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관념론 | 04 독일관념론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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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수 지음/울력


독일관념론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

  1. 변증법과 한국사회

  2. 박종홍이 본 칸트와 변증법


  한국 사회에는 변증법이 매우 깊숙이 관여해 왔다. 한국 현대사에 국한해서만 보더라도 변증법은 해방 이전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여 해방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자리하고 있었고, 해방 이후에는 국가중심의 경제력과 정치력의 확립이나 그에 대한 저항의 논리로서 작용하여 왔다. 이처럼 변증법에는 야누스적인 면이 있다. 한편에서는 부정의 힘을 통하여 지배의 절대화나 진리의 고착화, 삶의 폐쇄화에 저항하는 비판력을 지니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부정의 힘보다는 합(合)으로서의 긍정의 힘이 더 강조됨으로 인해서 지배를 정당화하고, 미래의 역사를 결정짓고, 삶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면도 있었다.


  우리의 현대사를 돌아볼 때 1945년 이전에는 국가나 국민이 모두 민족주의라는 가치 아래서 변증법이 지니고 있는 부정의 힘을 중시했다면, 그 이후, 특히 1950년 이후에는 지배자는 지배를 정당화하는 관점에서 변증법이 지니고 있는 합의 힘을 중시하였고, 반면에 민중은 국가중심의 독재 논리에 저항하는 관점에서 변증법이 지니고 있는 부정의 힘을 역시 중시하였다. 그래서 지도자가 추구했던 변증법은 복지의 땅을 약속하는 발전의 길로 칭송받았고, 민중이 추구했던 변증법은 공산주의자로 몰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면은 역사적 상황들이 그 근거를 제공해 준다. 1945년 이전에는 헤겔 르네상스의 등장을 파시스트의 등장으로 비판하면서, 유물론적 관점에서 변증법을 독해하는 신남철, 박치우, 백남운 등이 주를 이루며, 이들은 하나같이 신체적 투쟁을 통하여 발전을 열어 가는 변증법의 부정성을 강조했다면, 1960년 이후에는 헤겔의 변증법을 국가 주도적 관념변증법으로 해석하고 개발독재를 정당화하는 변증법의 합(긍정)의 힘을 강조했다. 변증법이 이렇게 전혀 다르게 읽히게 되는 상황은 박종홍의 변증법 독해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그는 50년대 이전에는 변증법의 부정적 힘을 부각시켰다면, 그 이후에는 합으로 나아가는 긍정의 힘을 강조하였다.


  이 당시 국민교육헌장과 유신헌법에 관여했던 일군의 철학자와 법학자는 모두 헤겔의 관념 변증법을 통하여 국가 중심적 관념변증법으로 미화하는 일에 동참하였다. 1960년대, 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서 진행된 개발과 안보의 논리는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합법적으로 구속하는 현상을 지니고 있었다. 경제성장논리 아래서 진행된 산업화는 인간의 소외를 극명하게 드러내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과잉 억압적인 사회 현상에 분노하는 계층을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이들은 더 이상 합(合)을 중시하는 기존의 변증법 속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당시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은 아직도 이런 모순을 읽어 내고 분석해 내는 비판적 의식 능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당연히 사회변혁의 주체는 노동자보다는 학생 집단에 더 중심이 실리게 되었다. 


  그래서 1970년대 이후는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변증법의 부정적인 결과를 차단하기 위해서 네오마르크스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부정의 변증법’이 매우 강하게 부각되었다. 익히 알다시피 ‘부정의 변증법’은 서구의 학생 집단을 중심으로 문화운동을 주도했던 중심 이론이다. 이 이론은 동구 공산권의 당관료주의와 서구 사회의 기술관료지배 전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들은 마르크스의 노동이론이나 노동주체만으로는 후기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도입하여 인간 이성의 도구화와 일차원화된 인간의 내적/외적 상황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들은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더 이상 외적인 경제적 조건에 국한해서 다루는 맑시즘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특히 이 이론은 정과 반을 거쳐 합(合)으로 나아가는 기존 변증법이 합(合)에 너무 힘을 실어 줌으로써 과정상의 ‘부정(反)’이 지니고 있어야 할 본래적 가치를 소실시켰음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고 있다. 


