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7 끝나지 않은 20세기 1


끝나지 않은 20세기 - 10점
이시카와 쇼지.히라이 가즈오미 엮음, 최덕수 옮김/역사비평사


Reading_20min_20141222

– 홉스봄의 규정: 장기 19세기(1789-1914), 단기 20세기(1914-1991)

– “동아시아에서는 한반도 및 중국의 분단상황처럼, 20세기적 특징이 아직도 존재”, “20세기가 탄생시켰으나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

– “길고 긴 20세기”: “동아시아에서는… 냉전 구조가 …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과 대한민국(한국)의 성립으로 인해 출현했다… 동아시아에서는 20세기에 형성된 냉전구조가 북조선과 한국,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대만)처럼 결코 붕괴되지 않은 채 확고히 존속되고 있다… 동아시아 20세기는 적어도 서구권과는 달리 1991년으로 끝났다고 말할 수 없다… 길고 긴 20세기인 것이다.”

– “중국 본토와 한반도에서는 냉전이 아닌 열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 1894년 이후 동아시아 3국은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가 긴밀하게 얽혀들어가는 상황에 처했다.

– 서구 근대국민제국 경쟁에 가담한 나라들: 영국, 제정러시아, 미합중국, 독일제국, 프랑스 제3공화정

– 일본의 대응방식: 문명개화(서구의 문물과 제도 채용, 서양화, 자본주의화), 중앙정부와 ‘일본인’의 창출, 일본의 경계선 확정

– 근대국가 일본과 동아시아 세계: “한국을 병합하고 관세자주권을 획득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주권과 식민지를 가진 국가가 되었다.”

– 1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일본의 수출산업은 활성화되고 채권국이 되었다.

– ‘안으로는 입헌주의, 밖으로는 제국주의’

– ‘베르사유-워싱턴 체제’로 인해 1925년 이후 일본의 외교정책에는 중대한 변화가 요구되었다.

참고

김영미, <<동원과 저항 – 해방 전후 서울의 주민사회사>>, 푸른역사.








오늘은 《끝나지 않은 20세기》를 읽는다. 이시카와 쇼지, 히라이 가즈오미가 엮은 책이다. 《끝나지 않은 20세기》의 큰 내용을 보면 서론/ 동아시아 '장기 20세기' 정치사가 있고, 1부 근대의 패러독스, 저항과 수용 : 1894~1930년이 1부이다. 그리고 2부 '근대의 초극' 그 꿈과 현실 : 1930~1950년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고, 3부 열전,휴전,냉전 : 1950~1970년, 4부 변화 속의 지속 : 1970년 이후, 그리고 결론이 끝나지 않은 20세기로 되어 있다. 간단히 말하면 1894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역사를 집약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일본 근대사와 관련된 부분만 읽자고 생각해보니 서론과 1부의 1장, 2장, 그리고 2부의 3장까지가 된다. 사실 4장도 내용이 좋은데 여기에 나와있는 내용들은 말하고 싶지 않다. 한반도 현대사와 맞물려 들어가는 부분들은 넘어가도록 하겠다. 오늘은 서론과 1장을 읽고, 다음에는 2장과 3장을 읽고 끝내도록 하겠다.


서론을 보면 '장기 20세기'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왜 했는가. 에릭 홉스봄이 장기 19세기(1789-1914)와 단기 20세기(1914-1991)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혁명의 시대, 극단의 시대를 쓰면서 이 말을 썼는데 여기서 이 표현을 빌려왔다. 20세기는 20세기인데 길다는 것. 20세기를 그냥 100년으로 계산하지 않고, 주요한 사건으로 끊어서 보니 20세기를 넘어가더라는 것이다. 홉스봄의 용어로 설명을 하면 1789년 프랑스혁명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유럽대전을 장기 19세기라고 말했다. 1900년대에 들어서도 14년이 넘어가는 것이고, 1800년대에 해당한다고 하지만 1700년대에서도 한 10년 그러니까 27년을 정도를 앞뒤로 가지게 되는 것. 그리고 단기 20세기라는 표현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부터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까지를 단기 20세기로 본다. 아직 9년이 남아있는데 1991년으로 본 것. 채 80년이 되지 않는 기간에 주요한 사건이 시작되고 마무리되었다는 의미에서 단기 20세기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왜 동아시아는 '장기 20세기'라고 말을 하는가. 일단 1894년부터 20세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번에 청일전쟁에 대해서 길게 읽었고 여러번 말했다. 사건을 보면 1894년 5월 말에 동학군이 전주에 입성했는데, 일본의회는 내각불신임안을 가결하고, 일본정부가 대본영을 설치함으로써 일본은 전시체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청이 군대를 파병하고, 조선은 청일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3국의 대외정책은 사실은 국내정치의 연장선 상에서 결정되었고, 또 국내 정책이라고 하는 것도 국내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주변 정세의 변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 그래서 1894년부터 저자는 20세기를 시작한다고 본다.


