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푸코의 진자 (리커버 에디션)


푸코의 진자 (리커버 에디션) - 10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열린책들


케테르

호흐마

비나

헤세드

게부라

티페렛

네차흐

호드

예소드

말후트


도판 출처

옮긴이의 말

움베르토 에코 연보




케테르

19 내가 진자를 본 것은 그때였다.

교회 천장에 고정된, 긴 철선에 매달린 구체는 엄정한 등시성의 위엄을 보이며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진자가 흔들리는 주기는 철선 길이의 제곱근과 원주율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원주율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력이 미치지 않는 무리수임에도 그 고도의 합리성이 구체가 그려 낼 수 있는 원주와 지름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기야, 그 고요한 호흡의 비밀을 접하고도 그걸 모를 사람이 있으랴). 그러니까 구체가 양극 간을 오가는 시간은, 구체를 매달고 있는 지점의 단원성, 평면의 차원이 지니는 이원성, 원주율이 지니는 삼원성, 제곱근이 은비하고 있는 사원성, 원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완벽한 다원성 등속의, 척도 가운데서도 가장 무한한 척도 사이의 은밀한 음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다.

나는 바닥의, 지점과 수직을 이루는 곳에 설치되어 있는 자력 장치가 구체의 중심부에 내장되어 있는 원통형 철주를 밀고 당김으로써 연속 동작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장치는 진자의 법칙을 깨뜨리기는커녕, 법칙 그 자체의 존재를 실증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점과의 마찰도 없고 공기 저항도 없는 진공의 공간에, 무게도 없고 신축성도 없는 끈에 매달린 물건은 영원히 규칙적인 진동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구체로 된 동추는 커다란 채색 유리를 통해 들어온 석양에 빛나면서, 흔들릴 때마다 그 빛을 되쏘았다. 동추가 되쏘는, 일렁이는 빛살은 창백했다. 옛날에 그러했듯 동추가 한 번씩 오고 갈 때마다 교회 바닥에 깔린 축축한 모래의 켜에 희미한 이랑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랑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금씩 방향을 바꾸어 점차 퍼져 가다가 이윽고 좌우 대칭의 방사선 무늬가 되어 갈 터 이고, 그 무늬는 만다라의 도상, 펜타쿨룸, 별, 비교의 장미와 흡사하리라. 아니, 그보다는 무수한 유목 대상들이 막막한 사막 위에다 남겨 놓은 역사의 흔적 혹은 뮤 대륙을 떠난 아틀란티스 백성들이 그랬듯이 태즈메이니아에서 그린란드까지, 전갈자리에서 게자리까지,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스발바르 제도까지 떼를 지어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수천 년 동안 이주를 계속한 백성들의 이야기와 흡사하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동추는 우리에게, 한 빙하기에서 다음 빙하기까지 신들의 밀사들이 거쳐 온 여로를 되밟고,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여정을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에게 되돌려 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동추는 사모아 제도에서 노바야 제믈랴로 가는 여로에서 세계의 중심인 아가르타를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제야, 거기에 그려지는 단 하나의 무늬가 극북의 땅 아발론과 남방의 사막에 수수께끼로 잠든 에이어스 바위를 하나로 아우른다는 것을 알았다.


예소드

1088 결국, 리아가 산속의 별장에서 내게 한 말은 사실인 것이다. 리아의 <밀지〉 해석, 즉 프로뱅의 밀지가 배달 명세표였다는 해석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랑조딤에서는 성전 기사들이 회동한 적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계획〉 같은 것도 없고, 밀지 같은 것도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배달 명세표는 몇 개의 칸이 비어 있기는 하나, 도움말은 하나도 없는 십자말풀이 같은 것이었다. 빈칸은, 가로 세로로 낱말이 되게 메워져야 했다. 하지만 이런 비유는 정확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다. 십자말풀이에서 엇갈리는 두 단어에는 공통되는 글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유희에서는 엇갈리는 것이 단어가 아니라 개념이고 사건이었으니 규칙이 전혀 다르다.


1091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계획〉을 발명해 내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 〈계획>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네들이야말로 여러 세기에 걸쳐 그 〈계획〉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뒤죽박죽인 저희 신화를, 논리적이고 반박할 여지가 없는 유추와 유사와 의혹을 거미줄처럼 교직한 우리 〈계획〉의 계기와 동일시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누가 계획을 발명하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수행한다면, 〈계획>은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대목에 이르면 〈계획〉은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수많은 〈악마 연구가들〉이 지도를 찾는 답시고 온 세계를 들쑤시고 다닐 것이다.

우리는, 사적으로 깊은 좌절에 빠진 채 거기에서 헤어나오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제시했다. 어떤 좌절이었더라? 벨보의 첫 번째 파일이 그것을 나에게 암시하고 있다. 벨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정말 〈계획〉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실패는 있을 수가 없다. 패배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네 잘못으로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적 의지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너는 겁쟁이가 아니라 순교자인 것이다.

너는, 필사의 운명, 네 손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무수한 미생물의 먹이가 되어야 하는 운명을 한탄하지 않게 된다. 네 발이 사물을 움켜쥘 수 없고, 너에게 꼬리가 없고, 머리카락과 이빨이 빠지는 족족 다시 나지 못하고, 네 동맥이 세월과 더불어 경화하는 것은 네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질투하는 천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인 것이다.


