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 - 스완 댁 쪽으로 1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1 - 10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이형식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옮긴이의 말 · 7

1부 꽁브레 · 25

옮긴이 주 · 307

작가 연보 · 341




1부 꽁브레 · 25

27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곤 하였다. 때로는 촛불이 꺼지기 무섭게 눈이 어찌나 신속히 감기는지, ‘내가 잠드는구나’ 하는 상념에 잠길 겨를조차 없었다. 그리고 반시간 후, 잠을 청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나를 다시 깨우곤 하였다. 아직도 손에 들고 있으리라 믿던 책을 제자리에 다시 놓고 촛불을 불어 끄려 하였던 것이다. 또한 자면서도, 내가 막 읽은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생각들이 조금 기이한 양상을 띠기도 하였다. 책의 내용들, 가령 어느 교회당이나 어떤 사중주곡, 프랑수와 1세와 까를로스 낀또 간의 적대관계 등이 곧 나 자신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한 믿음이 잠에서 깨어난 후 몇 초 동안 남아 있곤 하였다. 그 믿음이 나의 이성에 충격을 주지는 않았으나, 마치 비늘들처럼 나의 두 눈을 짓눌러서, 촛대에 더 이상 불이 켜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의 눈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였다. 그다음, 윤회 후 전생에 가졌던 생각들이 그러하듯, 그 믿음이 불가사의해지기 시작하였다. 책의 내용이 나로부터 분리되었고, 그리하여 내가 그것에 나 자신을 접착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나의 뜻에 달리게 되었다. 나는 이내 다시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나를 감싸고 있는 어둠을 발견하고 몹시 놀라곤 하였다. 나의 눈에는 부드럽고 편안한 어둠이었으되, 아마 나의 오성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 어둠이 나의 오성에게는 원인도 없고 불가해하며 진정 모호한 것으로 보였다. 나는 몇 시쯤이나 되었을까 자문하곤 하였다. 숲 속에서 들리는 한 마리 새의 노래처럼, 상당히 먼 곳으로부터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사물들 간의 거리를 부각시키면서, 그 시각, 가까운 역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어느 나그네가 가로질러야 할, 인적 끊긴 들판의 광막함을 나에게 선명히 드러내 주곤 하였다. 나그네가 따라 걷고 있는 좁은 길은, 그러한 경우, 새로운 장소, 익숙하지 않은 행동, 낯선 램프 아래에서 조금 전에 나누었고 아직도 밤의 적막 속에서 나그네를 따라오고 있는 대화와 작별인사, 임박한 귀환의 기쁨 등에 자극 받아, 그의 추억에 각인될 것이다.


나는, 우리의 어린 시절 볼처럼 통통하고 시원한 베개의 측면에 나의 볼을 부드럽게 눌러 기대곤 하였다. 그러다가 나의 회중시계를 보기 위하여 성냥개비 하나를 그었다. 자정이 가까웠다. 어쩔 수 없이 여행길에 올라 낯선 호텔에서 잘 수밖에 없게 된 환자가, 급작스러운 병세의 악화로 잠에서 깨어, 방의 출입문 밑에 비친 햇살을 발견하고 기뻐할 순간이다. 벌써 아침이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잠시 후면 하인들이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 초인종을 누를 수 있을 것이며, 그를 도우러 누가 올 것이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그에게 고통을 감당할 용기를 준다. 정말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다시 멀어져 간다. 그리고 방문 밑에 있던 햇살도 사라졌다. 자정이다. 이제 막 가스등을 끈 것이다. 마지막 하인이 떠났고, 따라서 아무 도움 받지 못한 채 밤새도록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나는 다시 잠들곤 하였는데, 때로는 그 다시 깨어나 있던 동안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여, 내장재들의 유기적인 삐걱거림을 듣고, 어둠 속 만화경을 포착하기 위하여 눈을 뜨며, 가구들과 방 그리고 모든 것들이 잠겨 있던 잠의 세계를 의식의 찰라적인 미광 덕분에 음미할 시간밖에 갖지 못하였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의 작은 한 부분에 불과했으며, 그럴 때마다 그것들의 무감각 상태로 신속히 되돌아가 그것들과 합일되곤 하였다. 혹은, 잠을 자면서, 영영 흘러가 버린 내 원초적 생의 한 시기와 다시 합류하였고, 종조부께서 나의 곱슬머리를 잡아당기실 때 느꼈고, 그것을 자르던 날—나에게는 신기원이 되는 날이다—말끔히 씻긴, 그 두려움과 같은 유년기 공포감을 그 시절과 똑같은 상태로 다시 느끼곤 하였다. 잠든 동안에는 곱슬머리를 자른 그 사건을 잊고 있었으나, 종조부님의 손아귀를 피하기 위하여 깨어나는데 성공한 즉시, 그 사건의 기억을 되찾았다. 하지만 나는 꿈의 세계로 되돌아가기 전에, 예방 조치를 취하느라고, 베개로 나의 머리통을 완전히 감싸곤 하였다.