  헤겔의 변증법 역시 부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도달하는 보편자나 무한은 ‘추상적 보편’이나 ‘악무한’(das schlechte Unendlichkeit)에 불과한 것으로 비판하며 경계하고 있다. 그의 변증법은 부정의 과정을 충실히 담아 낸 ‘구체적 보편’, ‘진무한’(das wahrhafte Unendlichkeit)을 매우 중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이론이 본래 의도하고 있는 바가 어떠하든 그것이 현실 세계에 적용됨에 있어서 보편적인 절대주의관이 강조될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헤겔은 자신의 <법철학>에서 가족-시민사회-국가의 관계를 논하면서, 시민사회를 거치지 않은 국가는 고대의 가부장적 국가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부정의 과정으로서의 시민사회의 단계를 충실히 겪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후대의 마르크스나 그람시 등은 그의 국가관은 이미 국가절대주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비판했다.


· 유물론 ━ 마르크스: 현실의 물질적 조건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신이 자유로울 수 없다.


· 신체적 변증법: 대립되어 있는 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신체적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 부정변증법: 아도르노(1903~1969) 프랑크푸르트 학파


· <1차원적 인간> 마르쿠제(Herbert Marcuse)


· <도구적 이성 비판> M.호르크하이머

 

· 진(眞)무한 → 구체적 보편자, 악(惡)무한 → 추상적 보편자


헤겔은 자신의 <법철학>에서 가족-시민사회-국가의 관계를 논하면서, 시민사회를 거치지 않은 국가는 고대의 가부장적 국가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부정의 과정으로서의 시민사회의 단계를 충실히 겪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후대의 마르크스나 그람시 등은 그의 국가관은 이미 국가절대주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비판했다. 이처럼 우리 현실도 헤겔의 진의와는 무관하게 박정희의 정권 유지와 연장의 차원과 관련하여 변증법이 합(合)의 이름 아래 미화되고 합리화되었다. 따라서 1960년대, 70년대 한국 사회철학에서는 반(反)을 강조하는 ‘저항의 변증법’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합(合)을 강조하는 ‘긍정의 변증법’, ‘건설의 변증법’이 주축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70년대에 학생 운동사에서 변증법은 또 다시 변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변증법이 지배자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간파한 비판세력들은 변증법의 부조리를 차단하기 위해 앞서 언급되었듯이 ‘부정의 변증법’으로 강하게 무장하게 되었다. 서구 문화 운동의 주역들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학자들과 학생이 주축이 되어 전개시킨 네오 마르크스주의의 ‘부정의 변증법’은 한국 사회의 변혁 운동에 중요한 토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부정의 변증법’은 한국 사회의 변혁에만 관여한 것이 아니라 세계 전 지역에까지 파장되었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그 당시 노동자들의 의식이 깨어 있지 못하였고 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결집되어 있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국가지배주의 논리에 도전하여 모순을 타파할 수 있는 주체는 당연히 학생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그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었다. 국제적으로는 좌우 냉전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국내적으로는 군사독재로부터 비롯되는 억압의 시대가 종결을 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극단적 논리를 배격하고 점진적 변화를 도모하는 민주사회의 건설에 주안점을 두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철학계에도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하여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이나 포퍼의 점진적 공학주의, 롤즈의 정의론 등이 중점적으로 논의되었다.


· 소외 ━ 독일어: Entfremdung, 영어: alienation


· 노동소외: 노동의 상품화이자, 노동을 통한 자기 회복이 아니라 자기분열.





허버트 마르쿠제, 《1차원적 인간

임지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 비판

테오도르 아도르노, 《미학이론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유물론과 경험 비판론 - 상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유물론과 경험 비판론 - 하





독일관념론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

  1. 변증법과 한국사회

  2. 박종홍이 본 칸트와 변증법


  박종홍은 변증법적 논리학 이전에 일반논리학과 인식논리학에 대해서 다루었다. 그는 일반논리학과 관련하여 이 논리학은 대상의 형식적 구조연관에 머물러 존재의 동적인 면을 담아 내지 못하며, 나아가 논증․발견의 논리로부터 창조․발명의 논리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그는 또한 인식의 내용에 관계하지 않고 형식에만 관계하는 일반논리학의 차원을 넘어 인식의 내용에 대해서 관계하는 인식논리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비판하였다. 


