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 이상의 선을 위해서 그것을 허락했을 뿐이다. 둘째로 하느님은 자연적(물리적)인 악 그 자체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우주의 완전성을 위해서 어떤 자연적 악을 <부수적으로> 원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37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7: 영혼론 
480 인간 존재는 하나의 통일체이며, 만일 인간에게 다수의 실제적 형상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통일성은 손상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명사는 영혼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신체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영혼과 신제 전체, 즉 그 합성체에 적용된다.

481 그러므로. 영혼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플라톤의 사고 방식은 분명히 성 토마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인간이 추리하고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느끼고 감각하는 것마저도 알고 있는 것은 개별적인 하나의 인간이다. 그러나 신체 없이는 감각할 수 없으므로, 영혼만이 아니라 신체도 인간에게 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성혼이 주입될 때 인간은 태어나고, 이성혼이 신체로부터 떠날 때 인간은 죽는다. 이 외에는 어떠한 다른 실체적 형상도 없다.

488 지성은 인식에 의해서 대상을 소유하고 정신적인 동화 작용에 의해서 대상을 자기 자신 안에 지니는 반면에,

489 의지는 외적인 것으로서의 대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 자신 밖에 존재하는 대상의 완전성을 지향하는 것보다도 대상의 완전성을 자기 자신 안에 소유하는 편이 더욱 완전하기 때문에, 단적으로 말하면 지성이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형적인 대상에 관해서는 이 대상의 인식은 이에 대한 의욕보다 더욱 완전하고 더욱 고귀하다.

489 성 토마스는 신체와 영혼의 관계에 대해서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견해를 거부하고 영혼을 신체의 형상으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인 견해를 채용함으로써 영혼과 신체간의 친밀한 결합을 강조했다.

490 성 토마스에 의하면, 영혼은 본성적으로 신체의 형상이므로 언제나 신체를 형성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런데도 여전히 영혼은 이성혼이며, 그의 능력은 신체를 형성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영혼의 불멸성을 다루는 경우에 있어서, 성 토마스는 영혼은 자립적인 형상이므로 불멸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490 동물의 혼은 자신의 모든 활동이 신체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신체가 소멸하면 따라서 소멸한다. 그러나 이성혼은 그것에 본질적으로는 의존해 있지 않는 신체가 소멸할지라도, 자립적인 형상이므로 이에 영향을 받을 수 없다.

493 그는 아베로에스주의자들에게 반대하여 지성은 인간의 영혼에서 분리되어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것이 아니라, 이 지성은 "신체의 다수화에 따라서" 다수화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38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8: 인식 
501 성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 정신은 본래 인식에 대해서 가능태에 있으며 아무런 생득 관념도 지니고 있지 않다. 관념이 생득적이라는 유일한 의미는, 정신이 관념을 추상하고 형성하는 자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502 만일 우리의 지성이 감각적인 표상에 의존해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지성은 감각적인 표상도 없고 감관에 작용을 미치지도 않는 그러한 대상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503 감각적인 대상이 하느님의 존재를 나타내 보여주고 또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유비적, 간접적인 불완전한 인식이 우리에게 가능한 한, 우리는 하느님을 〈원인으로서, 초월에 의해서, 제거에 의해서> 인식할 수 있다.


제39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9: 윤리학
508 인간의 행복은 첫째로 <관상>, 주로 부동의 원동자인 하느님을 관상하는 가운데 있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행복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목적론적이다. 또 그에게 있어서의 관상은 분명 철학적인 관상의 의미를 지녔으므로 뚜렷하게 주지주의적이다.

509 성 토마스는 그와 비슷한 행복론적이며 목적론적인 입장을 채용했으며, 인간 행위의 목적에 대한 견해도 어떤 점에서 주지주의적이다. 그러나 그의 윤리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사이의 매우 중요한 차이를 드러내는 강조점의 변화는 곧 명백해진다.

