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2 제국 7


제국 - 10점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책세상

책읽기 20분 | 제국 7 [원문보기]

Posted on 2017년 3월 6일 by 강유원

제3장 초원 제국, 해양 제국, 그리고 지구적 경제: 제국적 지배에 관한 간략한 유형학(2)


초원제국과 해양제국의 구별은 그렇게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카르타고 전쟁: 로마 공화정에서 로마 제국으로의 이행의 결정적 계기. 로마는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해양제국으로 나아갔다.

육상제국이라해도 통합에 들어가는 비용이 과다하면 붕괴한다: 제정 러시아의 경우. “과잉 통합 요구”는 소비에트 러시아로 이어졌다.

명나라 정화의 남해 대원정: 해양 제국의 팽창과 원거리 무역의 영향이 제국의 평형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었다.

군사적 힘, 정치적 힘, 경제적 힘, 이데올로기의 힘의 균형이 제국을 유지하는 조건이다.







지난 시간에 제3장 초원 제국, 해양 제국, 그리고 지구적 경제를 읽었는데 오늘도 3장을 계속 읽는다. 지난 주에 읽었던 내용을 보면 초원제국과 해양제국은 구별된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엄밀한 것은 아니다. 모든 국가가 바다를 면하고 있지 않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물론 몽골제국처럼 바다를 면하고 있지 않는 경우 시작부터 끝까지 초원제국에서 시작해서 초원제국으로 끝난다. 그런데 대개는 대륙이 있으면서 동시에 바다도 면하고 있다. 그리고 초원제국과 해양제국의 구별이 엄밀하게 있다고 할 때 대표적인 해양제국으로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대영제국인데 사실 대영제국도 유럽 대륙의 진출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17세기 대영제국의 정치 엘리트들의 머릿속에 계속 머물렀던 생각이 로마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카르타고식의 무역대국과 로마 방식의 영토제국의 대립이었다. 그래서 영제국은 카르타고의 방식을 취해서 나아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르타고가 무작정 지중해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한니발이 로마를 침입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로마도 이탈리아 반도에 머물러있지 않고 카르타고와의 대결을 통해서 지중해로 나아간 것이고 그 당시로는 지중해에 진출했고 북아프리카까지 나아갔던 것은 로마가 단순한 영토제국에 머문 것이 아니라 육지제국에 머문 것이 아니라 해양제국까지 나아갔던 사례라고 하겠다. 그러니까 초원제국과 해양제국의 구별이 그렇게 엄밀한 것도 아니고 하나의 모형을 선택해서 그것만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서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142 17세기 내내 영국인들은 자신들을 로마의 계승자로 봐야 할지, 아니면 카르타고의 계승자로 봐야 할지 고민하며 결정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특별히 중요한 것은 카르타고식의 무역대국과 로마식의 영토 제국의 대립이었다.


로마는 워낙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때가 1400년대니까 그렇게 계산하면 천 년이 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설명모형만 가지고는 로마사를 설명해 나갈 수 없다. 그렇다 해도 긴 역사에서 결정적인 사건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나아가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은 카르타고와의 싸움이다.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카르타고와의 싸움에 직면해 그때까지 로마가 견지했던 소규모의 지배 확장 방식을 버리기로 한 원로원의 결정이 로마공화정 종언의 시작이 된다." 그러면 일단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거치면서 제국으로 나아갔다. 제국으로 나아가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겠는데 꼭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제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에서도 그런 단계들이 있다. 결정적인 계기들을 통해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가 결국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고 본다. 꼭 국가만이 아니라 가족의 경우에도 한 개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143 카르타고와의 싸움에 직면해 그때까지 로마가 견지했던 소규모의 지배 확장 방식을 버리기로 한 원로원의 결정이 로마공화정 종언의 시작이 된다.