30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20세기의 시작과 끝을 1914년의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1991년의 소련 붕괴에 두었다. 이 두사건을 20세기 세계사를 규정하는 분수령으로 파악하고, 20세기를 '단기 20세기'라고 명명했다. 반면 19세기는 1789년부터 1914년까지로 파악해 '장기 19세기'로 명명했다.


17 1984년 동아시아 역사는 개별 국가의 역사만으로 객관적인 서술이 이루어질 수 없다. 1894년 5월 말 동학농민군이 전주에 들어간 바로 그간, 일본 의회는 내각불신임안을 가결시켰고, 이에 대응하여 일본 정부는 닷새 뒤 대본영을 설치함으로써 국내정치를 전시체제로 전환했다. 청 왕조도 즉시 군대를 파병하여 양국이 대치한 지 두 달을 넘기지 않아 한반도에서 양국의 전면전이 치러졌다. 그 후 전투에서 청나라에 대한 우위를 점하자 일본군은 농민군 제압에 나섰다.


1984년부터 1950년까지는 그냥 지냈다고 하더라도 1950년 이후로는 20세기적인 특징이 아직 남아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반도 및 중국의 분단상황처럼, 20세기적 특징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러니까 "20세기가 탄생시켰으나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하는 점에서 저자는 이 시기를 장기20세기라고 말한다. 서론에 있는 문장을 인용해서 읽어보면 "동아시아에서는 냉전 구조가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과 대한민국(한국)의 성립으로 인해 출현했다. 동아시아에서는 20세기에 형성된 냉전구조가 북조선과 한국,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대만)처럼 결코 붕괴되지 않은 채 확고히 존속되고 있다. 동아시아 20세기는 적어도 서구권과는 달리 1991년으로 끝났다고 말할 수 없다. 길고 긴 20세기인 것이다." 여기서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중국본토와 한반도는 냉정이 아니라 열전이 발생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20세기 냉전구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진영과 소비에트연방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진영의 대립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냉정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이 한번 벌어졌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1948년 9월 9일에 북한이 수립되었고, 전쟁이 벌어졌다. 한반도 열전이 끝나고서부터 냉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냉전이 1991년에 끝났는데 한반도는 그 냉전이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열전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한반도는 일단 1930년대 말에 일본제국주의체제에 의해서 구축된 전시동원체제가 사회체제로서 밑바닥에 놓여있다. 그 사회체제 위에 해방이 되면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김영미씨의 《동원과 저항 – 해방 전후 서울의 주민사회사》을 보면 그 얘기가 충분히 나와있다. 그 위에서 전쟁이 가능했던 것. 북한에서 남한으로 밀고 들어오는 전쟁이 가능했던 이유는 북한이라고 하는 곳도 국민들을 동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일 제때 갖춰져있었던 것. 북한이 친일청산을 엄청나게 했다는 것은 있지만 과연 친일청산이 과연 어디까지냐, 일본이 만들어 놓은 사회동원체제까지 청산했는가, 그것은 아니다. 남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완전한 의미에서의 사회적 차원에서의 일본제국이 심어놓은 체제는 청산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것을 확실하게 잘 이용하고 있었던 것. 정치구조, 정책 이런 것들이 바뀐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 두어야 하는 지점이 그런데에 있다. 레짐이라는 것이 체제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한반도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1930년대 후반에 구축된 국민총동원체제와 1948년에 구축된 정치체제가 결합되어 있는 상태이다. 전쟁체제이다 열전이 발생했고, 냉전으로 간 것이 아니라, 전쟁들이 계속 있었던 휴전체제이다. 여기서 벌어진 체제 논쟁이 전쟁논리를 가지고 움직여 간다는 것. 이것이 한반도에 장기20세기가 여전히 규정하고 있는 사건이다.


31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미소의 냉전구조가 붕괴함으로써 세계를 양분했던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끝났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럽을 중심으로 생각한 것이고, 동아시아에서는 20세기에 형성된 냉전구조가 북조선과 한국, 중화인민공화국와 중화민국(대만)처럼 결코 붕괴되지 않은 채 확고히 존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자본주의적 근대세계시스템에 대한 포섭과 그에 대한 저항을 기조로 하는 동아시아 20세기는 적어도 서구권과는 달리 1991년으로 끝났다고 말할 수 없다. 그와 같은 상황은 21세기를 맞이한 지금도 끝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19세기 후반 책봉체제가 붕괴한 이래 그것을 대신할 안정적인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아직까지 구축되지 않았으며, 이제 겨우 모색되는 단계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동아시아에서는 20세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이어지는 길고 긴 20세기인 것이다.