510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있는 것을 성 토마스는 불완전한 행복, 일시적인 행복, 이 세상에서 얻어질 수 있는 행복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리고 이 불완전한 행복은, 내세에서만 얻어질 수 있고 주로 하느님의 직관에 있는 완전한 행복에로 질서지워져 있는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515 모든 피조물은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으로서의 하느님에게로 질서지워져 있으며, 특히 이성적인 피조물은 자신의 최고 능력인 지성에 의해서 본연적이며 특별한 방법으로 하느님에게 질서지워져 있다.

515 '자연적인 욕망'은 궁극 목적, 즉 완전한 행복에 이름으로써 충족되지만, "신앙에 의한 인식은 이 욕망을 만족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 욕망을 불타오르게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과 행복은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의 직관, 즉 하느님의 본질의 직관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522 자연법이 영원법에 근거한다는 것, 즉 자연법은 형이상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연법이 자의적이고 독단적이 아니라는 것, 즉 자연법은 지금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 말하자면 영원법은 본래 하느님의 의지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인간 본성의 범형적인 이데아를 생각하는 하느님의 이성에 근거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524 성 토마스는 창조자로서의 하느님과 세계를 섭리 하는 지배자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명백한 관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인간 자신의 존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의존 관계를 행위로 나타내는 것을 인간의 첫째 의무로 생각할 수 있었고 또 사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의 유덕한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자주적인 인간인 반면에, 성 토마스에 있어서의 유덕한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의존적인 인간, 즉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의존 관계를 진정으로 인정하여 이를 완전히 나타내는 인간이다.


제40장 성 토마스 아퀴나스 10: 정치론
527 사회는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적인 것이며, 사회가 자연적이라면 통치권도 자연적인 것이다. 조정하고 통일하는 원리(혼)가 인간이나 동물의 육체에서 떠나버린다면 그 육체는 와해되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도 공동선을 배려하며 그 공동선을 위해서 개인들의 행동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가 없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연히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와해되기 쉬울 것이다.

528 인간 사회와 통치권이 자연적이어서 인간 본성 안에 예시되어 있다고 한다면, 인간 본성은 하느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것은 근거와 권위를 하느님에게 두고 있는 셈이 된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 사회와 정치적 통치권을 의도했던 것이다.

529 교회의 목적인 초자연적인 목적은 국가의 목적보다 상위에 있으며, 따라서 교회는 국가보다 상위의 사회이다. 따라서 국가는 초자연적인 삶에 관계하는 일에 있어서는 교회에 종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국가가 그 자체의 영역에서는 자율적인 하나의 '완전한 사회'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훨씬 후세의 신학 용어로 말한다면, 성 토마스는 국가에 대한 교회의 간접적인 권력을 지지하는 자로 생각될 수밖에 없다.

533 네 가지의 법이 있는데, 그것은 영원법, 자연법, 하느님의 실정법, 그리고 인간의 실정법이다. 하느님의 실정법은 유태인에게 불완전하게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완전하고 적극적으로 계시된 하느님의 법인 반면에, 국가의 법은 인간의 실정법이다.

533 결과적으로 인간의 실정법은 자연법에서 유래하며, 모든 인정법은 자연법에서 유래하는 한에서만 참다운 법이 된다.


제41장 성토마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논쟁 
539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를 거부한다는 것은 중세에 알려진 가장 유력하고 포괄적인 지적 종합을 거부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합의 비범한 창조적 재능을 지닌 성 토마스는 신학과 철학의 체계적인 종합을 이룸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의 원리가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고 있었다.

548 토마스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한때 '위험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정통성의 대들보와 같은 그 사람이 한 때는 적어도 성급한 사람들에 의해서 혁신적인 학설의 제창자로 보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548 그러나 토마스 철학은 점차적으로 도미니코회의 공식적인 철학으로 되어 갔다.


