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관념론 | 18 칸트와 헤겔 2


요청과 지양 - 10점
김석수 지음/울력


이것으로 강의정리를 끝낸다.

칸트와 헤겔 2

  1. 이성, 자연 그리고 역사
  2. 칸트의 '자연의 계획'과 헤겔의 '이성의 교지'를 중심으로 



헤겔의 종교철학

━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정신>장 부분의 '소외된 정신'이라는 곳에서 '믿음'과 '순수한 통찰'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믿음의 차원에서는 절대자가 표상으로 전락하여 자기의식의 피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반해서, 순수한 통찰은 "자기의식과 별도로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일체의 것을, 그것이 현실의 존재이건 이념의 존재이건 그 모두를 파기하여 개념으로 화하게 한다.

━ 믿음이 정신을 절대자로 받아들이는 데 반해서, 순수한 통찰은 똑같이 순수한 의식이면서도 형식상으로는 완전히 대립된다. 믿음은 절대자를 개념의 차원을 벗어나 있는 표상으로 만난다면, 순수한 통찰은 개념으로 이를 파악한다. 그래서 순수한 통찰은 믿음이 간직하고 있는 기적이나 계시와 같은 우연성을 이성의 자기 필연성으로 재정립한다.

━ 헤겔은 절대지의 단계를 종교에 두지 않고 철학에 두었다. '직관은 개념화되어야 하고, 개념은 개념적 직관이 되어야 제대로 된 지식이 된다.' 헤겔은 칸트가 개념의 운동을 계속 진행시키지 않고 궁극적 진리를 믿음의 영역에 내맡겨 버리는 것을 인간을 비하하는 마지막 단계로 보고 있다.

━ 헤겔은 '참된 신성화'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이런 유한성의 신성화 내지는 절대화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믿음은 지식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헤겔이 칸트가 도덕적 신앙을 위해 기대고 있는 "요청은 필연적인 주관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적인 객관성을 갖지는 못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객의 절대적 통일성으로서의 인식은 피안에 관계하는 믿음을 지양하여 이를 개념적으로 지양시켜내야 한다.

━ 결국 진정한 믿음은 현실 속에서 자라나야 하는데, 현실을 떠난 피안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믿음도 무력하고, 지식도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 칸트 철학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 헤겔은 지식과 믿음 이 양자가 서로 지양운동을 통해 통일되어야 한다. 그래서 헤겔은 "믿음은 지식과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의 지식이며, 단지 지식의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이처럼 칸트는 이론과 실천의 병행론을 추구하였다면, 헤겔은 동일론으로 향해 있다.

━ 헤겔의 학적 체계는 예술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철학으로 이행하는 변증법적 발전 논리에 기초하며, 학문의 정점은 철학으로 귀착된다. 그들 간에는 발전적 위계가 있으며, 예술 그리고 종교와 달리 철학은 절대자의 개념적 파악과 절대자의 자기 전개 내지 자기 직관이 가능하다.


『정신현상학』 안에서 '종교 장'의 위치

━ '자신을 정신으로 아는 정신'으로 나타나는 종교적 정신은 곧 '절대 정신'이다. 이 점에서 종교는 이미 절대지에 근접해 있다. 그렇지만 헤겔은 아직 종교의 단계가 대상 형태로 관계를 맺는 의식의 차원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종교의 정신을 '자신을 정신으로 아는 정신'으로 보았던 초기의 입장을 교정하여, 이 정신을 '직접적으로 자기의 고유하고 순수한 자기의식'으로 규정한다.


종교 이전의 계기들과의 차이

━ 자연종교를 동양의 종교와 정신에서 찾으며, 예술종교를 희랍의 민중종교와 정신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계시종교를 기독교와 게르만의 정신에서 찾고 있다. 자연종교는 의식에, 예술종교는 자기의식에, 계시종교는 즉자대자존재와 상관을 짓고 있다.

· 자연종교는 절대자를 자연적 형태로 표상하는 종교로서, 이 단계에서는 절대자는 '빛', 식물과 동물, 제작자로 표상된다.

· 예술종교는 그리소 종교에서 보듯이 절대자가 인간의 형태 가운데서 이해된다. 신은 신의 속성과 더불어 인간의 속성도 갖는다. 신은 인간의 예술적 능력이 창출한 초자연적 존재이며, 최고의 진리는 학문에서가 아니라 예술에서 찾아지고, 예술은 통속적 예술과 무관한 절대 예술이다.

━ 예술은 '절대 예술'이기는 하지만, 예술 그 자체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즉 감각적 구현이라는 한계를 이 예술 종교는 넘어서지 못한다. 예술을 통해 만나게 된 신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것은 개별성을 극복하여 구체적 보편에 이른 신이 되지 못한다.

