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보면 | 01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2


오뒷세이아 - 10점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2017년 11월 4일부터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변상욱의 이야기쇼 2부에서 진행되는 "강유원의 책을 읽다보면"을 듣고 정리한다. 변상욱 대기자님과 강유원 선생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팟캐스트 주소: http://www.podbbang.com/ch/11631



20171111_02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2

지난 시간에 호메로스를 《오뒷세이아》를 골라서 여정을 시작했다. 24권까지 되어있는데 1~4권까지는 주니어 텔레마코스의 이야기이다.

지난 시간에도 말했듯이 1~24권까지인데 1~12권까지가 20년 정도의 이야기이고, 13~24권까지는 사실 며칠 사이의 이야기이다. 분량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글을 쓰려는 분들도 참조하면 좋은데 '중요한 건 자세하게'이다.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을 보면 수난일이 다가오자 그 이전까지는 굉장히 박진감있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며칠간의 이야기를 단 한 줄로 써버린다. 그런데 13장부터는 정말 조밀하게 되어있다. 그게 바로 서사시적 기법이다. 서사시의 서술의 특징이 바로 이런 것이다. 특히 복음서는 에게 지역에서 흘러다니던 서사시의 여러 전통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렇다. 신약성서가 희랍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 기법을 요한이나 마태오가 가지고 있었던 것. 13~24권까지가 고향인 이타케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분량이 굉장히 많다. 특히 17~24권은 불과 며칠사이의 일이다. 여기서 오뒷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와 당신이 오뒷세우스이고 당신이 페넬로페임을 확인하는 부분이다. 사려깊은 페넬로페가 굉장히 세심하게 오뒷세우스 본인인지 확인하고 오뒷세우스도 그 시험에 응하며 잔잔하게 설명해서 그들의 재회를 드러내주는 장면이 있다. 그래서 《오뒷세이아》는 17~24권까지가 굉장히 로맨틱하지 않나 한다. 


이해는 하겠다. 잠깐의 인연으로 만났다가 아들은 생겼지만 헤어져서 20년을 전장을 떠돌다가 남편이 돌아왔는데 확인은 해야겠다. 

그 사이에 오뒷세우스도 변심을 했을 수도 있으니 확인을 해야 한다. 집에 갔는데 집에 왔다고 확신을 할 수 있는가. home에 가는 것인지 house에 가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 있다.


아들 텔레마코스에서 독보이는 부분이 있는지.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떠나야 하는데, 텔레마코스가 아직 어려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때 나타난 여신이 아테네 여신이다. 아테네 여신이 변신을 해서 나오는데 그 사람이 멘토르이다. 흔히 말하는 멘토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일단은 아테네 여신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텔레마코스가 대화를 하는데 1권 206행을 보면 아테네가 말을 한다. "그대는 그분을 빼닯았군요." 우리가 '아버지와 똑같네'라고 말을 하는데 사실 아버지와 똑같이 생겼다 해서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늘날에야 유전자 검사를 하면 되겠지만 엄마가 나보고 오뒷세우스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내가 믿을 수 없다. 내가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1.206 그토록 체격이 당당한 그대가 정말 오뒷세우스의 친자란 말이오?

아닌게 아니라 머리며 고운 눈매며 그대는 그분을 빼닯았군요.


전쟁 영웅의 아들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그대는 그분을 빼닯았군요."라고 애기할 때 “어머니께서는 내가 그 분의 아들이라고 말씀했소. 나 자신은 모르는 일이오만. 자신을 낳아준 분을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라고 말한다. 사실은 자기의 아버지는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떻게 보면 남성은 굉장히 아들에게 뭔가를 주장하기 어렵다. 민법에도 아들이 부의 자로 추정되는 자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텔레마코스는 쉽게 말하면 오바를 해서라도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아테네는 한번 해보라고 하면서 텔레마코스가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2~4권까지가 고향을 떠났다가 텔레마코스가 이타케로 다시 돌아온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면 고향이라는 것이 정말로 물리적인 의미의 고향일 수도 있지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1.219 어머니께서는 내가 그 분의 아들이라고 말씀했소.

나 자신은 모르는 일이오만. 자신을 낳아준 분을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3권에 가면 아가멤논의 이야기가 나온다. 3권의 305행쯤 가면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죽인 얘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텔레마코스에게도 너의 어머니 주변의 남정네들을 죽이라고 복수를 권유한다. 사실은 아가멤논이라고 하는 것은 실패한 경고의 사례이다. 


3.305 그러나 팔년 째 되던 해에 고귀한 오레스테스가

그자에게 재앙이 되고자 아테나이아에서 돌아와 자신의 이름난

아버지를 살해한 살부지수인 교활한 아이기토스를 죽였다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헬레네가 얘기하는 부분이다. 자기가 예전에 잡혀갔을 때 얘기를 한다. 사실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가 파리스의 아내가 되었던 헬레네를 데리고 와서 같이 사는 것이 우리 상식으로 사실 이해가 잘 안된다. 게다가 텔레마코스가 오니까 헬레네가 그 얘기를 남편 앞에서 다한다. 이 모든 것이 다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메넬라오스는 4권 266행에서 "당신이 한 말은 모두 도리에 맞는 말이오."라고 말을 한다. 희랍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사건을 전적으로 인간이 다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사건의 인간의 지분은 6대 4정도로 인간이 나눠 가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헬레네가 파리스에 간 것도 신들의 싸움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메넬라오스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헬레네가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도리에 맞다고 말한다. 여기서 희랍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을 헬레네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는 것이다.