제42장 라틴 아베로에스주의: 브라방의 시제루스 
수동지성이나 능동지성은 인류 전체에 있어서 하나이며 같은 것이고, 이 단일 지성만이 사후에도 존속하며, 따라서 개별적인 인간의 불멸성은 부정된다는 설은 13세기에 있어서 극단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의 특유한 설로 이해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설은 아베로에스적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의 뒷받침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설의 지자는 아베로에스주의자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553 이 입장의 논리적인 귀결은 개인의 불멸성과 내세에서의 상벌에 대한 부정이다. 또 다른 그들의 이단적인 설  -그런데 이는 틀림없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이기도 하다 - 은 세계영원론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 아베로에스주의자와 성 토마스의 차이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 토마스에게 있어서 (창조된) 세계의 영원성은 참이라고 증명되지 않지만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세계가 영원으보부터 창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계시로부터 알고 있다), 세계의 영원성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아베로에스주의자는 세계의 영원성, 변화와 운동의 영원성이 철학적으로 증명된 수 있다고 주장했다.

553 그들은 이 양자를 조화시키기 위해서 이중진리설 (二重眞理說)에 의존하여, 철학 또는 이성을 따르면 진리인 것이 신학이나 신앙에 의하면 그 반대의 것도 진리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554 아베로에스주의자들 또는 극단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브라방의 시제루스이다. 그는 1235년경에 태어나서 파리 대학 인문학부의 교수가 되었으며, 1270년에는 자신의 아베로에스 학설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558 질송이 제안하고 있듯이, 단테는 성 토마스를 사변 신학의 상징으로 하고, 시제루스가 신학자가 아니라 인문학부의 일원이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아베로에스주의자인 시제루스를 철학의 상징으로 했던 것이 아닐까? 이 경우 질송의 말처럼, 성 토마스가 시제루스를 칭찬한 것은 단순히 철학에 대한 신학의 찬사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제43장 프란치스코회의 사상가들 
561중세 사상가들 가운데 가장 흥미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경이적 박사>로 불리웠던 로저 베이컨(약1212~1292년 이후)이다. 경험 과학에 수학을 적용한 점만 보더라도, 그는 우리의 흥미를 끌 만하다. 하지만 한층 더 흥미있는 점은 그의 과학적 관심이 철학에 대한 활발한 관심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두 관심에 프란치스코회의 특색인 신비주의에 대한 강조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568 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다른 한 유형은 아과스파르타의 마테우스이다. 그는 파리에서 수학하여 볼로냐와 로마에서 가르쳤으며, 1287년 프란치스코회 총장이 되었으며 1288년에는 추기경이 되었다.

571 그리고 그다지 충실하지는 않은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자로서 프란치스코회의 '영성인들' 가운데 뛰어난 인물 페트르스 요한네스 올리비가 있다.


제44장 에지디우스 로마누스와 가의 헨리쿠스
582 에지디우스 로마누스(Aegidius Romanus)는 1247년 또는 그보다 조금 앞서 태어나서, 1260년경에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둔사회에 들어갔다.

586 나아가서 에지디우스 로마누스가 형상 다수설을 신학적인 정통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공격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생각하기에는 그 설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교의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에게 여러 개의 형상이 있어서 그 가운데 인간에게 특유하고 다른 동물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단 하나의 형상만이 죽을 때 분리된다고 한다면, 그리스도는 신체적으로 죽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589 강의 헨리쿠스(Henricus de Gand)는 투르내 또는 강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출생 연도는 확실하지 않다.

589 1279년에는 투르내의 주교좌 성당 부주교로 임명되었다.

589 강의 헨리쿠스는 절충적 사상가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로는 불리워질 수 없다.