━ 이처럼 헤겔은 계시종교를 통해 신의 인간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계시는 신의 존재가 인간에게 알려지는 사태이자 신이 타자 가운데서 자신을 아는 사태이다. 신은 인간이 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투명한 상태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타자에게 자신을 알린다. 계시하는 신은 자기 자신 안에 머무는 '순한 자기의식'을 넘어서서 자신의 타자에게 머무는 '현실적인 자기의식'이 된다.

━ 이제 더 이상 신은 단지 생각된 존재나 상상된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이른바 계시종교는 자연종교나 예술종교를 넘어간다. 성자 예수는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으로서, 이 계시를 통해서 신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이 하나가 된다. 신의 사랑은 예수를 통해 실현된다. 이 사랑은 개념의 추상성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최고 존재가 최고 존재로 알려지고 인식되는 것은 최고 존재가 구체적인 현실 가운데서 경험될 때 가능하다. 개념은 추상성을 벗어나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존재로 확인될 때 최고의 지평에 이른다. 신의 개념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가장 구체적이며 완전해진다.


이성, 자연 그리고 역사

━ 칸트는 자연을 신의 세계와 연결시키고 있다. 그는 이 초감성적인 기체로서의 예지적 자연을 통하여 과학과 종교, 도덕과 신앙, 현상와 물자체, 오성과 이성 사이의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의 역사철학에서 주장된 '자연의 계획'이나 '자연의 의도'라는 개념에는 이 의미가 잘 담겨 있다. 그는 역사철학을 "자연의 계획에 따라 보편적 세계사를 다루고자 하는 철학적 시도"라고 주장했으며, 또한 인류의 영구평화를 보장해주는 것도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자연"이라고 주장하였다.

━ 더욱 더 선한 이간이 되기 위하여 각자가 자기의 힘이 미치는 만큼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오직 자기의 타고난 소질을 사장시키지 않을 때에만, 즉 선을 향한 근원적 소질을 더 선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사용했을 때에만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될 수 없는 것을 보다 더 높은 도움에 의하여 보충되도록 바랄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이 도움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대하여 인간이 꼭 알 필요는 없다.

━ 칸트는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갈등을 비판적이고 유비적인 사고를 통하여 닮음을 지향하고 있다면, 헤겔은 동일성과 비동일성을 사변적이고 변증법적인 사고를 통하여 동일성을 지향하고 있다. 동일성을 지향하고 있는 헤겔의 눈으로 볼 때 칸트의 닮음 지향적 태도는 미완성의 철학이며, 닮음을 지향하고 있는 칸트의 눈으로 볼 때, 헤겔의 동일성 지향적 태도는 과도한 철학이 될 것이다. 결국 이성이 자기 역사를 실현해 감에 있어서 칸트는 '요청'의 돛단배를 다고 간다면, 헤겔은 '지양'의 함선을 타고 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도대체 우리는 어느 배를 타야 하는가? 진실로 어느 길이 인간의 진정한 자유의 길이 놓여 있는 역사인가? 역사란 차이성과 동일성의 갈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몸부림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차이성 속에는 독립이 존재하지만 충돌이 예약되어 있고, 동일성 속에는 안전이 존재하지만 구속이 예약되어 있다.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때로는 지혜롭게 때로는 우둔하게 이 틈바구니를 헤쳐왔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이들 두 철학자에게도 발견할 수 있다.

━ 칸트의 요청 철학에는 '자연의 계획'이 자리하고 있고, 헤겔의 지양 철학에는 '이성의 교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 두 철학자가 주장하는 개념들에는 인간 개인의 허무함과 보람됨이 점철되어 있다. 이성의 자기 자유를 위해 열정과 특수한 이해 관심을 제단에 받쳐야 하는 아픔이 있고, 그 아픔 뒤에 스며드는 생명의 보금자리가 있다. 이처럼 독일관념론의 역사철학에는 열정을 담보로 이성에 왕관을 씌우고자 하는 슬픈 운명이 담겨 있다. 그러나 칸트에게는 이성이 그 왕관을 쓸 수 있는 미래가 겸손한 약손으로 자리하고 있다면, 헤겔에게는 확신에 찬 약속으로 자리하고 있다. 칸트에게는 그 약속이 주관 내에서 이루어진 약속으로서 그 약속의 완성은 피안의 세계에 대한 기다림 속에서 요청되고 있다면, 헤겔에게는 이미 이성의 자기 역사 속에 가능성으로부터 현실성으로의 이행이 기약되어 있다.

━ 결국 칸트의 역사 철학과 헤겔의 역사 철학 중에서 어느 쪽에 서느냐는 것은 인간의 이성의 위격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이성의 유한성을 인정한다면 칸트의 '자연의 계획'으로서의 역사를 받아들일 것이며, 이성의 무한성을 확신한다면 '이성의 교지'로서의 역사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헤겔의 역사 철학은 칸트의 역사 철학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칸트와는 다른 역사 철학의 길로 나아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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