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3 영락제 3


영락제 - 10점
단죠 히로시 지음, 한종수 옮김/아이필드


책읽기 20분 | 영락제 3 [ 원문보기]

2. 대명제국의 탄생 / 3. 황통의 장래

- 원나라 말기의 흑사병과 천하대란
주원장은 “강남[長江 이남]의 요지인 남경에 근거지를 두고 세력을 확대했다.” “송나라 이래로 강남 지방의 경제적 발전은 이미 원나라 대에 최고에 올라 있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시류에 편승한 것이 주원장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 주원장의 황제독재체제 구축
“현실세계의 황제-관-민의 질서는 명나라 초기에 철저하게 고정화되었다. 주원장은 사람마다 각자의 계층과 신분에 맞게 위치를 정해주고 자신의 권력과 법률로 이 질서를 유지시키려고 했는데, 원나라를 대신해 중화의 새 천자가 된 주원장에 의해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유교질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유교 세계가 중국적 논리에 의해 점령되어 역설적으로 순화된 모습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전제국가 명나라의 실체였다.”

- 명이라는 나라의 성격: 명이라는 나라 자체가 다민족국가였다.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를 내세우지 않았다.

- 중화질서의 성립
국내적으로는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전제 지배관철, 대외적으로는 명나라 중심의 화이질서로 주변 국가의 행동을 규제
“천하질서와 화이질서가 교차하는 축 위에서 명나라 황제가 중화와 이적의 세계를 총괄했던 것이다.”






오늘은 제2장과 제3장을 읽으려고 한다. 2장이 대명제국의 탄생, 3장이 황통의 장래이다. 우리가 본래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가 중화질서, 즉 동아시아 제국에 대해서 뭔가를 알아보고자 한 것이었으니 제2장은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겠지만 3장은 영락제가 권력을 어떻게 찬탈했는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읽어도 되겠다. 같은 책이라 해도 책을 읽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유심히 읽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구별된다. 만약 우리가 명나라 시대에 권력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사실은 3,4장이 중요하게 읽어야 할 부분이 된다.


지난 번까지는 대명제국 이전에 원나라가 쇠퇴하기 이전에 어떻게 해서 중화이념이라는 것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자세하게 얘기했었다. 오늘은 명나라가 성립하게 된 부분에 대해서 본다. 원나라 말기는 어떠했는가. 흔히 하는 말로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제1절을 보면 "중화를 회복하다"라고 되어 있다.  홍수•전염병•왜구. 큰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역병이 돌고 외침이 있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38페이지를 보면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최동남부에 있는 이른바 '기아의 스텝지대'에 갑자기 페스트(흑사병)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중앙아시아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부 유럽에도 중요하다. "페스트는 서쪽으로 진행해 1347년에 콘스탄티노플에 도달했고 곧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일설에는 유럽인 3천4백만명, 다시 말해서 3명 중 1명이 이 병에 감염되어 죽었다고 한다." 유럽사를 할 때 14세기를 다룰 때 반드시 나오는 얘기가 바로 흑사병이다. 유럽에 괴멸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 흑사병이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과 서쪽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자연재해로 엄청난 인명을 잃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14세기가 바로 흔히 하는 말로 유럽에서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말을 하는 시기이다. 이것은 유럽에서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세계에서도 그렇다. 몽골, 원나라가 멸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38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최동남부에 있는 이른바 '기아의 스텝지대'에 갑자기 페스트(흑사병)가 발생했다. 페스트는 서쪽으로 진행해 1347년에 콘스탄티노플에 도달했고 곧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일설에는 유럽인 3천4백만명, 다시 말해서 3명 중 1명이 이 병에 감염되어 죽었다고 한다.