590 강의 헨리쿠스가 인식은 감각에서 유래한다고 말 할 때, 그는 '인식'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즉 "피조물에 관해서 그 가운데 참된 것을 안다는 것과, 그것의 진리성올 안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600 헨리는 하나의 '중개적'인 인물, 즉 13세기와 14세기 사이의 매개자로 불리워 왔으며, 이는 거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컴주의가 출현하기 전에, 헨리쿠스가 에지디우스 로마누스를 비판했듯이 헨리쿠스를 자주 비판했던 둔스 스코투스는 아우구스티누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종합을 발전시키고 입증하려고 시도하여 강의 헨리쿠스에 대해서 논쟁은 했지만, 그는 헨리쿠스가 충분하게 이루지 않았던 것을 충분하게 수행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제45장 스코투스 1 
608 스코투스는 프란치스코회의 박사이며, 비록 자기 이전의 프란치스코회의 사상가들에 의해서 공통적으로 주장되었던 많은 설을 포기했을지라도, 그는 확실히 자기 자신을 프란치스코회의 전통에 충실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또 스코투스는 중요한 점에 관해서 성 토마스의 견해를 비판하기는 했지만, 성 토마스가 전념하고 있었던 종합의 작업을 계승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608 스코투스의 사상은 확실히 아우구스티누스적인 프란치스코회적인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예컨대 지성에 대한 의지의 우위설, 형상 다수설을 수용하고 안셀무스의 하느님의 존재 증명을 이용하고 있는 점 등이다.

611 스코투스 철학의 위치를 중세 사상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단계로 본다면, 사실상 그것은 14세기의 비판 운동을 자극하는 힘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46장 스코투스 2: 인식 
613 우리 지성의 최초의 자연적인 대상은 존재로서의 존재이다. 이의 결과로 모든 존재자, 즉 가지적인 모든 것이 지성의 영역 안에 들게 된다. 스코투스는 여러 가지 증명 가운데서 하나의 증명, 즉 만일 존재가 지성의 최초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존재는 더욱 궁극적인 것에 의해서 기술 또는 설명되겠지만,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에서 아비첸나로부터 채용한 증명을 들고 있다. 그러나 존재로서의 존재가 지성의 자연적인 대상이라면, 그리고 존재가 모든 가지적인 대상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한 결과로서 무한한 존재인 하느님은 인간 지성의 자연적 대상이 되지 않는가? 존재는 무한 존재와 유한 존재를 내포하므로, 그 의미에서는 이 대답이 긍정적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에서의 인간 지성은 직접으로는 감각적 사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 결과 인간은 하느님의 직접적인 자연적 인식을 가지는 것 은 아니다. 하지만 스코투스의 말에 의하면, 지성의 최초의 대상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 개별적인 경우에 있어서의 지성의 최초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성 자체의 최초 대상이 되는 것을 지성의 최초 대상으로 하는 것이 적당하다.

614 신체와 결합해 있다는 것은 인간 지성의 자연적인 상태이며, 신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본성을 초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 토마스는 이러한 종류의 형상을 '감각적 포상'으로부터 추상함으로써 인식하는 한에서, 인간 지성은 그 형상의 인식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감각적 포상'과 따라서 감각적 경험에 의존한다고 논하고 있다. 스코투스는 '감각적 포상'으로부터의 추상에 의해서 인식되는 본질은 어떤 상태 즉 현재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생각될 뿐만 아니라 그 본성상 어떤 종류와 능력이나 기능으로도 생각되는 인간 지성의 최초 대상이라는 것이 성 토마스의 학설이라고 해석하며, 이러한 의견은 신학자 즉 내세를 인정하고 영원한 행복 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지지받을 수 없다고 대답하고 있다.

624 성 토마스는 일반적으로 지성과 이론적인 고찰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스코투스는 일반적으로 의지와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데서 예상되는 그러한 차이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칸트주의와 프래그머티즘이라는 과점에서보다는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프란치스코회의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제47장 스코투스 3: 형이상학 
629 존재의 개념은 모든 개념들 가운데서 가장 단순한 개념이며, 그것보다 더욱 근본적인 다른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러므로 존재는 정의될 수가 없다. 우리는 존재를 저절로 분명하게 파악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존재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는 간단하게 아무런 모순도 포함하지 않는 것, 즉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닌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다은 모든 개념, 즉 일정한 종류에 속하는 존재자의 개념은 전부 존재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장 넓 은 의미에서의 존재는 정신 밖에 존재를• 가지는 것과 정신 안에 존재를 가지는 것을 포함하며, 또 그것은 모든 유(類)를 초월해 있다.

