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외국어 전파담 ━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


외국어 전파담 - 10점
로버트 파우저 지음/혜화1117


책을 펴내며 / Preface / 初めに

01 외국어 전파의 첫 순간, 그 시작에 관하여

02 제국주의와 문화 이식의 첨병, 외국어

03 혁명과 전쟁, 그리고 외국어

04 외국어 전파의 역사는 곧 학습 방법의 변천사

05 신자유주의 시대, 영어 패권의 시대

06 21세기,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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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01 외국어 전파의 첫 순간, 그 시작에 관하여

30 근대 국가의 형성 이전에 외국어 foreign language를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직 국가가 세계 질서의 기본 단위가 되기 이전이었으니 외국이라는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고, 외국어라는 개념 역시 등장하지 않았다. 외국어라기보다 다른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다른 언어를 의미하는 정도였다. 이 책에서는 다른 언어권의 언어를 통칭해 '외국어'라고 하겠다. 이 당시에 외국어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은 지극히 제한되었다. 배운다고 해도 학습의 대상은 주로 말보다는 문자였다. 물론 필요에 따라 말을 배우는 이들도 있었겠으나 보통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만나 외국어로 대화를 나눌 일은 거의 드물었다. 따라서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는 대개 말이 아닌 문자를 익힌다는 의미였다. 방법 역시 문자를 읽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38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갈수록 그 세력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지역별로 자신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려는 시도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1517년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1483-1546)가 1522년 구약을, 1534년 신약을 평신도들이 읽을 수 있도록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를 권력자들은 반기지 않았다. 정보는 독점할수록 권위가 강화된다. 라틴어로 기록된 성경은 라틴어를 교육받은 이들만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은 대개 지배계층이었다.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성경의 메시지를 직접 읽을 수 있는 계층과 읽지 못하고 전달자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계층으로 나뉘어졌다. 직접 성경의 교리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지배계층의 독점권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라틴어 외의 다른 언어로 성경이 번역될수록 권력은 약화되게 마련이고, 지배 계층이 이런 상황을 달가워할 리 없었다.


53 우리는 앞에서 중세 유럽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곧 교회와 학문의 언어였던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 등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목적은 옛 문헌을 읽고 당시의 사상과 철학을 습득하기 위한 것임을 살폈다. 그런데 차츰 여기에 교양이라는 개념이 추가되었다. 특정 외국어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 교양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외국어를 말하고 읽을 줄 안다는 것이 오늘날로 말하면 부르주아지 계층에 속한 사람이 가져야 할 일종의 문화적 자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문화적 자본이란 간단히 말해 본인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는 문화 지식을 뜻한다.


56 외국어가 점차 부유층이 갖춰야 할 교양, 즉 문화적 자본으로 인식되면서 이 계층에 속한 여자들이 개인 교수법을 통해 너도 나도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글과 말을 함께 배우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들이 처음에 주로 배운 언어는 이탈리아어였으나 르네상스 후기로 접어들면서부터는 프랑스어가 인기를 끌었다. 유럽 전역에서 프랑스가 점차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프랑스어가 외교의 공통어로 인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약 다섯 살 무렵부터 프랑스 출신 개신교 원어민 교사에게 프랑스어 개인 교습을 받았다.


73 지배계층 외의 인도인들은 어떤 언어를 썼을까. 그 밖의 인도인들은 지배계층의 언어와는 별개로, 인도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로 인해 매우 다양한 고전어를 꾸준히 사용해 왔다. 따라서 인도에서의 언어의 유입과 변천의 역사는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즉 동 시대를 사는 이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기보다 계층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작동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산스크리트어다. 산스크리트어는 인도인의 공용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은 산스크리트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인도를 통치한 제국은 이슬람교를 믿었지만 대다수 인도인들은 여전히 불교와 힌두교 신자였고, 산스크리트어는 이들 종교의 공식언어였다. 따라서 산스크리트어는 종교의 힘으로 지속되었고, 오히려 18세기 영국의 인도 침략과 무굴제국의 쇠락으로 인해 오랫동안 인도를 지배한 이슬람 왕조에 의해 지배계층의 공용어로 사용된 페르시아어는 인도에서 쇠퇴하고 말았다.