39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과 서쪽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자연재해로 엄청난 인명을 잃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중국 대륙에서도 상투적으로 하는 말로 천하대란이 일어났다. 이 천하대란이 일어났을 때 흔히 말하는 혼건의 난, 백련교도의 난 이런 것들이다. "원나라 말기의 반란 세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종교적 색채를 띤 집단들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색이 거의 없는 무리다. 주원장은 어떻게 해서 천하대란에서 최종승자가 될 수 있었는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성공 요인은 그가 강남의 요지인 남경에 근거지를 두고 세력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중에 명나라 수도가 되었다는 것, 연 지역의 왕으로 봉해졌던 영락제가 봉해지게 된 이유도 바로 강남의 요지인 남경에 근거지를 두고 세력을 확대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송나라 이래로 강남 지방의 경제적 발전은 이미 원나라 대에 최고의 절정에 올라 있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시류에 편승한 것이 주원장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지리적인 이점을 얻은 것이 주원장에게는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42 원나라 말기의 반란 세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동서의 홍건군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색채를 띤 집단들이다.


42 다른 하나는 종교색이 거의 없는 방국진과 장사성 같은 무리다.


43 가장 큰 성공 요인은 그가 강남의 요지인 남경에 근거지를 두고 세력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44 송나라 이래로 강남 지방의 경제적 발전은 이미 원나라 대에 최고의 절정에 올라 있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시류에 편승한 것이 주원장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주원장이 결국에는 장강 3각주를 손아귀에 쥐면서 군웅할거의 쟁패전이 끝나게 되었던 것. 그래서 "1368년 정월 3일, 주원장은 남경 남쪽의 환구에서 장중하게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새 왕조의 황제로 즉위했다. 국호는 대명大明, 연호는 광대한 무력, 즉 홍무洪武로 정했다." 장강 지역에 수도를 정했다는 것은 북쪽에 남아있는 원나라의 잔존세력이 있었고 끊임없이 해결해야 한다는 이른바 북벌이라고 하는 것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 된다. 

46 군웅할거의 쟁패전은 장사성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종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46 지정28년(1368) 정월 3일, 주원장은 남경 남쪽의 환구에서 장중하게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새 왕조의 황제로 즉위했다. 국호는 대명大明, 연호는 광대한 무력, 즉 홍무洪武로 정했다.


구체적인 상황은 명나라에 세워졌다고는 하지만 남경에 수도를 두고 있었고, 원나라의 잔존세력이 있었다는 것 때문에 북벌을 해야 하고, 북평지역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가 명나라 황제에게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일을 전개했는가를 보면 먼저 황제가 강력한 독재 권력을 구축하게 된다. 중국 황제를 만날 때 해야 하는 것인 "무릎을 꿇고 양손을 땅바닥에 댄 다음 이마가 땅에 닿게 3번, 이것을 한 세트로 3번 되풀이하는 '삼궤구고두'의 예는 주원장 때 시작되었다." 

47 이 시점에서 명 왕조의 경역은 북으로는 황하 이남, 남으로는 복건성 정도여서 중국 전역의 지배와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도 대도에 아직 원나라가 건재해 있어 강적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59 관료는 황제의 면전에서 서 있지 못했고 알현 할 때에도 매우 굴욕적인 예법이 강요되었다. 무릎을 꿇고 양손을 땅바닥에 댄 다음 이마가 땅에 닿게 3번, 이것을 한 세트로 3번 되풀이하는 '삼궤구고두'의 예는 주원장 때 시작되었다.


이 체제를 보면 "현실세계의 황제-관-민의 질서는 명나라 초기에 철저하게 고정화되었다. 주원장은 사람마다 각자의 계층과 신분에 맞게 위치를 정해주고 자신의 권력과 법률로 이 질서를 유지시키려고 했는데, 원나라를 대신해 중화의 새 천자가 된 주원장에 의해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유교질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유교 세계가 중국적 논리에 의해 점령되어 역설적으로 순화된 모습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전제국가 명나라의 실체였다." 명나라는 굉장히 강력한 황제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국가는 각자의 계층과 신분에 맞게 위치를 정해주고 고정된 체제를 마련한 것이다. 