634 스코투스는 이 일의성의 이론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에 관한 모든 형이상학적인 연구는 어떤 속성에 대한 고찰이며, 피조물에서 볼 수 있는, 즉 속성에 붙어 있 는 불완전성을 이 속성의 관념으로부터 제거하는 일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속성에 대한 〈형상적 성질〉이라는 본질 관념을 얻으며, 그것을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하느님에게 서술할 수 있다.

641 "존재가 본질과는 다른 것이 라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본질에 대한 존재의 관계는 능력에 대한 작용의 관계와 마찬가지라는 명제는 잘못이다. 왜냐하면 존재는 본질과 실재적으로 같은 것이며 본질로부터 생겨나지 않는 반면에, 활동이나 작용은 능력으로부터 생겨나며 그 능력과는 실재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 다." 〈존재가 본질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다〉는 주장은 〈자신의 존재와 본질을 서로 달리하는 모든 것은, 존재를 다른 것으로부터 가진다〉는 성 토마스의 진술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스코투스가 실재적 구별의 개념을 말했을 경우, 피조물에 있어서 본질과 존재의 실재적 구별의 무정은 성 토마스의 설보다 오히려, 존재와 본질은 물리적으로 다르다는 에지디우스 로마누스의 설고 관련되어 있다.


제48장 스코투스 4: 자연 신학
650 형이상학은 존재의 학이며, 하느님은 제1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스코투스의 말에 의하면, 하느님은 본래 형이상학적인 학문의 대상이 아니다. 진리는, 본래 그 진리가 학문의 원리로부터 〈선험적〉으로 알려지는 학문에 속해 있으며 형이상학자는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경험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신학 고유의 대상이며 그 신학에서 하느님은 자신의 본질에 있어서 자기 자신이 있는 그대로 알려진다. 철학자는 하느님의 결과 안에서, 그 결과를 통해서만 하느님을 알게 되므로 하느님은 〈제 2차적으로〉만 형이상학의 대상이다.

650 스코투스는 "우리 의 자연적 능력에 의해서 우리는 하느님에 관한 어떤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아가 그는, 하느님에 대한 많은 부분이 하느님의 결과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철학자들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성의 자연적 능력에 의해서 하느님은 하나이고 지고(至高)하며 선(善)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있지만, 하느님이 세 위격(位格)으로 있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신학은 본래 하느님의 본질적 속성보다는 하느님의 위격을 다룬다.

656 〈무한의 소급은 불가능하다〉. 우연적 존재가 상호간에 서로 원인이 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우리는 순환할 뿐 우연성 에 대한 궁극적 설명에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연적 존재의 영원한 계열 자체가 하나의 원인을 요구하므로, 세계가 영원하다고 말하는 것은 소용 없는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목적인의 질서에 는 더 이상의 어떠한 궁극적 목적에도 지향되지 않는 하나의 목적인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한편 탁월성의 질서에 하나의 가장 완전한 존재인 <최고의 본성〉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 셋은 동일한 존재이다. 제1 작용인은 궁극 목적을 목표로 하여 작용하지만, 제1 존재 이외의 어떠한 것도 그것의 궁극 목적이 될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제1 작용인은 자신의 결과와 일의적이 아니며, 즉 동일한 성질의 것일 수가 없고 그 결과를 초월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제1 원인으로서 '가장 탁월한 존재'가 아니면 안 된다.

657 하느님이 자신의 결과를 필연적으로가 아니라 자유로이 생겨나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느님은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영원으로부터 알고 또 이해하고 있다. 하느님은 가지적인 모든 것에 대해 현실적으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 인식은 하느님 자신과 동일하다.

666 "하느님에 있어서의 의지는 실로 하느님의 본질과 완전히 동일하다." 그리고 하느님의 의지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실재로는> 하나인 하느님의 의지와 하느님의 의지 작용은 변화할 수 없다. 하지만 하느님이 영원으로부터 의지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영원으로부터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의지의) 작용은 영원 속에 있고, 〈존재〉의 산출은 시간 속에 있다."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하느님에 있어서도 인식은 의지를 앞서고, 또 하느님은 가장 이성적으로 의지한다.