때로는,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태어났듯이, 내가 자는 동안, 잘못 놓인 나의 허벅지로부터 여인 하나가 태어나곤 하였다. 내가 막 음미하려던 쾌락으로 그녀가 형성되어 있었던지라, 나는 그 쾌락을 그녀가 나에게 제공한다고 상상하였다. 그녀의 몸뚱이에서 내 자신의 열기를 느낀 나의 몸뚱이가 그녀의 몸뚱이와 합쳐지려 하는 바람에, 내가 잠에서 깨어나곤 하였다. 내가 겨우 몇 순간 전에 떠나온 그 여인에 비하면, 그녀 이외의 나머지 모든 인간들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이들처럼 보였다. 나의 볼은 아직도 그녀의 입맞춤으로 인해 뜨거웠고, 나의 몸뚱이는 그녀의 몸뚱이에 짓눌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또한, 가끔 일어난 일이지만, 그녀가 혹시 나와 실제로 친분을 맺었던 어느 여인의 모습을 띠었을 경우, 나는, 열망하던 도시를 직접 보기 위하여 먼 여행길에 오르면서 몽상이 주는 매력을 현실 속에서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그녀를 다시 찾아내는 일에 나 자신을 몽땅 바치려 할 지경이 되곤 하였다. 하지만 친분을 맺었던 여인의 추억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었고, 나는 이내 꿈속의 여인을 완전히 망각하였다.


