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중국정치사상사 | 14 백가쟁명(百家爭鳴)과 정치이성의 발전 2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 - 상 - 10점
유택화 지음, 장현근 옮김/동과서


Reading_20min_20150413  : 중국정치사상사 선진편(上)-14

이 시기에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을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4) “비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한 논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를테면 유가는 ‘인’과 ‘예’를 자기 이론의 기치로 삼았으나 도가는 이것이 ‘도’와 대립적이며 심지어 도를 파괴한 나쁜 결과라고 하였으며, 법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과 예를 철저히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보면 비판받지 않는 권위는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중정(中正)’과 ‘편격(偏激)’의 구분이 가져다 준 사상의 발전

정치이성의 발전

“정치는 사람의 능동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일이다. 여기에 이성·감정·신앙·심리·종교 등은 모두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가져다 준다. 그 가운데 이성의 제고야말로 정치적 진보와 명철한 지혜에 가장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제자백가의 쟁명은 정치이성의 발전을 대대적으로 추진”시켰다.

1) “정치를 인식과 파악이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하고 신비주의가 정치에 간여하는 일을 배제 또는 약화시켰다.”

공자, “정치는 올바름이다. 政者 正也”

2) 정치철학의 문제들: 천과 정치의 관계, 인성(人性)과 정치의 관계, 역사관과 정치의 관계

3) 정치학의 문제들: 정치운용의 규율과 기제, 정치노선과 정책

4) 통치자의 자질 문제

참조: 직하학 연구, 제11장: 순자의 직하학 수용과 발전(순자의 인성론과 직하학, 예와 법을 결합한 순자의 정치론과 직하학, 순자의 천인관계론과 직하학, 순자의 인식 방법론과 직하학)

“순자는 선진 학술의 집대성자이자 직하학궁 최후의 대학자였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백가쟁명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서 하겠다. 지난번 마지막 했던 얘기가 왕이 중한가, 선비(사상가)가 중한가이다. 士라고 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선비를 생각하면 안된다. 요즘엔 '선비질'이라는 말을 하는데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사태나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념적으로 자기가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계속해서 되풀이해서 떠드는, 철없이 이념적인 것과 말만 앞세울 때 선비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있지만 백가쟁명 시대의 士라고 하는 것은 하층 계급이었다.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 어떤 것을 영위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오로지 지식인 집단에만 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조선시대의 선비를 염두에 두고 판단하면 안되겠다.


'왕이 중한가, 선비(사상가)가 중한가' 논쟁이 전개되었다는 것은 왕과 사상사 사이의 대등한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꼭 따라야 할 권위가 없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역사를 볼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런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면 이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에게 알려주고 그것에 대해서 간단한 논평을 하는 것은 이른바 기자들일 것이다.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만족할 수 있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이런 사건들을 하나씩 낱낱이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것을 묶어서 이야기한다든가 과거에 일어났던 것을 연결짓는다든가 이런 것은 '생각한 것', 즉 사상이다. 사건의 연쇄가 있고, 그 사건들에 대한 생각, 즉 사상의 연쇄가 있는 것이다. 그런 사상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하는 것, 이것이 이른바 넓은 의미의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이 중한가, 선비(사상가)가 중한가' 논쟁을 놓고 생각해보면 이것은 언론의 자유가 있었다고 알 수 있다. 언론의 자유가 있을 때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다. 이 시대는 "비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성한 논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예를 들어서 유가에서는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인과 예를 도가는 이것이 도와 대립적이며 심지어 도를 파괴한 나쁜 결과라고 하였으며, 법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과 예를 철저히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다보니 유가에서는 공자를 최고로 숭상하였는데 동시에 다른 학파에서는 그들을 경멸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제자들끼리 논쟁을 격렬한 논쟁을 벌이면 그런 과정에서 인식수준이 더 높은 봉오리로 올라가고, 이런 것들이 인식의 심화를 촉진했다. 이것을 보면 비판 받지 않는 권위는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중정(中正)과 편격(偏激)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되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해서 판별하는 능력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정치권력이 개입해서 특정 학설을 밀어주면 사상을 질곡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백가쟁명 이후로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얘기가 정치이성의 발전이다. 실천학의 근본원리들에 대한 것을 따져보는 부분이다. 그것을 정치 이성의 발전이라는 말로 사용하고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정치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사회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총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능동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일이다. 여기에 이성·감정·신앙·심리·종교 등은 모두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가져다 준다. 정치이성이 발전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정치를 인식과 파악이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하고 신비주의가 정치에 간여하는 일을 배제 또는 약화시켰다. 이것이 정치이성의 발전해서 나오는 첫 번째 현상이다. 예를 들어서 공자가 정치는 올바름이다 라고 얘기했을 때 정치를 인간행위로 간주한 것, 이것이 출발점이다. 


그 다음에 정치이성이 발전하면서 정치에 관한 철학의 문제들을 폭넓게 토론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천과 정치의 관계, 인성과 정치의 관계, 역사관과 정치의 관계 이런 것들이다. 전국시대에 들어와 백가쟁명 시대에 들어오면 겉잡을 수 없이 논의가 쏟아져 나왔다. 


《직하학 연구》 책을 보면 제11장: 순자의 직하학 수용과 발전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순자는 선진 학술의 집대성자이자 직하학궁 최후의 대학자였다." 그러니까 순자의 직하학 수용과 발전을 보면 정치이성의 발전 전반에 관한 얘기들을 읽어볼 수 있다. 참조할 수 있도록 11장의 목차만 간단히 보면 순자의 인성론과 직하학, 예와 법을 결합한 순자의 정치론과 직하학, 순자의 천인관계론과 직하학, 순자의 인식 방법론과 직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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