· 형식논리학[formal logic, 形式論理學]: 사고(思考)의 올바른 형식 또는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변증법적 논리학이 사고의 대상인 존재의 변화만을 다루는데 비하여 존재의 초시간적·형식적 연관을 문제 삼는다.


· 형식논리학에 있어서의 근본원리는 모순율, 배중율, 동일률


· 대응설 [對應說, correspondence theory]: 진리(眞理)는, 신념이나 판단이 사실(事實)과 일치하느냐의 여하에 따라서 결정된다.


· 선험적 논리학 [Transcendental logic, 先驗的論理學]

  그는 칸트의 선험적 인식논리학에 대해서 사유의 형식과 존재의 내용을 종합하려고 한 점에 대해서 일반논리학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변증법적인 완전한 종합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하였다. 그는 칸트의 ‘넣어서 생각함(hineindenken)’이 지니고 있는 선험논리학도 인식주관에 머물러 있는 사변적 실험에 불과하지 “신체적 노작을 통하여 구체적인 실재적 형태를 만드는 데까지 나오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4) 그는 “인식은 단지 의식 내에 있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행위에 있어서 성립한다”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인식의 논리는 합리성과 실증성이 변증법적으로 상호 매개되어야 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즉 인식의 논리는 이성의 형식과 사실적 내용이 역사적 상황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상호 매개되어 구체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야 한다.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에 입각하면 일반논리학과 인식논리학은 ‘추상적인 오성의 계기’에 머물러 있다. 이 단계에서는 ‘추상적 보편성’과 ‘구체적 특수성’이 대립하게 된다. 그러므로 헤겔 역시 부정적(소극적)인 이성의 계기로 나아가야 하며 이를 통하여 ‘구체적 보편’을 확보하는 긍정적(적극적/사변적) 이성의 계기에 도달하여야 한다. “사변적 이성은 분별적인 오성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그를 내포하여야 된다. 모순율을 그저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실에 있어서 성립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는 이 당시 변증법을 부정의 부정을 통하여 현실로 되돌아오고, 향내와 향외가 지양․종합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이 당시 그의 변증법 이론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어느 정도 친화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앞서 이미 맑시즘에 대한 분석에서 제시했듯이, 박종홍은 보그다노프, 블레히노프, 부하린 등이 주장하는 기계론적 유물론이나 데보-린 일파가 주장하는 헤겔 중심의 관념론적 경향을 비판하면서, 이들의 이론이 마르크스, 레닌이 주장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의미를 충실히 살려내지 못한 점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1950년 이후로 오면서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완전히 기계론적 유물론으로 규정하게 되며, 향외적으로 이탈한 유물사상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비판할 때도 변증법에 대해서 비판하기보다는 유물론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은 의식을 단순히 존재의 반영으로 파악함으로써 의식의 자발성, 능동성을 부정해 버린 향외적 태도의 극치였다. 또한 변증법적 유물론은 물질 일원론적 관점에 서 있음으로써 감각의 주체적인 반영적 기능을 수동적인 반응적 기능으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래서 그는 레닌의 주장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물리적화학적인 반응이나 반작용을 의식적인 감각과 유사성을 가졌다고 하여 같은 반영이라고 함은 엄청난 유추의 장난이요, 이 세상의 어떤 현상 치고 반영 아닌 것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설사 정신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이 반영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인간은 그 반영을 자각하는 것인 만큼 물질 상호간의 반응작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의 의식을 카메라와 동급에 놓게 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은 미래 역사와 관련하여 법칙적 읽기를 시도하지만, 그 속에서 발생하는 양적인 차원에서 질적인 차원으로의 비약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그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역사를 형성하는 인간의 능동적 힘에 대해서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주체가 가지고 있는 인격성은 결코 물질로부터 나올 수 없다고 보았다. 자유로운 인격으로서의 향내적 요소는 결코 향외적인 측정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 키에르케고르를 중심으로 주장되는 질적 변증법은 주체의 향내적 인격성에 대해서는 많은 의미를 담아 내지만, 그것이 구현되는 향외적 요소로서의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는 이제 이 결여된 향외성을 메우기 위해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아닌 과학철학․실용주의를 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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