4.265 금발의 메넬라오스가 그녀에게 이런 말로 대답했다.

"여보, 당신이 한 말은 모두 도리에 맞는 말이오."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결정되어 있는 것을 흔히 '숙명'이라고 표현하고, 그러나 신들에게 한번쯤 부딪쳐서 해낼 수 있는 부분을 '운명'이라고 쓴다.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면 '운명',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면 '숙명'이라고 나누기는 한다.

좀 더 적절한 용어를 조언하자면 '운명'이라는 것은 운과 명의 합한 말인데 바꿀 수 없는 것은 명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운이라고 쓰면 된다. 명에 해당하는 여신이 모이라 여신이고, 운에 해당하는 여신이 튀케 여신이다. 튀케가 나중에 로마신화에서 포르투나 여신으로 바뀌고, 포춘으로 바뀐다. 여기서 헬레네가 말하는 것이 희랍사람들이 생각하는 명의 영역과 운의 영역의 분별을 말하는 것이다.


아들 입장에서는 엄마를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것 아닌가. 엄마는 그런 남자를 보면서 아들을 보내야 하는 것.

그것이 사실은 모험이다. 그런데 텔레마코스가 다시 이타케에 돌아왔다는 것이 그 남자들에게는 엄청난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4권 마지막 부분에 가면 "텔레마코스가 오만불손하게도 엄청난 일을 했소. 이번 여행 말이오.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해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소." "앞으로 그는 우리의 재앙이 되기 시작할 것이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습한 바닷길을 항해하면서 매복을 해서 텔레마코스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상황이 사실은 오뒷세우스가 나중에 이타케에 들어왔을 때와 똑같다. 그러니까 1~4권의 전체 내용의 축약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4.663 텔레마코스가 오만불손하게도 엄청난 일을 했소.

이번 여행 말이오.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해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소.

어린아이에 불과한 그가 이렇게 다수인 우리의 뜻을 거스르고

그냥 떠나버렸소. 그는 배를 끌어내리고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을

가려 뽑았소. 앞으로 그는 우리의 재앙이 되기 시작할 것이니,

그가 성년이 다 되기 전에 제우스께서 그의 힘을 꺾어버리시기를!


아들이 왔으니 이제는 오뒷세우스가 고향에 와야 한다.

오뒷세우스는 바다에서 고난을 당하는 얘기들이 굉장히 많다. 음미할 부분을 보면 이 서사시 전체의 주제라고 할만한 부분이 6권에 있다. 180행을 보면 "신들께서 그대가 마음속으로 열망하는 것들을 모두 베풀어 주시기를! "이 있다. 사실 오뒷세우스가 집에 못가고 있는 것은 칼륍소라는 요정이 붙잡아서 나와 계속 살면 영원히 살게 해줄게라고 해서 못가고 있는 것. 그런데 오뒷세우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집으로 가겠다고 한다. 사실 이 서사시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오뒷세우스'이다. 《오뒷세이아》는 아주 과감하게 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인간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오뒷세우스의 선언이 여기에 들어있다. "남편과 가정과 금실지락을 신들께서 그대에게 베풀어주시기를!"은 나우시카 여왕에게 축복의 말을 하는 것인데 "금실지락"이라고 번역된 것은 희랍에서 homophrosyne라는 단어인데 '같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부부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금실 좋게 살림을 살 때만큼 강력하고 고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오. 그것은 적들에게는 슬픔이고 친구들에게는 기쁨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지요." 

 

6.180 신들께서 그대가 마음속으로 열망하는 것들을 모두

베풀어주시기를! 남편과 가정과 금실지락을 신들께서

그대에게 베풀어주시기를! 부부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금실 좋게

살림을 살 때만큼 강력하고 고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오.

그것은 적들에게는 슬픔이고 친구들에게는 기쁨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지요.


한 가정의 문제를 그렇게 크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전쟁영웅이 그렇게 말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전쟁 영웅이라고 해도 그것이 없다면 굉장히 하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완전하 의미에서 남들과 고립된 개인은 없지만 지난 몇 년을 지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으로서 인간 자체로서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 공적인 영역에 나왔을 때 얼마나 하찮은가. '동심'이라고 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같은 마음만이 아니라 예전의 나와도 지금 '같은 마음'을 갖기가 어렵다. 결국에는 오뒷세우스가 자신있게 자신의 아내와 한 마음이 되고 싶다고 말한 이유는 나의 마음이 변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전쟁 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다.



………


오늘 2번째 시간이었다.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와 오뒷세우스가 고향에 도착해서 만나게 되는 시점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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