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4 폭정


폭정 - 10점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열린책들


책읽기 20분 | 폭정  [ 원문보기]

티머시 스나이더(지음),  <<폭정 –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

원제: Timothy Snyder, On Tyranny: Twenty Lessons from the Twentieth Century (2012)


“20세기 유럽사는 사회가 분열될 수 있고,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 수 있고, 도덕이 땅에 떨어질 수 있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손에 총을 그러쥔 책 죽음의 구덩이 위에 서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필연과 영원, 이 두 가지 태도는 전부 반역사적이다. 그 둘 사이에는 오직 역사 그 자체만이 서 있다… 역사는 우리를 책임지는 존재로 만든다.”







오늘은 티머시 스나이더의 《폭정》을 읽는다. 《폭정》은 원제목이 'On Tyranny' 일반적으로 정치사상책에서는 참주정으로 번역되는데 이것을 폭정으로 번역했다. 참주정이라고 하면 사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울 수 있다. 전문용어는 아닌데 전문용어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포클레스의 희랍드라마 오이디푸스왕도 원래 제목은 Oidipous Tyrannos으로 참주 오이디푸스이다. 폭정을 저지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폭정이라는 번역이 좋은 것 같다. 부제가 'Twenty Lessons from the Twentieth Century' 20세기로부터 우리가 얻게 되는 스무 가지 교훈이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1969년 미국 오하이오 주 출생. 중유럽 및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이다." 미국에서 69년생이면 연구를 자기가 직접 하기 전에는 폭정에 대해서 경험의 기회가 없었을 것. '중유럽 및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연구'한다 하면 유대인들 대학살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인데, 1948년 런던에서 태어난 토니 주트와 대화한 것이 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것인데 《20세기를 생각한다》, Thinking the Twentieth Century. 이 책이 사실 더 재미있는 책이다. 사실 티머시 스나이더보다는 토니 주트의 책을 먼저 읽었는데 《포스트 워》, 《재평가 -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이 있다. 토니 주트는 충분히 이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다. 토니 주트는 유대인이고 중동부유럽에서 런던으로 도망나온 유대인의 자손이다. 《폭정》을 읽고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이 책이 나왔는가가 궁금하다면 《20세기를 생각한다》를 읽어볼 만하다. 그런데 《20세기를 생각한다》는 읽기가 만만하지가 않다. 대화록이기 때문에 이것을 읽을 때는 주변의 이런저런 사정들을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한 책이다. 기회가 되면 이 책도 책읽기20분에서 읽어보려고 한다. 티머시 스나이더의 《폭정》는 오늘 한번만 읽고 다음 시간부터 《파시즘》을 읽는다.


《폭정》은 간단하게 말하면 20세기 서구사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파시즘이었다. 그 파시즘에서 배우는 스무 가지 교훈을 가리킨다. 머리말을 보면 "헌법 제정자들은 고대의 철학자를 따라 자신들이 <폭정>이라 이른 악폐를 피하려 애썼다." 그런데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 또한 쇠퇴와 몰락의 역사라는 것이다." 폭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의 민주주의는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유럽의 민주주의 체제들은 우파 권위주의와 파시즘에 자리를 내주고 무너져 내렸다. 1922년에 수립된 소련 공산 정권은 1940년대에 유럽으로 자신의 모델을 전파했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유럽사는 사회가 분열될 수 있고,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 수 있고, 도덕이 땅에 떨어질 수 있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손에 총을 그러쥔 책 죽음의 구덩이 위에 서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둘 다 세계화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런 20세기 서구사회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 들어있다. 본인은 1960년대에 태어나서 70년대 한국사회를 살고 지금 2017년까지 살아오고 있지만 한국사회는 그 속에서 굉장히 다양한 정치체제의 스펙트럼을 겪어왔다. 예전에는 박정희 정권을 유사 파시즘체제라고 생각했었다. 청소년기를 보낸 시기가 그때였고, 전두환 정권 때 20대를 보냈다. 그래서 파시즘에 대해서 일종의 증오심이 있었다. 리버럴한 사람 입장에서는 항상 파시즘이 언짢았던 것. 유럽에서는 20세기가 파시즘 때문에 거대한 살육의 현장이 되었던 시기이고, 저자는 그래서 "20세기에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에 굴복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파시즘, 나치즘, 공산주의를 묶어보면 한마디로 전체주의다. 전체주의 시스템에 굴복하였던 시기. 그런데 저자는 현재 21세기가 다시 그런 파시즘, 나치즘, 공산주의에 굴복하는 경향들을 군데군데 보이고 있다는 것. 그러니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금 20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되새겨보고 그것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한 가지 이점이 있다면 그들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때이다. 이 책은 20세기로부터 얻은 스무 가지 교훈을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 제시한다." 사실 2017년의 한국은 이 스무 가지 교훈을 얻어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전혀 다른 상황으로 새로운 구조 위에서 사유를 달리하게 되면 파시스트적인 또는 전체주의적인 심성구조를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가 한다. 역사는 물처럼 흘러가고 있어서 우리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 결정적인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지만 가끔은 알 수도 있다.