제49장 스코투스 5: 영혼 
674 스코투스는 이성혼이 〈단순한 존재 > (esse simpliciter)를 부여 할 뿐만 아니라 〈생명적 존재>, 〈감각적 존재 >(esse sensitivum)를 부여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성 토마스와 다르다. 즉 이미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유형성의 형상이 있다. 만일 이성혼이 인간에게 단순한 존재만을 부여한다고 한다면, 인간은 실제로 죽는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은 인간의 '존재성'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영혼과 신체가 그들 자신의 실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인간으로서의 인간의 존재는 한 영혼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한 〈합성체〉로서의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영혼이 〈단순한 존재〉만올 부여하여 신체에는 다른 여하한 형상도 없다고 한다면, 신체로부터 영혼의 분리는 인간으로서의 인간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678 그러나 의지는 지성을 움직여서 개별적인 가지적 대상으로 향하게 하고 개별적인 논의를 고찰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작용인으로서 간접적으로 협력 할 수 있다. 의지는 지성에 명령함으로써 그 작용에 관해서는 상위의 원인이 라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비록 지성이 의지 작용의 원인(즉 대상의 인식을 제공하는 데서 하나의 부분적 원인으로서)일지라도 지성은 의지에 종속하는 원인이다. 

678 이와 같이 스코투스는 지성의 우위와 지복의 본질에 대한 토마스의 이론을 거부하고 아우구스티누스적인 프란치스코회적 전통에 충실했다. 토마스주의의 입장을 채용하는가 스코투스주의의 입장을 채용하는가 하는 것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양자 모두가 지복은 넓은 의미에 있어서 지성과 의지의 두 능력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코투스에 대해 비이성주의니 순전한 주의주의니 하고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의 입장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제50장 스코투스 6: 윤리학 
690 그러므로 스코투스는 성 토마스와 오컴의 중간에 ― 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면 ― 위치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는 변경할 수 없는 도덕률이 있다고 주장하고, 모든 도덕률이 하느님의 의지의 자의적인 결정에 의한다고는 말하지 않는 점에서 성 토마스와 일치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그는 도덕적 질서의 결정에 있어서 성 토마스보다 훨씬 더 하느님의 의지에 우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는 의무적 성격은 적어도 어떤 계명에 관해서는 하느님의 지성과는 구별되는 하느님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생각된다. 따라서 스코투스의 철학을 그 자체에서 본다면, 그의 윤리학은 자의적인 하느님의 권위주의설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691 합법적인 권위는 입법자에게 요구되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며 또 하나의 요소는 "현명" 즉 바로 이성과 일치하여 법을 제정하는 능력이다. 입법자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입법의 목적인 공동선을 위해서 법률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서 인간의 실정법은 자연의 도덕법과 하느님의 실정법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 성 토마스와 마찬가지로 스코투스는 전제 정치나, 또는 국가를 도덕의 원천으로 보는 사고방식에는 공감하지 않았다.


제51장 회고
692 로마 제국 시대에서 13세기의 종합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그리스도교 세계에 있어서의 철학의 전개를 신학과의 관계에서 고찰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교 시대의 최초 수세기에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철학, 즉 신학과 구별된 자율적인 학문이라는 의미에서의 철학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교부들은 이성과 신앙의 구별, 학문적 결론과 계시 내용의 구별을 알고 있었지만, 이성과 신앙을 구별하는 것이 반드시 철학과 신학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이론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그리스도교 호교가들과 저작가들은, 예컨대 유일의 하느님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성을 사용했으며, 또 어느 정도는 그것을 위해서 그들의 철학적인 테마를 전개했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본래 철학이 아니라 호교 (護敎)였다.