1093 음모, 만일에 음모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 우리가 그 전모를 알게 될 경우, 비밀이라는 것은 우리를 낭패감에서 해방시켜 주고, 필경은 우리를 구원해 준다. 비밀이 구원하지 못한다면, 비밀을 안다는 것 자체가 벌써 구원이다. 자, 이렇게 굉장한 비밀이 정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있다. 절대로 밝혀질 수 없는 비밀이라면 그런 비밀 노릇을 할 수 있다. 비밀이라는 것은, 전모를 알게 되면, 실망밖에는 안겨 주는 것이 없다. 알리에는, 안토니우스 황제 시절에 유행하던, 신비에 대한 대중의 열망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 자기는 세상의 죄를 구속할 하느님의 아들, 육화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했다. 이게 저속한 신비였을까? 그는 만인에게 구원을 약속했다. 이웃만 사랑하면 된다고 했다. 이게 사소한 신비였을까? 이어서 그는, 누구든 옳은 말을 때맞추어 하는 사람은 한 덩어리 빵과 반 잔의 포도주를 능히 하느님 아들의 살과 피로 바꾸어 만인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보잘것없는 수수께끼였을까? 그리고 그는 초대 교회의 교부들을 교화하여, 이들로 하여금, 하느님은 〈하나〉인 동시에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으니,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왔어도 성자>는 <성부>와 <성령>에서 나올 수 없다고 선언하게 했다. 이것이 물질에만 눈이 어두워져 있던 무리를 위한 단순한 교리였을까? 그러나 이로써 구원, 셀프서비스 구원의 비밀을 손안에 넣을 수 있게 된 무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전부란 말인가? 그렇다면 신비치고는 참으로 진부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던가? 그들에게는 다른 종류의 신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돌아다니며 잃어버린 지식의 보고를 찾아 헤맸다. 30데나리온의 도그마는 표면적인 베일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이 가난한 자를 위한 위화, 암시적인 상형 문자, 공기를 향한 한 번의 눈짓에 지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의 신비는? 너무나 단순했다.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다.


1095 진정한 비의 전수자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비밀은, 내용물이 없는 비밀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비밀이라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원수가 고백을 강요하지 못하고, 경쟁하는 자가 빼앗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 이르자 나는, 진자 앞에서 벌어졌던 한밤중의 의례를 보다 논리적으로, 수미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벨보는 비밀을 손안에 넣었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들〉에게 자기의 힘을 과시했다. 그들이 보인 첫 번째 충동은, 어떻게 하든 벨보로부터 그 힘을 빼앗아내겠다는 것이었다. 벨보가 비밀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북을 울려 동아리를 소집한, 알리에 같이 꾀 많은 인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벨보가 비밀 드러내기를 거절하면 거절할수록 〈그들〉은 그 비밀이 그만큼 더 위대할 것이라고 믿었다. 벨보가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그들>은 그만큼 더 굳게 벨보가 비밀을 알고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진정한 비밀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찮은 것이었다면, 벨보는 쉽사리 그것을 드러냈을 것이기 때 문이다.

수세기 동안이 비밀에 대한 수탐은 그 수많은 파문과 내분과 기습 공세 속에서도 〈그들〉을 하나로 응집시키는 구심점 노릇을 해 왔다. 그런데 바야흐로 그것이 만천하에 공개될 시점에 이르자 〈그들〉은 두 가지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두려움은, 그 비밀의 내용이라는 것이 별것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두번째 두려움은 그 비밀이 공개되면 더 이상 비밀이 없게 된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었다. 비밀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곧 존재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뜻이었다.


말후트

1128 나는 이해했다. 더 이상 이해할 것이 없다는 확신이 섰으니 나는 평화로워야 마땅하다. 승리에 도취되어야 옳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고 〈그들〉은 내가 저희들이 목마르게 찾고 있는 어떤 열쇠를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나를 뒤쫓고 있다. 남들이 나를 믿지 않고 나를 심문하려는 한, 이해만으로는 모자란다. (그들〉은 나를 찾고 있다. 〈그들〉은 파리에다 남긴 나의 족적을 밟을 터이니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지도>를 손에 넣으려고 한다. 내가 만일에 저들에게, 〈지도〉 같은 것은 없다고 하면 할수록, 〈지도〉를 손에 넣고 싶다는 저들의 욕망은 그만큼 더 뜨거위진다.


1129 늦었다. 파리를 떠나면서 단서를 너무 많이 남긴 것 같다.  지금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을 테지. 조금 있으면 이곳으로 몰려들 테지. 오늘 내가 한 생각을 모조리 여기 적어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그랬다 해도 〈그들〉은 내 글을 읽고, 여기에서 또 하나의 괴상한 이론을 유추해 내고, 내 글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밀지를 해독한답시고 세월을 보낼 테지. 〈그들〉은 이럴지도 모른다. 그자가 우리를 놀리느라고 그랬을 리가 없다. 그래, 그랬을 리가 없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존재〉라고 하는 것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망각을 통해서 밀지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쓰든 안 쓰든 다를 것이 없다. 침묵하고 있어도 침묵의 배후에서 의미를 찾으려 할 테니까. 워낙 그런 사람들이다. 계시에 눈이 먼 사람들, 말후트는 말후트일 뿐이다. 그것뿐이다.

그러나 저들에게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믿음이 없는 저들에게.


그러니 여기에서 기다리면서, 산을 바라보는 것도 좋겠지.


산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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