13 아리스토텔레스는 불평등이 불안정을 초래한다고 경고했고, 반면 플라톤은 선동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폭군의 지위에 올랐다고 믿었다.


13 헌법 제정자들은 고대의 철학자를 따라 자신들이 <폭정>이라 이른 악폐를 피하려 애썼다.


14 오늘날 미국이 폭정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우려한다면, 우리는 헌법 제정자들이 보인 모범에 따라 다른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14 나쁜 소식은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 또한 쇠퇴와 몰락의 역사라는 것이다.


15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유럽의 민주주의 체제들은 우파 권위주의와 파시즘에 자리를 내주고 무너져 내렸다. 1922년에 수립된 소련 공산 정권은 1940년대에 유럽으로 자신의 모델을 전파했다.


15 20세기 유럽사는 사회가 분열될 수 있고,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 수 있고, 도덕이 땅에 떨어질 수 있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손에 총을 그러쥔 책 죽음의 구덩이 위에 서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15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둘 다 세계화에 대한 응답이었다.


16 우리는 20세기에 민주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에 굴복하는 것을 보았던 유럽인들보다 결코 더 현명하지 않다.


16 우리에게 한 가지 이점이 있다면 그들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래야 할 때이다. 이 책은 20세기로부터 얻은 스무 가지 교훈을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무 가지를 다 얘기할 필요는 없고, 몇 가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얘기하려고 한다. 첫째가 "미리 복종하지 말라"이다. 예측 복종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으로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나치의 잔학상에 관한 실험이다. "새로운 권위자로부터 그렇게 하라고 지시 받기만 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놀라울 만큼 기꺼이 타인들을 해하고 죽일 용의가 있었다." 권위에 의해서 뭔가가 주어지면 원래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에 관계없이 권위에 복종해서 서슴없이 남을 해치기도 한다는 것. 그래서 밀그램은 말한다. "나는 너무도 많은 복종을 목격했기 때문에 독일까지 가서 실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이 사람 생각은 독일사람들만 그런게 아니었을까 라고 했던 모양인데 그게 아니었던 것.


26 새로운 권위자로부터 그렇게 하라고 지시 받기만 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놀라울 만큼 기꺼이 타인들을 해하고 죽일 용의가 있었다. 밀그램은 이렇게 기억했다. <나는 너무도 많은 복종을 목격했기 때문에 독일까지 가서 실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제도를 보호하라" 기왕에 유지되어온 여러 가지 제도들을 쉽게 망가뜨리려고 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그 다음이 "일당 국가를 조심하라", 넷째가 "세상의 얼굴에 책임을 져라" 그리고 뜻 깊게 읽는 부분이 "직업 윤리를 명심하라"이다. 히틀러 당시에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재판없는 처형은 없다는 규범을 법률가들이 따랐다면, 동의 없는 수술은 없다는 규정을 의사들이 받아들였다면, 노예 노동 금지를 기업가들이 지지했다면, 살인과 관련된 서류 작업의 처리를 관료들이 거부했다면, 나치 정권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잔혹행위를 실행에 옮기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일개 개인과 정부가 윤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직업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면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 따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52 재판없는 처형은 없다는 규범을 법률가들이 따랐다면, 동의 없는 수술은 없다는 규정을 의사들이 받아들였다면, 노예 노동 금지를 기업가들이 지지했다면, 살인과 관련된 서류 작업의 처리를 관료들이 거부했다면, 나치 정권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잔혹행위를 실행에 옮기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일개 개인과 정부가 윤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직업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한다.