75 국가 안의 모든 일상생활과 교육 모든 공적 활동이 하나의 언어로 이루어지는 경우 이를 두고 단일언어 국가라고 한다. 그 언어가 국어이며, 나라의 유일한 언어다. 단일언어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생애 전체를 통틀어 단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한다. 그런 이들을 단일 언어 화자 monolingual라고 한다.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일수록 그 나라의 국민들은 단일언어 화자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은 매우 자연스럽게 단일언어 화자들이 대부분이다. 일본 역시 비슷하고, 이민자들의 국가인 미국 역시 다르지 않다. 이에 비해 하나의 국가 안에서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도 있다. 이런 나라를 다중언어 국가라고 하며, 역시 다중언어 국가에 사는 사람들을 다중언어 화자라고 한다.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은 물론 역사적으로 가까이 접하던 일본과 미국의 경우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단일언어 화자가 훨씬 자연스럽게 여겨지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놓고 볼 때 단일언어 화자보다는 오히려 다중언어 화자들이 훨씬 더 많다. 그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다중언어 화자들의 비중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다.


02 제국주의와 문화 이식의 첨병, 외국어

119 유럽의 선교사들이 대륙 바깥의 이방인들에게 가르친 것은 라틴어가 아닌 바로 자신들의 모어, 자국의 국어였다. 국가라는 인식이 형성되고 국가마다 국어의 정립에 힘쓰던 때, 모든 언어의 전제이자 기본으로 뿌리깊게 형성된 소위 라틴어 패권에 대한 매우 실질적인 도전이 뜻밖에도 대륙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유럽의 각 국가들이 주도한 제국주의가 종교와 자본의 도움을 받아 세계 곳곳을 활보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제국주의 국가의 언어 역시 제국주의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세상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는 20세기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그것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


138 제국주의의 야심찬 행보가 광폭으로 치닫게 되면서 유럽인들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타자를 만나게 되었으며, 이들과 접촉면이 넓 어질수록 어쩔 수 없이 낯선 언어를 익혀야 했다. 그것은 이들의 무례한 방문을 당해야 했던 새로운 대륙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우 이질적인 언어권의 사람들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서로의 언어에 대한 학습이 필요했다. 애초에 만남의 시작 자체가 평등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국주의 자들과 그들의 방문을 받은 이들 사이에 갈등은 필연적이었고,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때 약자였던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여러 면에서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있다. 


03 혁명과 전쟁, 그리고 외국어

143 미국의 언어는 다름 아닌 영어였다.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초대형 제국인 영국의 언어도 영어인데다 역시 초강대국으로 그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미국 역시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전 세계적으로 영어의 파급력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오늘날 우리가 암묵적으로 세계 공통어로 인식하고 있는 영어의 위상은 이렇듯 19세기 영국 제국주의와 산업혁명의 확산 그리고 20세기 후반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위상 여기에 글로벌 경제구조의 등장 등으로 형성된 것이며 이로써 영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공통어가 될 발판을 마련했다.


161 특히 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현지인에게 자신들의 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기관을 설립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식민지의 엘리트들 중 제국의 지배에 충실한 이들에게 자국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쳤고 그 언어를 식민지 국가의 공식 언어로 사용하게 했다.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 더욱 쉽게 통치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영어는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 이른바 '영어권' 국가 외에도 약 55개국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공용어를 지정하지 않은 방글라데시나 스리랑카와 같은 영국의 옛날 식민지 국가에서도 영어는 공통어로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어 역시 약 29개국에서 공용어로 지정이 될 만큼 널리 퍼져 있는데, 29개국의 국가 가운데 약 21개국이 아프리카에 몰려있다는 것 역시 프랑스어 보급이 식민지배의 역사와 관련이 있음을 말해 준다.


162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제국주의 안에 자리잡은 동화 압력의 유무이다. 즉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거리가 가까우면 지배국에게는 피지배국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된다. 때문에 '타자'인 피지배 국민을 '내국인화' 시켜야만 지배국의 안녕에 방해를 덜 받는다. 일제강점기 일본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고 민족성을 말살하려고 했던 것도 같은 연장선 상에 있다. 일본 제국주의는 자신들과 가까이 있는 식민지 조선인들을 내국인화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자국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다.