33 1945년 이후 냉전이데올로기에 규정된 정치 이념 때문에 한반도와 중국에서는 같은 민족이 서로 갈라서서 총을 겨눈 내전이 발발했다. 중국 본토와 한반도에서는 냉전이 아닌 열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제1장은 근대국가 일본의 등장과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편이다. 이 부분이 우리가 일본근대사 읽을 때는 청일전쟁과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부분이다. 서구에서 근대국민국가가 형성되고, 국민제국으로 나아가는 경쟁에 가담한 나라들이 영국, 제정러시아, 미합중국, 독일제국, 프랑스 제3공화정이다. 영국은 선도국가이다. 1942년 아편전쟁에 승리하여 홍콩을 영유하고 있었고, 제정러시아는 세계최대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미합중국은 남북전쟁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국민제국으로 발돋움하려고 하고 있었고, 독일제국은 1871년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파리에 입성해서 독일제국의 성립을 널리알렸다. 프랑스는 하비의 《파리, 모더니티》에 나오는 1800년대 중반의 파리.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썼던 당시의 유럽, 이게 지금 사실은 근대국민제국시기의 여러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이 동아시아 세계를 침략해왔는데 일본을 어떻게 대응했는가. 일체의 행동을 서구에 맞춰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일본이 차지해야 할 중심적인 가치를 손에 넣고자 했다. 동아시아에서 이렇게 대응한 것은 일본뿐이다. 그래서 아시아를 벗어나 구미세계로 들어간다는 '탈아입구'. 세가지 방법을 쓰는데 첫째가 문명개화. 서구의 문물과 제도 채용한다. 특히나 메이지국가에서 왕실의 공신연회는 프랑스식으로 한다. 일본천황가의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만들어진지 100년도 안된 것. 오래된 것으로 치면 전통의 우위를 가릴 수 없다. 서양화와 자본주의화라고 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한국에서도 통용되는 개념인 문명개화이다. 이것을 거절하면 야만이 되는 것. 그 다음에 중앙정부와 일본인을 창출했다. 일본은 중앙집권화가 상당히 늦은 상태였다. 그 다음이 대외적으로는 국가경계선을 확정하게 된다. 1871년에 봉건적인 번을 폐지하여 페번치현을 한다.


38 1842년 청나라와 아편전쟁에서 승리하고 홍콩을 영유했던 제국주의의 본가 대영제국,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진 제정러시아, 1861년에 발발한 남북전쟁으로 국토 분열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 미국, 오늘날 많은 일본인들이 해외여행으로 방문하고 있는 하와이는 이 시기까지 아직 독립국이었다. 그리고 1871년 프랑스와 전쟁에서 승리해 파리에서 그 성립을 선언했던 독일제국, 독일에 패한 프랑스는 제국 붕괴의 폐허 위에 성립된 제3공화정하에 있었다. 제3공화정 최초의 과제는 파리코뮌을 분쇄하는 것이었다.


42 우리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근대화는 '문명개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문명개화는 서구의 문물과 제도를 채용하는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서양화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43 근대화를 강력한 중앙정부를 필요로 했다.


44 근대화로 인해 명확한 국경선이 확립되었다. 막번체제하에서는 일본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지금과 달랐다.


44 1874년의 대만 출병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거쳐 오키나와는 1879년에 일본의 하나의 현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나서 일본은 군사력을 가지고 주변 나라들을 위협하고, 주변 나라와의 불평등조약을 체결하는, 즉 서구가 일본에게 강요했던 방식으로 주변을 침략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서 주변을 침략하고 마지막으로는 한국을 병합한 다음에 서양과의 불평등조약을 개정함으로써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주권과 식민지를 가진 국가가 되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일본사람들은 자기네가 서구 여러나라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섰다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 했다. 마침 그것에 순풍을 돛단듯 제1차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일본은 수출산업이 활성화되어 돈을 많이 벌게 된다. 그래서 일본이 안으로는 입헌주의, 밖으로는 제국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1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베르사유-워싱턴 체제가 성립되었다는 것. 여기서 중일전쟁을 얘기할 때 여러차례 말했던 것처럼 베르사유체제와 워싱턴 체제가 일본에서는 질곡으로 작용하게 된다. 1925년 이후 일본의 외교정책에는 중대한 변화가 요구되었다. 이것이 193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48 1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전쟁피해는 거의 없었다. 일본 군대는 중국의 독일 근거지인 칭다오를 점령했다. 예상과 달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의 수출산업은 활성화했고, 일본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변했다.


49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국가 일본의 입장에서는 "일본 국운의 발전을 위한 다이쇼 신시대의 천우"였다.


54 베르사유 체제는 독일의 부활을 봉쇄하면서 유럽의 재건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워싱턴체제는 현재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독일 퇴장 이후 제국주의 열강 간의 세력균형을 꾀하는 것이었다.


59 워싱턴체제의 수혜자였던 일본 국내에서 이 체제가 일본에게 국제적 족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생각은 곧 군사행동으로 구체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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