144 자신의 사후 명성을 제국의 외적 팽창 대신에 내적 공고화를 토대로 하여 쌓겠다는 아우구스투스의 결정은, 그것이 이 책에서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제정러시아는 유럽 쪽으로도 펼쳐져 있고, 아시아쪽으로도 펼쳐져 있다. 그래서 표트르 대제 이후 러시아 귀족은 제국의 핵심요소이며 "제국의 정신을 체계화했고 제국의 방어와 운영을 책임진 유일한 사회계층"으로서 아시아의 총독 역할과 유럽의 신사역할이라는 거의 정신분열적인 이중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그런데 제정 러시아는 아시아쪽으로 더 많이 팽창했다. 그런데 "비용이 장기적으로 너무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 소비에트 연방은 제정 러시아로부터 물려받은 과잉 통합 요구 때문에(도) 좌초한 것이다." 각주 41번에 중요한 말이 들어있다. "라틴적이고 서구적인 특징을 지닌 공화국들에서 시작해 동슬라브적이고 정교회적인 지역들을 지나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에 이르는 극단적으로 상이한 지역을 하나의 사회주의적 패권 연합 안에서 묶어두는 것이 불가능함이 결국 드러났다." 이것이 소비에트 연방의 실패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제국의 논리로 본다면 소비에트 연방 안에 다양한 문화권이 있는데 그것을 사회주의 이념으로 통일해서 하나로 묶어두려고 하니 실패했다는 것. 둘째로는 상이한 문화권들을 하나의 이념 안에 두고자 한다면 아주 중요한 것이 이 문화권 안에 통용될 수 있는 이념이 사회주의 하나만 가지고는 안된다.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가 굉장히 요구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같은 책들을 보면 나오는데 어느 정도 초반에는 국가가 나서서 독점적으로 자원을 취해서 그것을 국가주도로 배분해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지만 그것이 어느 지점에 올라서면, 흔히 말하는 중진국의 늪에 빠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개발독재를 통해서 경제발전을 이룬다해서 그 경제발전모형이 계속 유효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개발독재방식을 계속 고집하다보면 70년을 넘기기 어렵다. 이를테면 1948년에 대한민국이 세워졌다고 하면 지금 70년을 향해 가고 있는데 지금 단계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눠먹기식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48 표트르 대제 이후 러시아 귀족은 제국의 핵심요소이며 "제국의 정신을 체계화했고 제국의 방어와 운영을 책임진 유일한 사회계층"으로서 아시아의 총독 역할과 유럽의 신사역할이라는 거의 정신분열적인 이중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149 그러나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장기적으로 너무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 소비에트연방은 제정 러시아로부터 물려받은 과잉 통합 요구 때문에(도) 좌초한 것이다.


149 "라틴적이고 서구적인 특징을 지닌 공화국들에서 시작해 동슬라브적이고 정교회적인 지역들을 지나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에 이르는 극단적으로 상이한 지역을 하나의 사회주의적 패권 연합 안에서 묶어두는 것이 불가능함이 결국 드러났다."


소비에트 연방은 제정 러시아로부터 물려받은 과잉 통합 요구 때문에 좌초했다는 것은 일단 영토 논리로만 해도 그러하다. 소비에트 연방은 제정 러시아와 마찬가지로는 국민국가는 아니었다. 국가 내부에서 비교적 단일한 정치적•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했던 것. 사회주의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도 않았다. 이런 문제는 지금 유럽연합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 151페이지를 보면 "오늘날 유럽연합은 원칙적으로 이 〔책임 분배의〕 문제를 지속가능한 해법을 가지고 풀어야 하는 과제 앞에 있다." 유럽연합도 느슨한 의미에서의 제국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만 가지고 해결될 것인가. 워낙 독일, 프랑스 이런 나라들 유럽 연합의 중심이 되는 나라들이 국민국가의 전통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할만한 것이 있겠는가. 


149 국가가 내부에서 비교적 단일한 정치적•문화적 정체성〔동일성〕을 형성하고, 그 정체성〔동일성〕으로부터 다른 국가들에 대해 자기를 주장하기 위한 힘과 영향력을 얻는다면, 제국은 다른 경우라면 국가들 사이에서 작용할 대립과 갈등을 자기 안에서 해결해야 하며, 그 대립과 갈등을 생산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151 오늘날 유럽연합은 원칙적으로 이 〔책임 분배의〕 문제를 지속가능한 해법을 가지고 풀어야 하는 과제 앞에 있다.


다른 사례를 들어보면 "수군 제독 정화의 지휘 아래 진행된 엄청난 비용이 드는 대규모 원정 후에 중국인들이 해양 진출을 그만"두었다. 카를로 치폴라의 《대포, 범선, 제국》에도 여러 번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그때 명나라가 계속 해양제국으로 나아갔더라면 잘되지 않았을까 하는 얘기를 하지만 항상 역사에서 가정법을 어이없게 적용하는 경우고 이 책에서도 분명하게 얘기한다. 그것은 "강하게 중원에 집착하는 중국인들의 제국 의식의 결과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양에서의 팽창과 집중적인 원거리 무역의 영향이 매우 쉽게 제국의 평형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해대원정을 계속해서 정화가 인도양을 지배하고 했으면 과연 중국이 오늘날과 같은 또는 명나라 때의 그런 육지영토제국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려면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에 그래서 각주47번을 보면 "중국이 해양 활동을 지속했다면, 최근에 이른바 아시아주의의 대변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인도양으로 유럽인들이 진출하는 것을 막았을지 모른다.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해양 팽창을 지속하다가 중국 제국이 무너지고 해체되는 것도 최소한 같은 정도로 개연성이 있다." 적어도 중국제국이 유지되면서 해양을 진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양으로 계속 진출했으면 중국제국이 무너졌을 수도 있다. 그러면 유럽인들이 인도양으로 진출할 무렵에는 중국제국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역사에 가정법을 섣불리 도입하면 나머지 요소들도 함께 움직여줘야 한다는 것. 