63 현실세계의 황제-관-민의 질서는 명나라 초기에 철저하게 고정화되었다. 주원장은 사람마다 각자의 계층과 신분에 맞게 위치를 정해주고 자신의 권력과 법률로 이 질서를 유지시키려고 했는데, 원나라를 대신해 중화의 새 천자가 된 주원장에 의해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유교질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유교 세계가 중국적 논리에 의해 점령되어 역설적으로 순화된 모습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전제국가 명나라의 실체였다.



그런데 제3장을 보면 연왕이 어떻게 2대 황제인 조카를 죽이고 어떻게 해서 황제가 될 수 있었는가 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궁정 내부에서 일어난 치열한 싸움들은 차치하고 명나라 초기 체제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83페이지를 보면 지도가 하나 나와있는데 수도가 남경에 있었다. 거기서부터 북평, 오늘날의 북경까지 머나먼 땅이 남아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이것을 여러 왕들에게 나누어주고 제후로 삼았다. 이 체제가 바로 제왕분봉이라는 사적인 관계에 기초한 체제는 명나라만의 특이한 포진이었다. 

82 '제왕 분봉'이라는 극히 사적인 관계에 기초한 이 체제는 남경에 수도를 둔 명나라만의 특이한 포진이었다.


사실은 홍무제가 살아있을 때는 홍무제 아들들이니까 통제가 가능한데 죽은 다음에 아들들이 그대로 살아있는 상태가 되면 사실은 조카로서는 괴롭울 것. 이것이 영락제가 찬탈을 일으키게 된 씨앗을 심어놓게 된 사건이다. 그래서 강력한 황제 독재체제를 세웠지만 동시에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는 제왕 분봉체제를 가져갈 수 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모순이 생겨난다. 황제집권과 지방분과화인데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한다 해도 심각한 문제가 있게 된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차라리 연왕에게 황태자를 주고 네가 해라 했으면 조카를 죽이고 황제가 되는 일은 없었겠는데 그게 적자를 중요시 여기는 문제 때문에 미묘한 문제가 발생한다.

85 제왕 분봉체제는 애초부터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모순을 안고 있었다. 중앙집권화와 황제권의 강화는 명나라 중앙정부가 지향한 방침인데, 뭐라고 해도 그것에 역행하는 '분권화'의 위험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주원장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황제와 왕들은 부자관계였으므로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주원장은 장군들에게 군사권을 맡겨서 생기는 위험성을 육친의 연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2장에서 다시 원명 교체기라고 하는데 이 원명 교체기가 정말 어떤 시기였는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화체제를 명나라를 한족 중심국가다 말을 한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되었는데, 그전에는 그냥 원나라에 저항해서 한족 민주주의가 복각된 시기가 명나라 아니었나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적인 사실 자체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명나라 태조실록을 보면 "몽골, 색목인은 중화의 족류는 아니지만 같이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을 받은 자들이다. 예와 의를 알고 신민지 되고자 원하는 자들이 있다면 중화의 민과 똑같이 잘 돌보고 길러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명나라 자체가 다민족국가였고, "일반적으로 한족 국가를 말할 때 한족만의 단일 민족국가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전부터 중국 역사상 그런 나라는 없었다. 명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즉 명나라를 단일민족국가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 그래서 원나라를 물리치고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여기에서 요구되는 다민족국가를 어떻게 하면 하나로 결집시켜서 나라를 발전시켜 나아갈 것인가를 생각해볼 때 중화의 논리가 들어왔다고 할 수 있겠다. 

51 몽골, 색목인은 중화의 족류는 아니지만 같이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을 받은 자들이다. 예와 의를 알고 신민지 되고자 원하는 자들이 있다면 중화의 민과 똑같이 잘 돌보고 길러야 한다.


51 일반적으로 한족 국가를 말할 때 한족만의 단일 민족국가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전부터 중국 역사상 그런 나라는 없었다. 명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52 중화의 회복은 이념적으로 사실에 비춰보아도 한족 국가의 부흥은 아니었다. 중화의 민이 당연히 주인인 중화를 이적에게 회복시켜 명나라와 함께 새로운 중화의 세계로 중국을 재생시키는 것, 이것이 중화의 천자 주원장에게 부여된 커다란 과제였다.