53 그러면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 따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다음이 "준군사 조직을 경계하라." 이게 무슨 군사조직이 있는게 아니라 나치도 돌격대니 친위대니 법 밖의 조직을 만들었다. 집단폭력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집회에서의 감정과 배제의 이념이 통합되어 무장 경호대의 양성으로 이어지면, 폭력이 분위기만이 아니라 체제까지 바꿀 수 있다. 이들은 먼저 경찰과 군대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 다음에는 경찰과 군대에 침투하고, 종국에는 경찰과 군대를 바꿔 놓는다." 어떤 경우에든지 폭력적인 시위는, 폭력이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일은 사람들을 익숙해지게 만들기 때문에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59 집회에서의 감정과 배제의 이념이 통합되어 무장 경호대의 양성으로 이어지면, 폭력이 분위기만이 아니라 체제까지 바꿀 수 있다. 이들은 먼저 경찰과 군대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 다음에는 경찰과 군대에 침투하고, 종국에는 경찰과 군대를 바꿔 놓는다.


그 다음에 "어법에 공을 들여라"라는 말도 있다. "당연히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말을 할 때 어떤 용어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진실을 분명하게 알아내는데 굉장히 유념해야 한다.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여기지 말고 정말로 믿을만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92페이지를 보면 "파시스트들은 일상생활의 작은 진실들을 경멸했고, 새로운 종교처럼 울려 퍼지는 구호들을 사랑했으며, 역사나 비판적 언론보다 창조적 신화를 더 좋아했다. 파시스트들은 당시에는 새로운 미디어였던 라디오를 이용해, 사람들이 미처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선전의 북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때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결함 많은 지도자에 대한 믿음과 우리가 공유하는 세상에 대한 진실을 혼동했다. 탈진실은 파시즘의 전단계이다." 진실을 벗어난다는 것은 파시즘의 전 단계이다. 그러면 탈진실을 진실처럼 널리 퍼뜨리는데 큰 공헌을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래서 사실은 언론이 적폐다. 오늘날에는 정치권력이 유지되는 것도 언론이 그것을 은폐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는 나치의 선전계몽부장관이었던 괴벨스가 잘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사생활을 지켜라", "대의에 기여하라", "다른 나라의 동료들로부터 배우라"가 나온다.


83 당연히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92 파시스트들은 일상생활의 작은 진실들을 경멸했고, 새로운 종교처럼 울려 퍼지는 구호들을 사랑했으며, 역사나 비판적 언론보다 창조적 신화를 더 좋아했다. 파시스트들은 당시에는 새로운 미디어였던 라디오를 이용해, 사람들이 미처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선전의 북소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때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결함 많은 지도자에 대한 믿음과 우리가 공유하는 세상에 대한 진실을 혼동했다. 탈진실은 파시즘의 전단계이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결론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필연의 정치학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말고 동시에 영원의 정치학은 영원한 신화에 대해서 신념을 갖지 말라고 말한다. "필연의 정치학이 일종의 혼수상태 같다면, 영원의 정치학은 최면 상태와 비슷하다. 말하자면 우리는 순환적 신화의 소용돌이를 황홀경에 빠질 때까지 응시한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충격적인 일을 저지른다. 지금 우리는 필연의 정치학에서 영원의 정치학으로, 결함 많은 순진한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혼란스럽고 냉소적인 파시즘 과두 체제로 이행하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필연과 영원, 이 두 가지 태도는 전부 반역사적이다. 필연과 영원의 정치학 이전에 배제의 정치학이 있다. 사소한 징표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배제하고 그들을 악의 무리로 몰아붙이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161 필연의 정치학이 일종의 혼수상태 같다면, 영원의 정치학은 최면 상태와 비슷하다. 말하자면 우리는 순환적 신화의 소용돌이를 황홀경에 빠질 때까지 응시한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충격적인 일을 저지른다. 지금 우리는 필연의 정치학에서 영원의 정치학으로, 결함 많은 순진한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혼란스럽고 냉소적인 파시즘 과두 체제로 이행하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162 필연과 영원, 이 두 가지 태도는 전부 반역사적이다. 그 둘 사이에는 오직 역사 그 자체만이 서 있다.


162 역사는 우리를 책임지는 존재로 만든다.


내일은 19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다. 어떤 경우에 우리가 폭정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개인마다 중요한 것이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일단 선거라는 것은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라고 하는 집단이 참으로 중요하게 바탕에 깔아두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선거에 임하는 양식있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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