227 꽁브레 주위에서 산책을 하려면 두 ‘방면’을 향해 길을 떠날 수 있었는데, 그 두 방면이 서로 정반대편에 있었던지라, 그것들 중 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우리 집에서는 각각 다른 문을 통해 나가곤 하였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그 두 방면이란, 그곳으로 가려면 스완 씨의 소유지 앞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스완 댁 쪽이라고도 부르던 메제글리즈-라-비느즈 쪽과 게르망뜨 성 쪽이었다. 메제글리즈-라-비즈느에 대해서는,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라곤 그 ‘방향’과 일요일이면 꽁브레에 와서 산책하던 낯선 사람들뿐이었고, 그 사람들을 숙모님도 우리도 그 시절에는 ‘전혀 몰랐고’, 따라서 그러한 사실 때문에, 그들이 ‘메제글리즈에서 온 사람들일 것’이라 여겼다. 게르망뜨에 대해서는 뒤에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어 있었지만, 아주 먼 훗날에서야 그랬다. 그리하여 나의 소년 시절 내내 메제글리즈가 나에게, 꽁브레를 벗어나, 이미 더 이상 꽁브레의 지형을 닮지 않기 시작한 땅의 습곡을 따라 아무리 멀리 가도 시야에서 사라지는 지평선처럼,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면, 게르망뜨는, 자기 고유 ‘방면’의 실제적이기보다는 이상적인 종착지처럼, 다시 말해 적도선이나 극지나 동방과 같은 추상적인 일종의 지리학적 표현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그 시절에는, 메제글리즈에 가기 위하여 ‘게르망뜨 쪽으로 접어든다’든가, 혹은 반대로, 게르망뜨에 가기 위하여 메제글리즈 쪽으로 접어든다는 말이, 나에게는 서쪽으로 가기 위하여 동쪽으로 접어든다는 말만큼이나 의미 결여된 말로 들렸을 것이다. 아버지가 항상 메제글리즈 쪽에 대해 당신께서 보신 가장 아름다운 평원 풍경이라 말씀하셨고, 게르망뜨 성 방면에 대해서는 하천 풍경의 전형이라고 하셨던 터라, 나는 그것들을 각각 독립된 두 개체로 상상하여, 오직 우리 오성의 창작물에만 속하는 응집력과 통일성을 그것들에게 부여하곤 하였다. 그리하여, 그 두 방면의 가장 작은 부스러기조차도 나에게는 진귀하게 여겨졌으며 또 그 양쪽 특유의 탁월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던 반면, 그 두 곳 중 하나의 신성한 땅에 도달하기 전에 만나는 순전히 질료적인 길들, 평원 풍경의 이상인 듯 그리고 하천 풍경의 이상인 듯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길들은, 연극에 미친 관람객이 어느 극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유심히 살피는 골목길들만큼이나 바라볼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특히 나는, 그 두 방면 사이에 킬로미터로 측정할 수 있는 거리보다는, 그것들을 생각하던 내 뇌수의 두 부분 사이에 있는 거리, 그 두 방면을 멀찌감치 떼어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분리시켜 서로 다른 도면 속에 넣는 거리를 상정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구획이 더욱 절대적으로 변한 것은, 같은 날 양쪽으로 산책을 떠나는 일이 결코 없고, 한 번은 메제글리즈 쪽으로 다른 한 번은 게르망뜨 성 쪽으로 번갈아 떠나던 우리들의 습관이, 그 두 방면을, 이를테면, 서로 멀리 그리고 서로 알 수 없는 상태로, 서로 다른 오후들로 이루어져 닫혀 있고 상호간에 연락이 없는 두 항아리 속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메제글리즈 쪽으로 가고자 할 때에는, 평소 아무 곳에나 갈 때처럼(산책길이 너무 길지 않아 멀리 가지 않기 때문에, 너무 이르지 않은 시각에, 그리고 하늘이 흐렸어도), 쌩‐에스프리 로에 면한 숙모님 댁 대문을 통하여 나가곤 하였다. 그런 다음, 무기 판매상인의 인사를 받기도 하고, 각자의 편지들을 우체통에 던져 넣기도 하는가 하면, 기름이나 커피가 떨어졌다는 프랑수와즈의 말을 지나는 길에 떼오도르에게 전하고 나서, 스완 씨의 넓은 정원 입구에 있는 하얀 살문과 평행을 이루고 있던 길을 통해 시가지를 벗어나곤 하였다. 그 정원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는, 낯선 사람들을 마중하러 나온 그곳 라일락꽃 냄새를 만나곤 하였다. 라일락꽃들 스스로, 작은 심장 모양의 싱싱한 초록색 나뭇잎들 사이로부터, 자기들이 잠겨 목욕하던 햇빛에 반짝이는 연보라나 흰색 깃털로 이루어진 치장물을, 호기심에 이끌린 듯 정원 살문 위로 쳐들고 있었다. 그 깃털 장식들 중 몇몇은, 경비원이 기거하던, 궁수들의 집이라고들 부르던 작은 기와집에 반쯤 가리워진 채, 고딕식 합각머리 위로 자신들의 분홍색 메나렛을 살짝 추켜올리고 있었다. 그 전형적인 프랑스식 정원에서 페르시아 세밀화의 선명하고 순결한 색조를 간직하고 있던 그 젊은 후리야들에 비하면, 봄날의 뉨파들조차 아마 비속해 보였을 것이다. 그것들의 유연한 허리를 나의 팔로 휘감아, 향기로운 머리 위에 별처럼 박혀 있는 곱슬머리를 나에게로 끌어당기고 싶은 나의 욕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가곤 하였다.


239 “어서, 질베르뜨, 이리 와.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흰옷 차림의 한 부인이, 날카롭고 권위적인 음성으로 소리를 질렀고, 그 여인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즈크제 옷을 입었고 내가 모르는 어느 신사 하나가, 그의 머리통에서 곧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러자 소녀가 문득 미소를 멈추더니, 자기의 삽을 집어든 다음, 내가 있던 쪽으로는 얼굴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고분고분하며 속내를 들여다볼 수 없고 앙큼한 기색으로 멀어져 갔다. 질베르뜨라는 이름이 그렇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갔고, 그 순간 직전까지도 하나의 막연한 영상에 불과하였으되, 그 이름이 이제 막 하나의 인격체로 규정해 준 그 사람을 나로 하여금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해줄지도 모를 하나의 호신부처럼, 나에게 주어졌다. 재스민들과 꽃무들 위로 들려왔고 시큼하며 초록색 물뿌리개에서 떨어지던 물방울들처럼 신선한 이름이, 자기가 통과한—그리고 격리시킨—순수한 대기의 구역을, 그녀와 어울려 살고 여행도 함께 하는 행복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가 가리키는 소녀의 삶이 간직하고 있던 신비로 물들이고 무지개를 일으키면서, 그리고, 그녀 및, 나는 영영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생활 영역과 그들 사이에 형성된, 나에게는 그토록 괴로웠던, 그 친밀함의 정수를, 분홍색 산사나무 밑 나의 어깨 높이에 펼치면서,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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