693 그러나 그들은 신학자이며 성서 주석자였고, 이따금 임시적인 철학자였을뿐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비록 철학적 주제를 추구하는 경우 일지라도, 그들은 분명한 철학이나 철학의 한 분야를 수립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른바 그리스도교적 예지 그 전체를 완성하고자 했다. 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비록 그의 저작들로부터 하나의 철학을 수립할 수 있을지라도 그는 무엇보다도 신학자였으며, 철학 제계 자체를 확립하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694 〈이해를 요구하는 신앙〉 (fides quaerens intellectum)은 솔직하게 말한다면, 계시를 바탕으로 해 앞으로 나아가든가 또는 계시의 근거를 찾아서 소급하든가 그 어느 한쪽일 것이다. 계시의 내용을 바탕으로 출발하여 신학의 교의를 할 수 있는 한, 이해하기 위해서 신학적인 교의에 이성을 적용할 때는 스콜라 신학을 낳고, 계시의 근거를 찾아서, 즉 계시의 전제들을 고찰한다는 의미에서 소급할 때는 하느님의 존재 증명을 전개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활동하는 정신은, 비록 후자의 경우에는 그 정신이 철학의 영역에서 철학의 방법으로 활동하고 있을지라도 실제로는 신학자의 정신이다. 교부들의 저작에서 탄생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정신이 〈이해를 요구하는 신앙〉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요구하는 인간〉의 정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주의가 지니는 이 측면은 특히 성 보나벤투라에 있어서 뚜렷하다. 성 보나베투라의 사상은 프란치스코회의 정서적인 사랑의 영성 가운데 깊이 침투되어 있다. 인간은 피조물, 즉 외면과 내면의 세계를 고찰하여 그 본성을 인식할 수 있다.

695 결국 그리스도교는 학문적인 의미에서의 철학으로서도 아니고 더구나 스콜라 철학으로서도 아니라 계시된 구원의 교의로서 세상에 주어졌다는 사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믿고, 그 다음으로 비로소 자신들이 믿었던 것을 옹호하고 설명하고 이해할 욕심에서 신학을 전개하고, 그리고 신학에 종속하여 철학을 전개시켰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초기의 그리스도교 저작가와 교부들의 태도일 뿐만 아니라 본래 신학자들이었던 중세 사상가들 모두의 태도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믿었고,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697 보나벤투라, 알베르투스, 토마스는 점차 증가해 가는 많은 철학상의 새로운 자료를 사용하고 통합시켰으며, 그렇게 하는 동안에 그들은 곧 자기 자신의 길을 걸어갈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셋은 철학적인 학설에 있어서는 많은 점에서 서로 다르지만, 그리스도교적인 종합이라는 이상에 있어서 는 실제로 일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철학자〉에 속하지 않고 〈성인〉에 속했다. 그리고 만일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관점에서 중세 사상가들 사이의 근본적인 대조를 찾으려고 한다면, 성 안셀무스와 성 보나벤투라를 성 토마스와 대조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성 안셀무스, 성 보나벤투라, 성 토마스, 스코투스를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과 14세기의 오컴 학파와 마땅히 대비시켜야 할 것이다.

702 완전한 의미에서의 토마스 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그리스 철학 (다른 요소들과 결합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또는 후기 철학에 비추어서 해석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의 종합이며, 이 종합에 있어서 철학은 신학에 비추어서 고찰되고 신학 자체는 상당한 정도까지 그리스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706 그리고 또한 중세 철학의 발전을 '인문주의'와 그리스 사상과 문화, 학문 일반에 대한 그리스도교 사상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성 페트루스 다미아누스가 인문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대표자라고 한다면, 성 알베르두스 마그누스와 로저 베이컨은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 대표자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토마스주의는 에지디우스 로마누스의 특징적인 정치 이론에는 없는 초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인 인문주의적인 것과의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또한 성 토마스는 자기 앞의 사람이나 자기와 동시대인에 비하여 인식과 행위에 있어서 인간의 능동성을 보다 많이 인정했으므로, 그는 인문주의적인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중세 철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찰될 수 있으며, 그 측면들마다 그 나름의 근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만일 중세 철학에 대해서 어떤 충분한 견해와 같은 것을 얻으려면, 마땅히 중세 철학을 그와 같이 고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세 철학 전반에 대한 보다 폭넓은 취급은 14세기의 철학을 논하는 다음 권의 결론으로 미루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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