04 외국어 전파의 역사는 곧 학습 방법의 변천사

210 특히 대학의 외국어 교육 현장에서 나타났는데 이는 뜻밖에도 일종의 위계를 형성했다. 외국어가 말과 글로 구분되면서 외국어에 대한 교수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드러났다. 그들은 대부분 외국어를 텍스트를 읽기 위한 장치로, '학문을 위한 도구'로 생각해 왔다. 따라서 '문학은 학문이지만 어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여겨왔다. 외국어 교육 현장에서 이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드러난 문제다. 단순히 학문과 비학문, 어학과 문학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학문적 가치와 실용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정체성의 갈등으로 인해 많은 논쟁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10 원어민 강사의 채용을 늘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습득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자는 취지의 일환이다. 하지만 원어민 강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외국어 학습은 실용적인 말하기와 듣기에 치우쳐 있고 학교는 이들에게 문학 또는 인문학 중심의 학문 탐구를 기대하거나 요구하지는 않는다. 또한 같은 외국어를 가르치긴 하지만 문학이나 인문학 관련 과목 강의 등 텍스트를 주로 읽는 강의에는 교수급 교원이 배치되고, 말하기, 듣기 관련 강의에는 강사급 교원이 배치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226 태어나자마자 언어를 습득할 때와 열두 살 무렵 이후 새로운 언어 즉 제2언어를 배울 때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던 언어 습득의 과정은 이제 대단한 노력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해진다. 언어 습득 능력은 모어를 습득하는 데는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만 제2언어를 익히는 데는 거의 작동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언어 습득 능력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12세 이후에 배운 제2언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모어처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다. 문법은 물론 발음도 마찬가지 때문에 대부분 제2언어를 사용할 때 모어처럼 자신만만하기가 어렵다. 제2언어를 모어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재능을 타고 나거나 상상 그 이상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05 신자유주의 시대, 영어 패권의 시대

302 21세기 초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국가에서 마치 제2의 언어처럼 영어를 대상으로 한 조기 교육이 유행처럼 번졌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가 이미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난 신생 국가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진 셈이다. 다시 말해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보여준 제2언어 교육의 양상은 외국어가 제2언어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즉 모어도 아니고 외국어도 아닌 제2언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이는 글로벌 시대의 언어 교육의 단면을 앞서 보여준 셈이다.


303 글로벌화가 더욱 광범위해지고 그 속도 역시 가속화되면서 전 세계 많은 사람이 모어는 아니지만 외국어보다는 가까운 제2언저, 제3언어를 어릴 때부터 배워나가고 있다. 언어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진 이들에게 다른 언어권 국가에 사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나아가 국가의 경제 또는 국적에 대한 소속감 역시 약화되고 있다.


06 21세기,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의 의미

305 동서고금을 떠나 개인이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바로 권력과 자본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속한 집단 사회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문명의 발달과 함께 권력의 양상은 변화해 왔지만 어떤 시대 어떤 문명에서도 그것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평등하게 안배된 적은 없었다. 시대와 지역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언제 어디서나 권력은 늘 불평등했다. 그것을 쥔 자와 못 쥔 자 사이의 불평등이야말로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을 쥔 자들을 소위 권력층이라 하고 이들은 곧 지배계층이라 불렸다.


316 고전어인 라틴어가 상류층의 사회적 자본으로서 기능했다면, 18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현대어인 영어와 프랑스어가 또 다른 의미에서 사회적 자본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가치의 활용 범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고 효과는 극대화됐다. 즉 강대국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의미에 더해 경제적 자본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외국어 교육은 사회적 자본 확충의 도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는 현대어가 최초로 사회적 자본의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뜻하며,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배운다 '를 통해 기대하는 가치가 18세기에 처음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23 그들이 자신들을 다른 계층과 구분 짓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소비 행위의 대상이 외국어 교육이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독특하고 희소성이 높은 아이템이었다. 외국어를 읽거나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양하게 스스로의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외국어를 배워 그 지역으로 여행을 가거나 외국어로 된 문헌 등을 통해 교양을 쌓는 것은 자신들의 경제적 여유와 지적 수준을 상징하는 장 치가 되어 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중산층 사이에 외국어 공부는 유행처럼 번졌고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외국어 교육 시장은 확대 일로를 걷게 되었다.


329 한편 영어 수출국이라 할 수 있는 소위 영어권 국가에서는 영어 우월주의 현상이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영어가 보편화되면서 영어야말로 다른 어떤 언어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가진 개인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인식은 다른 외국어에 대한 거부감으로 드러나기도 하며, 영어를 사용할 수는 있으나 원어민에 비해 발음이 부정확한 이들을 구분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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