152 수군 제독 정화의 지휘 아래 진행된 엄청난 비용이 드는 대규모 원정 후에 중국인들이 해양 진출을 그만두고, 함선을 불사르고, 가능한 한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연안무역만을 허용하기로 중대한 결정을 내린 것 역시 어쩌면 강하게 중원에 집착하는 중국인들의 제국 의식의 결과였을지 모른다. 해양에서의 팽창과 집중적인 원거리 무역의 영향이 매우 쉽게 제국의 평형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152 중국이 해양 활동을 지속했다면, 최근에 이른바 아시아주의의 대변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인도양으로 유럽인들이 진출하는 것을 막았을지 모른다.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해양 팽창을 지속하다가 중국 제국이 무너지고 해체되는 것도 최소한 같은 정도로 개연성이 있다.


그것에 이어서 중요한 것은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에 대해서 얘기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제국이라는 것은 군사적 힘, 정치적 힘, 경제적 힘, 이데올로기적인 힘, 이 네 가지 요소로 움직여 나아가는데 특정한 국면에서는 군사적 힘이나 정치적 힘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경제적 힘이나 이데올로기적인 힘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문명의 매력(이데올로기적 힘)은, 돈(경제적 힘)과 함께, 경계 지역의 주민들로 하여금 제국을 지지하도록 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제국이 얼마나 잘 유지되느냐 하는 것은 결국 네 가지 종류의 힘을 얼마나 균형 있게 쓸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154 호혜성에 기반을 둔 국제 세계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네 종류의 힘을 국가 내부에서 서로 균등하게 맞추도록 하는 반면에, 단일하지 않은 제국의 주변부들은 어떤 경우에는 군사적 힘이나 정치적 힘을 더 많이 사용할 것을, 다른 경우에는 경제적 힘이나 이데올로기적인 힘을 더 많이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155 문명의 매력(이데올로기적 힘)은, 돈(경제적 힘)과 함께, 경계 지역의 주민들로 하여금 제국을 지지하도록 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스페인의 경우를 보면 한 때 전 세계를 호령하는 하나의 제국이었다. 그런데 적국과의 경쟁을 통해서 유럽에서 스페인의 권력이 무너졌다. 그게 바로 군사적 우위를 잃어버린 것. 문제는 군사적 우위의 상실을 보충할 수 잇는 다른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경제적 힘은 유럽의 경쟁국들보다 작았고 정치적 힘은 약했고 또 이데올로기적인 힘은 오로지 대응종교개혁 기획을 통해서만 생성해낼 수 있었는데, 그 기획이 스페인에게 최소한 공감과 지지만큼 많은 적대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스페인은 제국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물론 유럽에서만 이것이 드러났고 유럽 바깥에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백 년 넘게. 태평양과 카리브 행에서는 이백 년 넘게 지속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페인 제국을 그리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얼마나 제국이 정점에 머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군사적 힘, 정치적 힘, 경제적 힘, 이데올로기적인 힘을 균형 있게 잘 갖추고 있어야 한다.


156 스페인이 유럽의 패권 세력으로, 그리고 세계를 호령하는 하나의 제국으로 부상한 것은 기본적으로 현대적이고 강력한 군사 기구 덕분이었다.


159 스페인이 군사적 우위를 잃은 것이 그토록 극적인 결과를 낳은 또 다른 이유는 군사적 우위의 상실을 보충해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스페인의 경제적 힘은 유럽의 경쟁국들이 지닌 힘보다 어쨌든 더 작았고, 스페인의 정치적 힘은 유럽의 종교적 양분과 신흥 세력 영국과의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제한되었다. 이데올로기적 힘을 스페인은 오로지 대응종교개혁 기획을 통해서만 생성해낼 수 있었는데, 그 기획이 스페인에게 최소한 공감과 지지만큼 많은 적대감을 가져다 주었다.


160 스페인의 권력 결핍은 처음에는 당연히 유럽에서만 드러났고 제국의 유럽 바깥 영토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160 스페인의 세계 제국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한 세기 반 이상, 태평양과 카리브 행에서 거의 두 세기 반 이상 지속했다. 이 긴 시간을 그저 타락과 추락의 시기로만 묘사하는 것에는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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