그래서 동아시아 제국체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는다 할 때 제2장 3절 "명나라 초기의 체제가 의미하는 것"을 유심히 봐야 한다. 현실 세계의 명나라 질서가 어떠한지 또 북쪽에 있는 원나라 잔당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해금, 쇄국정책인데 무역을 금지하는 것. 그런데 흔히는 해금의 목적이 민간의 교역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왜구들이 날뛰는 것을 막고 대내적인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까닭에 해외무역은 결코 금지한 것이 아니라 "조공제도와 조공무역과 해금이 일체화되어 명나라의 독자적인 대외 시스템인 '해금=조공시스템'이 형성되었다."

65 흔히 명나라의 해금을 말할 때 국가가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민간의 자유로운 교역을 금지했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 견해는 건국 초기의 사정을 무시한 큰 오해다. 해금의 본 목적은 민간교역 금지가 아니라 해안의 소요를 평정하고 대내적인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67 조공제도와 조공무역과 해금이 일체화되어 명나라의 독자적인 대외 시스템인 '해금=조공시스템'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시박사 제도는 왜 폐지했는가. 저자는 "상품 유입에 따른 상품경제의 발전이 명나라의 통치기구를 흔들어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고, "연경제의 붕괴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하면서 그런데 그것보다는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명나라라는 국가의 만족할 줄 모르는 통제 욕구"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거쳐서 "명나라는 동아시아의 종주국이라는 입장에서 해상을 숙정하고 모든 대외관계를 주변 국가들의 조공이라는 한 가지로 묶어버린 것이다. 시박사의 폐지와 이에 따른 조공제도, 조공무역, 해금의 삼위일체가 그 결과였다." 그렇게 되면 천하질서가 완성되는 것. 국내적으로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전제 지배를 관철하고, 대외적으로는 명나라 중심의 화이질서가 주변국가의 행동을 규제한다. "천하질서와 화이질서가 교차하는 축 위에서 명나라 황제가 중화와 이적의 세계를 총괄했던 것이다."

68 상품 유입에 따른 상품경제의 발전이 명나라의 통치기구를 흔들어대지 않을까 하는 점도 하나의 요인일 것 같다."


68 정책의 밑바탕에 자연경제의 붕괴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었던 것은 거의 틀림없다.


68 이런 이유를 포함해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명나라라는 국가의 만족할 줄 모르는 통제 욕구 때문일 것이다.


68 명나라는 동아시아의 종주국이라는 입장에서 해상을 숙정하고 모든 대외관계를 주변 국가들의 조공이라는 한 가지로 묶어버린 것이다. 시박사의 폐지와 이에 따른 조공제도, 조공무역, 해금의 삼위일체가 그 결과였다.


71 중화제국의 존립근거인 천명사상과 화이사상은 명 초기에 이르러 비교가 불가능한 전제국가를 탄생시켰다. 명나라는 국내적으로는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전제 지배를 관철하고, 대외적으로는 명나라 중심의 화이질서로서 주변국가의 행동을 규제했다. 천하질서와 화이질서가 교차하는 축 위에서 명나라 황제가 중화와 이적의 세계를 총괄했던 것이다.


2장 대명제국의 탄생을 읽어보면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이 있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질서와 통일 추구할 것인가. 일단 대내적으로는 천하질서를 회복하고 그런데 북쪽에는 여전히 원나라 잔존세력이 있고, 남동 해안에는 왜구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무력으로 제압한 다음에 그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호출된 논리, 또는 새롭게 다듬어진 논리가 바로 화이질서다 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역사적인 통찰이다. 그런데 그런 통찰에 덧붙여서 그 시대의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어떤 사상 논리가 동원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정치사상의 영역이다. 정치사와 정치사상이 맞물려있다. 정치사상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사건이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부제로 이 부분이 취약하다는 느낌은 조금 있으나 선조 시대 동인과 서인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재미있는데 지겹다는 느낌도 있다. 현실세계에 들어간 인간을 움직이는 작동논리와 방에 앉아서 책만 읽는 인간을 움직이는 작동논리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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